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공지 및 대문

[Charles Ier insulté par les soldats de Cromwell
크롬웰의 병사들에게 조롱당하는 처형 하루 전의 찰스 1세.
이폴리트 들라로슈, 캔버스에 유화. 1836. 300 cm × 400 cm]


"I must tell you ... A subject and a sovereign are clean different things. If I would have given way to an arbitrary way, for to have all laws changed according to the Power of the Sword, I needed not to have come here, and therefore I tell you...that I am the martyr of the people."

"신하와 군주는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다. 만약 짐이 무력에 의해 모든 법률이 좌지우지되는 독단의 방식을 받아들였더라면, 짐이 이 자리에 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선언하건데, 짐은 이로써 국민의 순교자가 되었다."


-영국왕 찰스 스튜어트, 찰스 1세Charles I of England, 1600~1648.
1648년 1월 30일, 단두대 앞에 서서.




이 블로그는 한 역사학도가 서양의 역사, 컴퓨터 게임, 락 음악, 그외 덕질 등 신변잡기를 써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본 블로거는 본 블로거에 대한 하대체 덧글 및 악성 인신공격을 원하지 않습니다.

본 블로그의 포스팅을 무단 복제, 전재하지 마시오. 글 주소 링크 정도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어지는 내용

나를 봐,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어!










그러하다


내년 2월 출시예정인 작품을 스팀 등록 되자마자 예약구매하게 만드는 무서운 괴물이 내 안에 있어





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

데드 오어 얼라이브 5가 PC로 나온다는데 지금 잠이 옵니까 여러분

나 이제 평생 콘솔 살 이유가 사라졌어 콘솔 필요없어 컴퓨터가 최고야

으아아아아 도아 DOA 도아 DOA 도아 DOA 도아 DOA 도아 DOA 도아 DOA 도아 DOA 가 PC로 나온다니

으아아아아아

카스미 아야네 히토미 엘레나 티나

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아아

보고픈, 보고파질 요즘 영화들 잡상






EXODUS : Gods and Kings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이제 지루할까? 신선도가 떨어질까? 그렇지는 않다. 1956년작 "10계"와 1998년작 "이집트 왕자"가 이미 너무나도 멋지고 훌륭하게 들려준 이야기지만 이것은 몇번을 재해석해도 대단한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 출애굽기를 리들리 스캇의 손으로 재해석한다?

그렇다면 이 2014년판 출애굽기는 성스러운 종교 영화가 아니라 '역사'의 필터를 거친 대서사극이 된다.
리들리 스캇 감독이 좋아하고 잘하는게 그런거니까 또 한 번 믿어봐야겠다. (로빈 훗 빼고)

그런데 크리스챤 베일이 모세다. 그래! '주어진 운명의 역할에 고뇌하는 인간적인 영웅'이라는 흔해빠졌지만 그만큼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 역을 하는건 크리스챤 베일 전문이지!

그 외에는 조엘 에저튼이 람세스 2세 역인데, 이 사람 "위대한 개츠비"(2013)랑 "제로 다크 서티"(2012)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모세만큼이나 복잡한 인물상일 람세스 역을 얼마나 잘 보여줄지 궁금하다. "이집트 왕자"에선 람세스가 아주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말이지.

이집트 왕가 일원들이 흑인이 아니고 백인 배우로 캐스팅 되었느냐 이건 인종차별이다 부르짖는 여론도 있었는데 그건 참 슬픈 일이다. 이집트가 아프리카에 있다고 해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흑인이었다 라고 결정짓는 그 그릇된 역사 인식이야말로 역인종주의의 발로다. 그런 점에선 카르타고의 한니발 바르카 흑인 설도 마찬가지.

스파이크 리가 클린트 이스트우드한테 Flags of Our Fathers 개봉했을 적에 왜 수리바치야마에 성조기 꽂은 병사들이 백인밖에 없느냐 흑인 차별하느냐 따지면서 삿대질한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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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ter Diviner




러셀 크로우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황무지에서 가족을 사랑하며 힘든 삶을 꾸려나가는 아버지다.

1차세계대전이 터졌고, 그의 아들들은 갈리폴리로 보내졌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는 기나긴 여정에 나선다.


오오 이것이 호주판 "Un long dimanche de fiançailles"고 오드리 토투 배역을 성반전하면 러셀 크로우인가 싶은데

아무튼 이 플롯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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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Sniper



전설적인, 미국 전쟁사에 오래오래 기억될 명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삶

-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려낸다.

요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서 명화 반열에 안든 영화가 있던가?

TAKE MY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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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ick




키아누 리브스, 은퇴 킬러. 공허한 삶에 남은 거라곤 병으로 죽은 아내가 남긴 강아지 한마리.

그런데 왠 갱스터 놈들이 쳐들어와서 차도 도둑질하고 개도 죽였다.

이 개만도 못한 놈들 때문에...

은퇴한 킬러, 복수를 위해 현역으로 복귀.

더 이상 설명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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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Heart of the Sea




한 10년 전이었나, 나는 나다니엘 필브릭이 지은 In the Heart of the Sea: The Tragedy of the Whaleship Essex 라는 책을 읽었다. 포경선 에섹스 호의 비극.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의 배경이 된, 1820년에 벌어진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절절한 보고서였다.

아주 좋은 책이었다. "모비 딕"보다도 더 마음을 움직이는 면이 있었다. 에이허브 선장같은 신화적 캐릭터가 없어도 보통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과 자연의 거대한 힘이라는 테마는 그 자체로 큰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 책이 영화화 되었다. 모비 딕의 영화화는 수없이 되풀이되었으나 멜빌의 픽션이 아닌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다는게 아주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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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broken





루이스 잠페리니는 1938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 육상선수로 참가했던 젊은이였다. 그는 미국 대학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도 경쟁자들의 반칙으로 인한 부상을 입고도 그냥 불굴의 의지로 뛰어 우승해내며 신기록을 세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B-24 폭격기의 사수였다. 1943년에 그의 폭격기는 격추되었고 망망대해에 버려졌지만 그는 47일동안 바다에 표류하면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그는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선 종전 때까지 모진 학대와 고문과 온갖 말 못할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내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일을 겪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을 고문한 자들을 용서했다.

그는 1998년 나고야 동계 올림픽에 성화를 들고 뛰면서도 용서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는 올해 7월에 97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이야기다.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했는데 예고편만 보면 믿기지 않게 잘 만들어졌다. 실 결과물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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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sman: The Secret Service





무슨 약을 빨면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궁금하지만 나까지 그 약기운에 취할 것 같다.

요즘 대영제국의 특수요원은 드라이 마티니 마시는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런던 폭동하는 CHAV로 세대교체인가.

이런 남성적 허세 간지 뿜어내는 영화도 너무 좋다. 웃으면서 보기엔 최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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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스타워즈 얘기.


Star Wars : Force Awakens

-죠지 루카스는 다른건 다 잘해도 영화 감독은 못하는 엉터리 영화 감독.
'특수효과 연출가'랑 '경영가'란 타이틀은 잘 어울리지만.

디즈니에 팔리긴 팔렸어도 더 이상 루카스가 감독 안하는 거랑 새 감독 선택은 잘 된 일인 것 같다.
JJ 에이브럼스라면 루카스보다는 (훨씬) 영화 잘 만드는 사람이니까 꽤 멋있는 영화가 나오리라 기대해도 좋겠다.

무턱대고 디즈니니까 이제 스타워즈가 아동용이 되었구나 절망하는 것도 섵부른 설레발.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자. 스타워즈는 원래 키즈-후렌들리 프랜차이즈였어....

EU에서 아무리 진지를 빨아도 스타워즈는 애들 쌈짓돈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야..

그리고 예고편에서 그. 다른 것도 아니고 힐트랑 가드가 달려있는 라이트 세이버. 놀려먹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 보기엔 그거 나름대로 나쁘진 않은 디자인인 것 같은데? 게다가 힐트가 있음으로 인해 라이트 세이버 대결 양상이 확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톰 트루퍼가 그냥 주인공 무쌍 (또는 테디베어 나부랭이 돌팔매질)에 쓸려 나가는 제복 잔챙이가 아니라 실제 정예 군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스톰 트루퍼 새 헬멧 디자인에 불만은 없다.




아무튼 이런 영화들이 보고 싶다.

올해 말부터 시작해서 내년까지 나온다.

휴가 나갈 때마다 보고 전역 하고 몰아 보고 아무튼 다 봐야지.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의 발매.








나는 드래곤 에이지를 정말 좋아한다.

