공지

[1653년 4월 20일. 의회를 해산하는 올리버 크롬웰.]


"The State, in choosing men to serve it, takes no notice of their opinions."
"국가는 자신을 섬길 사람을 택할 때 그 사람의 의사 따윈 신경써주지 않는다."

- 올리버 크롬웰 (1599 - 1658), "호국경".


왕의 압제로부터 나라를 구한 공화주의자. 또는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찬 광신적 독재자. 어느쪽일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해석하는 사람들만 우왕좌왕.






서양의 역사. 음악. PC게임. 신변잡기를 써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가끔 야한거 올라오는 것만 빼면.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작은 인문학 college 재학 중인 역사학도 입니다.
주변 반경 백마일 이내는 옥수수밭뿐이어서 좀 쓸쓸합니다.


현재까지 이 블로그의 장편 역사 연재 기획물들

이 블로그를 운영한지도 2년이 넘으면서 써 놓은 글의 수가 워낙 많아졌기에,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제 옛 장편 기획들을 못 찾으실 경우도 있을까봐 따로 공지성 글을 올립니다.

지금 진행중인 연재기획, 그리고 완결 낸 연재기획들 모두 이 포스트에 링크 시켜 정리하겠습니다.
이 포스트는 언제나 이 블로그 최상단 공지 바로 아래에 위치할 것입니다.

굳이 장편이 아니더라도 두 포스트 이상으로 길게 구성된 글들은 다 여기 링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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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

넷북으로 게임하기

해상도가 작아서 불편하지만 야겜은 할 만합니다





그나저나 이 게임 흠 좀...

뭐 등장인물 하나 나올 때마다 시방 왜 옆에 쓰리 사이즈가 뜨는거야

심히 당황스럽네

남자를 빨아먹는 여악마 서큐버스 전설과 그 전승에 대한 탐구

중세 유럽에서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악마들 중에 여성의 모습을 취해 남자들을 꿈 속에서 유혹해 성관계를 갖고 그 정기를 빼앗는, 그런 특수한 악마들이 있다고 한다. 그게 바로 'Succubus'다. 복수형으로는 'Succubi'.

사실 '서큐버스'란 단어는 고대 로마시대 라틴 단어 "INCVBVS"(즉, 인큐버스)에 기인하는데, 이 단어는 이는 '꿈꾸는 사람 위에서 잠 자는 정령'을 뜻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단어는 '정령' 이전에 단순히 그리스어 'Εφιάλτης'(에피알테스), 즉 '악몽'의 직역이었다. (가위 눌림 현상은 몸 위에 귀신이 올라 타 있어서 생기는 거란 설명이 더해진 것일까?)

그런데 이게 유럽 중세기에 이르면, 단어의 뜻이 에로틱하게 변화하게 된다. 인간의 성욕이란 정말 어쩔 수 없이 깊숙히 각인된 본능이라, 남자들이 아무리 성욕을 절제하고 수행을 해도 그놈의 '몽정'이란 놈 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인데, 종교적 절제와 성욕의 억압을 미덕으로 삼는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이 '민망한' 불가항력을 설명하기 위해 악마라는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이 '악몽' 내지 '꿈의 요정'을 뜻하던 'incubus'에 '회유시키다' 또는 '굴복시키다'의 뜻을 전달하게 되는 sub(변화형 suc)가 더해져서 (ex: SVCCOR) succubus가 되고, '남자를 유혹하는' 여성형 미녀 악령이라는 기똥찬 존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기독교 세계 고유의 '신개념'은 아니다. 서큐버스란 단어 자체의 유래와 변형은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지만 그 개념과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반복되어 표현 되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의 양치기 "엔디미온"의 잠에 빠진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밤의 여신(또는 달의 여신 - 아르테미스와는 다른 존재) 셀레네의 이야기는 수많은 조각품에서 거듭 보여지는 것이 아닌가? 등에 날개가 달리고, 머리에는 초승달 형상의 뿔을 단 것으로 흔히 묘사되는 셀레네가 잠을 자고 있는 젊은 남자의 위에 강림하는 형상, 이것이 '서큐버스'라는 개념의 원본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단순히 '남자를 유혹하는 악마' 이미지일 뿐인 사이렌은 약간 다른 개념이다.)



[서기 3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Endymion Sarcophagus'의 무수히 많은 변형 중 하나.]


