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lory of Britannia-7년전쟁 북미전역:French-IndianWar(4)

그때까지의 많은 무능한 지휘관들을 대체하고 전역을 승리로 이끌 지휘관들은 1758년에 북아메리카에 도착한다. 제프리 앰허스트(Jeffrey Amherst) 소장과 제임스 울프(James Wolfe) 준장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중 제임스 울프 준장은 매우 우수한 군인으로, 군인 가문에서 태어나 13세 때부터 군에 입대, 자코바이트 전쟁 당시에는 펄커크 전투와 컬로덴 전투 등에서 여러차례 부상을 입으면서도 전투를 계속하는 용기도 보여주었다. 20세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이미 7개의 전역과 30번의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이였고, 22세에는 중령으로 진급, 제 21 소총 연대의 지휘를 맡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동안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는 늘 넘쳐나는 애국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였고, 어떤 경우에나 자신의 ‘명예’와 “예절’을 지키며 우아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그의 태도를 두고 -식사 중에 갑자기 상을 뒤엎고 애국을 외친다던가 격렬한 전투의 혼란 속에서도 우아하게 몸단장을 하는 등의- 미쳤다고도 했다. 이래서 그가 국무장관 피트의 천거로 북아메리카에 파견될 즈음에 당시 수상이던 뉴캐슬 공작이 국왕 죠지 2세에게 울프 장군이 미친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고 전하였는데, 이때 죠지 2세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Mad, is he? Then I’ll hope he will bite some of my other generals!”(미쳤다고? 그럼 그 친구가 내 다른 장군들을 좀 물어뜯어줬으면 좋겠군!)
장군에 임명될 당시 29세였던 울프는 북아메리카에서 다른 장군들을 ‘물어뜯지’는 않았으나 프랑스군의 세는 확실히 ‘물어뜯’는다.


[제프리 앰허스트. 중장 예편. 그의 투구는 북아메리카 전도 위에 놓여있다]

제프리 앰허스트 소장은 한편, 매우 사려깊고 융통성 있는 장군으로, 대군을 통솔해 본 경험도 많이 있었으며 참모들의 충고에 귀를 잘 기울이는 편이였다. 그는 타 장군들과는 달리 식민지 징집병/민병대의 장교들과도 잘 소통하여 의견 조율을 할줄 알았며, 북아메리카 전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1758년의 전역은 영국군의 전면 공세의 해였다. 북미군의 총사령관 애버크롬비가 이끄는 1만 6천의 병력은 까이용 요새을 공격하는 한편, 그 휘하의 존 포브스(John Forbes) 준장은 7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어리 호수 남쪽의 요충지인 뒤크슨 요새를 공격했고, 그리고 영국 본토로부터 출발한 1만 4천명의 병력이 제프리 앰허스트 소장의 지휘하에 해상으로부터의 상륙작전을 펼친다.



루이스버그 상륙작전(Siege of Louisbourg)
애버크롬비 중장이 까이용 요새에서 몽캄의 프랑스군에 의해 어마어마한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뒤집혀져 패주하던 바로 그 시점에서, 제프리 앰허스트 소장이 지휘하고 제임스 울프 준장이 선봉에 선 병력은 보스카웬 제독이 이끄는 150척의 수송선과 42척의 전함(3-4등급의 전열함 23척과 프리깃함 19척)에 승선해 프랑스군의 최중요 요충지인 루이부르(루이스버그, Louisbourg) 항구에 공격을 가하게 된다.

루이부르 요새는 노바 스코티아 섬에 위치한 항구로, 캐나다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의 역할을 하는 곳이였다.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퀘벡에 접근할 수 없었으며, 이곳의 존재는 대서양에서 활동하는 영국 해군에 위협이 되었다. 경제 거점이기도 하여 퀘벡에서의 해상무역은 대부분 이 루이부르를 통과해야했다. 이 루이부르의 중요성을 파악한 국무장관 윌리엄 피트는 스스로 앰허스트 소장에게 직접 이곳에 대한 공격 임무를 맡겼다.


[루이스버그의 위치. 여기가 왜 중요한지 이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륙작전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가장 까다로운 군사작전의 하나다. 준비와 계획은 철저히 진행되어야 했으며 실행시에는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즉각 진행되어야 했다. 병력들과 그 병력을 태운 상륙정, 병력을 지원할 보급 물자의 상륙, 함대의 지원 및 보호등 이 모든게 일사천리로 실행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어느 한 요소가 잘못되기만 해도- 상륙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상륙에 알맞은 해안을 고르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하고, 상륙 가능 해안에 존재하는 적 방어선은 신속하게 무력화되어야 했다.