첫작인 Dragon Age: Origins 에만 거의 200시간 정도는 투자했을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에다가 그 수 배의 시간을 들였던 류의 게이머였기 때문에 더더욱 기쁘게 한 게임이었다.
90년대 말에나 존재할만한 게임이 2009년에 나타나다니! 이건 꿈인가 생시인가!
게다가 그 자체의 요소가 너무 매력적이야! 역시 바이오웨어야! 스토리야! 캐릭터야!



뭐, 그런 흥분 이후에 찾아왔던 Dragon Age 2는 아쉽게도 정말 기대 이하였고 심지어 끔찍하기까지 했다.
실망감과 허탈감 속에 참아주며 간신히 엔딩만 봤다.
액쑌! 좋아하는 틴에이져! 들을 위해 간소화한 것 같은 그 게임 구성은 마치
올드비들을 우롱, 아니, 악의적으로 조롱하는 것 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60시간 정도는 한 것 같다. 부자는 망해도 여전히 부자였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드래곤 에이지의 세계관, 드래곤 에이지의 등장인물들, 그 분위기 모두 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THEDAS! 

그 혹독하고 가차없는 중세 유럽의 음울한 모습! 곳곳에 악이 도사리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엘프들이 차별받으며 슬럼 게토에 모여 살고 드워프들은 몰락해가는 지하 대제국에서 영원의 투쟁을 벌이며
교회의 통제 아래 있는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고 견제하며
있는 이들은 무한하게 권력을 탐하며 없는 이들은 무한하게 고통받는
정령들은 호시탐탐 인간의 혼을 노리며 악귀들이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와 사람을 해치는 그 어두운 곳!

그 세계관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더 보고 싶었다.


드래곤 에이지의 세번째 작품이 될 Inquisition은 어떨까? 바이오웨어는 2의 실패를 보고 얼마나 뉘우쳤을까?

...그들은 아무래도 제대로 뉘우치고 반성하여 부활한 모양이다.

오늘 발매된 인퀴지션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격찬의 호평 투성이다.

Origins와 2의 정확한 중간 지점에 위치한 게임성을 가졌고, 모든 것이 너무나 (합당하게) 거대하단다.
너무나 거대해서 버거운게 아니라 너무나 거대해서 즐겁고 황홀한 그런 오픈월드 특유 매력의 거대함 말이다.
9명이나 되는 동료들 모두 너무나 매력적이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파고드는 것도 큰 즐거움이란다.
이 시대를 책임질 롤 플레잉이라는 과장된 찬사까지 봤다.

한번의 플레이 타임에 90시간 정도를 투자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 놓고도 모든 요소를 다 파고들지 못했고 놓친 게 많을 거라 한다.


하고 싶어졌다.

꼭 해야겠다.

공개된 영상들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그리고 발매 기념 런치 트레일러.



입을 헤 벌리고 봤다.






-이 게임을 실제로 다 끝내고서 후기니 리뷰니 올리는 건 아마 전역한 후가 되겠지 싶지만.-

'썸'...

....

부드러운 인상에 나와 키가 같은 갈색머리 백인 여자.

시애틀의 대학가 거리에서 우연히 그녀가 기르는 강아지가 목줄 없이 헤매이는걸 돌봐준게 인연이 되어

몇번 더 만났는데 호감이 싹트고

동네 카페에서 만났는데 기막힌 우연의 일치로 나와 옷 입은 코디 -청바지에 상의가 같은 무늬- 가 똑같아서

엄청 신기해하고 재밌어하며 좋은 분위기가 되어가는 찰나에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고 추위가 엄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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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는데 으으 자기 전에 터트린 핫팩이 수명이 다해서 추워진 거시여따

핫팩 상자가 소대장님 머리맡에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남을 깨울수도 없고 하여

그냥 다시 잠을 청했는데 덜덜덜 이가 절로 부닥치더라

아아 숙영지 편성할 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비닐을 좀 더 깔끔히 칠 걸 하는 후회가 새삼 들더라

결국 불편하게 뒹굴대며 밤을 지새고 일어나 보니 천막 천장과 침낭 위엔 서리가 꼈더라

안그래도 힘겨운데 달달한 꿈까지 꾼 바람에 네거티브한 감성이 증폭된 하루였다



그게 벌써 어제 일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데 꿈 내용은 계속해서 생생히 뇌리에 각인되어 버렸다

내 이상의 여인은 갈색 장발의 백인 여자란 얘기인가 뭔가

요즘 애들은 모르더라

NEXT가 뭔지 모르는 건 물론이거니와 '넥스트'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다더라.

에이 설마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영어 단어 next, '다음' 이라는 뜻, 이외로는 아무도 모르더라.

농이 아니라 진짜로 모르더라. 그 많은 청년들이 모르더라.


뭐... 모르겠지.
















리더는 먼 길을 떠났지만 밴드의 많은 명곡들은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김세황씨가 기타리스트였던 곡들을 제일 좋아하지만.



사실 꼭 여기 링크하고 싶은 곡이 하나 더 있지만 올리면 곤란할 것 같아서

올려도 아무도 뭐라 할 이유 없는 신분이 되면 이 포스팅을 수정하겠다.

락 밴드 NEXT의 정규 앨범들 중 하나의 앨범 타이틀 곡이다.

트레비아 - 1장. 슈니빌드부르크의 거리 : 3

3.

시데르 로크 대위의 임무는 사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혁명군과 협조하여, 조사단이 슈니빌드부르크에 도착하기에 앞서 최소한 수도 방면 공국군의 공화국군으로의 재편 문제를 정리해 놓는 것이었다. 여러 병영과 요새들을 방문해 협상을 하고 행정적인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그것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 문제를 놓고 지지부진했던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공화정부와 트레비아 외무성 간의 협상은 체스터 아크벨 소령의 설득이 유효했는지 막판에 타결되었고, 덕분에 군 재편은 장해물 없이 수행될 수 있었다. 베켓 대사의 도움으로 트레비아 외무성에서 인가해준 추가 예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슈니빌드부르크 인근에는 중대급과 대대급의 약 4천여명 정도의 구 공국군 주둔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운용실태는 다양했다. 자체 운영은 계속 하고 있으되 사태를 그저 관망 중이던 부대도 있었고, 혁명군 세력에 의해 제압, 무장해제 되어 병영 내에 사실상 연금 중인 부대도 있었다. 아예 병영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흩어져버린 부대도 있는가 하면 장교들의 통제가 느슨해져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가버린 자들이 많아 편제의 절반도 안 남은 부대도 많았다. 시데르는 부대를 유지하지 않고 흩어진 자들의 경우 나중에 산적화 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왔지만 일단은 당장의 일이 줄어든 것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공국군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쉽게 협상에 응했고, 부대재편에 몇 가지 조건들을 내세우긴 했어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대로라면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공화국군은 안정적으로 편성되어 갈 것으로 보였다. 어째서 이렇게 간단히 처리될 일이 혁명 발발 후로도 몇 달 씩이나 지연된 건지 잘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일이 풀리게 된 이유는 어느 공국군 중대장과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아아, 트레비아 분들은 역시 말이 잘 통하고 계산도 확실하단 말입니다. 역시 상업과 자본주의의 나라여서 그렇겠지요? 아,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저희 나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난 것이 참 다행입니다. 덕분에 저도 이득을 많이 봤습니다. 허허”
“이전에도 트레비아 사람과 같이 일 해보셨나보죠?:
“예? 아니, 한 달 전에 트레비아 정부에서 온 분 말입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여성분이 공직자인데다 그리 당당하고 명석한 것에 여러모로 놀랐습니다. 트레비아의 여자들은 다 그런가요? 허허”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공국군 중대장의 모습에 시데르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그 트레비아 여자란 사람이 누구였으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조금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대화였던 모양인데.”
시데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은 차가운 어투로 말하자 공국군 장교는 그제서야 뭔가 생각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 이런, 이미 다 알고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전 또 다 얘기가 되어 있는 줄로만 알고... 이거 큰일이네,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는데..”

시데르는 여러번 다그쳐 묻고 나서 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말인 즉슨,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자신을 트레비아 외무성의 파견 요원이라고만 소개한 여성 한 명이 한 달 전부터 구 공국군 병영과 요새들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회유했다는 것이었다. 요구 조건은 신정부 또는 트레비아 측 군인이 다시 협상하러 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현상을 유지하라는 것으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그냥 주둔지에서 대기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 대가는 막대한 양의 트레비아 은화였다. 반혁명 봉기가 일어났을 때도 대기상태를 유지하자 같은 양의 은화가 추가로 배달되어 왔다고 했다. 그것도 은 함량이 높은 트레비아 국립 은행 발행의 공인 켄트 은화였기 때문에 구 공국군 장교들은 지시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미 의심하고 있었지만 트레비아 켄트화에 대한 대목에서 시데르는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시데르는 그 여성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그 소속 기관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외무성 좋아하시네!’ 그녀는 분명 외무성Ministry of Foreign Affairs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의 국무성Ministry of State Affairs 소속일 것이라고 시데르는 짐작했다. 왜냐하면 국무성 산하에는 다름 아닌 트레비아의 정보분석실, 즉 TIAO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스터가 말해준 그대로였다.

