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4




[위는 왕실 고지인 연대 제 1대대의 커닝햄Cunningham 대위. 크림 전쟁 당시의 사진으로 추정.]

1899 10 11, 트란스발 공화국-오렌지 자유국 연합은 남아프리카 국경지대에서의 영국군 철수를 요구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전포고를 감행했다. 보어인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인들의 후손 들은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고자 하였고 트란스발 공화국의 대통령 폴 크루거는 영국을 상대하기 위해 이미 수만정의 독일제 모젤 소총과 크루프 야포등 최신 무기들을 준비, 군대를 현대화 해놓은 상태였다. 폴 크루거 대통령의 공화국 독립 유지 의지는 영국의 언론과 정부에 의해 비웃음을 샀으며, 쉽고 빠른 승리를 확신한 영국은 혼쾌히 전쟁을 받아들인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먼저 움직인 것은 보어인들로, 이들은 남아프리카에 혼재한 영국군 거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한다. 이 중에는 다이아몬드 채굴 광이 있던 킴벌리Kimberley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작은 마을은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트란스발 공화국군의 포위공격을 받았다. 이를 구원하기 위해 12월 첫째주에 메튄Lord Methuen 경이 이끄는 6천명이 파견되며, 이는 곧 워쇼프Andrew Gilbert Wauchope 장군이 이끄는 고지대 여단으로 보강한다.

킴벌리 마을을 공격하던 보어군의 주요 거점은 인근의 마거스폰테인Maggersfontein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영국군이 킴벌리를 구하기 위해선 이곳에 대한 공격이 필수적이였다. 메튄 장군은 12 10일 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워쇼프의 고지대 여단을 전진시킨다. 여기에 가장 앞서 돌격한 것이 왕실 고지 연대의 제 2 대대, Black Watch였다.



    [아래 사진은 고지인 연대가 기어올라가며 돌격해야 했던 마거스폰테인 언덕] 

트란스발 군은 어둠 속에서 진격해오는 고지대 보병들을 900야드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했으나, 사격을 가하지 않고 가만히 대기했다. 고지대 여단이 계속 전진해 어느덧 트란스발 군의 진지에서 400야드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워쇼프 장군은 휘하 병사들에게 진형을 바꾸어 전진하라 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순간 트란스발 군이 갑작스레 일제 사격을 가했다. 그 위력적인 일제 사격에 선두에서 지휘하던 영국군 워쇼프 장군이 전사하고, 막 진형을 바꾸던 중의 병사들은 뒤엉킨채 그대로 총알을 받아 쓰러졌다. 블랙워치 제 2대대의 병사들은 지휘체계도 없이 그대로 돌격했다. 그 뒤를 잇던 다른 부대는 혼란 속에서 진격을 멈췄고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했으나 블랙워치는 완전히 진형이 무너진 상태로 돌격, 보어군의 참호를 넘어 백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철조망 투성이의 참호에 대한 공격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날이 밝자 보어인들의 저격솜씨가 빛을 발해 정확한 사격아래 영국군은 그대로 노출되었다. 고지대 여단 전체가 곧 후퇴했다. 후퇴하는 고지대 여단에게 보어군의 야포에서 날아온 포탄들이 작렬했으며 곧 마거스폰테인 언덕은 영국군 병사들의 시체와 부상자들로 가득찼다.



     여기서 영국군은 총 1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보어군은 단 200명의 사상자를 냈을 뿐이었다. 이 중 블랙워치 제 2대대는 1000여명의 병사들 중 93명이 전사하고 210명이 부상을 당하는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한다.

 

마거스폰테인에서의 희생은 컸으나 검은 일주(영국군의 대패와 보어인들의 대승이 연달아 이어졌던 12월 둘째 주) 이후 남아프리카 영국군 전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키치너 경의 지휘 하에 영국군은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650명으로 줄어든 블랙워치 제 2대대도 1900 2월 파데버그 포위전Battle of Paardeburg에서 쿠두스버그Koodoosberg 언덕에 자리잡은 보어군을 공격해 격퇴하여, 큰 승리를 거두는데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한다. 이 때는 마거스폰테인에서와 같은 전술로 일자진 착검 돌격- 전투를 벌였으나 주간 전투였는데다가 지휘관의 판단이 명확했기에 큰 피해 없이 승리를 얻어냈다.

 

앞서의 파데버그 전투로 인해 보어군은 대부분이 격멸당하고, 트란스발 공화국의 피에트 크로녜 장군의 항복과 더불어 오렌지 자유 공화국의 수도 블룀폰테인이 점령당함으로써 공식적 보어 전쟁은 종료된다. 그러나 여기저기 흩어진 소규모의 보어군들은 게릴라전을 통해 지속적으로 저항해 나갔다. 영국군은 이런 각지에 흩어진 병력들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대를 넓게 분산해 운용해야했고 이에는 여러 어려움도 따랐다. 보어 게릴라들을 도와준 마을과 그 주민들에 대한 영국군의 가혹, 파괴 행위들이 잇따랐고 넓은 지역에서 소탕 작전을 벌이는데 소모된 자원도 엄청났다. 1901, 그리고 1902년까지도 보어인들의 저항은 이어져 영국군은 소규모 분견대를 여기저기서 잃는 피해를 냈고 엘란드 강Elands River, 피하 푸르트Blood River Poort 등의 전투 이에 블랙와치도 본국에서 대기중이던 제 1대대까지도 투입되 2대대와 더불어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두 부대는 남아프리카의 동과 서 양쪽에서 소탕작전을 벌이며 진격했고, 1901 12월에 해리스미스Harrismith에서 서로 마주쳐 합류하는 순간까지 전투행동을 계속했다.

보어인들은 몇 번의 전투에서 사로잡힌 고지인 연대 병사들을 고문없이 전원 풀어준 적이 몇 차례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어 민간인이나 게릴라들에 대한 왕실 고지인 연대의 가혹행위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블랙워치는 20세기의 시작을 남아프리카의 초원과 황무지에서 보낸다. 그리고는 불과 몇년도 지나지 않아, 이들은 20세기 유럽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든 전쟁에 파견된다. 그 전쟁에서 이들 스코틀랜드인들은 '지옥에서 온 숙녀들Ladies From Hell' 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될 터였다.


            [연도 미상, 20세기 초 블랙워치의 어느 중대인 것으로 짐작.]





ps. 스킨 바꿨음. 추후 조금씩 바꿔나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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