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 3부



[1688년 11월 3일, 영국에 상륙하는 윌리엄 3세]



명예혁명은 총알 한 방, 피 한 방울 소모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제임스 2세는 자기 아들이자 후계자와 함께 프랑스로 도피했고, 제임스 2세의 딸인 매리와 그녀의 남편이자 네덜란드 오렌지 공 윌리엄이 1689년 4월, 공동으로 영국의 왕위에 오른다.

바로 이 대관식에서 많은 귀족들이 윌리엄과 매리를 지지한 대가로 보상을 받았는데, 이 귀족들 중에는 존 처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말보로Marlborough 지방의 백작 지위가 수여된다. 바로 이 점이, 말보로가 두고두고 비난받고 후세에서까지 비판받게 될 요소였다. 자신을 중용하고 고위직까지로의 길을 열어준 은인이자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제임스 2세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배신하고 윌리엄 편에 붙었다는 것이다. 그 후예 윈스턴 스펜서 처칠을 포함해서 말보로의 옹호자들은 말보로가 이득을 따지고 윌리엄 편에 붙은게 아니라, 말보로 자신이 변명한 것 처럼 "종교적, 정치적 신념과 이상"을 위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임스 2세에 대한 그의 처사는 어떻게 보아도 '배은망덕'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아무튼 존 처칠의 행위에 대한 가치 평가를 떠나서, 29세의 장군 존 처칠은 백작이 되었으며, 그 남동생들도 형을 따라 군의 고위직에 오른다. 로열 네이비에서 이미 20여년을 복무해 온 죠지 처칠은 형의 주선 덕에(물론 그 스스로가 훌륭한 해군 장교이기도 했지만) 2등급 전열함 HMS '원저캐슬'의 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둘째 동생 찰스 처칠은 왕실 근위 기병 연대의 소령에 임명된다. 바로 그 전해(1688년) 3월에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그 아버지 윈스턴 처칠이 그 아들들의 성공을 봤으면 크게 기뻐했을 터였다.


한편 유럽 본토에서는 정치 상황이 점점 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세력 확장 야망은 각국에 위협을 주었고, 이는 곧 '9년 전쟁Nine Years War'(1688-1697)으로 이어졌으며 영국 또한 결국 1689년에 프랑스에 선전 포고를 한다. 이에 육군 중장 존 처칠도 대륙으로 파견되어 대對 프랑스 연합군의 영국측 야전군 사령관으로 전쟁에 참가한다. 존 처칠은 9년의 전쟁 기간 중 3년만 참전했지만 그 용맹성은 전장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Nine Years' War (1688–97)]


말보로 대공 존 처칠의 인격적인 부분이나 이기적 태도 등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비난자들도 한가지 부정할 수 없었던 미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용기였다. 존 처칠의 전장에서의 용기와 과감성은 고하를 막론한 군인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귀감이었다. 네덜란드 군 사령관이던 발데크 대공은 당시(1689) 자신의 부사령관으로 복무하던 처칠을 두고"그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대부분의 장군들과는 달리 굉장한 군사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중략) 그는 분명히 내가 아는 모든 이들 중 가장 용감한 사람이다." 라 평하기 까지 했다.

3년 후 영국 야전군 총사령관 직에서 물러나 본국으로 귀국한 존 처칠은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말보로 백작 존 처칠과 백작부인 사라 처칠은 궁정에서 매우 큰 영향력과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존 처칠은 제임스 2세를 배신한 전적이 있는 '배신자'였다. 여기에 자식이 없는 윌리엄왕과 매리 여왕 다음의 승계자였던 앤 공주는 처칠가와 극히 절친한 사이였다.

처칠은 왕가로부터 경계받기 시작한다. 한번은 매리 여왕이 자기 동생 앤 공주에게 "우리(윌리엄과 매리) 부부랑 말보로 부부 중 택일하라"고 까지 했다. 물론 앤 공주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윌리엄 왕과 매리 여왕]


네덜란드 오렌지 공이였던 윌리엄 3세는 당연하게도, 자기 모국의 인물들을 중용했다. 특히 정규군 내 장교 임명과 승진등 인사이동이 네덜란드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영국군 내 지휘관들은 크게 불만을 품었으며 이는 말보로 백작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터 기사단(Order of Garter) 입단 불허라던지 군수장관(Master-General of the Ordnance)직 임용에 탈락한 후 말보로 백작은 자신의 불평을 공공연히 발설하고 다녔다. 여기에 그는 자신의 의회에서의 영향력과 군 내부에서의 전권을 이용해 윌리엄 왕의 인사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윌리엄 3세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파악했고, 곧 말보로 백작에 대해 공개적으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브란덴부르크 대사로 런던을 방문했던 프레데리히 호헨졸렌(훗날 프러시아 왕)은 본국으로의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윌리엄 왕이) 말보로가 이랬느니 말보로가 저랬느니 하며 어찌나 험하게 악담을 하던지 만약 (윌리엄 왕이) 왕만 아니었다면 당장 말보로에게 결투를 청했을 태세였다." 한편 말보로도 현재의 왕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이 배신했던 옛 주군 제임스 2세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반역에 해당할 만한 죄였다.