이후 몇몇 다른 공국군 지휘관들과 더 대화해 보면서 캐물어 그때마다 트레비아 정보요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데르는 큰 실망감과 허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임무라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는가 싶었고, 한편으로는 뭐든지 돈으로 매수하려는 수법이 참으로 '트레비아 스럽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돈이 썩어난다면 사회복지 같은 거창한 얘기는 바라지도 않으니 빈민구제 사업에라도 돈을 풀어줄 수 없나?' 시데르는 안타까웠다. ‘챠오’에서 은화를 뇌물로 받은 장교들은 은화의 대다수를 독차지했을 터였다. 일반 병들의 밀린 봉급은 시데르가 받아온 트레비아 외무성 예산을 통해 집행될 터였지만 그것도 전부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게 다 무슨 낭비란 말인가! 그러나 얼마나 허무하건, 또는 돈이 아깝건 간에 할 일은 계속해야했다.

그 이름 모를 정보요원 덕택인지는 몰라도, 9월 27일에 이르러 슈니빌드부르크 근방 30마일 내에 있는 공국군 수도연대 예하 부대들은 공화국군으로의 재편성이 거의 완료되는 중이었다. 구 공국체제 충성파 사관들과 병사들에게는 공화정부에 대한 충성 맹세만 한다면 넉넉한 퇴직금과 함께 전역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충성 맹세를 거부한 자들에게는 퇴직금도 거부되었다.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시민이 아닌 국외 출신 병사들에게는 트레비아 군으로의 입대 권유가 행해졌다. 일부 불평분자들은 설득을 거쳐 공화국군으로의 재편을 유도하고 교육시켰다. 시데르는 이 과정에서 금전 문제는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지 궁금해졌다. 애국심이나 전우애보다 연체된 봉급의 일시불이 더 중요한 결정 요소일까?

그런데 시데르는 그 '금전 문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난처한 경우를 계획 상 마지막 방문 부대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4백여명 정도의 병사가 소속되어 있었던 구 공국군 수도 연대 제 7대대였다. 그러나 이 의외의 발견에 대해 시데르는 그다지 기뻐할 수 없었다. '더러운 트레비아 돈 따위 필요 없다'는 삿대질과 함께 돌이 날아오는 경우는 상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런 놈들이 우리 국토를 짓밟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총칼로 해쳤단 말이지? 정말 수치스럽군!”
“신정부는 우리와 제대로 대화 할 의지가 있긴 한가? 저런 놈팡이들밖에 보내지 못한다는 건가?”
“이미 무슨 소리 할지 다 알고 있어! 우리가 돈에 미쳐 나라를 배신할 거라곤 생각지 말라!”
“트레비아와 그 꼭두각시 정부에 본 때를 보여줘야 해! 마침 잘 됐다, 저 놈을 끌어내자고!”
“이야, 민주 공화정이란 게 남자는 계집처럼, 여자는 사내처럼 만드나 보지? 우린 그런 민주주의 따위 필요 없다!”
“우리는 트레비아의 암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트레비아의 개들을 죽여라!”


7대대 주둔지에 도착해 그 병영 중앙 연병장에 들어서자마자, 검붉은 색 공국군 제복을 입은 7대대의 장병들이 시데르 일행을 에워싸고 야유와 폭언을 퍼부었다. 장교 몇 명이 그들을 통제하는 시늉을 하긴 했으나 별로 노력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시데르와 동행했던, 파란색 혁명 완장을 찬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공화국군 장교 한 명이 목청을 높여 그들을 상대하려 했다.

“진정해라, 이 반동분자 놈들! 신정부의 공식 명령으로, 그대들도 혁명의 물결에 동참할 기회를 주러 왔으니 기뻐하고 예를 갖추라!”

하지만 7대대의 장병들은 지금까지 마주쳤었던 구 공국군 병사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매국노는 닥치고 있으라’는 욕설과 함께 그들은 진정하기는커녕 총칼을 뽑아 혁명파 장교에게 위협적으로 들이댔다. 그 서슬에 놀란 공화국군 장교는 파리하게 질려 땅에 주저앉았다.

그와는 대도적으로 시데르의 호위 자격으로 따라왔던 전령 폴 베르티유 이등병은 짐짓 용감하게 허리춤의 피스톨을 뽑아들고 시데르의 앞을 막아섰다. 소년병의 피스톨에 공국군 병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그 용기는 가상해 보였다. 그러나 시데르는 자신의 기병도를 뽑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게 어린 전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폴, 그 총 그냥 집어넣고 내 뒤로 오는 게 좋겠다.”
“하지만 대위님! 전 대위님을 지켜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야 이 바보야, 장전도 하지 않은 총으로 뭐 어쩌겠다는 거야? 그리고 착각하지 마라. 원래 어른이 꼬마를 지켜주는 거지, 그 역이 아니라고. 앞길 막지 말고 어서 비켜.”

시데르의 부드러운, 그러나 단호한 말에 베르티유 이등병은 머뭇머뭇 거리며 물러났다. 아직 쭈뼛대는 소년을 완전히 등 뒤로 보내고서는, 시데르는 점점 더 과격해지는 야유와 폭언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일까. 병사들의 독자적인 판단화 행동으로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터무니없는 오합지졸이 아닌 이상, 제대를 유지하고 도시로부터 격리된 주둔지에 있는 병사들은 그 지휘관의 의지에 휘들리기 마련이었다. ‘이 대대의 지휘관은 [챠오]의 뇌물에 만족하지 못했나?’ 어찌 되었든 시데르는 가슴을 펴고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여기서 자신이 기죽거나 허리를 굽혀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야 할 이유는 있겠지만.

“그래, 내가 트레비아인이다. 본관은 트레비아 공화국군 근위연대의 시데르 로크 대위다. 너희들을 돈 몇 푼으로 구슬리러 온 사람이지.”
시데르가 하도 당당하게 외치자 야유하던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뭐.. 뭐야?”
“그래, 우리 군대가 슈니빌드부르크를 제압했고 그 시민들도 죽였다. 불만이라도 있나? 9월 9일에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 누구 있나? 있다면 거 미안하게 되었군.”

시데르의 레만어 실력은 약간 서툰 편이었지만 그 뜻과 빈정대는 어투는 선명하게 전달 될 수 있었다. 공국군 병사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노기를 느낀 폴 베르티유가 당황해 시데르의 등 뒤에서 ‘대체 어쩌려고 그러시느냐’며 잡아 당겼지만 시데르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의 귀중한 자원도 전부 트레비아에서 가져가게 될 거다. 너희들 따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말이야. 그래! 너희들 말대로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는 트레비아의 암캐가 되어버렸다고.”
“이 개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다시 흥분한 병사들의 성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시데르는 그들을 가리키며 더 크게 외쳤다.

“분한가? 하긴 분하겠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건 전부 그저 네놈들이 무능하기 짝이 없어서 벌어진 일인데!”
“으아아아!”

참지 못한 병사가 고함을 지르며 시데르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는 머스켓 총의 개머리판으로 시데르의 머리를 내리찍으려 했다. 그러나 시데르는 마치 산들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매끄럽게 공격을 피했다. 전력으로 달려들었다가 목표를 놓친 병사는 기우뚱하며 잠시 당황하다가 이번에는 총구를 앞으로 향해서 창처럼 잡아 내질렀다. 총검을 꽂지는 않았기에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구리 코팅이 된 총구와 총구 밑에 달린 총검 소켓은 묵직한 타격으로 상처를 입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시데르는 이번에도 공격을 피하여 뒤로 빙글 돌았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허리띠에서 자신의 기병도를 칼집 째 떼어내 허둥대는 병사의 등과 목덜미를 내리쳤다. 이어서 그는 비틀거리는 병사의 정강이를 다리로 걷어차 넘어트렸다.

그러자 그때까지 멍하니 보고만 있던 또 다른 병사와 하사관 하나가 노성과 함께 시데르에게 머스켓 총을 들고 덤볐다. 그러나 시데르는 그들이 총을 움켜 쥔 자세 자체부터 허점이 너무 많다고 느꼈고, 같이 오래 춤을 춰 줄 생각도 없었다. 시데르는 여전히 칼집에 꽂힌 채의 기병도로 두 공국 군인을 힘 있게 찌르고 때렸다.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병사는 급소를 찔려 신음하며 엎어졌고 하사관은 팔을 얻어맞아 총을 떨어트렸다. 시데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하사관을 기병도의 힐트 부위로 가격해 때려눕혔다.

