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lory of Britannia-7년전쟁 북미전역:French-IndianWar(6)

그렇게 1759년 9월 퀘벡시는 항복했고, 북미주재 프랑스군 병력은 더 이상 압도적인 영국 병력에 대항해 싸울 여력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지막 남은 보루 몬트리얼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퀘벡시에서 도망나오고, 각지에서 요새들이 함락 당하는 상황에서도 결국 재집결할 수 있었던 병력들이 존재했다. 결국 전투는 60년까지도 계속되었다.

영국군이 그을음과 포탄 구멍으로 가득한 퀘벡시를 접수하고 재보급을 행하고 있던 때에, 잔존 병력들을 전부 끌어모은 프랑스측의 프랑시스 드 가스통- 슈발리에 드 레비(레비스의 기사; 일종의 칭호) 장군은 앉아서 패배를 기다리기 보다는 도박을 하는 쪽을 택했다. 레비 장군은 퀘벡시가 함락당한지 7개월이 지난 1760년 4월에 7천명의 군세를 이끌고 퀘벡시를 탈환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게 생트-푸아 전투Battle of Sainte-Foy다.


당시 영국군은 만신창이가 된 퀘벡시에는 소수 병력만 남겨둔 채 재편성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다. 레비 장군은 한가지 더, 프랑스 해군과 그 지원부대의 도착에 희망을 걸고 퀘벡을 공격했다.

진격해 오는 7천명의 프랑스군은 절반으로 나뉘어져 레비 본인이 이끄는 전위부대가 퀘벡에 4월 10일 도착한다. 영국군 측 퀘벡 수비부대의 제임스 머레이 장군은 이미 영국군에 의한 수개월의 포위공격으로 인해 입은 피해가 채 복구되지도 않은 퀘벡은 수비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 동시에 휘하 병력이 프랑스군에 비해 열세임에 의거, 더 늦기 전에(프랑스군이 포위를 완성시키기 전에) 결전을 벌여 물리치고자 했다.

[영국군 지휘관 제임스 머레이]
레비 휘하의 프랑스군 5천명을 상대로 싸운 것은 머레이의 영국군 3800명. 4월 13일 아침에 영국군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프랑스군에 비해 열세였지만 영국군에게는 야포 27문의 지원 사격이 있었으며 이는 전투의 승기로도 작용할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아침 안개 속에서 포병대의 포격은 빛을 발하지 못했으며 먼저 공세를 취한 영국군을 기다리고 있는건 눈 녹음으로 인해 진창이 되어버린 전장이였다. 진흙과 웅덩이, 눈이 마구 섞인 그 진창 속에서 영국군 보병대는 쉽사리 진격을 하지 못했다. 프랑스군도 최초의 선제 공격에 제압되었었으나 그도 잠시, 레비 장군의 침착한 지휘 속에서 반격을 가했다.

[프랑스군을 격려하며 집결시키는 레비 장군]
전투는 2시간 동안 전개되었으며 지난 가을 같은 위치에서 벌어졌던 아브라함 평원 전투의 양상과는 달리 피비린내나는 백병전 위주로 진행되었다. 양 측이 동일한 피해를 입으며 근접전을 벌이던 와중 숫적 우세를 통해 프랑스군이 영국군의 우익을 둘러쌌으며 피해가 거세지자 머레이는 자신의 판단착오를 인정하고 군을 물렸다.

총 3시간에 걸친 전투 중 프랑스군은 800명을 잃은데 비해 영국군은 1200여명을 잃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이 승리도 그다지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은 퀘벡을 탈환할 수 없었으며, 포위 공격이 제대로 이어지기 전에 영국 해군이 급히 도착, 지원 병력들을 상륙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비 중장이 희망을 걸고 있던 승리의 마지막 가능성도 사라졌다. 프랑스 해군 주력 함대는 이미 그 전해의 11월에 물 밑으로 가라앉은 후였기 때문이다. 레비 중장은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1759년 11월 20일, 키베롱 만에서 격파당하는 프랑스 해군. 21척의 주력함대 중 7척이 가라앉고 나머지는 만신창이가 되어 꽁무니를 뺐다. 프랑스 해군은 잃어버린 해군력을 재건할 예산도 선원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었다.]

1760년 7월에 프리깃함들로 구성된 소규모의 프랑스 함대가 이미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 없게 된 뉴프랑스를 구원하기 위해 캐나다에 당도했으나 레티구쉬 강가(퀘벡으로 이어지는 큰 강줄기)에서 영국 해군 순찰함대에게 걸려 박살났고 그 후 국지적인 소규모 교전들 외에는 더 이상 전투는 없었다.

그해 9월, 뉴프랑스의 마지막 남은 보루 몬트리얼 시가 레비 중장의 주도 하에 영국군에게 무조건적으로 항복한다. 프랑스와 영국간의 전쟁은 그 후로도 3년이나 더 지속되지만, 북미전역은 어쨌든 이렇게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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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얘기는 끝. 7년전쟁 북미전역 편도 다음편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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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묘구지 2008/05/17 04:25 # 삭제

    퀘백을 건 한판 승부...패배의 프랑스 해군 덕택에 레비 중장이 불쌍해보이네요. 전술적으론 승리지만 전략적으로는 패배랄까요.
    손도 아프실탠데 수고하셨습니다~
  • 흐헝 2009/03/07 07:06 # 삭제

    누가 볼진 모르겠지만 내일까지 이 주제에 대해 에세이를 써가는게 숙제다..

    이정보는 너무 광대해서 어떻게 편집 해서 내가 써내려갈지 걱정이 된다...

    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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