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3

영국군이 자랑하는 "블랙와치"의 역사를 소개하는 기획의 세번째 글. 시간이 한참 걸린 것에 양해를 구한다.


 
   터키의 무역 파트너로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던 대영제국은 남방진출 의도를 가지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압박하던 러시아 제국의 행각을 좌시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권력기반을 다지고 싶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의도가 포함되어 각국간 이해가 충돌, 발생한게 크림 전쟁이다
.
 

   1854 9 13, -불 연합군은 이 전쟁에서  흑해의 안쪽으로 마치 혹처럼 튀어나온 크리미아Crimea반도에 러시아군의 중요 거점인 세바스토폴을 함락하기 위해 상륙함으로써 세바스토폴 전역을 시작했다. 진군하던 영-불 연합군 중에는, 대영제국육군 제 42 하이랜더 연대, Black Watch가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크림 전쟁 중 러시아군 포병진지를 박살내는 제 42연대의 모습]
    상륙직후 세바스토폴 주둔 러시아 야전군과 영-불 연합군이 최초로 맞붙은 것은 1854 9 20일 알마 전투Battle of Alma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제 42 하이랜더 연대는 영국군 고지대 여단이 전열 좌측에 배치되면서 좌익에서 러시아군 우익을 공격하는데 참가햇는데, 여기서 영국군 전체가 러시아군이 미리 전장에 건설해 놨던 대규모 방벽들에 막혀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된다. 전투 종반에 이르러 영국군은 전열 우측이 붕괴되었으나 진격하던 러시아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이에 마지막 공세로 러시아군은 예비 병력 1만명을 영국군의 좌측에 대거 투입한다
.


    

영국군 좌익을 지키고 있던건 고지대 여단의 단 3개 연대 - 93 하이랜더 연대, 카메론 하이랜더 연대, 그리고 제 42 하이랜더 연대- 뿐이었다. 숫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였던 고지대 여단은 전장에 자욱히 피어오른 화염과 연기재 속에 병력 규모를 숨긴채 무려 2km를 완벽한 질서를 유지한채 진격했으며, 이들의 전열이 그저 2개밖에 안되는 얇은 것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러시아군은 고지대 여단의 맹렬한 공격에 당황했다. 여기서 보여진 블랙와치의 전투행동은 이후 길이 회자된다. 42 연대, 블랙와치는 앞으로 전진(그것도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등반하며)하면서 일제 사격을 가했는데, 그 놀라운 명중력과 파괴력, 그리고 스코틀랜드인의 무시무시한 함성에 러시아군은 완전히 무너져내려 자기들보다 훨씬 적은 수의 적으로부터 패주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전선 우익의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하면서 러시아군은 전면 후퇴했고, 알마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다.


알마 전투 이후로 1854 10월부터 근 11개월간 세바스토폴 포위공격전(Siege of Sevastopol)이 이어진다. 포위전 시기 동안 러시아군의 포위망 분쇄 의도로 발라클라바Battle of Balaclava, 인커만Battle of Inkerman전투 등이 이어지나 이 때 제 42연대는 전선 후방에서 대기하는데 그쳤고, 세바스토폴의 참호와 언덕들에서 다른 연대들과 마찬가지로 추위와 질병, 포격과 저격에 시달리며 많은 피해를 입는다. 사실 세바스토폴 전투에서의 주역은 영국군이 아닌 프랑스군이었으며, 영국군은 러시아군의 용맹무쌍한 방어를 뚫지 못했다. 공방은 계속되다 55 9월에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군이 세바스토폴에 불을 지르고 후퇴함으로써 크림 전쟁은 사실상 종결된다.

 

크림전쟁 후에 제 42연대는 서아프리카의 아샨티에 파견되어,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매입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침공한 아샨티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데(Anglo-Ashanti War(3rd), 1873~1874) 이들은 올슬리Wolesley장군 지휘 하에 1874 1 31일 아모풀 전투Battle of Amoaful에 참가해, 뛰어난 지략을 펼치는 아샨티 왕국의 귀족 아만쿠아티아Amanquatia 휘하의 아샨티 군대와 빽빽한 밀림 속에서 격전을 벌인다. 여기서 5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제 42연대는 그 용명을 뽐내며 아샨티군을 격파하는데 앞장섰다. 백파이프로 연주되는 스코틀랜드의 군가 The Campbells Are Coming가 밀림에 울려퍼지고, 켈트 고지대인들의 전투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하는 블랙와치의 모습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잔뼈가 굵은 아샨티 족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투는 결국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고, 아샨티 왕국은 영국 지배지역에 대한 권리 인정 및 몇가지 굴욕적 조약들을 체결하여 전쟁이 종결된다.

 

여기서 잠깐 제 73연대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한다. 크림전쟁 직전인 1852년에는 지금의 남아공 지역에서 영국은 지역 원주민들과 식민전쟁을 치뤘는데, 여기에 제 73 하이랜더 연대도 투입되었는데, 그 보충병력이 수송선 버큰헤드(Birkenhead)호에 민간인들과 함께 승선해 항해하던 중 배가 좌초하여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서 제 73 고지 연대의 병사들은 여자와 아이들이 무사히 보트에 타서 탈출할 수 있도록 질서정연하게 침몰하는 배 위에서 정렬해 섰고, 민간인들은 모두 구출되나 의연히 자리를 지키던 제 73연대 병사들은 그 대부분이 익사하여, 자기희생으로써 만인의 귀감이 된다.