순식간에 세 명이 제압당하자 공국 군인들은 놀라서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몇몇 병사들은 칼집에서 검을 뽑아들었고 어떤 하사관은 연병장 한 구석 무기대에 거치되었던 할버드를 떼어 들고 뛰어왔다. 시데르와 폴은 긴장하며 각각 기병도와 단검을 칼집에서 꺼낼 준비를 했다. 다행히도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7대대의 장교들이 호통을 치며 병사들 앞을 막아선 덕분에 싸움은 유혈사태로까지는 번지지 못하게 되었다. 시데르에게 두들겨 맞은 세 명은 끙끙거리면서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떴다.

냉정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보던 시데르는 기병도를 다시 허리띠에 부착시켰다. 전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을 죽일 의도는 없을 거라 예상한 대로였다. 시데르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았다. 소란이 있었던 덕분에 연병장에는 이제 7대대 대부분의 병사가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시데르는 약간 쉰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제군들은 보다시피 세 명이 나 같은 트레비아 인 한 명도 쓰러트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트레비아 군대가 백 수십 마일을 뚫고 슈니빌드부르크까지 깊숙이 들어오는데도 누구하나 막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인 줄 아나?”
시데르는 잠깐 뜸을 들였지만 물론 대답은 없었다.

“제군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군들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무능한 군주 한 명이 나라 하나의 살림을 통째로 망치고 있는데도 그걸 옆에서 제지할 사람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강한 나라였던 트레비아에게 국운을 좌지우지 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에는 이제 기회가 주어졌다. 더 강한 나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이 나라는 민주 공화국이 되었고, 국민들 스스로가 나라가 향할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시데르의 허스키한,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는 연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웅변을 배운 적은 없지만 포성 가득한 전장에서 명령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 정도는 알았다. 그는 잠깐 쉬었다가 얘기를 계속했다.

“트레비아는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곳을 점령하거나 합병하지도 않을 것이다. 딱히 보호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득만 취하고 도망갈 거란 말이다. 제군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신 민주 공화국의 군인으로서, 내 조국 트레비아가 고혈을 다 빨아먹기 전에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트레비아나 또는 다른 나라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나는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를, 제군들이,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들길 바란다. 본관은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 귀관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새로운 체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이다.”

시데르는 이쯤에서 그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사들은 충분히 진정된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속삭이는 이도 없이 수백 명이 모인 연병장에는 고요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절반밖에 믿지 않았다. 사상가 몰로치 벨리나크가 그랬다던가, 자기가 하는 말을 전부 진심으로 믿는 자는 최악의 기만자거나 구제불능의 정신병자뿐이라고. 그러나 시데르는 아무리 그래도 위선자가 되는 기분은 꽤나 역겹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얘기를 남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말 만큼은 진심이었다. 시데르는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가 다른 나라, 또는 외부 권력에 좌우되지 않고 그 시민들이 스스로 자립해 미래를 개척하게 되길 기원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나라로 되돌아가길 바랐다. 트레비아 같은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되었다.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의 ‘자립’이 트레비아의 이익에 반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시데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공국군 7대대의 병사들은 다시 웅성이기 시작하면서도 자신들이 방금 들은 변설의 내용을 곱씹어보는 듯 했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폴 베르티유 이등병은 시데르에게 무한한 존경과 선망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어서 시데르는 살짝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 분위기를 깬 것은 느닷없는 박수 소리였다. 짝. 짝. 짝. 군중 속에서 단 한 사람이 치는 박수였다. 소리가 그치자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대대-차렷!”

갑자기 얼어붙어 부동자세를 취한 병사들 사이를 지나 한 장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시데르의 앞에 도달해 멈춰선 남자는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에 30대 초, 중반으로 보였는데, 시데르와 비슷한 정도로 키가 컸다. 그 공국군 소령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시데르는 영문을 몰라 엉거주춤하게 응시하다가 뒤늦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차렷 자세를 취하고는 손을 올려 경례를 했다. 소령은 절도 있게 경례에 답하고서 손을 내밀어 시데르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7대대의 대대장 대리, 콘라트 리프크네히트Conrad Liebknecht 소령입니다. 심금을 울릴 멋진 연설, 잘 들었습니다.”
“트레비아 근위연대 시데르 로크 대위입니다. 별 말씀을.”

시데르는 빙긋이 웃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긴장했다. 만만한 자가 아니구나 싶었다. 맞잡아 악수하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리프크네히트 소령은 슬며시 손을 놓았다.

“더 이상 연설을 하실 것이 아니라면, 제 방으로 가시죠. 손님 대접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

리프크네히트와 시데르는 연병장을 떠나 7대대 막사 건물의 대대장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하게 되었다. 견고하고 오래된 석조 병영이었는데, 4백여명을 수용하기에는 조금 작았다. 대대장실도 꽤 비좁은 곳이었다. 전령 폴 베르티유 이등병과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혁명파 장교는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아까 제 부하들이 저지른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달 초 트레비아 군이 한 일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요.”
“아아, 그건 저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의 국민들이 피를 뿌리게 된 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진심으로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라고?’ 시데르는 리프크네히트의 기색을 살폈다. 이자는 대체 무슨 속셈일까. 도통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리프크네히트는 여전히 은근히 미소 짓는 얼굴 그대로였다. 그저 눈썹을 조금 꿈틀했을 뿐이었다. 시데르는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매끄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소령님은 구체제에 충성하는 입장은 아니실 테니 이해하시겠지요. 한 번 일어난 혁명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걸 돌이키려 들면 더 큰 혼돈과 피해가 생겨날 뿐입니다. 희생당한 목숨들은 안타깝지만, 반혁명의 봉기는 진압되어야만 했습니다.”
“예, 그렇겠군요...하지만 어째서 제가 구체제 충성파가 아니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얼굴 뿐 아니라 말투도 태연하기 그지없어, 마치 내일의 날씨에 대해 가볍게 논하는 것 같은 투였다. 시데르는 자기 앞에 앉은 이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인이 매우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봉기가 일어났을 때도 그렇고, 결국 지금까지도 7대대는 얌전히 이곳에서 대기해 주었잖습니까? 반혁명 세력을 돕지도 않고 말입니다. 혁명정부로부터 누군가가 와서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면서 기다린 거지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구체제에 목숨을 건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군요. 트레비아인을 싫어하건 말건 그건 부수적인 문제이지요.”

리프크네히트는 금방 대답하지 않고 병사를 호출하더니 차를 두 잔 내오라고 했다. 홍차가 괜찮겠느냐고 해서 시데르는 차는 필요 없고 커피가 있느냐 물었다. 실로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약간의 오기가 들어서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부대에 커피가 없다기에 시데르는 그냥 홍차를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별로 할 말은 없는 맛과 향기를 가진 싸구려 홍차였다. 억지로 몇 모금 삼켜 넘기자 리프크네히트가 입을 열었다.

“한 달 전쯤에 트레비아 외무성에서 왔다는 여인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여 혁명정부의 언질을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큰돈을 대가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의 대화를 부하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제 병사들은 당연히 분노했습니다. 저도 그런 돈은 필요 없다고 했지요. 트레비아 건국 영웅이었다는 1세기 전 사람들과는 달리, 저희는 용병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도발인가?’ 하지만 시데르는 리프크네히트가 용병 얘기를 꺼내는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당신 결국 요구에 응했습니다. 7대대는 지금까지 계속 여기에 남아 있었잖습니까. 결국은 혁명을 지지하셨던 것 아닙니까? 만약 돈으로 모욕당했다고 느끼셨다면, 저희 나라를 대표해 사과드리고 싶군요.”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뭐, 혁명을 지지하는 건 사실입니다. 혁명은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혁명이 과연 올바른 방법과 올바른 사상, 올바른 시기에 벌어진 혁명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리프크네히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는 동작이 묘하게 우아해 보이는 것도 시데르의 마음에 안 들었다.

