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 4부

일단 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왜, 무엇을 위해 시작되었는가." 부터 읽으시고... 계속.


[말보로 일가의 초상화. 왼쪽부터 존 처칠, 그 딸들 엘리자베스, 매리, 그리고 부인 사라 처칠, 딸 앙리에타, 앤, 가장 우측이 아들 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 윌리엄 3세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중이었다. 대륙의 상황은 점점 더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계자인 앤 여왕은 말보로 백작을 지지했다.

말보로 백작 존 처칠은 영국 외교 대표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된다. 말보로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로이센, 포르투갈 대표들과 함께 협정에 사인하고, 1701년 9월 7일, 대對 불 대大 연합(Grand Alliance)이 결성된다.

1702년 3월 8일, 윌리엄 3세는 전쟁이 시작되는 것은 보지 못하고 낙마한 상처의 악화로 인해 사망한다. 그의 처제 앤 공주가 영국의 여왕이 되었으며 앤 여왕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보답했다. 말보로 백작부인 사라 처칠은 여 궁내관(Groom of the Stole)이 되었으며, 말보로 백작은 자기 처의 출세와 더불어 가터 기사단(Order of the Garter)의 기사 직위가 서훈됨과 동시에 육군 대장(Captain-General)이자 영국 야전군의 총 사령관에 임명된다.

[50대에 접어든 존 처칠. 가터 기사단의 망또를 입고 있다.]


1702년 5월 4일, 영국은 프랑스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말보로 백작은 대륙에 파견된 영국군과 동맹군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군으로 구성된 대군을 지휘하게 된다. 1702년 7월부터 10월까지 그는 스페인령 네덜란드 내 프랑스군 요충지들을 연달아 격파하여 벙로, 로에르몽, 스티븐스윗, 리쥐 등 스페인 측의 주요 도시들을 점거한다.
 
이 공적에 대한 상으로 같은 해 12월, 앤 여왕은 존 처칠을 말보로의 공작(Duke)로 선언한다. 여기에 1703년 2월 7일 그의 셋째 딸이 블릿지워터 백작과 결혼하면서 경사에 경사가 겹친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703년 2월, 존 처칠의 유일한 아들이자 장남인 존이 캠브릿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급작스레 천연두에 걸린 것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말보로 공작 부부는 모든 것을 내팽겨쳐두고 캠브릿지로 달려가 아들의 병간호를 했지만 소용없이 2월 20일에 존(아들)은 17세의 나이로 부모가 보는 앞에서 세상을 뜬다. 직후 말보로 공작은 친구 에일스뷰리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네.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깊은 비탄에 잠겨있네..."

말보로 공작은 3월이 되자 비통함을 숨기고 영국을 떠나 다시 네덜란드 헤이그로 떠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네덜란드의 정치가들은 프랑스군이 네덜란드 본토에 가할 위협이 너무나도 무서운 나머지 군을 조금이라도 네덜란드에서 먼 곳에 배치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으며 이들의 동의 없이는 말보로도 함부로 군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네덜란드 정치가들이 작전 수행에 있어 큰 방해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파견된 지휘관들 간의 의견 조율도 해야 했으며 앤 여왕 즉위 당시 영국 내 정치 상황 또한 말보로 백작의 지휘권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영국 내에는 급진적이고 중산층 젠트리 출신의 토리당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나 윌리엄 3세를 왕위에 올려놓았고 반反 프랑스 주의인 휘그당이 전쟁을 지지하는 중이었다. 토리당은 해군에 전력투자하여 영국의 무역 이득을 전쟁기간 동안 최대로 추구하는 것을 원했으나 휘그당은 이에 반대하며 되려 토리당이 상정한 말보로의 전쟁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토리당과 휘그당 간의 공방은 1703년 뿐 아니라 전쟁기간 내내 심히 지속되었다. 말보로 공작은 그 친구인 재무장관 고돌핀 백작과 함께 이 두 정당의 정쟁 사이에서 위험하게 줄타기를 하며 대륙에서의 전쟁을 이끌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 때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정치적, 그리고 외교적 수완이 빛을 발했다. 그의 감정(그는 출신 성분이나 성장 과정 등 여러모로 의당 토리당원이어야 했으나)을 초월한 중립적 정치감각과 신경질적인 네덜란드 정치가들을 잘 구슬릴 수 있는 달변으로 그는 군을 자기가 원한 바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1703년에는 이게 잘 구현되지 못하였다. 말보로 본인의 비탄과 더불어 각국 정치가들의 입씨름으로 인해 1703년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여기서 잠깐.