윌리엄과 매리 왕 부부와 말보로 백작과 백작부인간의 관계는 더욱 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1692년 1월 11일, 윌리엄의 군 내 인사결정에 반하는 말보로 백작의 조처들과 제임스 2세와의 연락에 대해 알게 된 매리 여왕이 자기 여동생에게 달려가 즉각 말보로 백작부인 사라 처칠을 궁중에서 내쫓을 것을 명했으나 앤 공주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1692년 1월 20일, 국무장관 노팅햄 백작이 말보로 백작 처칠 중장에게 모든 공직과 군무에서 물러나 궁정과 군 모두에서 퇴직할 것을 명한다. 이러한 극단의 조처에는 어떠한 이유도 붙여지지 않았고 존 처칠은 쫓겨난다. 그의 친구들은 이에 크게 반발했다. 상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슈류스버리 공작은 상원 연설에서 말보로를 옹호하였고, 재무부 장관이었던 고돌핀 백작은 말보로 백작이 복직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공직에서 즉각 사퇴할 것이라 선언했으며, 왕실 해군의 총사령관이던 오포드 백작 러셀 제독은 공개적으로 왕을 격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말보로 백작의 친구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슈류스버리 공작, 고돌핀 백작, 러셀 제독]


그러나 말보로 백작은 복직되지 않았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1692년 5월 4일에는 폐위된 제임스 2세와 함께 정부 전복 음모를 꾸몄다는 죄목과 함께 연행되어 런던 탑에 수감된다. 그저 출세길이 막힌 정도가 아니라 반역죄까지 뒤집어 쓴 것이다. 5월 22일에는 그의 둘째 아들 찰스가 병으로 죽어 말보로 백작은 절망한다.

다행히도 수감된지 5주가 지난 1692년 6월에 반역죄가 무죄로 판명되어 말보로 백작은 런던탑에서 불려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암울한 시기는 수년 더 계속된다. 불운은 말보로 백작과 그 부인에게만 한한게 아니어서 말보로 백작의 동생 죠지 처칠 해군 준장도 해군에서, 찰스 처칠은 육군에서 쫒겨나게 된다.

1696년 여름에는 말보로 백작과 그의 퇴출 시 그를 적극 옹호했던 귀족들(슈류스버리 공작, 고돌핀 장관, 러셀 제독)이 스코틀랜드의 자코바이트 분리주의자들과 함께 제임스 2세의 복위 음모를 꾸몄다는 음모론이 재 제기 되었으며 재판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왕은 이러한 사건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며 음모론을 제기했던 자(펜윅 경)는 허위사실 유포와 내란 선동죄로 처형당한다.

아내인 매리 여왕이 1694년에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홀아비가 된 윌리엄 3세는 처제인 앤 공주와 화해(말보로 부부의 처리를 놓고 벌어졌던 사이를)까지 한 처지에서 더이상 말보로 백작 부부에 적대할 마음이 없어진 것이다.

[30대 중반의 말보로 백작. 전속화가였던 존 라일리의 초상화]


1698년에 윌리엄 3세와 말보로는 화해한다. 말보로는 군에 현역으로 복귀했으며 내각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말보로는 그 전과 같은 영향력을 휘두르지 못했으며 99년에 남긴 기록에서 "국왕은 나에게 계속해서 차갑게 대한다." 고 불평했다.


그러나. 말보로 백작 존 처칠은 불과 몇년 후 곧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이자 대 용병가로써 명성을 휘날리게 될 터였다.




4부에서 계속

1,2 부를 보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kalnaf.egloos.com/tag/말보로공작

덧글

  • 계원필경 2008/12/18 23:28 #

    결국은 유명해지는 것과 적대세력의 팽창은 거듭 제곱의 관계군요...
  • 레이트 2008/12/19 12:51 #

    조상만큼 후손도 훌룡한 거군요.
  • StarLArk 2008/12/19 22:50 #

    잘생겼군요. 말보로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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