["Selene and Endymion." By Sebastiano Ricci, c.1713. Oil on canvas.]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달의 여신 Selene의 이미지가 훗날 '달이 내뿜는 음기'라는 개념으로 정착되면서, 기독교 정착 후 인간이 가지는 '음탕한 생각'이 많이 들게 되는 것이 (간단히 말해, 발정기. -_-;) 바로 '달이 음기를 발산하는 시기' 라는 유사과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그 '이미지'가 존재하긴 했으나 몽정과 악령을 결합시킨 개념이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문화적 은유 없이, Erotic Dream, 즉 몽정 자체에 대한 직적접 언급이 나타나는 서기 2세기 경 에페수스의 의사였던 소라누스SORANVS의 저서 "On Acute and Chronic Diseases"(급성과 만성 질병에 관하여)인데, (이는 서기 5세기 경 누미디아의 의사였던 카엘리우스 아우렐리아누스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을 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몽정을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분류한다. 평소 '상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그것이 꿈 속에서 누군가에게 유혹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이는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세 기독교 유럽이라곤 해도, 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꿈 속에서 유혹하는 여악마'의 개념이 정착되게 되었는가? 그 근원은 초기 기독교에 유래한다. 소위 '순교자 저스틴Justin the Martyr'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로 불리우는 서기 1세기경 철학자는 천사의 신령들에 대한 분류와 정의를 하면서 고대 다신교(즉 Pagan) 신화와 신앙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정령'들을 '사탄의 자식들'로 분류를 해버리는데, 여기서 선악 구분 없이 그저 '정령'을 의미했던 Daemon이 '악마'를 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Anti-Paganism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정착되고, 또한 기독교가 범 유럽적 교세 확장을 누리게 되면서 민간/토속 신앙의 모든 영적 존재는 악의를 가진 마령으로 분류된 것은 로마제국 후기에 가서였다.

여기서 'incubus'도 꿈의 '악마'라는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기독교 교리에 내재되어 있던 개념이 'succubus'의 탄생과 단어의 사용으로 표출됨으로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때는 바로 서기 14세기 말,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녀사냥'과 '이단심문'기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Malleus Maleficarum. by Heinrich Kramer and Jacob Sprenger, 1486.]




그때까진 그냥 내버려뒀던 민간신앙/전설에 대한 기독교 신학자들의 연구와 그에 이어 찾아온 대대적 탄압과 함께, '악령'과 '마술'이라는 것들에 대한 본격적 정의와 개념 정리가 필요해졌고, 그와 더불어 서큐버스도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succubus'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후 1세기 만에, 독일의 이단심문관 하인리히 크라머와 야코프 슈프렌저 둘이 공동집필한 '마녀 대백과'로 분류될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에서 서큐버스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내려졌으니, 이것이 우리가 현대 문화매체에서도 보게 되는 '서큐버스'의 시작이다. 여기서 말하길 '서큐버스가 꿈 속에서 남자의 정액을 갈취하고, 이 정액을 다시 인큐버스가 가져다가 여자의 꿈 속에서 여자에게 집어넣어 악마의 자식을 잉태케 한다' (여자도 야한 꿈을 꾼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큐버스는 여자를, 서큐버스는 남자를 담당한다는 성별 역할 구분까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서큐버스의 개념도, 몇세기도 못 가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기독교 신앙과 교리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하고, 종교적 정신수련과 근면함의 필요성도 점차 사라지게 되면서, 야한 꿈 꾼 것을 변명하기 위해 굳이 악마적 존재의 이야기를 끌어들일 이유도 없게 되었다. 야한 꿈에 대한 개념은 다시 '정신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현대 의학적 의미에서의 몽정의 개념도 곧 정착되게 되었다.

서큐버스의 이미지는 스펜서Edmund Spenser의 서사시 "The Faerie Queene"(1590)의 기사들을 유혹하는 요정 여왕이나, 셰익스피어의 "Midsummer Night's Dream (한여름밤의 꿈)"의 매혹적 요정 여왕 등의 모습에서 내재되어 수세기를 수면 아래서 지내게 된다.


[Prinz Arthur und die Feenkönigin. By Johann Heinrich Füssli, c. 1788. Oil on canvas.]



문화적, 대중 아이콘으로 '서큐버스'의 이미지가 부활한 것은 20세기 후반, 판타지 소설이란 장르의 흥행과 함께 찾아온 신화와 전설에 대한 재탐구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반지의 제왕"의 성공과 함께 수많은 고대, 중세의 신화적 존재들이 재창조 되었고, 그 중에 서큐버스도 끼어 있었다. 오늘날 서큐버스를 다루는 매체들은 서큐버스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남자와 에로틱한 사랑을 하는 장난끼 가득한, 그저 날개와 꼬리와 뿔이 달렸을 뿐인 절세 미녀.


