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 5부- 블렌하임 회전(Battle of Blenheim.)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4부"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독일 호어슈타트의 블렌하임 박물관에 전시된 블렌하임 전투 디오라마]



170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한가운데. 루이 14세와 그의 원수들은 장대한 작전을 구상했다. 그는 바바리아의 참전과 함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정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보고, 오스트리아를 이 전쟁에서 완전히 탈락시키려 한다.

프랑스군의 빌루아 원수가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대군을 이끌고 착임해 네덜란드 지방을 견제했으며 딸라르 원수는 프랑스 본토로부터 군세를 몰아 라인강을 건너 침공해들어갔다. 이탈리아에 파견되었던 마르쟁 원수는 바바리아-프랑스 연합군을 이끌고 다뉴브 강 일대를 압박해 들어갔으며 이탈리아에 있던 에스파냐-프랑스 연합군은 오스트리아령 티롤시를 공격했다.

네덜란드-영국 연합군의 총사령관 말보로 공작은 다급해졌다. 만일 오스트리아가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프랑스는 북쪽의 네덜란드 전선에 전력을 쏟게 될 터였다. 이에 대한 그의 해답은 다뉴브 일대에서 프랑스군과 결정적인 전투를 벌여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의 위협을 전략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뉴브로 진군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정치가들은 말보로의 군이 네덜란드를 떠나면 빌루아의 벨기에 주둔군이 침공해올 것을 염려하였기에 말보로의 작전을 방해했고, 다뉴브에 도착할 경우에도 딸라르의 프랑스군과 마르쟁의 프랑스아-바바리아군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 공산이 컸다. 게다가 다뉴브까지 행군한다는 것은 요새화된 프랑스군의 전선과 그 영향권을 가로질러 돌파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래서.


말보로는 적과 우군을 동시에 속였다.



그는 네덜란드 정치가들에게 이런 작전안을 내밀었다.

"코블렌쯔에서 라인강으로 유입되는 지점의 모젤 강으로 이동, 네덜란드를 노리는 빌루아 휘하의 프랑스군을 꾀어낸다."

모젤 강은 네덜란드에서 가까웠다. 그래서 네덜란드인들은 마지못해 병력을 내주었다. 한편 말보로 공작은 작전의 진짜 목적은 최고위직 인사와 오스트리아에만 알려주었으며, 이에 오스트리아의 지휘관 오이겐 대공이 말보로와 합류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비엔나에서 뛰쳐나온다.

[1704년 여름, 다뉴브로 향하는 말보로 공작의 진군로]


1704년 5월 16일. 지금의 독일 쾰른 시 인근에서 전군의 행군이 시작된다. 무거운 대포와 군수물자는 라인 강이라는 훌륭한 운송수단을 통해 가벼이 수송되었고, 중장비 없는 보병들은 빠르게 행군했다. 말보로는 코블렌츠에 5월 26일에 당도했다. 네덜란드 정치가들이 알고 있는대로라면 전군은 여기서 꺾어저 모젤 강을 타고 서진해야했다. 이는 적군도 예상한 바였다.

그러한 인상을 더욱 심어주기 위해 코블렌츠에는 막대한 비축물자가 수집되었다. 그러나 말보로는 빠른 행군에 분산된 군대를 다시 규합할 때까지 하루 기다렸다가 곧바로 남진한다. 이때까지도 군대의 행선지는 모젤강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다뷰브강이 아니라 알자스-로렌 지역으로 보였고, 이러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말보로는 5월 29일에 만하임 인근에서 다시 서진할 것 처럼 라인강에 선교들을 세워놓았다.

이에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빌루아 원수는 네덜란드에서 군을 이끌고 나와 절반은 모젤 강에 배치해 논 채 나머지는 알자스를 방어할 태세를 갖추던 딸라르의 군세와 합세하려 했다. 그 덕에 벨기에 지방에서 네덜란드를 압박하던 빌루아의 군세가 사라지자 네덜란드는 말보로에게 지원군을 급파했다.

말보로가 자신의 진짜 목적을 드러내 프랑스군을 혼비백산하게 한 것은 6월 3일의 일이었다. 그 날 말보로 군의 전 기병대는 만하임과 라덴부르크 사이를 지나 남서쪽으로 우회할 것 같이 진군하다가 중간에 방향을 틀어 다뉴브로 향했으며, 나머지 모든 보병 병력은 하이델베르크를 지나 슈발츠발트(검은 숲) 산맥을 넘어 남동쪽으로 급행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다뉴브 강으로 전진했다.