 

73연대는 본디 제 42연대의 보충 대대로써 창설되었으나 별개의 연대로 운용되어왔는데, 73연대는 1881년의 대대적인 차일더스 군제개혁(Childers Reform)의 일환으로 다시 제 42연대와 합쳐진다. 재결합된 부대는 왕실 고지대 연대(Royal Highland Regiment)로 명명된다. 이들은 정식 부대 명칭으로도 Black Watch를 사용했는데, 이 명칭은 훗날 1931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부대의 상징과도 같던, 모자에 꽂는 붉은 깃털이 오로지 이들 블랙와치만 착용할 수 있게 군령이 내려진 것도 이 무렵이다.

 

여기서 과거의 42연대는 개명된 연대의 제 1대대가 되었고, 73연대는 제 2대대가 되어 제 1대대는 주로 최전선에서, 2대대는 본국에서 대기하는 보충대 역할을 맡게 된다. 재편된지 불과 1년만인 1882년에 제 1 대대는 이집트 전쟁(Anglo-Egyptian War, 1882)에 참가한다. 이집트 내에서 군 장교 아흐메드 우라비Ahmed Urabi가 쿠데타를 통해 정부를 뒤엎고 수에즈 운하를 서구열강들로부터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국수주의 운동을 일으켰고,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이집트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던 영국은 이에 당연히 군대를 파견했다. 몇차례의 교전이 있은 후 1882 9 13일에 아흐메드 우라비는 전 이집트군을 몰고나와 수에즈 운하 근처의 텔 엘 케비르Tel-el-Kebir에서 영국군과 결전을 벌이려 했다. 이집트군은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진격하는 올슬리Woleseley 장군 휘하의 영국군을 맞았고, 블랙와치 제 1대대는 영국군 전선 좌익에서 이집트군 진지로 돌격했다. 이들을 상대한 것은 5개의 포대로 방어되고 있던 수단인 부대였는데, 블랙와치는 수단 부대의 진지를 향해 착검돌격, 맹렬히 싸웠다. 수단군은 그 무시무시한 하이랜더들을 상대로 이집트군 전체에서 가장 용감하게, 그리고 오래 싸웠으나 영국군 우익의 친위대(Guards) 여단이 이집트군을 패퇴시키면서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난다.

[Tel-El-Kebir에서 돌격하는 Black Watch.]

이 전투 후 우라비Urabi는 실론섬으로 유배당하고, 결과적으로 영국은 이집트를 통제하게 되며, 이는 1954년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분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어서 산발적인 전쟁이 이어지며 1884년에는 마디분리주의자들의 반란Madhist Rebellion이 일어나고, 영국의 나일 강 유역 진출로 인한 충돌도 여러차례 발생함으로써 왕실 고지대 연대(블랙와치)도 오랜기간 이집트를 떠나지 않고 전쟁을 치른다.

 

이집트를 완전 통제하게 되고 얼마 후 영국은 영국이 치른가장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게 된 보어 전쟁(The Boer Wars)에 돌입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영국 국익 확보의 선봉에 서 있던 블랙와치 연대도 남아프리카로 보내진다.

 

 

-계속




250년간 이어진 역사와 전통과 전력이 화려한 부대의 역사를 정리하다보니 이에 대해 쓰는것도 쉽지 않다. 쓰는게 쉽지 않으니 귀차니즘이 습격하는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그렇다 보니 저번 글을 쓴 후 3개월이 지나서야 이걸 쓴다. 다음번은 보어전쟁. 그 뒤를 잇는건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에 이라크전까지.
지난 글 보기
“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1
"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2





ps. 나도 모르던 새 역사밸리가 생겼다.

극히 반가운 일이다. 환빠와 환까가 국사 왜곡/비왜곡 문제 가지고 졸라게 싸우는 꼴은 보기 싫으나 어쨌든 역사밸리는 역사밸리니까. 난 지금껏 해오던 대로 서양사가지고 디비 팔란다. 내 과거 역사 카테고리 글들을"역사" 테마로 옮기는 작업도 해야겠는데, 귀찮아서 언제 할려나.

내가 역사밸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은 사실 한 명의 서양사학도(이곳 미국에선 학과 분류가 그저 뭉뚱그려진 "History"지만)로서 다른 사학도-또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토론도 나누고, 지식도 얻고, 스스로의 지식도 정리하는 한편 타인에게 그 지식을 전파하는 건설적 행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역사 밸리가 "국사학 밸리" 또는 "환단쟁패 밸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동시에 새 밸리가 생긴만큼 이글루스인들의 세계역사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팽창하고, 역사학도들간의 건설적 관계형성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아무튼, 역사밸리 오픈 경 축

핑백

덧글

  • 함부르거 2008/09/02 12:54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만 배경과 글자색 때문에 눈이 아플 지경입니다. 좀 읽기 편한 스킨으로 바꾸시는 게 어떨 지... ㅠ.ㅠ
  • 월광토끼 2008/09/02 15:22 #

    바꾸고 싶은데 안바꿔집니다; 인터넷 설정이 뭔가 잘못되었는지도. 누가 css나 html 잘 다루시는 분이 도와주셨으면 하더군요.
  • 소금인형 2008/09/02 13:28 #

    블랙워치가 하르툼에 있었다면 고든이 마디스트들에게 포위당해 죽는 일은 없었을 테지요. 그러나 당시 글래드스턴 내각은 수단 철수를 생각하고 있어서 블랙워치가 하르툼에 주둔했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 월광토끼 2008/09/02 15:23 #

    마디스트 반란 당시에는 엘 텝과 타마이에 있었다죠 -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155140
1219
4692838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22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