“귀관께서는 국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힘을 기르라고 했었지요? 예, 좋은 말입니다. 입에 발린 소리라도 그렇게 말해주는 트레비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병사들도 놀랐을 겁니다.”
“아뇨, 진심이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기사 귀관의 말은 사실 트레비아란 나라에서 그 국민들에게 항상 주입시키는 말의 변종이었지요?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누구든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패배해서 남의 발아래 놓이는 건 다 네 스스로가 노력을 안 한 못난이여서다,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시데르는 당황스러워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리고 조금은 얼굴을 붉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 안된 자는 안 한거다’ 류의 레토릭이 트레비아에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은 너무나 많은 이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차라리 날 때부터 자기 운명은 정해져 있다며 묵묵히 살아야 하는 전제 군주국의 농노가 마음은 더 편하겠지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걸 아십니까? 그렇게 스스로 자기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요 최소한의 여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 이전에 탄탄한 출발 기반이 있어야겠지요. 지금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에는 그 기반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외교적으로 말입니다. 사실 레마니아 지방 전체가 다 그렇습니다. 레만어를 쓰고 같은 황제를 섬겼던 역사를 공유하지만, 다 너무나 작고 잘게 조각 나 있어서 성공을 향해 나아갈 기반은 만들어지기 어렵죠. 그래서야 나라 주인이 선제후이건, 귀족집단이건, ‘국민’이건 간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요. 개개인에 불과한 공장 기계공이 공장 소유자와 경쟁이 가능할 리가 있습니까? 트레비아라는 나라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시데르는 그 때 깨달았다. 이 자는 사회주의자다. 동시에 레만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트레비아라는 나라와는 그야말로 상극에 위치한 위험분자였다.

“그렇다면, 리프크네히트 소령님은 지금 원하시는 게 뭡니까?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의 앞날을 그렇게 걱정하는 애국자로서, 앞으로 무엇을 바라며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글쎄요, ‘좋은’ 나라,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힘써보고 싶습니다. 외세에 핍박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고, 가진 자에게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핍박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거지요. 아까 로크 대위 귀관이 말해준 것처럼 말입니다.”

시데르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이 대화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소령님은 아직 제 질문에 답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트레비아에 반대하고, 트레비아의 돈을 거부했지만, 슈니빌드부르크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7대대는 왜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까?

리프크네히트는 고개를 까닥이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그는 약간은 장난기 어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표정으로 다시 시데르를 응시했다.

“시기가... 좋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시데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시데르 앞에 놓였던 찻잔이 엎어져 테이블 위가 미지근해진 홍차로 흥건해졌다. 그는 여전히 태평하게 앉아있는 공국군 소령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7대대는 공화국군으로의 재편에 동의합니까?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할 수 있습니까? 더 이상의 고담준론은 필요 없습니다. 전 귀관의 사회관에 대해 듣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또 딴소리를 했다.

“제가 왜 이런 긴 이야기를 굳이 당신에게 했는지 아십니까, 로크 대위? 귀관이 트레비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관이 다른 트레비아인들과는 좀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귀관이라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리프크네히트는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시데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데르가 손을 잡아주지 않자 그는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집무실 입구로 향했다.

“공화국군으로의 재편... 행정절차만 처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서류작업은 제 부관과 함께 하시면 될 겁니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그럼 이만, 좋은 하루되시길.”

말투는 정중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시데르는 그 자체가 충분히 모욕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뒤도 안돌아보고 방을 빠져 나왔다.



(1장 3절 끝)

껄껄껄

총 잘 쏴서 포상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으리오

으허허 이번엔 어째 총이 좀 계속 잘 맞더라고 으허허

100사로고 200사로고 250사로고 아무거나 다 튀어나오라 그래 다 맞춰주마 하면서

탕 후닥닥 철푸덕 탕 후닥닥 털썩 탕 후닥닥 철푸덕 탕 후닥닥 철푸덕 탕 후닥닥 털썩 탕

했더니

결과에 나도 놀람

다음달엔 좀 바빠서 못쓸 것 같지만, 12월 쯤엔 포상휴가 나가겠으욬

트레비아 - 1장. 슈니빌드부르크의 거리 : 2

본 소설은 매주 일요일 올립니다.

1장 제목을 바꿨습니다.

책으로 치자면 1권이겠군요. 7장 완결로 구상해 논 상태입니다. 소제목들을 달지 어떨진 생각 안해봤습니다.



Chapitre I. The Streets of Schneewildburg

2.

“야영지는 다섯 줄의 횡선을 그리고, 제 1열과 제 2열의 간격은 16피트로 하며 나머지 열들의 간격은 8피트로 한다. 각 중대 사이 통로는 가로폭을 10피트로 하여 각 텐트 사이 간격은 2피트로 한다...”

850년 경 출판된 『낭테르 제국 보병 야전교범』의 야영지 편성 기준 설명이 이와 같았다. 해당 저서는 알트넘 대륙의 각국이 받아들인 결과 2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군대의 기본 교리에 포함되었고 이는 트레비아 공화국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교범을 늘 정확하게 준수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슈니빌드부르크 시 외곽에 자리 잡은 트레비아 공화국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 파병부대의 야영지는 산중 계곡에 위치한 도시 때문에 울퉁불퉁 굴곡이 많은 산악지대에 편성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교범처럼 네모반듯한 모양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덕 지형에 지그재그로 옹기종기 모인 트레비아군 숙영지는 영 옹색했다. 산지여서 아직 9월 중순임에도 이미 아침이슬이 서리에 가까울 만큼 차가웠다.

하지만 도시 안 시설에 투숙하기는 커녕 평지가 더 있는 도시 가까이로 옮길 수도 없었다. 슈니빌드부르크의 많은 시민들에게 있어 이 암녹색 제복의 무장집단은 정복자이자 억압자요, 학살자일 터였다. ‘전투’를 치를 때만 제외하고 이 군대는 민간인들과 불필요하게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도시에서 순찰을 도는 것조차도 필요 최소한으로 시행 중이었다. 그 군대의 장교 시데르 로크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부터 그런 증오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삶은 달걀에 굵은 소시지 한 줄, 작은 통밀 빵 한 덩어리, 그리고 커피로 이루어진 아침식사를 하면서 시데르는 그 날의 부대활동계획을 읽었다. 대부분이 슈니빌드부르크 도시 치안유지 및 경계근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침식사의 맛만큼이나 무덤덤한 계획이었다. 매일 하는 일은 조금씩 달랐고 다양했지만 기본 골자는 비슷했다. 소요 방지 및 진압, 범죄 감시와 우범자 체포-구금 등. 그 모든 활동은 ‘치안 유지’라는 표현 하나로 다 뭉뚱그려 표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데르와 그 부하들은 경찰이 아니었다. 시내 치안활동을 하면서도 안전을 위해 분대 단위 이하로는 화장실도 못 가는 존재가 경찰일 리는 없었다. 시데르는 계획서를 구겨 쥐었다.

트레비아 공화국은 해군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트레비아 독립전쟁 당시부터 육군도 강력했다. 그 중에서 가장 명성 높은 부대 중 하나로 근위 연대가 있다. 공화국 근위연대Republican Guard Regiment는 본디 식민지 시절 트레폴스 시 상업조합 후원의 시 야경대로 처음 조직되었었고, 독립전쟁 중에는 용병부대들을 제외하면 유일한 정규 군 부대로 재편되어 싸워 명성을 얻었던, 공화국과 역사를 함께하는 유서 깊은 부대였다.

근위 연대의 공식적 규모는 4개 대대 4천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위 연대에는 정식 번호가 붙지 않는, 1개 대대 1천여 명이 비공식적으로 추가 편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흔히 ‘평화 유지군Peace Keepers'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평화유지 대대는 트레비아 공화국 육군을 통틀어 현재 가장 실전, 그 중에서도 시가전 경험이 풍부한 부대였다. 그들은 공화국의 소방수들이었고 트레비아를 위해 비공식적인 위치에서 수많은 전장을 누빈 자들이었다. 그러나 시데르는 자신이 속한 이 부대가 자랑스러운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국방부 공식 기록에는 남기지 못하는 비공식의 전투기록들. 약자를 상대로, 많은 경우 기초적인 군사 훈련도 받은 적 없었을 사람들을 상대로 도시 골목들에서 얻어내는 승리들이 과연 명예로운지 의심스러웠다. 부대 약칭인 PK가 민중 살해Populous Killing의 PK라는 비난의 오명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나 하는 자조도 있었다.

“-강철 같은 정신력과 국가에 대한 맹목적 헌신과 충성심-으로 따지자면 어쨌든 세계 최강인건 사실이겠지.”

시데르가 언젠가 물어봤을 때 체스터의 대답이었다. 시데르는 그 때 체스터가 진심으로 말한 것인지 비아냥을 담아 말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을 명령 받아도, 어떤 짓을 하더라도 동요하지 않을 정신력과 국가가 하는 일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맹목’이란 뜻일까. 그런 맹목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교육? 훈련? 보수? 사회? 공화국 그 자체? 그렇다면 그런 부대에 소속된 자신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시데르는 일주일 전 전투에서 전사한 휘하 병사 네 명을 떠올렸다. 잘 알던 병사도 있었고 얼굴이 벌써 희미한 병사들도 있었다. 그때 그들은 국가를 위해 죽게 되어 마냥 기뻤을까?