말보로의 영국-네덜란드 연합 병사들이 바바리아(바이에른)지방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 이들은 새 장화를 마치 선물처럼 지급받았다. 어마어마한 장거리에 걸친 진군이 그토록 질서정연히, 유연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엄격한 기강이 잘 잡혀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식과 군복 등의 보급품과 그로부터 나오는 안락함 등에 대한 말보로 공작의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약탈 행위도, 대열 이탈 행위도 전혀 없이 군대는 행진했으며 필요한 물자나 자금은 각 지방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되었고 사람들은 군을 환영했다.

이렇게 말보로 군은 프랑스군의 방해를 단 한번도 받지 않고 한번의 전투도 없이 진격했다. 한 달의 시간동안 이들은 400KM가 넘는 거리를 주파했다. 대군의 장거리 단기간 분군행군은 현대전에서도 어려운 일인데, 말보로는 이 것을 전부 해냈다.

[사부아의 오이겐 대공. 이 사람도 당대 명성을 날린 명 지휘관 중 하나였다.]


6월 10일, 비엔나에서 출정한 오이겐 대공과 그 군세가 라인강과 다뉴브 강 중간 지점의 문델스하임에서 합류했다. 여기서 독일 동맹군의 루트비히 공작이 또 합류했고 오이겐 대공, 루트비히 공작과 말보로 공작 세 지휘관이 향후 작전을 논의한다. 오이겐은 3만명의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라인강을 건너올 딸라르의 프랑스군을 막기 위해 슈트라스부르로 향했으며 말보로와 루트비히가 이끄는 8만명의 동맹군은 다뉴브로 진군한다.

비가 억수로 쏟아붓는 가운데 8만명의 동맹군이 6월 28일경 다뉴브 강에 진입한다. 곧이어 7월 1일, 중앙 독일 지역과 바바리아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전군이 다뉴브강 유역의 도시 도나우뵈르트를 공략하기 위해 진군한다. 도나우뵈르트를 공격하기 위해 그 관문에 있는 슐렌베르크 요새에서 7월 2일에 유혈낭자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큰 희생을 치르긴 했으나 동맹군은 도나우뵈르트와 다뉴브 일대를 확보한다.

[다뉴브 일대를 뚫기 위한 전투. 슐렌베르크 요새 전투]


그리고는 7월 한 달간 말보로의 군대는 바바리아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약탈과 파괴전을 펼친다. 바바리아가 프랑스와의 연합을 철회하고 전쟁에서 나가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막스 엠마누엘 바바리아 왕자는 끝까지 버티며 프랑스를 지원했다. 이 때 상황전환을 위해 말보로는 루트비히 공작에게 1만 5천의 병력을 주고 바바리아의 요충지 잉골슈타트를 공격하게 한채 회흐슈타트로 향한다.

8월 5일에 마르쟁 원수의 프랑스-바바리아 군세와 딸라르 원수의 프랑스군이 울름에서 합류한다. 이들은 8월 10일에 다뉴브에 도달한다. 총사령관은 딸라르 원수가 맡는다.

[프랑스군 총사령관이었던 딸라르 원수. 장군이라기 보단 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블렌하임.


다음날인 11일에 오이겐 대공이 보낸 서신이 말보로에게 전달된다. 라인 강에 파견되었던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다시 말보로와 합류하겠다는 것이었다. 말보로는 서둘러 이에 응답했고 8월 12일에 둘은 다뉴브 강과 네벨강 사이에 도나우뵈르트를 넘어 합세한다. 이 군세는 5만여명에 달했다.



같은 날 프랑스-바바리아 연합군은 블렌하임이라는 작은 마을에 진을 친다. 블렌하임 동쪽에는 회흐슈타트가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다뉴브 강이, 북쪽으로부터는 길게 다뉴브로 흐르는 네벨 강이 흘렀다. 6만여명에 이르는 프랑스군은 블렌하임 인근 6킬로미터에 걸쳐 고지대에 전선을 길게 펼쳤고 네벨 강으로부터는 1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딸라르와 마르쟁 두 원수에게는 전투를 당장 벌일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첩보에 의하면 말보로와 오이겐의 군세는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으며 또한 강을 따라 고지에 배치된 (숫적으로도 우세한) 프랑스-바바리아군을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느슨하게 부대를 배치했고 네벨강 건너편 (즉 북쪽)에 도달한 적이 네벨 강을 건너려 시도했을 때의 경우를 상정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블렌하임 마을의 전술적 가치 때문에 이곳에 30여개의 보병 대대를 배치해 방어를 강화해 놓은 상태였다. 블렌하임 북서쪽으로는 오버글라우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더 있었으며 이곳도 단단히 방어되었다. 말보로는 이러한 적의 막사배치를 통해 전황을 파악했다.

