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일생. - 완결편



말보로가 영국에 돌아온 1712년, 영국은 그야말로 '토리의 천하'였다. 1712년에 하원에서 기소된 말보로에 대한 혐의들은 토리계열 신문 언론 덕에 일반 국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말보로는 군수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때문에 그 모든 승전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열정은 굉장했다. 런던 시민들은 런던시에 입성하는 개선장군 존 처칠의 마차를 거리 곳곳에서 둘러싸며 "저 도둑놈을 잡아라!"라고 외쳐대며 계란을 던졌다.


그래도 말보로는 자기 스스로를 변론할 수 있었다.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에 찌든 채 자라나면서 (왕 제임스 2세가 요크 대공 시절부터 말보로를 비호해줄 때도 금전적 원조는 없어 겨울에 집안에 불을 못 땔 정도였으니) 인색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 된 것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그가 불법적으로 공금을 횡령하고 착복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말보로는 첫번째 혐의인 네덜란드 군수업자로부터의 뇌물수수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정부의, 군사령관에 대한 일정량의 추가수당 지급 관례의 일부임을 주장했다. 두범째 혐의인 군대 유지비 부당 착복에 대해서는 일정 비용을 유지비에서 빼내 다른 기획에 사용할 수 있도록 1702년에 앤 여왕이 승인한, 여왕의 친필 서명이 적힌 위임장을 증거로 제출하며 무죄를 입증했다. 특히, 군 유지비에서 나간 돈은 순전히 프랑스 지방 내 첩보망 구축과 정보수집비용으로 사용했음을 밝혔다.

그가 군수업자들로부터 '네덜란드 정부의 관례에 따라' 받았다 주장한 6만 파운드 상당의 재화는 그 정당성이 지금도 의심되고 있으나, 군대 유지비로 지출된 공금 30만 파운드는 합법적으로, 순수한 정보망 구축비로 사용되었음이 확인된 바이다.


하지만 말보로 자신의 변론과 하원에서의 친-말보로 의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711년 11월에 상정되었던 말보로에 대한 탄핵안이 1712년 2월 하원에서 270 대 165로 가결되었으며, 만약 이 탄핵이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말보로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을 터였다.

그러나 국무대신 볼링브로크 자작 세인트 존은 자기 자신이 준비하던 탄핵절차 준비를 스스로 중단시켰다. 말보로의 후임으로 세인트 존 자신이 천거하여 동맹 야전군 총사령관 직에 부임하게 된 올몬드 공작 또한, 말보로와 마찬가지로 군유지비의 2.5%를 지급받게 되기로 결정된 것이다. 말보로를 탄핵한다는 것은 올몬드 공의 군비지급을 불법적으로 만드는 행위였기 때문에 모순을 피하기 위해 탄핵을 중단한 것이였다.


한 때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하던 민중들로부터 계란 세례나 받게 된 말보로는, 1712년 말에 아내 사라 처칠과 함께 영국을 떠난다. 공식적으로는 요양차 떠난 휴가 여행이었으나, 거의 쫒겨나다시피 하며 떠났다.


말보로가 굴욕적으로 '요양'여행을 떠난 동안, 프랑스는 다시 전 전선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말보로의 후임으로 사령관에 부임한 올몬드 공작은 정부 지침에 따라 프랑스 군과의 교전을 결단코 피했으며, 말보로가 없는 전장에서 빌라르 원수 휘하의 프랑스군은 사자가 없어진 사냥터의 표범처럼 활약했다.

[말보로와 영국군 없는 동맹군은 프랑스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드냉 전투]


1712년 7월 24일의 드냉 전투에서, 말보로의 오랜 전우이자 공동 지휘관이었던 사보이의 오이겐 대공은 휘하의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빌라르 원수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용전 분투했으나, 올몬드 공작 휘하의 영국군이 전장 근처에만 머문채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행위로 인해, 프랑스군에게 대패한다. 영국군의 원조 없이 싸우던 네덜란드-오스트리아군은 2만명의 전사자를 내며 패주했고, 프랑스군은 이제 동맹군을 다시 압도했다.


