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5


[스코틀랜드 애버펠디에 위치한 블랙와치 석상]






    위 문서들은 1905년-1908년까지 블랙와치 연대의 제 1대대가 사용한 행정문서들이다. 각각 당직 사관들이 자신의 직무 이행을 체크하고 사인하는 그런 용도. 태평한 평시의 군대에 그래도 나름 긴장감과 군율을 유지시키려는 의지가 문서들에 나타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드는데, 사실 보어 전쟁 후 본국에 귀국한 블랙와치는 대부분 유럽 강국들의 군대와 마찬가지로 태평하고 무료한 나날들을 보낸다. 각 국가들의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애국주의의 고양은 아직까지는 ‘보다 열등한 나라들’에 향해있었고, 그 강대국들의 주민들의 눈에는 제국주의에 의한 무한한 발전과 번영만이 앞으로도 계속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14년 7월 28일,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블랙와치 연대는 앞서 설명했듯 두 개의 대대로 이루어진 연대였다. (과거의 42연대가 1대대로, 73연대가 2대대로) 그러나 이들은 1차세계대전 발발 직전과 직후 무려 7개로 늘어난다. 1대대와 2대대는 정규부대였고 제 3대대는 예비부대였으며, 나머지 신설 대대들은 비정규 국방군Territorial Force였다. 이 중 제 1대대는 당장 서부전선, 즉 프랑스로 파견되어 당장 전투에 참가한다.

   전쟁 발발 한 달 후였던 1914년 8월 23일의 몬스 전투에 참가한 7만명의 영국군 중에는 블랙와치 제 1대대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 육군 제 1군의 총 공세에 숫적 열세이던 영국군은 굳건한 방어전을 펼쳐 1600명의 사상자를 입고는 5000명의 적을 무력화시켰으며, 이에 블랙와치 제 1대대도 한몫 했다.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수여받을 만큼 ‘특출난’ 전공을 세운 것은 제 5 왕실 소총병 연대였지만.

   제 1대대는 계속해서 연속으로 전투들에 참전한다. 독일군의 공세를 멈추게 한, 1914년 9월의 마른 전투Battle of Marnes에서 프랑스군의 공격을 보조했고, 그 직후 며칠간 이어진 아이스네 전투Battle of Aisne에서는 독일군의 방어진지를 공격하다 큰 피해를 입는다. 이 마른 전투와 아이스네 전투 이후 1차세계대전은 그 유명한 ‘고착 참호전’을 시작하게 되고, 전선은 고착되기 시작한다. 이 해 11월에 인도에 주둔하고있던 제 2대대가 프랑스에 도착한다. 이 때 프랑스에 수송되어 온건 그저 블랙와치의 제 2대대뿐만이 아닌, 인도 주둔군과 캐나다 주둔군등 대규모의 지원군이였다. 그래서 12월에 이 병력을 가지고 영국군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동부의 아르투아Artois 지방을 탈환하고자 한다. 이 공세를 위해 지방시Givenchy라는 작은 마을 주위에 구축된 독일 진지에 독자적 공격을 가하는데, 이 때 프랑스군은 나름대로 아라스 전투Battle of Arras에 발이 묶여 있었기에 영국군은 다른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블랙와치의 제 1대대와 2대대 둘 다 이 공세, 지방시 전투Battle of Givenchy에 참가하는데, 당시 영국군의 사상자는 독일군 측의 두배였던 만큼 블랙와치도 많은 사상자를 낸다. 나흘간의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으며 영국군도 참호를 파고 방어적 전술을 펴기 시작한다.
   한 편 앞서 신규 창설되었던 블랙와치의 나머지 5개 비정규 예비 대대들 중 아직 실전에 투입된 건 제 5대대 뿐이였고, 나머지는 제대로 전투준비가 완료되지 않아 한참을 더 본국에서 대기하게 된다.

[1914년 10월의, 아르투아 전선의 참호 속에 앉은 블랙와치 연대원들]


   본래 국토 수비군, Territorial Force는 해외 작전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제 1차 세계대전에는 이 국토수비군들이 대거 차출되어 해외로 보내졌고, 이는 블랙와치로써 신설된 비정규 대대들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14년에는 실전 참가가 전무하던 이들은 1915년 초여름에 이르면 거의 전 부대가 최전선에서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1915년에는 블랙와치의 전 대대가 제 51 고지대 사단51st Higlander Division에 편입되어 작전을 수행한다. 3월의 격렬한 누브-샤펠 전투Battle of Neuve-Chapelle 전투에는 (앞서 언급한 아르투아 지방에 대한 영국군의 재공세) 블랙와치의 제 1, 제 2, 제 4, 제 5 대대가 투입되었으며 5월의 같은 지역에서의 전투 (그 중에서도 오베르 능선에 대한 공격Battle of Aubers Ridge)에서는 무려 훈련 부대인 제 3대대를 제외한 모든 블랙와치 대대, 즉 6개 대대가 투입되 격전을 벌인다.

[누브 샤펠 전투Battle of Neuve-Chapelle와 그 외 잦은 전투들의 중심지였던 아르투아Artois 지방]

   이 오베르 능선 전투(또는 제 2차 아르투아 공세)에서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건이 있다. 오베르 능선에서 제 1대대의 2개 중대가 놀라운 용기와 고지대 군인 특유의 불가사의한 전투력을 선보이며 빗발치는 기관총탄의 비 속에서 독일군 진지를 점거하는데, 자신들이 점령한 진지를 독일군의 반격으로부터 사수하려다 이들 2개 중대 병력은 단 한명도 남김 없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는, 처절한 피해를 입는다.

[해당 장면을 묘사한 Jason Askew의 그림]


   제 1대대의 병사들 중 생존자들 여럿은 훗날 빅토리아 훈장을 수여받는다. 제 2대대와 제 5대대는 큰 피해 없이 전과를 올린다.
1915년 9월에 영국군은 키치너 장군의 지휘 아래 다시 한번 독자적인 공세를 펼치는데, 이것은 루 전투Battle of Loos로 이어진다. 이 전투에서 영국은 최초로 독가스를 사용했으며, 비행대가 포격 좌표를 지정해주며 큰 성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보병들의 희생과 활약 또한 컸다. 그러나 독가스까지 사용된 사흘간의 치열한 전투는 다시한번 무승부로 끝났고, 여기 투입된 블랙와치의 제 5대대와 9대대의 희생은 컸다. 특히 제 9대대의 경우 무려 7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참혹하기 이를데 없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는 재정비의 기간이 찾아온다. 블랙와치는 1915년의 남은 시간들을 조용히 보낸다.

[휴식을 취하는 블랙와치 제 2대대 D중대의 병사들]



다음 포스팅에서 블랙와치의 1차대전 참전기 나머지를 기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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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1
"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2
"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3
"Black Watch” (42nd Regiment of Foot / 3 SCOTS)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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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울트라김군 2008/10/19 17:06 #

    처음으로 블랙 와치라는 이름을 봤던게 아마 '임페리얼 글로리'라는 게임에서였던걸로 기억합니다.
  • 가일 2008/10/19 21:01 #

    재밌는 덕담들 덕에 본 컨셉을 잊고 있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을 기대기대
  • 터미베어 2008/10/19 21:15 # 삭제

    ..어떻게하면 2개 대대였던부대가 저렇게 뻥튀기하듯 늘어날수 있는거죠?..
    설마 선임병들빼서 분대장이나 장교주고서 신병들 관리시킨건가?
  • 월광토끼 2008/10/20 11:26 #

    본문에 적혀있듯, 신규 창설된 비정규 대대들입니다. 그야말로 "쌩으로"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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