예를 들자면, 미국의 소설가 리쉘 미드Richelle Mead의 "Georgina Kincaid" 시리즈는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서큐버스 죠지나 킨케이드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섹스를 하면 그 대상의 생명력을 빨아먹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사이에 고뇌하고 모험을 겪는 서큐버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서큐버스라는 존재가 가지는 이미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Succubus Blues" by Richelle Mead. 2007. (여러 출판사에서 재판. '죠지나' 시리즈의 제 1권.)]




백조 날개가 아닌 박쥐 날개를 달았을 뿐인, 장난꾸러기이자 사랑의 신인 '큐피트'의 여성형 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재정립 된 현대문화 속에서의 서큐버스. 이 이미지는 일본에서도, 아니 일본에서 더욱 크게 흥하여, 마이너 문화 매체 중에서도 서양풍 판타지를 다루는 것들에서는 꼭 하나씩 등장하여 그 소비자들의 Semen을 '정말로' 빼내고 있다.



[Waffle©사 에서 제작한 성인용 PC 게임 "巨乳ファンタジー"의 한 장면]


[일본의 아티스트 '貞影Sadakage'의 작품.]


[일본의 아티스트 'Q Azieru'의 작품]





Fin.




참고문헌:

Lewis, James R., Oliver, Evelyn Dorothy, Sisung Kelle S. (Editor) (1996), Angels A to Z


Friedrich Matz. An Endymion Sarcophagus Rediscovere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ulletin, New Series, Vol. 15, No. 5 (Jan., 1957), pp. 123-128
Published b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ailey, Michael D. (2003). Battling Demons: Witchcraft, Heresy, and Reform in the Late Middle Ages.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Charles Stewart. Erotic Dreams and Nightmares from Antiquity to the Present.
The Journal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Vol. 8, No. 2 (Jun., 2002), pp. 279-309
Published by: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귀찮아서 참고문헌 format 정리는 안합니다







ps. 원래는 그냥 간단히 '서큐버스 항가항가' 하는 날림 포스트나 쓸라고 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아예 리서치 페이퍼를 써버렸습니다. OTL. 그것도 독일 현대사 과목 페이퍼 쓰려 했던 시간에. [...]

우이씨 이거 고대로 영어로 써서 다시 써먹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주제로 보고서 쓸 강좌가 없구나..


어쨌던, 그 만큼 공부도 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제가 이렇게 공들인 이 포스트를 독자분들께서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좋겠....

오늘의 점심식사 - Panino Mignon과 Bakes Potato Soup



오랜만에 시내에 있는 카페까지 나가서 먹었음.


Panino Mignon - 그릴드 샌드위치의 일종.

속에 소고기랑 햄이랑 블루 치즈랑 넣고 기름에 구운 샌드위치.

빵 맛이 독특하더군요. 녹인 블루치즈는 또 따로 나와서 감자칩들을 거기 찍어먹었음.





이건 같이 시킨 구운 감자 수프. 진짜 구운 감자를 갈아 만든 것처럼 아주 진하고 걸쭉한데다 감자맛 제대로 나는 수프였음. 위에는 베이컨과 체다 치즈 첨가.


여기에 24온스 냉커피 추가.



전체 합해서 $14. (인근 피잣집에서 라지 피자 한 판 시킨것보다 더 비싸 OTL)


그래도 이따금씩 이렇게 '호사'를 부려야지 맛 없는 학교 음식들을 견딜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논증



"Is God willing to prevent evil, but not able?
Then he is not omnipotent.
Is he able, but not willing?
Then he is malevolent.
Is he both able and willing?
Then whence cometh evil?
Is he neither able nor willing?
Then why call him God?"

"신은 악을 없애려 하나,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가능한데 행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하다.
그럴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그런 존재라면 그를 뭐하러 신이라 부르는가?"

-EPICURUS (기원전 3세기 경)

에피쿠로스라고는 한 줄 읽어본 적도 없는 네티즌들이 그냥 마구잡이로 퍼다가 쓰는 에피쿠로스의 신에 대한 의문. 하지만 막 퍼다 쓰고 싶은 마음이 이해될 정도로 훌륭한 논증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세인들의 믿음과는 달리, 신은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 내 생각에도 존재는 하나 자신의 창조물들에게 관심이 없는 신 쪽이 전능하게 모든 인간사를 관찰하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신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나이든 책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나이든 책: The World in Tune(1954) & Dönitz(1958)


원래는 제가 가진 책의 압도적 대다수는 '집'(한국)에 있고, 그 책들 중 '제' 책과 '부모님' 책의 구분이 워낙 모호해서 이 릴레이 포스팅은 받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迪倫님의 덧글을 보고 용기를 내 씁니다.

