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 9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8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1711년 초여름부터 작전을 시작한 말보로 공작은 북부 프랑스를 위협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채 네덜란드에서 남진한다. 그러나 이 때 부지휘관이던 사보이의 오이겐 대공과 그 오스트리아 군세가 라인강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돌아갔기에 그 군세는 많이 작아진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령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 놓인 것은 막강한 진지 "느 쁠뤼 쥴트라Ne Plus Ultra"였다. 이 진지는 영불 해협의 해안가에서부터 아르덴느 숲까지 이어지는 요새와 참호진의 연속이었는데, 이 진지와 이를 비호하는 빌라르 원수의 막강한 군세 때문에 작전은 아무 성과가 없는 듯 했다.


[빌라르 공작 끌로드 루이 엑토르 원수.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군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그도 말보로에게는..]



말보로의 영국-네덜란드 동맹군과 빌라르의 프랑스군은 이 느 쁠뤼 쥴트라 선을 사이에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별 소득 없는 일진일퇴의 국지적 공방전을 벌였다. 전황에 변화가 온 것은 말보로 휘하의 부대가 전선 북부의 아를뤼라는 작은 요새를 7월 19일에 점거하면서부터였다. 이 아를뤼 요새는 프랑스측에 있어 전진기지이자 보급선 확보에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에 빌라르는 즉각 느 쁠뤼 쥴트라 선에서 북진하여 이 요새를 7월 22일에 재탈환한다. 바로 이 때 말보로는 전군을 몰아 아라스 방향에서 요새진을 공격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아라스가 위험하다고 느낀 빌라르의 프랑스군은 즉각 말보로의 동맹군을 견제하며 따라가기 위해 아라스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1711년 8월 4일의 일이었다. 이 때 말보로 공작은 스스로 직접 소규모의 정찰대를 이끌고 나가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고, 빌라르가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자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말보로의 군세는 바로 그날 밤 대규모 야전 진지를 구축하고 진지 곳곳에 불을 크게 피워올렸다.

그러나 동맹군은 그 진지에서 야영하지 않았다. 말보로의 명령에 따라, 동맹군은 잠도 자지 않은채 심야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4일 밤 11시에 움직이기 시작해, 새벽 4시 경에는 전 기병대가 지키는 자 없는 느 쁠뤼 쥴트라 방위선을 건넜고, 8월 5일 오전 8시 경에는 전 군대가 선을 지나 남진하고 있었다. 그저 은밀하기만 한게 아니라 신속하기 짝이 없는 진군이어서, 말보로 군은 1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군해 전군이 65KM를 주파해 남진했다.

비어있는 야영지와 그 불빛에 속아 군세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던 빌라르는 이 이변에 놀라 소규모의 기병대만 이끌고 나가 이미 느 쁠뤼 쥴트라 방위선 남쪽으로 한참 달려가고 있는 적군의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했다. 빌라르와 프랑스군은 철저하게 기만당한 것이었다.


느 쁠뤼 쥴트라 방위선 남쪽에 있었던 것은 부섕 요새였다. 부섕은 보방식 축성 방법으로 강력하고 단단하게 방어된 요새 마을이였는데, 그 방위 병력은 5천명에 불과했다. 말보로 휘하의 동맹군은 순식간에 진격해 부섕을 전방위로 포위하고 공성전에 돌입했다. 빌라르는 거듭 말보로를 야전으로 꾀어내려 했으나 말보로는 프랑스군과의 회전을 회피하며 부섕과 빌라르 사이의 보급선과 연락선을 철저히 차단했다.


[부섕 공략을 논의하는 말보로 공작과 그의 공성기술관 존 암스트롱 대령]



결국 부섕 요새를 구하려는 프랑스군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9월 12일, 부섕 요새는 백기를 들어올리며 말보로에게 항복한다. 부섕 요새가 함락됨으로써 이제 말보로의 군세와 프랑스 수도 파리 사이에는 단 한 개의 요새, 깡브레 요새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남진 했다면 파리까지 파죽지세로 진군할 판이었다.

그야말로 군사적 완벽한, 거의 예술적인 수준의 승리였다.