“강철같은 정신력이라. 밀가루 반죽마냥 물렁한 정신일지도 모르지. 공화국이란 이름의 제빵사 손에서 빚어지는...”
“잘 못들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말게.”

당번병인 폴 베르티에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반쯤 남은 아침식사 쟁반을 들어 방을 나갔다. 시데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십대 소년인 어린 병사 앞에서 괜한 말을 흘릴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생각은 나중에 해도 된다. 시데르는 당분간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괜한 생각이나 하다가 귀중한 커피가 다 식어버리지 않았는가. 일단 할 일은 해야했다. 시데르는 방금 나간 당번병을 다시 불러 말 한 필을 준비하라 지시하며 군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중대 지휘는 선임 소대장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다른 일을 하러 슈니빌드부르크 시내로 가야했다. 오히려 사복 차림일 때야말로 복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나왔다.

생각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 것은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9월 9일 슈니빌드부르크의 소요가 있은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신 공화국 혁명군과 트레비아 원정군의 합동 진압과정에서 시민 사상자가 천 수백여 명이나 나왔고 그 직후에는 영향력 있는 지역 유지, 정재계 사회 지도자, 그리고 귀족들이 수십 명 단위로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투옥되었다. 피로 물든 수도의 참상 앞에 충격 받은 시민들은 그 사상을 불문하고 모두 움츠러들었고 그 사이 신생 공화국 정부는 체제를 정비할 시간을 가졌다. 친혁명파와 반혁명파의 갈등과 충돌도 잠시 잠잠해졌다. 시민들에게는 일단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혼란에서 회복해 일상을 되찾는 것이 중요했다. 공국이던 공화국이던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는 지상낙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귀족 등의 상류층이 유별나게 부패하거나 억압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군주제 국가였다. 그래도 기존 체제에 불만을 품은 세력은 어느 이상사회에서라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경제위기는 그 불만을 폭발시켜버렸다. 민주주의가 시대의 유행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혁명은 일어났고 공국이 공화국이 되어 그 국민들은 갑작스럽게 신민에서 시민으로 신분이 변했다. 이 ‘시민’들은 나머지 동료 ‘신민’들을 계몽시키고 개종시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노력했다. 다만 그 노력의 수단에 폭력이 포함되었던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트레비아는 ‘정통’ 민주주의 공화국이자 좋은 이웃으로서 파병까지 하여 공화파 시민들을 지원해주었다. 하지만 그 시민들의 노력을 트레비아가 언제까지고 도와줄 수는 없었다. 천명 조금 넘는 평화 유지군을 8만여 명의 성난 슈니빌드부르크 시민들 앞에 계속 노출시켜 상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공화국은 자립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권의 수반과 구성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신생 공화국의 체제에 걸맞도록 군대도 야경대도 다시 편성될 필요가 있었다.

그랬기에 슈니빌드부르크의 중앙 성채 앞에 위치한 시청 건물 안에서는 이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옛날 철학자 털리스 르코시가 말했던 것처럼 국가재건이라는 대업을 위해서는 망치와 톱을 들기 이전에 펜과 종이가 확실히 마련되어야 했다.

“구舊 공국군 병력의 분류는 대체 언제쯤 제대로 되는 겁니까? 이 작업이 제대로 완수되지 않으면 이 나라에 평화와 안정이 자리잡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게, 믿을만한 하사관들을 통해 분류 중이긴 한데, 워낙 지난번 소요와 숙청 때문에 혼선이 많이 생겨서 말입니다...”

암녹색 제복을 입은 젊은 장교 앞에서 고급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쩔쩔매고 있었다. 당당한 군인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중년 남자는 그리 덥지도 않은데 연신 땀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두 사람 다 직함이 길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입장이었다. 트레비아 공화국 육군 공화국 근위 연대 평화유지 대대 부대대장 체스터 아크벨 소령과 슈니빌드부르크 시장 겸 혁명 임시 정부 공안의장 카알 로베르트 베켄바우어. 그러나 전자가 손님이고 후자가 방주인이라는 것은 의자 위치를 빼면 알기 힘들 모습이었다.

“혼선? 혼선이 생길게 뭐 있단 말입니까? 그저 돈이 필요할 뿐인 용병들, 구체제 또는 공작 개인을 지지하는 자들, 그리고 애국자들과 어중이떠중이들, 이 세 부류로 나누는 것에 대체 어떤 제한 사항이 있습니까? 용병들에겐 퇴직금과 트레비아로의 귀화 기회를 주고, 구체제 충성파는 퇴출시키고, 애국자들은 재교육시켜서 신공화국군으로 재편하면 끝날 문제입니다. 외국인들이 들어와 득세하는 꼴이 싫다면 마음을 고쳐먹고 단결하여 빨리 신정부를 튼튼히 하면 된다고 교육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이봐요, 소령, 제발 이해해 주시오. 병사들이 그렇게 트레비아 사람들처럼 명쾌하게 구분될 만큼 뚜렷한 주관이나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단 말이에요. 함부로 그들을 재편한다고 건드리면 오히려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교육과 설득을 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베켄바우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간곡한 어조로 설득을 시도했으나 체스터는 넘어가지 않고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 ‘조금 더’의 시간을 위해 트레비아 군인의 피를 뿌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틀 후까지 재편이 시작되지 않으면 저희 쪽에서 직접, 자체적으로 비용을 조달해서라도 이 나라의 군을 뿌리부터 다시 만들겠습니다.”

베켄바우어뿐 아니라 트레비아 재무성에서도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를 체스터는 태연하게 했다.

“그렇게 된다면 반발만 더 커질 겁니다! 혁명정부는 아직 온전히 자리 잡지 못했는데, 지방에 배치된 부대에 반감이라도 불러일으키면 그들은 폭도로 돌변할 겁니다!”

베켄바우어가 우는 소리를 했지만 체스터는 지금 상대의 편의를 봐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가 보기에 베켄바우어는 정말로 애로사항이 있어서 미적대는 것도, 난처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절반쯤은 의도적으로 자주국방을 미루는 것이 분명했다. 무엇 때문인지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는 베켄바우어를 비롯해 현 임시정부의 공안위원회 의원들이 새로 발견된 에테르석 광산들의 채굴권을 가졌거나 가진 자들과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산 문제 때문에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와 트레비아 양국의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에테르 석Aethereal Stone. 학계에서는 단순히 원기광물Energy Mineral로 불리었고 그 외에도 파워스톤이라던가 마법의 보석, 마법사의 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광물은 근 수십 년 동안 새롭게 발견되고 연구되어 활용되기 시작한 물건이었다. 그 광물을 정제해 사용하면 수정을 통해 불도 킬 수 있었고 동력이 생겨나기도 했다. 신비한 에너지가 넘쳐흘러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일들, 심지어 장거리 통신까지도 가능하게 했다. 그 능력은 실로 전설의 원소인 ‘에테르’란 이름이 어울릴 만 했다. 비록 많은 학자들이 에테르는 신화의 존재일 뿐이라며 그 명칭을 거부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에테르 광석은 그 전까지 자원으로써 널리 사용되었던 고래 기름 따위는 아득히 뛰어넘는 효율과 활용성을 가진 광물이었다. 이 에테르석의 채굴은 곧 중대한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광물이 나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아직 채굴기술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귀한 이 천연자원이 불과 2년 전 이 나라를 가로지르는 하브기어 산맥Habgiengebirge 가득 묻혀 있음이 발견된 것은 누구에게 있어 행운이었을까.

최소한 지금 망명 중인 브란 팔켄호르스트 공작은 그 행운을 활용하지 못했다. 국제 모피 가격 하락의 여파로 그의 신민들이 심각한 불경기에 시달리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 발견된 광맥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활용하려 했을 때는 이미 개발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9월 9일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운은커녕 불운이었을 것이다. 체스터는 냉소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트레비아는 파병을 오래 지속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올해 안으로 철군 준비를 완료하라는 상부 지시도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를 제 2의 노르들란트나 자칼레나우로 삼을 생각이 전혀 없다 이 말입니다.”

15년 전 트레비아의 영토가 된 지역명들이 언급되자 베켄바우어의 표정이 굳었다.