[8월 12일-13일. 전군 배치도.]


말보로는 여기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았으며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싶어했다. 오이겐과 말보로는 의논 끝에 다음 날인 8월 13일에 결전을 벌이기로 결정한다.

대불동맹군은 8월 13일 오전 6시 경에 움직임을 시작한다. 오이겐 대공이 이끄는 덴마크,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부대는 북쪽으로 이동해 전선의 우익을 형성했고 영국과 네덜란드군으로 이루어진 주력부대가 말보로 대공의 지휘 하에 전선 중앙과 좌익을 맡았다. 이에 대응하는 프랑스군은 딸라르가 중앙과 우익을, 마르쟁이 바바리아군과 함께 좌익을 방비했다.

프랑스-바바리아군은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영국-동맹군의 진군을 눈치채고 황급히 전열을 정비하고 동요한다. 말보로는 프랑스군에서 가장 잘 방비된 두 곳에 기습을 가하기로 결정한다. 오버글라우와 블렌하임, 이곳에 대규모의 수비병력이 포진해 있었고 만약 이 두 마을에 적 병력을 가둬놓을 수 있다면 전선 중앙으로의 돌파가 가능해질 터였다. '가장 단단한 곳을 두드리면 길이 열린다.' 그것이 그의 지론이였다.



블렌하임 전투는 공식적으로 1704년 8월 13일 오전 8시에 영국과 오스트리아-독일 군의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 프랑스군의 포대가 반격하는 포화를 뿜었고 네 시간 동안 격렬한 포격전이 전개된다. 이 포격 공방에서 양 측에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그동안 영국-동맹군의 공병대가 네벨 강에 6개의 가교를 건설했다.



시간이 지나 오후 12시 30분이 되어 오이겐이 자신이 이끄는 군세가 전선 좌익의 전투 준비를 완료했다고 보고해 왔고 이것을 신호로 말보로는 블렌하임에 대한 돌격을 지시한다. 영국군의 커츠 소장이 이끄는 3개 보병 여단들이 단단히 방어된 블렌하임에 돌격했고 프랑스군의 일제사격에 의해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며 전진했다. 곧이어 로우 준장이 이끄는 보병 여단이 커츠를 도와 투입된다.



이에 블렌하임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은 끌레랑보 후작은 황급히 예비대들을 모두 투입하여 블렌하임을 지켜내고자 하였다. 이는, 그리고 이러한 끌레랑보를 막지 않은 딸라르 원수의 방임은, 결정적인 실수였다. 12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돌격에 돌격이 거듭 이어졌으며 사상자는 늘어만 갔으나 영국군 보병들은 당최 목적을 수행하고 있었다. 블렌하임 마을에 프랑스군이 지나치게 과밀하게 포진해 버린 것이다. 이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없었고 곧 마을은 영국군 보병에 의해 포위되어 블렌하임의 프랑스군은 제자리에 억류되어 소모되기 시작했다.

[블렌하임 마을과 거기 갇힌 프랑스군]


그리고는 영국-네덜란드의 본대가 과감히 네벨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블렌하임에서 선두가 봉쇄된 프랑스군은 이를 막기 위한 부대 이동이 불가능했으며 총사령관 딸라르 원수는 당황했다.

한편 오이겐 대공은 치열한 견제전술을 펼치며 바바리아군의 움직임을 봉쇄했으며 기병대의 공격을 준비했다.

프랑스군에 의해 단단히 방비되던 오버글라우에서 전황 변화가 찾아왔다. 이곳에 대한 공격은 말보로 공 존 처칠의 막내 동생이었던 찰스 처칠 중장이 이끌고 있었다. 그는 형의 기대에 부응해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해 오버글라우 마을 안에 프랑스군을 가둬놓았다. 이러자 중앙으로 향하는 길이 뚫렸고 영국과 프로이센군의 기병대가 돌격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보병이 예비로 돌격하며 지원했다.

