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lory of Britannia-7년전쟁 북미전역:French-IndianWar(完)

60년에 '서방 전역' - 북미전역은 대부분 종결되게 된다.
1762년에 캐나다 도입부의 한 섬에서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수백여명 단위의 사소한 교전(1762년 9월 15일, 뉴펀들랜드 섬의 Battle of Signal Hill)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전역 종료 시점은 60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프랑스군은 캐나다에서 완전 철수 또는 전멸 당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등의 교전 당사국들이 유럽 본토에서 벌이는 전쟁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7년 전쟁은 63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은 62년 6월의 빌헬름슈탈 전투를 마지막으로 끝나며 남은 전쟁 기간은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간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교전들로 채워진다.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간의 전쟁은 상관없이, 프랑스와 영국은 파리 조약 Treaty of Paris (1763)에서 종전협약을 맺고 전쟁에서 얻은 득실을 따졌다.

보통 전쟁 중 얻은 식민 영토는 종전협약 중 반환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이 63년의 협약에서 영국은 굉장한 득을 보게 된다. 프랑스는 가지고 있던 서방 식민지를 (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의) 모조리 잃은 처지였으며 승세는 영국 쪽에 '극히'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이러자 프랑스는 당시 영국에게 빼앗겼던 과달루페Guadalupe섬 만이라도 되찾으려 하였다. 과달루페 섬의 설탕 생산량이 주는 이득을 잃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과달루페를 되찾는 대가로 미대륙의 미시시피강 동쪽의 모든 영토와 캐나다 전 지역에서의 영국 지배권을 인정하여, 공식적으로 영국에게 그 어마어마한 영토를 넘겨준다.


이는 조약의 제 4항Article IV에 포함되어 있다.

IV. His Most Christian Majesty renounces all pretensions which he has heretofore formed or might have formed to Nova Scotia or Acadia in all its parts, and guaranties the whole of it, and with all its dependencies, to the King of Great Britain: Moreover, his Most Christian Majesty cedes and guaranties to his said Britannick Majesty, in full right, Canada, with all its dependencies, as well as the island of Cape Breton, and all the other islands and coasts in the gulph and river of St. Lawrence, and in general, every thing that depends on the said countries, lands, islands, and coasts, with the sovereignty, property, possession, and all rights acquired by treaty, or otherwise, which the Most Christian King and the Crown of France have had till now over the said countries, lands, islands, places, coasts, and their inhabitants, so that the Most Christian King cedes and makes over the whole to the said King, and to the Crown of Great Britain, and that in the most ample manner and form, without restriction, and without any liberty to depart from the said cession and guaranty under any pretence, or to disturb Great Britain in the possessions above mentioned. His Britannick Majesty, on his side, agrees to grant the liberty of the Catholick religion to the inhabitants of Canada: he will, in consequence, give the most precise and most effectual orders, that his new Roman Catholic subjects may profess the worship of their religion according to the rites of the Romish church, as far as the laws of Great Britain permit. His Britannick Majesty farther agrees, that the French inhabitants, or others who had been subjects of the Most Christian King in Canada, may retire with all safety and freedom wherever they shall think proper, and may sell their estates, provided it be to the subjects of his Britannick Majesty, and bring away their effects as well as their persons, without being restrained in their emigration, under any pretence whatsoever, except that of debts or of criminal prosecutions: The term limited for this emigration shall be fixed to the space of eighteen months, to be computed from the day of the exchange of the ratification of the present treaty.
(미국 예일Yale 대학 자료실에서 발췌)
http://www.yale.edu/lawweb/avalon/paris763.htm



[1763년 파리 조약 후 북아메리카의 영토 변화.]



그렇게 공식적으로 끝난 전쟁.
그리고 영국에게 어머어마한 이득을 가져다 준 그 북미 전역.

그 진짜 결과와 장기적인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북미전역에서만 프랑스와 영국 양측 다 합쳐서 전사, 부상, 실종자의 수는 아무리 크게 잡아도 3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수만 명이 모여 교전을 벌이고 쿠네스돌프 전투 처럼 하룻동안 수천명이 한꺼번에 쓰러져나가고 있던 유럽 본토의 전장과 비교하면 거의 사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7년 전쟁"의 불명확하고 소모적이었던 성격에 비해 그 여러 전장들 중의 하나였을 뿐인 "북미 전역"은 특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앞서 북미전역 특집 1번 글에서 설명했던 북미 식민지의 자원, 경제적 생산성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과달루페의 설탕 농장을 지키기 위해 북미가 창출 가능한 모든 이윤을 버렸지만, 이는 과달루페 설탕이 북미 비버가죽 보다 더 큰 이득을 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북미의 나날이 높아지는 인구증가율은 증가하는 세금수입과 무역대상을 뜻했다. 퀘벡 지방의 프랑스인 정착민들 7만여명은 영국 땅이 되어버린 퀘벡을 떠나지 않고 영국의 지배로 들어갔다.