(집에는 뭐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50년대 판본도 있고, 뭐 불어로 된 원서 책들은 40년대까지 가는 것들도)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책들만 가지고 얘기 한다면...


'가장' 나이 든 게 80년대 책들밖에 없습니다 -_-;;;;

그래서 딱 한 권 하긴 좀 민망해서 두 권에 대해 씁니다.



1. 당신이 가진 가장 오래된 책의 서지사항을 말해주세요.


뻬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Ie siècle" 중에서 Les jeux de l'échange (vol. 2, 1979)의 영역본인 "The Wheels of Commerce"를 1982년에 재판한 겁니다.

한국에는 주경철 교수님이 번역하신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 : 교환의 세계" 부분에 해당하는 책.
(한국에는 부당 두 권으로 나왔던데 영역본은 부당 한 권)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오래 된 게


리차드 마리우스Richard Marius의 토마스 모어Thomas More 전기.
1984년 초판본입니다.






2. 어떤 내용의 책인가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1) "The Wheels of Commerce"는 브로델의 연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중에서도 경제와 역사 흐름의 밀접한 관계를 집중 조명하는 책입니다. 시장경제에서 주식경제에 이르기까지, 유럽문명에서의 첫 현대적 자본주의 탄생 과정을 기술합니다. 그는 다른 곳도 아닌 유럽에서 Capitalism이 꽃을 피운 이유가 1. 수직적 계급 구조 -대를 이은 재산의 축적-, 2. 장거리 무역의 촉진, 3. 확장적인 시장경제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이야기책'이 아닌 아주 확고한 경제사서라서 엄청난 양의 통계수치 자료와 경제학적 해석이 많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을 것도 같으나, 의외로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 있습니다.


2) "Thomas More"는 제목 대로 토마스 모어의 전기입니다. 수많은 토마스 모어 전기들 중에서도 리처드 마리우스의 이 저서는 최고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우스는 모어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습니다. 모어의 지나친 카톨릭 광신주의와, 인문주의자 답지 않은 편협성과 불관용의 태도가 그가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3. 어떻게 생겼나요? 인증샷을 보여주거나 모양새를 설명해주세요.







4. 어떻게 구하셨나요? 입수 경로를 알려주세요.


둘 다 서로 다른 날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구했습니다.

University of Washington Bookstore에 헌책 구하러 가는게 시애틀 주재시 제 취미...라서.

그 책방 역사 코너에는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책들이 정말 싼 가격에 진열될 때가 자주 있어서..




5. 이 바톤을 누구에게 넘기시겠습니까? 세 명을 골라주세요.

아무나 받아가세요^^; (무책임)








ps. 역사책들이라 역사밸리로.

Radwimps - おしゃかしゃま(오샤카샤마)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노래 자체는 진짜 멋지다.

Funky한 멜로디에 베이스라인은 진짜 매력적으로 그루비하고 기타 리프도 아주 착착 달라붙는 음감이다.

듣기 좋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곡 구성이 참 재밌다.


알고보니 이 곡이 수록된 Radwimps의 앨범은 발매 때 오리콘 차트 2위까지 올라가고 판매량은 통산 40만장.


그런데 찾아 들어보니 다른 곡들은 이 곡 만큼이나 신나지가 않았다는게 안타까운 후일담

(나머지는 범프 오브 치킨 스러운 블루스 스러운 슬로우 록)

밤에 잤는데 깨어나도 밤이다

지난주에 밤샘을 자주 하고 하루 4시간 자고 그런 짓을 해서 그랬는진 몰라도



어제 취침 시각: 오후 10시 정각

오늘 기상 시각: 오후 7시 정각


총합 21시간 잠

계속 헬렐레 한 기분에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가고....

오래 자서 기분이 좋은게 아니라
놓쳐버린 햇살들이 참 애석해 그 누굴 탓해 내 안의 괴물 게으름이란 놈에게 내 젊음은 제물

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 06.

이번 편에서는 라파예트 본인에 대한 얘기보단 그 주변 상황에 대해 주로 얘기합니다.



