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lory of Britannia-7년전쟁 북미전역:French-IndianWar(5)


루이부르의 함락 직후 제프리 앰허스트는 중장으로 승진, 무능한 애버크롬비 경을 대신해 북아메리카에 투입된 전 영국군의 지휘를 맡게 된다. 그와 동시에 존 포브스 준장이 이끄는 7천명의 병력은 펜실베니아주 서북부에 위치한 프랑스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펼친 일련의 작전을 통해 1758년 8월 25일 요충지인 뒤크슨 요새를 함락하고, 그 뒤를 이어 10월에는 리고니에 요새를 함락, 결국 퀘벡과 루지아나를 제외하고는 북미 전역에서 프랑스 군을 몰아내기에 이른다. 퀘벡에는 더 이상 그 영토를 수복할 수 있는 잉여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루이부르 함락 때문에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는데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퀘벡 본토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

북미 동부의 혹독한 겨울은 동계 작전의 실행을 막았고, 그 동안 영국군도 진격을 멈춘채 다음해에 이어질 작전을 계획하고 부대를 점검했다. 앞서 말한 제프리 앰허스트 중장은 봄이 되자 자신은 뉴잉글랜드 식민지 지역으로 떠나 그 일대의 안정을 도모하고, 그 대신 퀘벡 본토에 대한 공격은 부사령관인 제임스 울프 소장에게 맡긴다. 제임스 울프 소장은 58년 여름의 루이이스버그(루이부르) 함락 이후 그 공로로 준장에서 소장으로 승진한 상태였는데, 그는 마침 본국의 윌리엄 피트 국무장관으로부터도 큰 신임을 받는 중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봄에 약 6천여명의 정규군을 이끌고 캐나다 동부를 휘젓기 시작했다. 숲을 내려다보는 계곡마다 배치된 프랑스군 포대의 포격을 받아내면서도 인근 초소들을 하나 하나 함락시키고 주둔 거점을 마련했으며, 곧 퀘벡 시티 남쪽의 세인트 로렌스 강에 도달, 도시에 대한 공격준비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당시 누보-프랑스, 즉 프랑스의 캐나다 식민지에는 그 활발하던 통상활동도 거의 정지된 상황이었다. 대서양을 감히 횡단해 무역을 할 프랑스 상선들은 거의 없었고 캐나다로 진입해 들어올 수 있는 해로들은 이미 모두 영국 해군 전함들이 막고 있어 프랑스의 함이 행여나 대서양 봉쇄를 뚫고 북아메리카에 도달한다 해도 캐나다에 직접 닿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륙에서는 인디언 동맹군들도 서서히 프랑스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으며 신 프랑스의 주빈들은 점차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끝까지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기다리며 버텨내는 중이었다.

질병은 영국군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퀘벡시에 대한 봉쇄는 길어졌으나 전면 공세는 시작되지 못했다. 영국측도 많은 병사들이 병으로 인해 후방으로 이송되었으며 지휘관인 제임스 울프 소장 그 본인도 열병을 앓아 한 달 간 병석에 누워있어야 했다. 질병뿐 아니라 프랑스군 지휘관 몽캄 소장의 방어적 태도 또한 본격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본디 몽캄은 그가 위명을 떨친 까이용 요새 전투에서도 단단한 방어전을 펼침으로써 승리를 얻어낸 인물이었다. 제임스 울프는 당시 본국에 보낸 편지와 보고서에서 프랑스군 지휘관의 소극적이면서도 철저한 방어태세에 대한 불평을 적어 보냈고, 이후 발견된 몽캄의 일지에서는 긴 대치상태에 대한 피로가 나타나고 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그 자신을 비롯한 퀘벡 주둔 프랑스군은 영국군의 야습 위험 때문에 밤에도 완전 군장에다 칼을 찬 채로 잠을 잤어야 했다고 한다.

8월이 되자 울프 소장은 공격이 곧 시작되지 않으면 영국 측에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 여겼다. 프랑스 해군 함대가 대서양으로 출격할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 또한 들어왔고, 퀘벡시 자체는 몬트리얼로부터 이어지는 강과 육지 양쪽을 통한 보급선이 끊기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버텨낼 수 있을 터였다. 결국 울프 소장은 세인트 로렌스 강을 건너 프랑스군을 전장에 끌어내고자 하였다.