단순한 생산 자원 뿐 아니라 무역 시장의 확충이란 점에서 영국은 큰 이득을 보았으며, 실제로 영국은 1775년까지 7년 전쟁을 치루는 동안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재충당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영국이 그 전까지 치른 어떤 다른 전쟁(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스페인과 치른 전쟁을 제외)과도 달리,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피트가 전격적으로 조장한 민족과 조국에 대한 '영국인'으로써의 애국심의 고취와 사회 전반에 걸친 낭만주의와 애국심의 분위기가 영국민들을 흥분시킴으로써 영국인들의 '영국'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이 강하게 확립된 것이 특기할만한 점이다.
당시의 시인이나 소설가들, 화가들이 하나같이 읇고 묘사하는 영광과 전설의 순간들 - 제임스 로크 소장의 영웅적인 죽음 - 등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영국적 애국 정서가 결국은 이후 나타나는 팽창적 영국 제국주의의 근간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프랑스측은 이 전쟁 기간동안 잃은 막대한 손실; 인명과 비용과 영토의 상실을 재충당하기 위해 나라 내부에서 이를 쥐어짤 수 밖에 없었고, 이 부담은 프랑스 본국의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맡아야 했다. 이는 국가의 전반적인 국정운영력이나 정권 지지기반을 뒤흔들어놨고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불만만 쌓여갔다.



그러나 다른 결과들도 많이 존재했다.

프랑스인들과 인디언들을 상대로 모국을 위해 싸우면서, 영국측 식민지인들은 단결해서 싸웠다. 영국은 식민지를 잃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지만 식민지인들 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건 삶의 터전의 문제였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 결사적이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주 별로 분열되어 있던 식민지인들은 전쟁을 치루며 단결하게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그렸던 당시의 전쟁 홍보 포스터는 이러한 점들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단결한 식민지인들은 '대륙민' 으로써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본토의 영국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북미전역이 가져다준 '의도되지 않은' 가장 큰 결과였다. 이 단결력과 정체성은 10년 후 구상될 '새로운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새로이 얻은 영토와 그 신민들의 통치문제로 영국정부는 본래의 뉴잉글랜드 식민지인들과 퀘벡 식민지인들의 대우의 차를 조절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를 공평하게 맞춘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통치 부담이 가증된 영국 정부는 또 다른 부담까지 안게 되는데, 여기서 등장한게 인디언 문제다.



이로쿼이 동맹체의 이로쿼이 족 인디언들은 상당수가 영국 편에 서서 싸웠다. 그런데 이제 그 인디언들은 미국의 정착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들의 대한 처우가 불공평해지자 인디언들은 대영 투쟁을 선언하고 추장 폰티악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는데,(Pontiac's Rebellion, 1763–1766) 이 때의 인디언 문제도 큰 골치였다. 이미 7년 전쟁에서의 어마어마한 전비를 날린 영국은 더 이상 '예산이 필요한' 것은 기피하는 중이었는데, 계속되는 인디언과의 군사분쟁은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반면, 프랑스의 위협이 사라지자 뉴잉글랜드 정착민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더욱 진출하여 정착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는 인디언과의 토지분쟁을 의미했다. 또한, 프랑스가 없어진 미 대륙은 이들에게 마치 안전한 곳 처럼 보이게 되었고, 모국 영국의 보호나 관리 따위는 필요 없다, 라는 인식이 고개를 들게 된다.

여기에 영국이 부과하는 세금, 전쟁비용으로 소모된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걷어들인 세금들에 대한 불만, 그리고 게다가 캐나다에 정착하고 있던 카톨릭 교회 신부들이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교세 확장을 시도한 것에 대한 반발 등이 가증되자 영국 본토인과 식민지인들 간의 사고의 격차 등이 어우러져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북미 전역의 결과였으니, 이는....

덧글

  • 아메바나나 2011/02/28 20:23 # 삭제

    우와 2008년에 작성하신 글이었네요.
    깔끔한 문단에 유려한 솜씨덕분에 후딱 다 봐버렸습니다. :)
  • 지나가는 2012/04/13 16:10 # 삭제



    퀘백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자세하면서도 잘 쓴 글에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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