[우트레히트 조약 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유럽세계의 모습]


결국 이미 영국이 프랑스와 비공식적 종전합의를 본 상태에서 전쟁은 더 이상 계속되기도 어려웠다. 말보로 공작 부부가 마음 편히 오스트리아와 독일 여러 지방들을 여행하고 있던 171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우트레히트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프랑스와 루이 14세는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이끄는데 성공했다.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는 그대로 왕위를 유지하되, 프랑스 왕위에 대한 승계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으로, 그리고 프랑스는 몇몇 식민지들을 영국에 넘겨주는 대신 자국 영토의 거의 전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전쟁은 끝났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공식적 승자는 없었지만, 수많은 피와 화약이 전장에 뿌려진 이 전쟁에서 결국 이득을 본 것은 루이 14세와 그의 프랑스 왕국이었다. 만약 말보로가 라밀리즈나 우데나르드에서 압승을 거두고 프랑스가 아사 직전 상태에 내몰릴 때 적절한 조건의 협상을 체결했다면,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말보로 공작은 더 이상 군대와, 공직과 관련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외교 협상이 진행되건 어쩌건 상관없이 은퇴여행을 즐겼다. 영국 민중과 정계는 말보로를 내쫓았지만, 유럽 전역에서 말보로는 전쟁 영웅이자 위대한 정치가,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의 하나로 대접받으며 곳곳에서 환영받았다. 말보로의 부인 사라 처칠은 내내 기나긴 여행과 중부 유렵의 기후를 불평하며 '영국 밖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까지 말했으나, 말보로 공작 본인은 편안히 이 휴가를 즐겼던 것 같다.

말보로 공작이 이 기나긴 여행을 끝마치고 본국에 돌아간 것은 1714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1714년 8월 2일에 도버 항구에 내린 말보로 공작을 맞이한 것은 호화로운 마차와 호위병들, 그리고 팡파레였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항구에 도착하기 바로 전 날인 8월 1일에 앤 여왕이 승하했다는 뉴스였다.


[영국의 새 왕. 죠지 1세. 즉위 당시, 영어를 할 줄 모르며 그냥 사람좋고 놀기 좋아하는 노인]


말보로는 독일계 유럽 왕실들과 대가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하노버 대공 가문과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다음 국왕으로 즉위한 것은 하노버 가문 -이제는 왕가-의 죠지 1세였으며, 죠지 1세는 런던으로 돌아온 말보로에게 "말보로 공작, 이제 당신의 고생이 다 끝난 거이기를 바라오"라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토리당 정권도 앤 여왕의 죽음과 함께 끝장났으며, 정계 또한 휘그당이 -이제는 훨씬 온건한 성향이 된- 재집권하면서 재개편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말보로는 다시금 영국군 총사령관직에 임명되었고, 1715년 자코바이트 반란 진압에서도 군을 지휘한다. 명예도 직위도 모두 복권된 것이다.


[1717-18년 경의 말보로 공작 초상화]



그러나 이제 예순 넷의 말보로 공작은 늙고 병들었다. 그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으며, 말보로의 딸들이 다 병이나 노화로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으로 인해, 그 슬픔과 충격으로 말보로는 더욱 쇠약해진다. 말보로는 공직 생활과 정계에서 은퇴한다. 이제 영국 정부는 말보로가 없이도 잘 운영되었으며, 월폴 수상이나 스탠호프 장관 같은 명 정치가들이 이끌고 있었다.

은퇴한 말보로는 조용히 지내며 앤 여왕이 -공작부부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시절에- 건축을 인가했던 블렌하임 대궁전의 건축을 감독하며 여생을 보냈다. 블렌하임 대궁전은 그 건축에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들었으나, 1719년에는 절반 정도가 완성되어 말보로 가족은 여기에 입주한다.

[블렌하임 궁전]


블렌하임 궁에서 생활하던 말보로는 1722년 5월 26일, 72세의 생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일주일 후 심장마비로 쓰려졌고, 그대로 병석에 누워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1722년 6월 16일 아침, 블렌하임의 영웅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은 조용히 임종을 맞았다.


공작 부인 사라 처칠은 남편보다 10년 가까이 더 오래 살았다.





[영국 옥스퍼드셔에 건립된 존 처칠 - 블렌하임 기념탑. 40미터 높이이며 그 꼭대기에는 존 처칠의 전신상이 놓여있다.]