기병-보병 공조는 면밀한 훈련을 통해 영국군이 익힌 전술이었으며 이는 곧 파괴적으로 효율적인 효과를 내었다. 기병은 기병도를 들고 돌격해 적 보병진을 약화 시킨 후 후퇴해 다음 공격을 위해 재정렬 할 동안 보병은 기병의 재 정렬 공간을 넓게 포진해 마련해주는 한편 다가오는 적의 기병에게 소대 단위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이들은 총검 사용법 또한 반복적으로 훈련받아 백병전을 통해 과거의 파이크병보다 훨씬 더 훌륭히 기병과 대적할 수 있었다. 전투의 그러한 역할에 있어서 프랑스 보병은 영국 보병보다 능력과 훈련의 질이 훨씬 떨어졌으며 대열을 철두철미하게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3시가 넘어 동맹군의 홀슈타인베크 후작이 프로이센군을 이끌고 오버글라우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려 한다. 이에 오버글라우에 갇힌 프랑스군은 필사적인 반격을 가했고, 이 반격에 동맹군은 잠깐 밀려나 잠시 동맹군의 전선 중앙에 균열이 생긴다. 이것을 본 마르쟁 원수는 재빨리 오버글라우 쪽의 균열에 기병대를 투입하려 했고 이를 알아차린 말보로는 급히 오이겐에게 기병대 원군의 급파를 요청했다. 오이겐은 미리 대비해 놓고 있다가 요청이 온 즉시 기병대를 파견했으며 적시에 도착한 오이겐의 기병 여단이 마르쟁의 부대를 공격해 마르쟁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바로 위에 설명한 장면을 보여주는 지도 한 장]


그동안 밀려나있던 홀슈타인베크의 프로이센군과 나머지 영국군이 다시 오버글라우로 진격해 오버글라우 안에 다시 프랑스군을 가둬놓았고, 전선은 고착된다.



한편 4시가 된 직후 오이겐이 이끄는 전선 좌익의 보병대가 마르쟁의 바바리아-프랑스군을 점차 압도하기 시작했으며 말보로는 최후의 예비대를 전부 정 중앙에 포진 시켜 최후 돌격을 준비한다. 이 강력한 한 방이면 프랑스 군의 전열은 완전 붕괴될 터였다.

막대한 병력이 집결하는 모습에 탈라르는 마침내 말보로의 의도를 눈치채 남아있던 전 보병 예비대들을 전선 중앙으로 파견한다. 이 이동을 본 말보로는 그때까지 포격을 주고받고 있던 동맹군의 포병대에게 전 포화를 그 전선 중앙의 프랑스군 보병대에 집중하도록 명한다. 집중 포화에 보병 대열이 흩어지고 찢어졌고, 말보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명령에 대규모 기병대가 중앙에 돌격한다.

[기병대 돌격!!]


이미 포격에 의해 혼란해진 전선 중앙의 프랑스군 보병들은 돌격하는 말과 그들이 휘두르는 기병도에 산산조각이 났다. 결국, 4시 30분 경, 프랑스군의 전선 중앙이 완전히 함몰된다. 딸라르 원수는 이 모습을 보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남은 예비부대를 이끌고 블렌하임으로 달려가다가 돌파당한 중앙으로부터 밀려드는 동맹군에 의해 포로가 된다. 포로가 된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앞으로 끌려온다.

바로 그 순간, 분쇄되는 프랑스군 전열과 끌려온 딸라르 원수를 보며 말보로는 말 안장에 앉은 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머니에 들어있던 술집 영수증 뒷면에 끄적였다.

"길게 쓸 시간은 없으니 나를 대신해 여왕 폐하께 경의를 표해주시오.
그리고 폐하의 군대가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도 전달해주시오.
탈라르씨와 다른 프랑스군 장군들은 내 의자에 묶여있고,
나는 이제 패잔병들을 추격하겠소."


[명령서에 싸인하는 말보로 공작.]


전투는 완전히 승패가 결정났지만 계속되었다. 저녁 7시가 되어서 마르쟁 원수와 막스 에마누엘은 전선 좌익에서 전투를 벌이던 프랑스-바바리아군을 이끌고 전선을 질서정연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예비대가 더 이상 없었던 말보로는 그들을 추격하지 않았고, 남은 잔병들과 포로들을 처리해야 했다.

오버글라우 마을 안에 포위되었던 프랑스군은 완전한 궤멸 상태에 놓였고, 봉쇄된채 두드려 맞던 블렌하임 마을 안의 프랑스군은 지휘관 끌레랑보가 강에 몸을 던져 익사한 직후 9시경에 전원 항복했다.


[획득한 프랑수군의 군기들을 정리하여 말보로 공에게 바칠 준비를 하는 병사의 모습.]



결정적인 전투에서 5만 2천명의 영국-동맹군은 4500명이 전사하고 8천여명이 부상당했고, 그 반면 프랑스-바바리아 군은 5만 6천명 중 2만 5천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여기에 1만 4천이 포로로 붙잡혔다.


루이 14세는 전 유럽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바로 여기서 꺾어야 했고 오스트리아는 해방되었으며 프랑스군의 불패신화는 무참히 깨졌다. 과거 두세기 반 동안 유럽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프랑스군이 격파된 한편 잘 알려진 바 없던 영국의 병사들은 이제 세계 최강이라는 명성을 그 후로 2세기간 떨치게 될 터였다.