에이브러햄 평원의 전투(Battle in the Plains of Abraham)
이러한 영국군의 움직임을 몽캄 소장도 파악해 휘하의 부갱빌 준장에게 3천여명의 병력을 맡겨 강 북쪽으로 이동, 영국군의 도하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갱빌 준장의 병력은 지나치게 북쪽에 자리잡았다. 실제 영국군은 7월 31일에 부갱빌이 지키는 지점에 대한 소규모 상륙 시도를 한 적이 있었기에 부갱빌은 영국군이 계속 그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 여겼다. 이러한 믿음을 증폭시키기 위해 영국군은 부갱빌과 강 건너 마주보는 지점에 소규모 별동대를 파견, 진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부갱빌이나 몽캄의 예측과는 달리 영국군은 도하 지점을 전혀 엉뚱한, 세인트 로렌스 강 하류, 다시 말해 퀘벡시의 남서쪽 방향으로 잡았다. 문제는 이 도하 지점은 가파른 절벽으로 막혀있는데다가 병력을 내려놓을 공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절벽을 보병들이 도하하는 즉각즉각 기어 올라가 거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작전은 참담하게 실패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울프 소장의 세밀한 작전 계획 끝에 9월 12일 밤에 영국군의 도하가 시작되었다.


이날 밤의 도하는 몇몇 초병들에 의해 목격되었으나 이들은 도하를 위해 강을 오르내리는 함선들을 몬트리얼로부터 보급온 프랑스측의 함선들인 것으로 착각하였으며, 영국군이 상륙할 지점에서 순찰을 돌아야 했던 당직 장교는 하필이면 그날 자기 말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예비군마 두 마리는 병에 걸려 비실대던 터라 그날 밤의 순찰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영국군의 도하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어야 할 보병 연대 하나는 부갱빌의 명령에 의해 그것도 영국군 공격 당일에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재배치된 상황이었다. 만약 그 보병 연대가 절벽 끝에 자리잡은채 조금만 공격을 가했다면 절벽을 기어오르던 영국군은 그대로 무너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영국군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채 13일 새벽 그 절벽을 기어 올라가 아브라함 평원에 도달한다.

이러한 운의 연속으로 인해 영국군은 무사히 강을 건넜으며, 퀘벡시를 당당히 마주보고 섰다. 퀘벡 시의 방벽과 영국군 사이에 있는 것은 아브라함 평원이었고, 주변에 당장 구원하라 달려올 수 있는 프랑스군은 없었다. 몽캄은 9월 13일 아침에서야 도시 바깥에 당당히 대형을 짜고 전투준비를 완료한 영국군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결국 몽캄 소장은 충격 속에서 퀘벡시에 남아있는 전 병력을 이끌고 나와 영국군과 결전을 벌이게 된다. 퀘벡시와 그 일대에 있는 프랑스군의 전 병력은 1만 4천여명 정도에 달하였으나 갑작스럽게 기습해온 영국군과 당장 싸울 수 있는 것은 몽캄 소장 직속의 정규군 3천과 민병 천명 정도에 불과했다.


프랑스군 4천 3백명과 영국군 4천 8백명이 퀘벡 시 동남쪽에 위치한 에이브러햄 평원에서 맞붙었는데, 제 15, 제 28, 제 35, 제 40, 제 43, 제 47, 제 48, 제 58, 제 60 보병 연대와 1개 척탄병 연대, 1개 하이랜더 연대와 레인져 부대, 그리고 해병대 중대가 이 전투에 참여했으며 제임스 울프 소장 본인은 제 28연대를 진두지휘하며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였다. 제일 먼저 프랑스군과 맞붙은 것은 제 43과 제 47 보병 연대였다. 이들에게는 울프로부터 철저한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것은 프랑스군이 18미터 거리에 다가오기 전까지는 절대 한 발도 발사하지 말라는 것이였다.

여기에서 잠깐. 거의 전 병력이 정규 훈련을 받은 정예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던 영국군과는 달리 민병대가 다수 포함되어 있던 프랑스군에게는 그 민병대가 전선 전체의 취약점이었다. 병사 한 명을 전투대형, 행군대형 등 전형적인 보병 일제사격 대형으로 행군하고 전투하게 함과 동시에 일제사격의 경우에도 도망치지 않게 훈련시키려면 최소 18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민병들은 18개월은 커녕 1개월의 군사훈련도 받지 않은채 집에 있던 사냥용 라이플을 들고 나온 민간인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에게는 평원에서 부대별로 행군해 적을 마주하고 대형을 유지한채 총격전을 벌인다는, ‘회전’의 개념이 없었다. 여차하면 대형을 무너뜨리고 당장 도망치거나 일제사격하는 대신 명령을 무시하고 개별 사격전을 시작하는 자들이 민병이었다.

