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1

[NEMO ME IMPUNE LACESSIT]



“Black Watch”



검정 손목시계? 아니다.
영국의 검은 경비대. 이것은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정예 부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Ladies From Hell", "Black Watch".


과거의 42nd Regiment of Foot / Royal Highland Infantry Regiment(1739~1881) - Royal Highland Regiment(1881~2006) - 현재의 Royal SCOTS 3rd Battalion(2006~).




1715년의 재코바이트 반란 사건 이후 스코틀랜드의 치안은 계속 불안정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국은 계속되는 전쟁 덕에 잉여 병력이 부족한 상태로, 치안 유지를 위해 스코틀랜드에 주둔시킬 수 있는 병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결국 그 대안은 스코틀랜드의 부족들 중에서 휘그당에, 다시 말해 영국 왕실에 충성스러운 부족들에서 사람들을 차출해 각 지방의 경비를 담당케 하고 토착 부족들간의 충돌을 막게 하는 것이었다. 1725년부터 본격 창설된 이 경비대, 즉 Watch들 중 검은색의 격자무늬 제복을 입은 부대가 Black Watch로 불렸다.

정식 군 부대로써 Black Watch로 창설된 것은 1740년의 일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애버펠디 지방에서 모병 후, 그 지방에 존재하던 상설 경비대들(Watch)을 합쳐 창설된 제 42 고지 보병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제 42 보병연대는 런던으로 보내져 훈련을 받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부대의 첫 시작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장식했다. 그 대기기간 동안 병사들 사이에서 그들이 서인도 제도 주둔부대로 다년간 차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탈영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이 발발하고, 연대는 곧 병력이 부족한 플랜더즈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1745년의 Battle of Fontenoy]


제 42 보병연대의 첫 전투는 프랑스군을 상대로한 퐁트노와 전투Battle of Fontenoy(1745)였다. 전투에 참여했던 20개의 보병 연대들 중 제 42 고지인 연대는 전군의 측면과 후미를 방어했다. 전면 공세에 참가했던 다른 보병 연대들의 화려한 전적은 없었으나 매우 격렬하고 호전적인 공격과 사기로 지휘관들을 감탄케 하였으며 프랑스군 경기병대의 측면 공격을 위력적인 제압 사격으로 막아내기도 했다.

1745년에 부대는 더 이상의 전투 없이 불안정한 영국 내 치안 사정과 프랑스 해군의 상륙위협 때문에 영국 본토로 돌아가 경비를 담당했고, 1747년부터는 근 10년간 아일랜드에 주둔했다. 그리고 1756년에 7년전쟁(1756-1763)이 터진다.

7년 전쟁이 터진 후 제 42 하일랜더 연대는 즉시 아메리카의 뉴욕주로 파견된다. 그리고 1758년에 한 전투에 참가하는데 여기서 이들은 다시 그 용맹함을 알린다.


까이용 전투Battle of Carillon, -영국인들에게는 타이콘데로가 전투Battle of Ticondroga로 알려져 있음- 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보인 저돌적 공세는, 연대의 처절한 사상률에 기여했으나 그와 동시에 보는 이들을 경탄케 했다.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했으나 부대 전원의 20%가 전사하고 30%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부대원 전원이 계속 싸우고자 했으며 전군이 철수할 때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군의 후미를 방어한 그 용기는 비록 패전이였으나 부대의 명성을 드높이고 모든 군인들의 뇌리에 숫자 ‘42’를 각인시킨다. 이 전투에서의 용맹함 덕분에 제 42연대는 연대 명칭 앞에 “Royal”을 붙이는 영예를 얻는다. (영국 해군, Royal Navy와 공군 Royal Air Force와는 달리 영국 육군은 앞에 Royal을 붙이지 않으며 전투에서 특출난 전과를 올린 명예로운 부대들이 개별로 Royal 칭호를 받는다.)

1759년에는 서인도제도의 섬들을 오가며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그 외 지역 반란들을 제압했으며 하바나와 마티니크에서의 전투로 Battle Honor를 얻는다. 1760년에는 다시 북아메리카 본토로 재배치되어 뉴저지에서의 작전 이후 퀘벡 공략에도 참가, 몬트리얼시의 함락에도 참여했다.


[1765년의 Battle of Bushy Run]


1763년에는 오타와족 추장 폰티악이 북동아메리카의 모든 인디언 부족들을 규합해 대영제국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Pontiac’s Rebelion(1763-1766)에서 피의 샘 전투Battle of Bloody Run과 수풀의 샘 전투Battle of Bushy Run등에 참가, 인디언들을 진압한다. 1767년까지 계속 북미에 주둔하다가 아일랜드의 치안 유지를 위해 더블린으로 이동, 다시 75년에 스코틀랜드에 배치되지만 이들은 곧바로 북미로 돌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1776년의 Battle of Long Island]