“그 말씀은 좀 심하시군요. 우리 정부는 귀국과의 병합을 원하지도 않거니와 귀국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한 적도 없습니다. 다만 파병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저 이곳에 발을 담갔고 이미 손에 피도 묻힌 분들이 금세 나 몰라라 떠나는 것도 도의는 아니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저도 귀하를 매국노라고 비난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함으로써 베켄바우어에게 큰 모욕을 준 체스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낭랑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예, 우리는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달 여기 올 손님들 경호라던지 다음번 무장봉기에까지 책임을 질 의무는 없을 겁니다. 손님 대접과 가족 관리는 집주인이 해야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트레비아에서 다음 달 잔뜩 오실 민간인 분들 얘기입니다. 그 문제를 지금 고려 중이신 것 아니였습니까?”
“아니, 지금 설마 우리 정부가 자원 평가 조사단 방문 같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군 재편까지 지연시키고 있단 뜻이요, 지금? 귀관께서는 우리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좀 전까지의 비굴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베켄바우어는 주먹을 쥐고 언성을 높였다. 체스터는 차라리 이렇게 당당한 편이 낫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계속 시치미를 떼지는 못할망정 속 보이게 발끈하는 모습에 쓸 만한 정치가나 외교관은 못 되겠다 싶었다.

“아니란 말입니까? 그러면, 봉급문제 때문입니까? 하긴, 밀린 월급을 지급할 예산이 없다는 소문도 듣긴 했습니다.”
“둘 다 아닙니다! 근거 없는 소문이요. 군인 2만 명을 위한 봉급 정도는 언제든지 지불할 수 있어요. 특히나 지난번에 확보한 반역자들의 압류재산만 정리되고 나면 만사가 잘 풀릴 거요.”

체스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도 베켄바우어도 모두 혼란 속에서 나라를 다시 세워야하는 신생공화정부에게는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난하진 않았더라도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재앙에서 자가 회복할 능력은 잃어버린 나라였다. 신 공화국이 향후 최소 수년간은 트레비아로부터의 차관에 의존해 운영될 거라는 것은 임시정부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막대한 액수에 비하면 어차피 부동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귀족 가문 자산 따위는 별 의미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체스터는 그것이 군인 2만 명을 당장 일하게 만들기는커녕 수도 야경대나 정상화 시킬 액수면 다행이겠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체스터는 이 문제에 있어 돈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공안위원회’는 지금 일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호오,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가 없을 텐데요? 자원 평가단 방문 전까지 치안 회복이 가능하리라 생각되는군요. 아니, 아예 저희 쪽에서 그 협상과 설득의 과정을 직접 지원하고 싶습니다”

베켄바우어가 이에 다시 뭐라 항변하려 했을 때 누군가가 시장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비서에 의해 방문객의 신분과 성명이 전해졌고 이를 들은 체스터는 그 시의적절함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트레비아 육군 중대장 시데르 로크 대위.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켄바우어 의장님. 아니, 시장님이라 해야하나? 시데르 로크 대위입니다.”

베켄바우어 공안의장은 갑자기 나타난 청년과 떨떠름하게 악수했다. 약식 정장에 곤색 롱코트를 걸치고 갈색 머리를 길게 기른 터라 군인인지도 알기 힘들었다. 허리춤에 찬 장교용 제식 기병도만이 신분을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아, 이건 도시 안에서 안전하게 다니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옷을 가리키며 묻지도 않은 말에 답하는 시데르의 뒤를 이어 체스터가 덧붙여 말했다.

“이 친구가 앞으로 자원평가단 방문과 부대 편성 건으로 신 혁명군과 협조하게 될 겁니다.”

베켄바우어는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좀 너무 심했던 것 아냐? 외교관도 아니면서 외교관급 중대사를 논하지 않나, 일개 부대대장 주제에 장관급 정부요인을 윽박지르질 않나. 직급에 맞는 일을 하라고, 좀.”

시데르는 웃으며 체스터의 팔을 툭툭 쳤고 체스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가 없었어. 이 사람들은 적당히 겁을 주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고. 그리고 대대장님도, 베켓 대사도 이 문제는 내게 일임했으니까.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 대대는 때에 따라선 군대이자 동시에 외교 사절단이니까 문제없지.”
“그래도 외교부랑 관할 권한 가지고 충돌하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을걸. 헌데, 군 재편과 조사단 방문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소한 걸 가지고 쟁점을 삼는 기분인데.”

체스터와 시데르는 시청 청사를 나와 그 앞의 중앙 성채로 걷는 중이었다. 높게 솟은 그 하얀 성은 공작가의 궁성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혁명 임시정부의 청사가 되어 있었다. 체스터는 성채의 정문 게이트하우스에서 경례하는 병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에서 현실적으로 운용중인 ‘혁명군’이 몇 명이지?”
“이 성 안과 주변의 2천여 명 정도.”
“그래. 군부에서 혁명에 동참한 건 그 정도가 고작이란 얘기야. 나머지 1만 5천 정도의 구 공국군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그 흩어진 각 부대들을 어서 빨리 제압하거나 회유하거나 해산 시키던지 빨리 해서 안보문제가 정리 되어야 할 텐데. 아니, 시데르. 사복차림이라도 군 품위 유지 규정에 어긋나는 짓은 하면 안 되지.”

시데르가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자 체스터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트레비아의 군 규정상 보행흡연은 금지였다. 시데르는 투덜거리며 파이프를 다시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래서, 그 중요한 안보문제를 미루려 드는 건 어째서지? 붕 뜬 상태로 있는 그 병사들이나 지휘관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텐데. 평가단 방문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도 내 수준에선 잘 모르겠고 말이야.”

시데르의 질문에 대해 체스터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글쎄, 몇 가지 유추해 볼 수는 있겠지. 첫째, 실제로 임시 정부의 능력이 안 된다는 것. 협상실력도 없거니와 금전적으로도 빈곤한 상태니까 감안해 볼 수는 있겠지. 둘째, 타국과의 알력 등 외교적 충돌 문제.”
“타국이래 봤자 남쪽의 드벨그나 동쪽의 낭테르일텐데. 낭테르 때문이겠군?”
“맞아. 낭테르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까 사태가 악화되면 자신들 손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확실히 끌어들여서 대리전을 치르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 말에 시데르는 픽 웃었다.

“난 대리전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치르는 거라고 들었는데, 이곳에선 정의가 그 반대인가 보지?”
“아아 글쎄, 우리나라와 이 나라는 서로를 방패막이로 쓸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셋째, 책임 소재의 문제. 사실 이게 제일 크겠지.”
“책임 소재라니? 뭐, 에테르석 광산 때문에 말인가?”

둘은 슈니빌드부르크의 중앙 궁성 입구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 용무가 있는 것이 이 두 장교들만은 아니었다. 임시정부의 직원들과 정부에 청원하기 위해 몰려든 각양각색의 수많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체스터의 제복을 보고 흠칫 놀라거나 사납게 노려보았다. 체스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가 궁성 입구 옆 정원에 놓인 벤치들 중 하나로 걸어갔다. 벤치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제복을 보더니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시데르가 그 모습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안 체스터는 비어버린 벤치에 앉아 시데르에게 손짓했다. 시데르가 따라 앉자 그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을 이어 나갔다.

“테레지엔슈타인베르크가 받아갈 차관과 그 대가로 오갈 에테르 광산의 채굴권리, 그 채산성에 대한 조사 평가,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달라질 광산의 가치와 차관의 이자율. 그리고 그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예를 들자면 폭력사태-에 대한 관리책임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 정도겠지? 그리고, 지금 정부는 아무래도 ‘임시정부’니까, 총선거를 치를 때까지 책임질 일은 다 회피하면서 이득은 최대한으로 챙기겠다는 심보가 아닐까 싶어. 뭐, 더 복잡한 문제는 협상권이 있는 베켓 대사랑 외교부가 알아서 처리할 테지만.”
“그러면, 나는 그 ‘책임’을 혁명 정부가 확실히 가져갈 수 있도록 일하면 되는 건가?”
“그래, 너는 이미 잘 하고 있어. 예를 들자면, 지난번 소요 때 3중대 담당구역에서는 포병을 아예 쓰지 않았던 일 같은 것? 덕분에 재산피해 보상 협상도 유리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체스터가 짐짓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시데르는 웃지 않았다.

“퍽이나.”
“왜 그래, 시데르. 새삼 또 침울해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미 ‘침울’해진 시데르는 진지한 표정 그대로, 마음 속 의문을 털어 놓았다.

“그 공국군 말인데. 왜 그들은 일주일 전 봉기 때 대응하지 않았던 걸까? 봉기의 주모자들은 군을 회유할 생각을 하지 못한 건가? 슈니빌드부르크 인근, 행군 하루거리에 있는 병영들에서 공작 충성파만 다 긁어모아도 2천명은 모을 수 있었을 텐데?”