브랜디와인 하천에서의 전투 후 대륙군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다. 그 지휘관인 죠지 워싱턴에 대해서도 불신과 악평 일색 뿐이었고 전군의 사기와 기강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죠지 워싱턴 중장의 부관이었던 토마스 피커링은 당시 그에 대해 이런 평을 남긴다. "그는 용병하는 사령관이라기 보단 그저 수동적 관전자에 가깝다" 이렇게 펜실베이니아 주둔 대륙군은 도저히 싸울 형편이 아니었고, 전투 여드레만인 1777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의 미국 독립 정부는 수도 필라델피아를 버리고 도망간다. 일주일 후인 1777년 9월 26일, 하우 중장 휘하 영국군과 헤센 용병군은 '반란도당들의 심장부'에 당당히 무혈 입성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워싱턴은 필라델피아를 탈환하기 위해 10월 4일에 영국군 거점에 공세를 펼쳤고, 그 전투가 바로 Battle of Germantown이다. 여기서 워싱턴은 자기 휘하 대륙군의 수준을 과대평가하여 격에 맞지 않는 고급 작전을 입안했고, 그 휘하 지휘관이나 병사들은 워싱턴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1만 1천의 대륙군은 9천 영국-헤센군을 상대로 싸워 150여명의 전사자와 520여명의 부상자, 그리고 440여명의 포로를 남기고 후퇴했으며, 영국군은 500여명의 사상 피해만 입고 필라델피아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는 이미 그 전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요양중이었던 라파예트 후작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 전투로 인해 워싱턴의 평판은 더욱 더 땅에 떨어졌다.

[Battle of Germantown]


[Battle of Saratoga]



그런데 여기에 또 아주 타이밍 절묘하게 저만타운 전투 사흘 후 벌어진 새러토가 전투에서의 대륙군 승전보가 의회로 날아든다. 뉴욕 주 북부의 새러토가의 전투Battle of Saratoga에서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 휘하 대륙군이 존 버고인 장군 휘하 캐나다 방면 영국군을 격파하고 아예 버고인 장군의 항복을 받아 내, 영국군 6천 명을 포로로 잡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호레이쇼 게이츠는 아주 노골적으로 워싱턴의 군 총 지휘권을 노리고 물밑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사태는 점점 더 대륙군 내부의 권력다툼/정치적 투쟁으로 번져가고, 장군과 장교들은 워싱턴파와 게이츠파로 나뉘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확실하게 게이츠파에 속했던, 그러나 워싱턴 지휘 하에 있는 장군 하나가 특히 말썽을 일으킨다. 아일랜드 출신 프랑스 육군 장교이자 그 때는 미 대륙군 여단장이었던 (복잡하다;) 토마스 콘웨이는 라파예트 후작의 환심을 사고 그를 게이츠파로 끌어들이려 한다. 라파예트 후작 쯤의 거물을 게이츠의 동맹자로 만든다면 큰 이득을 보리라 생각한 것이다. 또한 이 콘웨이는 진급에 거의 광적인 열망을 보이며 중상모략과 감언이설과 자화자찬을 동시에 하는 대단한 묘기를 선보였다. 허나 워싱턴은 콘웨이의 진급 요청을 전혀 들어줄 생각이 없었으며 그것에 진저리가 난 상태였다.


허나 그해 9월에 갓 20세가 된 라파예트 후작은 이러한 '물 밑 권력 다툼'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콘웨이의 아첨을 곧이 곧대로 들었으며 게이츠 장군에 대한 칭찬도 곧이 곧대로 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워싱턴 장군에게 매료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워싱턴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 존경스러운 워싱턴 장군님'이란 내용과 '콘웨이는 아주 훌륭한 군인이고 멋진 남자인 것 같습니다'와 '게이츠 장군의 새러토가 승전보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같은 내용을 모두 한데 썼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에게 편지를 보낸 그 날 동시에 게이츠에게도 '승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험한 사회 속의 순진한 순둥이같은 느낌으로.

아마 콘웨이는 라파예트가 완전히 자기네 편이 되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이츠와 워싱턴 간의 알력은 굉장히 깊은 것이었고, 또한 위험한 것이었다.