17세기 말과 18세기 초는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는 시기였다. 17세기 말에는 파이크-화승총병으로 구성된 군대가 회전을 벌이는 시기도 벗어나, 루이 14세의 장군 세바스티앙 보뱅의 천재적인 능력과 공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내 축성된 무적요새들이 국경선에 배치되었고, 이러한 무적 요새들을 둘러싼 지루한 포위공방전이 전쟁이란 단어를 정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초, 말버러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분군행군 총군전투. 단기간 장거리 행군과 전략 반경의 급격한 확장. 더 이상 요새를 통한 긴 공방의 필요가 없어졌다. 병종은 간략화 되었다. 요새포나 공성포 따위는 필요없어졌고 대신 전장에서 유용하고 가벼운 야포(Field Cannon)이 개발되었으며 총에 꽂는 총검Bayonnet의 도입으로 더 이상 파이크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화승도 없어져 총은 수발식 소총이 되었으며 보병은 그 총과 총검 이외의 무장을 하지 않았다. 가벼워진 보병은 장거리를 행군하고 전장에서는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기병대는 구스타부스의 스웨덴 기병이나 영국 내전기 크롬웰의 철기병들의 전투 방식을 발전시켜 보병대 처럼 기동하는 질서정연한 부대가 되었다.

군대 규모는 국가 단위로 어마어마하게 커졌으며 전략반경 또한 급속확장하여 군수산업 또한 이러한 대규모 국가군을 유지하기 위해 발달했다. 은행업과 국채, 신용, 어음 등이 국가 단위의 대전쟁을 뒷바침 하기 위해 발전하고 확대되었으며 그에 비해 느릿느릿한 군사 행정, 장거리 통신, 그리고 의회 정치등은 확대된 전쟁에 따라가야 했다.

한 전장에 투입되는 군 규모 또한 크다 보니 5에서 10Km에 걸쳐 포진한 전선 내 전 부대의 위치와 이동예상 위치를 염두에 두며 동시에 적의 움직임을 연구해 전개되는 전술상황에 따라 수시로 부대배치를 변경하며 이 모든 것을 눈 안에 두고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오가며 파악하고 명령을 내려야 하는 지휘관은 복잡한 고급 기술의 장인이어야 했다.

말버러 공작 존 처칠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파악하고 사용한 자였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전쟁을 치른 것은 스페인만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고 자 한 헝가리아 반군과 바바리아군이 프랑스와 연합한 것이다. 1704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아-바바리아 반군과 전쟁을 치뤄야 했고, 양쪽 전선에서 전쟁을 치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대불대연합에서 빠지게 될 공산이 컸고 대연합의 입장에서는 이런 오스트리아를 급히 구원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여기에 프랑스군의 빌라르 원수가 바바리아군과 프랑스군을 합쳐 거대한 대군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로 파죽지세로 진격할 상황이 닥쳐왔다.

스페인령 네덜란드와 인근 프랑스 국경지대는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은 보뱅식 무적요새들이 즐비했고 이 곳에 프랑스군의 빌루아 원수가 또한 대군을 이끌고 착임한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가 동시에 위험에 처했고 이탈리아 전선의 스페인군도 건재했다. 

말보로는 그의 대군을 도나우-다뉴브 강으로 이동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장대한 작전을 구상한다.

1704년 6월의 일이었다.




이 글은 곧이서 "블렌하임 회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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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쿠라사다 2008/12/19 14:43 #

    전쟁이라는 것도 쉽게 하는 게 아니네요. 과연 말보로 공작이 어떤 작전을

    펼쳤는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 슈타인호프 2008/12/19 14:52 #

    다음편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 실버 2008/12/19 15:32 #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요. 다음편 기대하고 있습니다.+_+
  • 에로거북이 2008/12/19 21:55 #

    다음 편 이미 읽고 역주행중이지만 너무 재미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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