여하튼 머스킷 총의 유효 사거리는 43미터. 당시 보병들은 40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상대와 총격전을 벌였는데,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몇발 교환하고 나서 곧 백병전으로 돌입하곤 했다. 그러나 영국군 제 43과 47 보병 연대는 무려 18미터까지 적이 다가오도록 내버려두다가, 그제서야 정확히 조준된 일제사격을 감행했다. 이 일제사격은 이후 전사(戰史)가들이 “완벽한 일제사격”이라고 평할만큼 위력적이었으며, 한번의 사격으로 진군해오던 중앙의 프랑스군의 1/3이 쓰러져버렸다. 충격과 경악 속에서 머뭇거리던 프랑스군에게 다시 20초 후 제 2차 사격이 이어졌고 이 사격으로 프랑스군 중앙은 끝장났다. 민병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으며 정규군들까지고 대형을 무너뜨리고 도주했다. 이 혼란과 공포는 전선 전체로 확장되어 영국군은 양 익에 남아있는 프랑스군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흔들리는 중앙의 프랑스군을 보며 제 28연대가 앞으로 전진했으며 울프 소장은 손목에 총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이걸 붕대로 감싼채 진두지휘를 계속했으며 남은 병력에게 일제 사격 명령을 내렸다. 그가 명령을 내리는 순간 후퇴하던 프랑스군이 그에게 사격했고, 그는 배와 가슴에 각각 한 발씩 총을 맞고 쓰러졌다.



[울프의 전사를 묘사한 여러 그림들]

바로 그 시점에서 프랑스군 전체가 붕괴되어 패주했으며 쓰러져 있던 울프 옆에 선 척탄병 하나가 이 승리의 승간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See Them Run!”(저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십쇼!) 그 말을 들은 울프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Who?(누가?)”라고 약하게 되물었고 “The French!(프랑스군이요!)”라는 대답을 듣자 그는 차분하게 28연대로 하여금 “인근 하천의 다리를 장악해 후퇴하는 적을 저지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으며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제임스 울프 소장의 전사에 대해 이렇게 따로 상세히 기술한 이유는 이 제임스 울프란 인물이 특출나고, 과감하고, 또 뛰어난 지휘관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인물이 전사 후 당시 영국에서 일으킨 반향 때문이다. 그의 대담한 전술과 지휘, 특이한 성격, 최후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장렬한 전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사시 한편을 지을 만한 것이었으며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피트는 자신이 직접 임명했던 그 장군의 ‘우상화’를 스스로도 조장, 이용했다. 그리하여 당시 수많은 영국의 시인, 화가, 가수들은 영국 전역에서 폭발하는 듯한 애국심의 물결과 더불어 북아메리카에서의 찬란한 영광과 ‘구국영웅’ 울프 장군의 전사를 애도함과 동시에 찬양했다.



재밌는 것은 역시 뛰어난 지휘관으로 명성을 날린 프랑스 측 지휘관 몽캄 소장도 당일 전사했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전선을 장악하러 앞으로 나섰다가 그는 영국군 야포의 포격으로 인해 파편을 배에 맞고 말에서 떨어졌으며, 부하들이 도시 안으로 그를 옮기자마자 숨졌다고 한다. 그 몽캄 장군도 훗날 캐나다 정부에서 '영웅화'하여 캐나다의 역사적 위인 중 하나로 남아있다.


아무튼 이렇게 1759년 9월 13일 퀘벡시는 아브라함 평원 전투의 승리와 함께 영국군의 손에 떨어졌으며, 프랑스는 북미의 식민지를 모두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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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네요.
그동안 바쁘기도 했고
소설 쓰는게 더 중요해왔기도 해서 못 쓰고 있다가
써서 올립니다.

.......그런데 이거 읽는 사람도 없는데 난 대체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써서 올릴까. 그냥 나 스스로 공부한다는 목적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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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방제국군 2010/10/17 11:08 # 삭제

    울프장군... 정말 명예로운 패트리어트!
  • 둘탄 2010/12/09 17:58 #

    읽는 사람 있어요^^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 서방왕립군 2011/01/23 18:21 # 삭제

    소설 쓰시나요??
    어떤 소설 쓰시는지 매우 궁금하네요.. 이렇게 글을 잘쓰시니까;;
    어디 공모전에라도??
  • 불타지않는뿔 2011/11/11 22:35 #

    너무 재밌게 읽다가 마지막 글을 보고 충격에 빠져 리플을 답니다.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7년전쟁에 대한 글을 읽어야 했다면 재미없고 길고 사료와 지루한 애기로 가득찬 책들을 봐야 겠지요. 하지만 월광토끼님 덕분에 편하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주셔서^-^;;
  • 성준 2012/01/18 00:53 # 삭제

    감사합니다...
  • 덩어리뱀 2014/05/28 21:09 #

    여기 열심히 보는 1인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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