이러한 힘든 작전을 계획하고, 직접 주변 지역에 대한 정확한 정찰을 통한 조사를 행하여 만전을 기한채 상륙의 선봉에 섰던 것이 바로 제임스 울프 준장이였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루이스버그 요새 유적지. 캐나다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758년 6월 2일에 영국 함대는 루이부르(루이스버그)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공격 준비를 서둘렀다. 루이부르 주둔 프랑스군의 지휘관 슈발리에 드 드뤼쿠르 소장은 경험 풍부한 베테랑 군인이였고, 영국군의 존재를 파악한 즉시 요새 주둔 병력 4천명에게 방벽과 참호를 건설하고 해안 전체에 경비를 강화하게 했다. 요새에는 4천명의 전투병 이외에도 3천명에 달하는 선원과 수병들이 있었다.


[루이부르를 봉쇄중인 영국군 함대]


[상륙을 지휘하며 선봉에 선 제임스 울프 준장]

영국군은 1주일간 해안 전체를 파악한 뒤, 6월 8일에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상륙 가능한 지점은 3군데였는데, 앰허스트 소장은 그 중 두 곳에 위장공격을 감행하여 프랑스군의 주의를 분산시킨 뒤, 경계가 느슨하던 나머지 한 곳에 병력을 상륙시켰다. 제임스 울프 준장이 직접 이 공격을 이끌었는데, 1천 2백여명에 달하는 첫 선발대는 뒤늦게 이 지점으로 방비를 돌린 프랑스군의 거센 포화를 받으면서도 거점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지휘관 울프 준장은 총탄이 귓가를 스치는 상황 속에서도 목소리도 높히지 않은채 차분하게 지휘하여 주변에 있던 부하들을 감탄케 했다. 이 때 처음 위장공격을 가했던 다른 상륙지점으로 영국군이 상륙하여 프랑스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받을 위기에 처해, 황급히 루이부르 요새 안으로 후퇴한다..



[상륙하는 영국군]

그 후 한 달간 지루한 공방전과 농성전이 이어진다. 프랑스군은 루이부르 항 안에 10여척에 달하는 루이부르 주둔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항만 밖에는 40여척의 영국 전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 사려관 드뤼쿠르 소장에게 있어 유일한 승산은 프랑스 본국에서 출발한 지원함대가 도착하기까지 버티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7월 21일에 영국군이 설치한 포대의 포격으로 인해 항구에 정박해 있던 루이부르 함대의 절반이 연쇄폭발로 가라앉자 프랑스 측에 승기는 사라졌다. 계속된 포격으로 7월 23일에는 요새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고, 이 지점을 향해 대대적인 영국군의 공세가 가해져 23일 저녁 무렵에는 첫 영국군 부대 –제 40 척탄병 연대-가 요새 내에 진입하기에 이른다. 루이부르 요새는 7월 26일, 요새 지휘관 드뤼쿠르의 항복으로 함락된다.


[불길에 휩싸인 루이부르 프랑스 함대]

총 44일에 걸쳐 벌어진 루이부르 전투에서 영국 측은 5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프랑스 측은 400여명이 전사하고 1300여명이 부상을 입은채 나머지 5천여명은 영국군에 항복한다.

그리고 영국군은 퀘벡으로 향하는 물길을 획득했다.

이 전투에 참가한 영국군 1만 4천명은 전원이 영국 본토에서 보내진 정규군이였으며, 식민지 민병은 레인져 4개 중대를 제외하곤 참가하지 않았다.


[루이스버그의 함락]


ps. 22세에 중령이 되고 29세에 준장에 임명된 제임스 울프의 예는 전혀 특출날 것 없다. 그런 장군, 장교들은 18,9세기에 널리고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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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묘구지 2008/04/12 14:52 # 삭제

    상당히 중요한 지역인데, 프랑스 정부는 상시 지원을 갈 수 있는 기동 부대 조차 배치하지 않은 걸까요-_-;

    아무리 요새를 설치했고 공격자가 불리한 상륙전이라고는 해도 배의 갯수도 4:1이고 병력차도 3:1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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