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2


영국과 프랑스의 지속되는 적대 관계 속에 제 42 연대는 1809년에 이베리아 반도로 파견된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는 나폴레옹 프랑스 제국의 침공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오랜 동맹관계를 파기해버리고 전쟁을 시작한 프랑스군의 압도적 힘에 스페인 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럼에도 스페인 전역에서 민병들에 의한 게릴라전과 스페인 정규군의 잔여 세력이 프랑스군에 저항 중이었고, 프랑스군은 각지에서의 저항에 부딪치면서도 포르투갈에 대한 침공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여기서 이어진 것이 길고, 나폴레옹 전쟁 중 가장 처절하고 피비린내나는 전쟁인 “반도 전역”Peninsular War(1808~1814)다. 이 시점에서의 존 무어John Moor 중장 휘하 2만명의 영국 육군의 개입은 프랑스군의 이베리아 반도 재패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제 42 연대도 그 군대의 일부였다. 그러나 원정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스페인군이 무너진 후의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전력비는 2 대 1로 영국군이 압도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원정군 사령관 존 무어 중장은 갈리시아 지방의 코루나 항구에서 전 병력이 철수하도록 했는데, 술트Soul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은 철수하는 영국군의 덜미를 잡기 위해 코루나에 전면 공세를 펼친다.


[코루나 전투에서 프랑스군 보병의 침입을 격퇴, 반격하는 제 42 연대]

1809년 1월 16일의 코루나 전투Battle of Crounna에서 가장 빛나는 무훈을 올린 부대가 바로 제 42연대였다. 코루나 항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마을 엘비나를 지켜내는 것이 제 42 연대의 첫 임무였는데, 2천여명의 프랑스군이 엘비나를 장악하기위해 진입하는 상황에서 제 42연대는 정확한 일제사격으로, 후에는 공포스러운 착검 돌격으로 프랑스군을 격퇴한다. 전선 전체가 프랑스군 기병 공격에 의해 흔들려 후퇴하자 제 42연대도 마을을 포기하고 물러났는데, 이에 사령관 존 무어 중장 본인이 제 42연대를 직접 이끌고 마을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한다. 사령관은 전투 중 프랑스군 야포의 폭격에 의해 파편을 맞고 쓰러져 곧 전사하였으나 제 42연대는 쓰러진 사령관을 보호함과 동시에 그의 최후의 명령에 따라 엘비나를 전력을 다해 공격, 프랑스군을 격퇴했으며 이는 프랑스군 전군의 후퇴로 이어진다.


[비토리아 전투]

프랑스군이 후퇴하자 영국군은 코루나 항을 통해 안전하게 영국 본토로 이송된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온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 전선의 방어를 위해 다시 이베리아로 향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 유명한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웰링턴 공작 본인이 이베리아 방면군 전체의 지휘를 맡았는데, 제 42연대는 반도 전역이 끝날때까지 최전선에서, 웰링턴 공작의 지휘아래 전투를 치뤘다. 반도 전역에서 제 42연대는 그 유명한 비토리아 전투(Battle of Vitoria, 1813 06/21)와 피레네 산맥 전투(Battle of Pyreneese, 1813 07/25~08/02), 니베(Battle of Nive, 1813 12/10~14), 오르테즈(Battle of Orthez, 1814 02/27),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 본토에 도달하여 치른 뚤루즈 전투(Battle of Toulouse, 1814 04/10)에서 웰링턴의 유명한 연전연승의 행진 내내 선두에 서 싸워 경탄을 자아낼만한 공적들을 세운다. 이 반도 전역에서 제 42 연대가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는 그 사상률만 봐도 명확히 알 수 있다. 뚤루즈 전투가 끝나고 반도 전역이 종결되었을 때, 전역 투입 전에는 1천 2백명에 달했던 제 42 연대 소속 2개 대대의 병사들 중 부상을 입지 않은 자는 단 62명에 불과했다.



[꺄트흐 브라에서 적 기병대를 상대하는 42연대. 이 장면은 워낙 유명해져서 여러 화가들이 이를 화폭에 담았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제 42 연대의 활약은 반도 전역으로 그치지 않는다. 황제 나폴레옹이 엘바 섬의 유배지로부터 탈출, 프랑스로 귀환하여 백일천하 동안 치른 전쟁에서, 제 42 연대는 다시 한번 웰링턴 공작의 지휘 하에 배치된다. 1815년 6월 16일에 벨기움 지방의 꺄트흐 브라(Quatre Bras)에서 웰링턴 휘하의 영국군은 아직 집결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프랑스군의 네 원수(Michelle Ney)의 군대를 맞아 힘든 싸움을 벌인다. 2만명의 프랑스군이 진군해오는 상황에서 웰링턴의 8천 영국군은 수세에 몰렸으나 지원 병력이 차근차근 도착할 때까지 공세를 버텨내었으며 네 원수는 나폴레옹의 본군에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는데에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전열 중앙에 포진한 제 42 연대는 프랑스군 보병들의 공격을 여러차례 받아내었다. 전투 후반에 프랑스군 용기병대가 돌격해 왔을 때 제 42연대는 이들을 아군으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방어진형을 짜지 못한 42 연대에게 용기병들이 돌격하자 이들은 부대의 1/3이 쓰러지는 큰 피해를 입지만 전열 붕괴의 위기 속에서도 후퇴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적 기병을 패퇴시킨다.

그러나 42 연대가 꺄트흐 브라에서 입은 피해는 심대한 것이여서 이들은 정작 이틀 후에 벌어진 워털루 대전Battle of Waterloo에서는 전선 후방에서 대기, 그다지 특출난 전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 대신 본디 42 연대의 제 2 대대로 창설 되었다가 별개의 연대로 만들어진 제 73연대가 활약했는데, 이들은 전열 중앙에서 프랑스군의 산탄 폭격을 집중적으로 얻어 맞은 후 나폴레옹 친위 경보병대Young Guard와 전투를 벌이다 부대 절반이 산화하는 큰 피해를 입는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제 42 연대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간다. 영국은 그 후에도 아프가니스탄(1st Anglo-Afghan War, 1839~1842)과 인도(Anglo-Sikh War, 1845~1849)등 식민지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나 제 42연대가 다시 전장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것은 40년 후인 1853년, 크림 반도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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