브랜디와인과 저만타운의 전투 후, 워싱턴은 게이츠에게 지원병력을 요청했으나, 게이츠는 그 요청들을 전부 묵살했다. 이에 워싱턴은 부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보내서 애걸복걸을 해서야 1개 여단을 받아올 수 있었는데, 이 때 워싱턴은 콘웨이가 몰래 게이츠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콘웨이가 게이츠에게 보낸 편지에는 워싱턴에 대한 아주 극렬한 험담이 담겨 있었고, 게이츠는 사석에서 부하들에게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주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워싱턴은 즉각 미 의회에 연락, 만약 콘웨이를 승진시킨다면 자기가 대륙군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당황한 의회는 콘웨이를 승진시키지 않겠다고 약조했으나, 대신 게이츠를 국방위원장(President of the Board of War)이라는 직위로 승격시킨다는 발표를 한다. 의회는 이미 게이츠와 그 일파에 크게 귀 기울이는 중이었다. 워싱턴은 이에 크게 반발했으나 대륙군 총사령관직에서 사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12월이 되자 의회는 '감찰관'이라는 없던 직위를 새로 만들어내고, 그 직위에 콘웨이를 앉혀 워싱턴의 군영으로 보낸다. 감찰관은 군의 훈련 상태를 감독하고 검사할 예정이었다. 이 때, (12월 19일) 워싱턴의 대륙군은 드디어 그 밸리 포지Valley Forge에 겨울 숙영지를 건설하고 주둔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 유명한 '포지 계곡의 겨울'의 시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콘웨이가 군영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워싱턴의 반응은 냉정하면서도 아주 적절했다. "귀관이 훈련을 어떻게 감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회의 지령을 소지하고 있는가? 없다고? 없다면 귀관이 여기서 할 일은 없다." 이에 콘웨이는 꼬리를 내리고 물러난다.


그때까지도 주위에 만연한 파벌싸움과 정치적 알력에 대해 무지하게 있던 라파예트는 (그때까지도 그는 콘웨이와 친하게 지내며 게이츠와 워싱턴 양쪽에 속 편한 편지들을 보내고 있었다 - 부상 때문에 노느라 하는 일이 없었기에 편지를 많이 썼다-) 그제서야 콘웨이 - 게이츠 - 워싱턴의 충돌에 대해 알게 되어 워싱턴의 막사로 달려갔다고 한다. 워싱턴이 너무 바빠 만날 수 없다는 얘기만 듣고 워싱턴을 만나진 못한 라파예트는 그 대신 아주 절절한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낸다. 그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 유럽에 있을 동안에는 모든 미국 사람들이 자유를 사랑하는 줄 알았습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하나로 뭉쳐 의회를 지지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제 보니 의회의 멍청한 사람들은 전쟁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모르면서 감히 장군님을 재단하려 드는군요. 하지만 전 장군님을 굳제 믿고 지지합니다."

그동안 절친하게 지냈던 콘웨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콘웨이는 그동안 간악하게도 제가 장군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와 애정을 뒤흔들려고 해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허황된 공상들을 불어넣어왔고, 전 창피하게도 이에 속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실을 알게 된 저는 이전보다 더욱 장군님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운명은 장군님의 것과 하나가 되어, 장군님이 뜻하시는 바를 제 전력을 다해 따르고 행할 것입니다."


거의 연정 고백 편지에 가까운 논조로 쓰인 이 감정적 편지는 매우 놀라운 것인데, 아무도 이 위험한 정치적 줄다리기 속에서 워싱턴에게 그 정도의 충성심과 지지를 대놓고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차겁고 냉정하다는 악명이 높던 워싱턴이 라파예트의 그 편지에 보낸 답장이다.



"이 모든 전쟁이 끝나고 나면 버지니아의 내 집에 와 주시겠소? 그렇게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오늘 우리가 겪은 고난과 타인의 모략과 잘못들을 떠올리며 그저 웃어넘기게 될 거요. 그리고 그 때 나는 내 모든 노력과 교양을 다해 그대에게 내가 얼마나 그대를 아끼고 가깝게 여기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이오."







앞으로 계속


본 기획의 이전 글들: http://kalnaf.egloos.com/tag/LifeOfLafayette



ps.

라파예트와 워싱턴 간의 편지는 내가 좀 번역을 느슨하게 해서 그렇지 훨씬 더 끈적끈적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둘이 이상한 관계였다는게 아니라;; 당시 "상류츨 예의범절"과 "서한 예법"이라는게 좀 꼼꼼하고 복잡해서 온갖 수사를 다 동원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고려하도록 하자.


ps.2.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미국 독립"의 지도자들이 모두 나라를 위하는 충성된 애국심 한마음으로 마치 경건한 성자들같이 일치단결하여 독립을 이끌었다는 식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점인데, 사실 정치가들은 정치가들이고 고위군인은 고위군인들인지라 다들 자기 사리사욕에 이권투쟁에 권력다툼 아주 쩔어주는 수준이었다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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