1775년에 과세와 제한적인 식민 정책에 불만을 품은 대륙 식민지인들이 정치적인 독립을 선언한 후 곧바로 무장반란-다시 말해 전쟁-을 일으키자 영국은 당장 대규모의 병력을 북미 식민지로 파견하게 된다. 미국 독립 전쟁(1775-1783)이 바로 그것이다. 1776년 3월에 미국에 재배치된 제 42연대는 즉각 뉴욕주로 파견되어 여러 전투에 참가했는데, 8월의 롱아일랜드 전투Battle of Long Island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다. 제 42연대는 이 전투에서 포병대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는 대륙군(Continental Army, 미국 독립 정규군의 정식 명칭) 1개 연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 패주시키는 전과를 거둔다. 남부 방면군(뉴욕주 이남에서 작전을 펼친 영국군, 남부 전역Southern Theater의 주역)에 배치되어 77년 8월에 또다시 대규모 전투인 브랜디와인 전투Battle of Brandywine에 참가했으며 10월에는 저만타운Battle of Germantown, 78년 6월의 몬모스Battle of Monmouth, 80년의 찰스턴 함락Siege of Charleston 등 영국군이 북미 남쪽에서 대승을 거둔 대규모 전투란 대규모 전투에는 모조리 참가해 전과를 올린다. 불미스럽지만, 최종적인 영국군의 패배였던 1781년의 요크타운 농성전Siege of Yorktown에도 참가, 항복하기도 한다. 1783년에 포로 송환으로 영국에 돌아간 제 42연대는 1790년에서야 연대의 창설지인 스코틀랜드 글라스고로 돌아가게 된다.
-북미 전역에서 42연대가 거둔 전과는 다른 연대들(36, 40, 46연대)에 비하면 작은 것이었다-

그 전인 1780년에 제 2 대대2nd Battalion이 연대 증원의 일환으로 창설되는데, 이 제 2대대는 2년 후 42연대로부터 떨어져 나가 별개의 연대로 재선정되어 제 73연대가 된다. 이 제 73 보병연대는 100년 후 다시 42연대와 합쳐지게 된다.


Black Watch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색 깃털Red Hackle은 바로 이 때부터(1795)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시작에 대한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는 분분하지만 왜 이 붉은 깃털을 꽂게 되었는지는 어찌되었든간에 군모에 꽂은 이 붉은 깃털은 마치 숫탉과도 같이 용맹함을 상징하며 전장에서 제 42연대를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되었다.


[1801년의 Battle of Alexandria에서 진격하는 제 42 연대]


대영제국이 제 18세기를 거의 끊임없는 전쟁들로 그 역사를 장식했듯, 제 42 보병연대도 아메리카 독립 전쟁 직후에 쉴새도 없이 또 다른 전쟁에 참전한다. 1801년에 제 42연대는 랄프 애버크롬비 중장의 지휘하에 다른 9개 연대와 함께 북아프리카에 파견되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주둔하는 프랑스군 잔여 병력의 궤멸과 이집트 일대의 확보가 그 목적이었다. 이는 곧 1801년 3월 21일의 알렉산드리아 전투Battle of Alexandria로 이어진다. 므노General Menau 장군 휘하의 이집트 주둔 프랑스군은 2만명에 달했고, 그 반면 영국군은 1만 4천에 불과해 숫적 열세에 있었다. 전투는 새벽 3시의 어둠 속에서 프랑스군의 전면 공세로 시작되었는데, 숫적으로 우세한 프랑스군이 집요하고 매서운 공세를 영국군 우측에 가했을 때 제 42 연대가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제 28 글로스터셔 보병 연대가 그 파상공세를 맞는 동안 제 42연대가 프랑스 전위부대와 치열한 근접전-그리고 백병전-을 통해 숫적으로 두 배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하여 물리친다. 그동안 이들은 프랑스군의 연대기(聯隊旗, Regimental Standard)를 빼앗는 명예로운 전과를 올린다.-연대가 연대기를 잃는다는 것은 부대의 치욕이며, 적 부대의 연대기를 빼앗는다는 또한 영예로운 일이다- 프랑스군의 두번째 공세가 아침 6시 경에 재개 되었을 때 42연대는 프랑스군 흉갑 기병대(큐라씨에Curassier)와 용기병대(드라군Dragoon)의 돌격을 정면으로 받는다. 이 때 전군 총사령관 랄프 애버크롬비Ralph Abercromby 중장이 42 연대를 직접 진두지휘하며 교전 중이었는데, 42연대에 대한 프랑스군의 기병 돌격으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그는 5명의 용기병들과 백병전을 벌이다 주변의 42연대의 용맹한 반격으로 구해지는데, 이미 입은 부상으로 인해 전투 직후 전사한다. 오전 8시 경에 프랑스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까지 42연대는 다수의 적 보병과 백병전을 벌이고 두 차례의 기병돌격을 받아들인 후였음에도 전사자와 부상자를 전부 합해 50명의 사상자만 내었으며 전선의 우익을 훌륭히 방어해낸, 빛나는 전과를 올린다.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의 보여준 용맹함으로, 제 42연대는 특별히 전군에서 유일하게 스핑크스-이집트 지역의 상징- 문양이 새겨진 군기와 훈장을 하사 받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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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묘구지 2008/05/25 18:32 # 삭제

    연합왕국의 2인자인 스코틀랜드의 군대, 켈트족 특유의 고집과 전쟁이 만나니 엄청난 실적을 올리는군요...근세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전쟁이 난무했고 덕택에 42연대도 여러 지역에 참여했기에 딱히 하나를 꼬집어서 평가하긴 힘드네요. 다만 1801년이면 나폴레옹이 한창 날리던 때인데 그 와중에 연대기도 빼앗은 것을 보면 포스가 ㅎㄷㄷ...위에서 2번째 사진의 현대 42연대의 붉은 깃털을 보면 뭔가 묘합니다. 과거의 전통이 잊혀지지 않고 계승되는 느낌이랄까...
  • 위장효과 2011/02/22 19:32 #

    이런 글이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맨 밑의 알렉산드리아 전투라고 올리신 그림은 아무리 봐도 크리미아 전쟁 당시 알마 전투의 장면같습니다.
  • 월광토끼 2011/02/23 14:35 #

    워낙 옛날에 쓴 글이라 재독한 적도 없어서 오류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_-;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알마 전투로 보이는데 그 땐 왜 그랬는지;
    올바른 그림으로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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