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rief History of the Crimean War



“경기병단의 돌격”(Charge of the Light Brigade)과 같은 불멸의 고전 영화가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크림 전쟁.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눈망울을 빛내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전기를 읽게 만든 크림 전쟁. 하지만 그래서 뭐.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림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다. 오래된 흑백영화 한편과 어느 간호사의 감동적인 간호기. 하지만 크림 전쟁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크림 전쟁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왜” 싸운 전쟁이었는가? 이 의문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크림 전쟁. 생크림 케익을 두고 벌인 전쟁? (농담 아니다. 정말 이렇게 말할 사람들 많다) 크림 전쟁은, 흑해, 현재의 우크라이나 공화국 남단에 위치한 흑해의 북단에 톡 튀어나와있는 큰 반도, 크림 반도Crimean Peninsular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19세기 중반 일련의 충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림 전쟁이 단순히 크림 반도 내에서만 벌어진 전쟁은 아니다. 저 멀리 북쪽의 발트해에서 전열함들과 신예 증기선들이 포화를 주고받았으며, 다뉴브 강 일대에서 전투함성이 끊이지 않았고, 코카서스 산맥에서는 총성이 메아리쳤다. 아르메니아에서도 대대적인 교전이 벌어졌다. 크림 반도에서의 전투들(Battle of Alma, Battle of Balaclava, Siege of Sevastopol)은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는 해도 전쟁의 전부는 아니었다.

크림 전쟁. 1854년부터 1857년까지, 총 28개월의 시간동안 다 합해서 50만명의 군인들이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총에 맞아서, 총검에찔려서, 포탄에 찢겨서, 기병도에 베여서, 말 발굽에 으스러져서 40만이 사체로 변해야 했으며 10만은 콜레라와 설사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죽어갔는가?

간단히 말하자면, 크림 전쟁은 터키와 프랑스, 영국의 3국 연합이 짜르 니콜라스 영도 하의 러시아 제국과 벌인 백해무익의 소모전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사소한 이유와 불화가 눈사태처럼 불어나 벌어진 전쟁.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무익한 인명의 살상은 물론이지만,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명 연장과 러시아 제국의 대외 정책, 위상의 변화 등이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종군기자 윌리엄 러셀이 타임즈지에 보도한 실감나고 사실적이며 상세한 전쟁보도는 국민들에게 전쟁의 현황과 모습을 생생히 전달했으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열악한 야전병원의 시스템을 혁신하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봉사해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 나아가 여성 대우와 병원의 병자 간호 체계 자체의 개혁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주 터키 영국 대사 스트래트포드의 친터키적, 그리고 지나치게 자율판단에 의존한 태도와 그런 스트래트포드의 지원에 자신감을 얻은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 불사, 짜르 니콜라스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명예욕.

중세도 아니고, 르네상스 시대가 찾아온지 이미 400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노동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혁명의 횃불을 치켜든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은 그 시대에 전쟁은 다분히 중세적인 종교적 불화로 인해 어이없게 촉발되었다.

새로이 대통령에서 황제 자리로 옮겨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교회의 지지를 얻어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으며 프랑스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주요 성물과 성당들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들이 되기를 바랬다.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는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과 성물, 성지를 자신들의 소유로 하길 원했고 러시아가 지원하는 그리스 정교회와 프랑스가 지원하는 카톨릭 교회는 교회 차원의 충돌을 국가간의 불화로 비약시켰다. 정작 소피아 대성당과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사태에 대한 어떠한 입장표명도 하지 않았으며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정부가 그리스 정교회 측 입장을 오스만 투르크에 강요하자 이미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성공적인 교섭을 마친 터키는 이에 불복했다. 이미 지난 10년간 불화와 크고잦은 외교적 충돌로 인해 관계가 나쁠대로 나빠진 터키와 러시아는 정면으로 충돌했고, 터키와 경제/무역의 이해타산이 크게 맞물려있던 영국은 터키의 편을 들었다. 한편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삼촌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위명에 걸맞는 ‘업적’을 세우려고 노력하였고, 그에 따라 군사적 승리와 그로 인한 영광을 얻어내기를 원해, 의도적으로 전쟁을 부추겼다. 러시아의 우방이였으나 상업 경제적 문제 때문에 영국과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는 러시아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이 맞물려 돌아가 사소한 분쟁은 전쟁으로 비약한 것이다.


이렇듯 위에 써놓은 역사의 발자취들이, 304페이지(부록 제외)의 역사책 “A Brief History of the Crimean War”에 매우 매끄럽고, 우아하게 서술되어있다. 러시아 보이야르(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이민온 역사가 알렉시스 트루베츠코이는 “경기병단의 돌격”같은 영광과 비극의 순간을 극적으로 읊는대신, 역사가 본연의 임무인 “어떻게, 왜, 그래서”를 충실하게 해석하고 해설하는데에 집중한다. 전쟁 자체보다도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과 각 단계의 개연성 설명에 책의 절반을 할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간결하면서도 점잖은 문체는 매우 따라가기 쉬우며 사건의 경과에 대한 묘사는 독자의 뇌리에 금새 각인된다. 결론적으로, “A Brief History of the Crimean War”는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역사에 대해 균형잡히고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주는 좋은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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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국에 잘 돌아왔습니다.

독후감은 비행기 안에서 작성했습니다.

이제 한국에 체류하는 두 달 반의 방학동안 최대한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겠지요.

ps. 비행기 안에서 한 숨도 못 잔 덕택에 시차적응에는 문제 없었습니다 :)

덧글

  • 쿠루니르 2008/06/07 14:18 # 삭제

    크림 전쟁 얘기 찾다가 결국 이 이글루까지 찾아왔습니다^^ 솔직히 우리 나라 사람들이 크림 전쟁 하면 나이팅게일만 떠올리는게 슬퍼요(...) 전쟁사를 좋아하는 저에게 크림 전쟁은 가장 좋아하는 전쟁 중 하나거든요.

    덧. 넵. 19세기에 매니악하게 버닝하고 있습니다 --;; (굽신굽신)
  • 월광토끼 2008/06/07 19:16 #

    저로써도 19세기의 역사가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장 공부하는 보람이 있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데프콘1 2008/06/07 23:26 #

    전보가 최초로 쓰인 전쟁이라고 하네요. 아 그리고 보니 '영국 경기병 돌격했는데 이상한 데로 닥돌해서 러시아 포병 발려서 전멸했다. 하지만 영국 경기병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돌격하였다. 요게 브리튼 정신이라능'라는 전설이 잘 알려져 있는데 구랍니다-_-;; 실제로는 올바른 곳에 돌격했고 고지에 있는 러시아 포병대를 몰아내고 상당한 포대를 장악했죠. 물론 포화를 뒤집어 쓰면서 돌격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피해가 심했지만, 전멸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러시아 대포들이 영국군 본진을 향해서 쏘고 있다가 뒤늦게 영국 기병대를 발견해서 대포 돌리고, 대포알 포도탄으로 가져오고, 그거 장전하고 이거 저거 하느라고 몇 발 못 쐈다고 하네요.
  • 자이드 2008/06/08 03:34 #

    그 돌격을 보고 한 프랑스 중위인가가 "그것은 장엄했지만 전쟁은 아니었다" 라고 기록한 문장을 어디선거 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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