그러나 말보로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본국 영국 내에서는 말보로의 몰락이 철저하게 기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1711년 10월 20일, 하원에서 말보로의 공금횡령과 부당축재 혐의가 재기된다. 말보로의 죄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말보로가 9년 동안 동맹군 총사령관직을 지내면서 네덜란드의 군수품 업자들에게서 6만 3천 파운드 상당의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의 혐의는 동맹군에 대한 지급 수당의 2.5%를 개인적으로 횡령해, 총합 2만 8천 파운드를 부당 축재했다는 것이였다.

토리당의 옥스포드 백작 할리와 볼링브로크 자작 세인트 존이 말보로에 대한 탄핵을 거침없이 준비했다. 이들은 전쟁 승리의 지연에 대한 책임을 모두 휘그당 뿐만 아니라 말보로에게 전가했다.


[말보로의 몰락을 가져온 자. 볼링브로크 자작 헨리 세인트-존]



토리측 논객 죠나단 스위프트도 말보로에게 불리한 글을 연달아 써냈고, 그의 유려하면서도 빈정거리는 문체는 민심마저 돌렸다. 곧 민중들은 전쟁영웅 말보로 공작에 대한 험담을 술자리 안주로 삼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토리 정부는 다른 동맹국들 -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 에게는 비밀로 한 채 프랑스와 단독으로 종전 협상을 지속시키고 있었으며, 토리계 국무장관 헨리 세인트 존 (후에 볼링브로크 자작)은 프랑스 재상 토르시 후작과 접촉해 종전 조약을 준비한 것이다.

1711년 11월, 말보로는 일체의 군사행동을 금지당했다.

1711년 12월 7일, 앤 여왕은 "전쟁기술을 즐기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 평화 협상의 준비가 끝났으며 시간과 장소도 정해졌다." 고 선언했다. 정전 선언임과 동시에 말보로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1711년 12월 31일, 해가 넘어가기 바로 전 날,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은 모든 직무와 직위에서 해제당한채 본국으로 송환된다.


[말보로의 전장. 1702년에 부임해서, 1711년까지 9년간 총사령관으로 지휘하며 일군 업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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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alnaf.egloos.com/tag/말보로공작




이번 편으로 완결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길게 써버려서..
다음 편에는 진짜 완결입니다 -_-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1/16 13:23 #

    참 이런거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치란....
  • 계원필경 2009/01/16 13:45 #

    지도를 보니 웬지 모르게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전역을 보는 듯 합니다 ㅎㄷㄷ...
  • 르-미르 2009/01/16 14:03 #

    대단한 사람 주변엔 언제나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 JOSH 2009/01/16 14:08 #

    후...
    이 무슨 엄친아 스러운 능력..
    이 무슨 픽션보다 더 박력있는 전개...

    삼국지와 은영전이 울고 가겠네...
  • DOSKHARAAS 2009/01/16 17:47 #

    JOSH님, 왜 '현실은 소설보다 기이하다'고 하잖아요.
  • 데프콘1 2009/01/16 18:25 #

    북한 간첩이 대통령이 되어서 남한을 몰락시킨다는 소설이 있었는데 지금 보면 그 소설의 간첩은 쥐의 벼룩만도 못하죠.
  • 윙후사르 2009/01/16 18:46 # 삭제

    보방의 요새선은 매우 단단해서 저 때에도 안 뚫린 걸로 아는데 매우 위험한 순간도 있었군요.
  • 들꽃향기 2009/01/16 21:18 # 삭제

    언제나 잘 읽고 갑니다. ^^ 다만 정치적 방해를 받지않더라도 보급을 중시했던 말버러가 캉브레 요새까지 밀고들어와 과감하게 프랑스와 한번 더 일전을 벌였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입니다만(더군다나 말플라케에서의 피해도 상당했으니...) 역사에 가정이란 역시 없겠죠...ㄷㄷ;;
  • 함부르거 2009/01/16 23:53 #

    어차피 전쟁전략은 정치의 하위에 있으니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 때의 영국 정치가들이 조금만 멀리 봤으면 프랑스를 저 때 발라버리고 제국주의 시대를 훨씬 앞서갈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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