전투가 있은지 3개월 후, 바바리아 왕자 막스 엠마누엘은 프랑스인들과 함께 바바리아를 떠났으며, 바바리아 전역은 곧 프랑스와의 동맹을 끊고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들어간다. 울름, 뮌헨, 잉골슈타트, 아우그스부르크 모두 동맹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며 유럽 전역의 프랑스군은 프랑스 영토 내로 후퇴했다. 빛나는 성과였다.

말보로 공작도 이렇게

영국이 배출해낸 최고의 지휘관(들 중 하나)이라는 거창한 평가와 그 이름을

역사책에 도장 찍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블렌하임 전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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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언제 올릴지 모르겠지만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5부로 이어지겠다.



본 기획의 모든 글들을 읽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오.

http://kalnaf.egloos.com/tag/말보로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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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피그말리온 2008/12/19 17:30 #

    잘 읽었습니다.....정말 재밌어요......ㅋㅋ
  • 월광토끼 2008/12/19 20:18 #

    감사합니다.
  • 쿠라사다 2008/12/19 17:36 #

    과연 적과 아군을 다루는 수완도 훌륭했지만 부대 지휘관, 전략가로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었군요.

    이런 선조라면 처칠 수상이 자랑스러워 할만도 하겠습니다.
  • 월광토끼 2008/12/19 20:18 #

    굉장한 수완가이자 위대한 장군이였죠. 이런 선조의 역사가 있으니 처칠도 그만큼 잘 나갈 수 있었던거죠
  • JOSH 2008/12/19 18:13 #

    우왕 연재물은 빠른 연재가 좋아요.
    감사감사
  • kirhina 2008/12/19 18:19 #

    ... 과연.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속여라...!! 라는거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

  • 월광토끼 2008/12/19 20:20 #

    네, 이건 문자 그대로 아군을 속인 경우죠 ^^
  • 슈타인호프 2008/12/19 18:21 #

    고생하셨습니다. 잘 읽었네요^^
  • 월광토끼 2008/12/19 20:20 #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 tloen 2008/12/19 18:24 #

    요새 내지는 참호전 몰빵의 프랑스군과 프랑스군의 방어거점을 고립화 시키고 우회해서 본진을 공략하는 프랑스의 적군의 기원은 이미 18세기초부터였던 겁니까?
  • 월광토끼 2008/12/19 20:21 #

    어라?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마지노라던가 마지노라던가 마지노라던가
  • 블루리버 2008/12/19 19:08 # 삭제

    대단하군요. 확실히 처칠에게 있어서는 존경할만 한 선조였던거 같습니다.
  • 월광토끼 2008/12/19 20:22 #

    처칠 수상이 태어난 집 부터가 저 블렌하임 전투를 기려 건립된 블렌하임 궁전이지요 ^^
  • 데프콘1 2008/12/19 20:47 #

    영국의 몽고메리는 저 때부터 2백년 가량 전략 전술적인 변화가 없는 시기라고 하더군요. 보병들이 어깨를 맞추어서 전장식 대포와 총을 쏘고 기병은 상황봐서 돌격하고 말이죠. 물론 철도의 등장으로 많이 바뀌는가 싶더니, 후장식 소총과 기관총의 등장으로 전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죠.
  • 터미베어 2008/12/19 22:37 # 삭제

    잘봤습니다.
  • 계원필경 2008/12/20 01:01 #

    역시 아군을 속이는 거 만큼 중요한 건 없죠...
  • 변태작가 2008/12/20 02:29 #

    오오... 가지고 있는 책들에서 읽는 전사가 대게 1차 대전 이후다 보니 현대적인 통신수단이 없던 시대에
    병력이동을 위장하는 대목이 정말 흥미롭네요 차차 나머지 부분도 읽어봐야겠습니다.
  • 윙후사르 2008/12/20 11:47 # 삭제

    발렌슈타인도 아니고 저렇게 빨리 돌파를 해내다니...
  • JOSH 2008/12/20 17:11 #

    마오대인도 아니고 말이죠...
  • 오토군 2008/12/26 14:59 #

    잘 보고 가요. 나중에 이 글은 제게 뼈가 되고 살이 될겁니다.
  • baccano 2011/05/21 20:26 # 삭제

    ㅎㄷㄷ 프린츠 오이겐공 만 알고 있었는데 말보르도 대단한 전술가군요
    특히 말보르가 요청하자 미리 준비했던 기병대를 파견하는 프린츠 오이겐
    역시 위인은 위인을 알아보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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