체스터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의도적이라곤 하지만 아직 신정부와 협상도 잘 안될 정도로 망설이고 있는 자들이, 정작 수도에서 구체제파가 들고 일어났을 때는 가만히 있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그야 전망이 불확실하니까 그저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겠지.”

시데르는 친구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봐 체스. 난 이번 주 내내 공국군 병영들을 순회해야 할 판이야. 베켄바우어 말마따나 ‘자극’해서도 안 되니까 병력도 없이 가야겠지. 솔직히 조금은 부담이 있다고. 너는 내게 일거리를 던져줬어. 그러니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게 도와달란 말이야.”

그러나 체스터는 냉담한 어조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그런 건 없어.”
“헛소리하네! 정 그렇다면, 너도 나도 알지만 내가 워낙 멍청해서 기억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라도 얘기해 주던지.”
“...이렇게 백주대낮의 공공장소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
“그러면, 다른 곳에서라면 말해줄 건가?”

체스터는 대답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대화가 좀 길었나 보군. 나는 이만 대대장님을 모시러 가야겠어. 혁명정부 총리 각하를 상대하느라 진력이 나 있을 거야.”

노골적으로 말을 피하는 체스터의 모습에 시데르는 순간 화를 냈다.

“너는 다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항상 뒤에서 냉소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거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한테까지도?”

체스터는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했다. 그의 친구는 말 해줘도, 말 안 해줘도 ‘침울’해 할 터였다. 그냥 넘어갈 기색이 아니었다.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그는 하, 하고 한숨을 쉬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말했다.

“네가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알아서 좋을 것도 없지. 더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챠오.”

그리고는 즉시 등을 돌려 떠나갔다. 그는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를 뚫고 성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챠오?”

챠오가 뭐지? 대륙 서남쪽의 아란치오 말로 '안녕'이란 뜻이었던가 싶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우두커니 서있던 시데르는 곧 그 의미를 깨달았다. 여러 번 들어왔던 이름이었는데도 이제야 기억이 났다. 그건 어느 유명한 정부기관을 지칭하는 약어였다. TIAO. 트레비아 정보분석실Trevian Intelligence Analysis Office. 슈니빌드부르크의 민중 봉기는 그다지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시데르는 일주일 전 사형당한 백작과 구 공국군 장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일을 벌렸다기 보다는 일을 벌일 준비를 하다 잡힌 것 같은 느낌이었었다.

‘설마... 봉기 그 자체가 의도된 건 아니겠지.’ 어쩌면 구체제파의 봉기는 원래 예정보다 일찍, 반혁명 세력과 구 공국군이 협력하지 못하도록 때 이르게 의도적으로 촉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강하게 들었다. 트레비아의 정보실이 뒤에서 그렇게 조종한 거라면 많은 것이 설명될 터였다.

시데르는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 그를 쳐다보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더 웃었다. 생각해보니 참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어차피 트레비아의 군이 개입할만한 사태에는 군에 앞서 정보부가 개입되어 있으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떠올릴 만한 일이었다. 이러니 체스터보다 진급이 늦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싶었다.

웃음을 멈춘 시데르는 문득 일주일 전에 보았던 나흐트팔렌 백작가의 영애를 떠올렸다. 정보부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소녀는 아버지를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증오 어린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가정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럴 거면 이 나라에서 처음부터 혁명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트레비아 정부는 이 나라에 병력을 파병하지 말았어야 했다. 입맛이 썼다. 그는 그녀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는 집어넣었던 파이프를 다시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데 연초 주머니와 성냥갑을 찾느라 주머니를 뒤지던 그에게 혁명군 경비병 한 명이 다가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정부 청사는 금연구역입니다.”

시데르는 하마터면 죄 없는 병사에게 주먹을 날릴 뻔 했다.


(1장 2절 끝)

올레 TV 시청하면서..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선택해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느끼고 있습니다.

TV를 안보고 살았었는데 안본게 아쉬운 점이 있을만큼.

물론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한국판 리메이크 [우욱] 라던지 무슨 천사가 지상 강림해 여고생이 된다든지 [????] 화승총이라고 하는데 볼트액션 [!!??] 이라던지 하는) 들을 본다거나 연예인 소꿉놀이를 본다던지 하면 심신이 쇠약해지는 기분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가 보고픈 거 볼 때는 참 좋습니다.


저는 EBS의 [세계테마기행]과 [다큐 프라임]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를 즐겨보는 편입니다만

그것이 알고싶다는 놓치지 않고 꼭 보고 있습니다. 가끔씩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나오니까요.

살인사건 얘기가 나올 때는 왠만한 범죄 스릴러보다 더 긴장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 956회도 참 유익했습니다. 아직 안 본 958회도 흥미로울 것 같고.

전자오락 뉴스 한 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소속 새정치 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이 다시 한 번 밸브의 '스팀' 서비스에 대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신속한 대처를 요구했다.

박 의원은 지난달 스팀이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국내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서비스 하는 등 한국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등급분류기관이 자국 내 유통 게임물에 대해서는 등급분류를 진행하는 것이 확인된 만큼, 지난달 1일 게임위가 “스팀은 서버가 해외에 존재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게임을 제공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답변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 의원은 17일 교문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지난달 9월 스팀문제를 지적한 이후 게임관련 종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국내법은 외국, 내국 업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야 된다. 현재 밸브의 행동은 대한민국의 법 주권을 훼손시키는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없이 손상된 것이 아닌가? 필요하다면 (서비스 중단과 같은)강제조치를 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게임위 설기환 위원장은 “조치하겠다”고 짧게 답변했다.



-박주선 의원 "밸브도 예외 없어, 국내법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 돼야" -






....I don't know what to think anymore

[부고] 문학평론가 김치수 (향년 74세)

http://moonji.com/8800/

문학평론가 김치수(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선생님(향년 74세)께서
2014년 10월 14일(화) 오후 3시에 영면하셨기에 삼가 알립니다.


빈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영안실 1호실

발인: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영결식: 10월 17일 금요일 오전 8시 영결 예배
장지: 경기도 양평 추모공원


유족
용대(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용욱(뉴욕 맨해튼 칼리지 토목공학과 교수)


출생 및 학력
1940년 전북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출생

1959년 서울 중앙고등학교 졸업

196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 졸업(학사)

196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석사학위 취득

1976년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소설의 구조(Structures d’un Roman)』로 불문학 박사학위 취득



경력
1963년 대학시절에 김승옥, 김현, 최하림과 함께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

1966년 중알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염상섭 재고”로 등단

1968년 『68문학』 동인

1970년 김병익,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계간지 창간

1972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전임강사

197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조교수

1979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불어불문학과 부교수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학보사 주간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1993년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소장

1994년 한국기호학회 회장

1996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대학장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원장 /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2000년 세계기호학회 이사

2002년 동아시아기호학회 부회장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2011년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2014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1972년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공저, 민음사)

1976년 『한국 소설의 공간』(열화당)

1979년 『문학사회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80년 『구조주의와 문학비평』(편저, 홍성사)

1982년 『박경리와 이청준』(민음사)

1984년 『문학과 비평의 구조』(문학과지성사)

1991년 『공감의 비평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98년 『현대 기호학의 발전』(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년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문학과지성사) / 『표현인문학』(공저, 생각의 나무)

2001년 『누보 로망 연구』(공저, 서울대출판부)

2006년 『문학의 목소리』(문학과지성사)

2010년 『상처와 치유』(문학과지성사)



역서
1979년 『시간의 사용』(미셸 뷔토르, 삼성출판사)

1981년 『누보 로망을 위하여』(알랭 로브그리예, 문학과지성사) / 『러시아 형식주의』(츠베탕 토도로프, 이대출판부)

1996년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미셸 뷔토르, 문학과지성사)

1999년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마르트 로베르, 공역, 문학과지성사)

2000년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르네 지라르, 공역, 한길사)

2003년 『기호학과 문학』(자크 퐁타나유, 공역, 이대출판부)

2007년 『대장 몬느』(알랭 푸르니에, 문학과지성사)

2014년 『나나』(에밀 졸라, 문학동네)



김치수 선생에 관한 연구서
2000년 『김치수 깊이 읽기』(정과리 엮음, 문학과지성사)



수상
1982년 제27회 현대문학상 평론부문(현대문학사)

1992년 제3회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199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Palmes Academiques-officier

2006년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 / 올해의 예술상(문화예술위원회)

2010년 제18회 대산문학상(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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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나온 부고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수술 받으시고 나선 계속 건강이 안좋으시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May He Rest In Peac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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