말보로 공작 가문은, 남자 후계자가 없었던고로, 그의 딸들의 자식들이 성을 '처칠'로 바꾸고 이어받았다.

블렌하임 궁전은 영국 내에서 왕실의 소유가 아님에도 유일하게 '궁전' 이라는 명칭이 허용된 궁전이며,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이 죽은 몇 달 후의 완공되었다.

현재에도 말보로 공작 가문은 블렌하임 궁전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가끔 그 일부를 사극 등 영화 촬영에 임대해주기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블렌하임 궁전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에 기재되어 있다.

현재의 말보로 공작은 제 11대 공작 존 죠지 밴더빌트 스펜서-처칠이다.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제 12대 공작이 될 사람은 찰스 제임스 스펜서-처칠이며, 음주운전, 마약소지 혐의 등으로 여러차례 구금되거나 벌금을 문 적이 있는 문제아로, 50세가 넘은 지금도 알코올을 끊지 못하고 있다. 그의 아들이자 13대 공작 예정자인 죠지 존 고돌핀 스펜서 처칠은 현재 16세로, 해로우 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버지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책에서 '말보로 공작' 이라 기술하는 바는, 12명의 말보로 공작들 중 오로지 제 1대, 존 처칠만을 지칭한다.


[자신의 선조인 제 1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4권으로 구성된 장대한 전기를 집필한 윈스턴 스펜서 처칠 수상.]



제 1대 말보로 공작 존 처칠의 외증증손이자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스펜서-처칠은, 자신이 직접 말보로 공작 전기에서 존 처칠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는 유럽의 전군을 이끌며 프랑스를 10여개의 전역에서 상대했다.
그는 4번의 대승과 여러 중요 작전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가 이기지 못한 전투는 한 개도 없었으며 그가 함락하지 못한 요새도 없었다.
그는 불패의 장군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영국의 군인도 그만큼 막중하고 다양한 책임과 임무를 맡아 수행한 바가 없다."



[블렌하임 궁전에 거대하게 그려져 있는 블렌하임 전투 벽화와 말보로 공작 존 처칠.]





이 10부작(블렌하임 전투 글 포함) 연재 기획을 전부 읽으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오.
http://kalnaf.egloos.com/tag/말보로공작



지금까지 이 연재기획은

윈스턴 스펜서 처칠 경의 "Marlborough: His Life and Times"를 주로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부가자료로는
버나드 로-몽고메리 원수의 "The History of Warfare"
앙드레 모로아의 "영국사"
옥스퍼드 영국사
영국 군사軍史 연구단체 "British Battles"
의 글들을 사용했다.

그림 및 사진 자료는 구글과 위키피디아의 힘을 빌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네, 드디어 완결입니다.

참 길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새 연재기획, "나폴레옹의 26원수들" 을 기대해주세요

덧글

  • 정호찬 2009/01/18 12:11 #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잘 봤습니다. ^^
  • kirhina 2009/01/18 12:16 #

    수고하셨습니다. 재밌게 잘 봤습니다. ^^
  • 피그말리온 2009/01/18 12:24 #

    재밌었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 슈타인호프 2009/01/18 12:27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가끔 상상해 보는 것이, 만약 공작위를 계승한 처칠의 사촌에게 무슨 사고가 생겨 처칠이 9대 말보로 공작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봤었는데, 엄두가 안 나더군요^^;;
  • 계원필경 2009/01/18 12:41 #

    말보로 공작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 엘레시엘 2009/01/18 12:47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ㅂ'/
  • 소시민 2009/01/18 13:15 #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연재 나폴레옹의 26원수들이 기대됩니다.
  • 르-미르 2009/01/18 13:59 #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긴 연재를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ㅇ>-<
  • 울트라김군 2009/01/18 14:02 #

    잘 읽었습니다!
  • RLamiel 2009/01/18 14:16 #

    완결 축하드리고, 다음 것도 기대하겠습니다.
  • 나아가는자 2009/01/18 14:37 #

    수고하셨습니다. 완결 축하드립니다.^^
  • Madian 2009/01/18 14:53 # 삭제

    재밌게 잘 읽었고 완결 축하드립니다. :D
  • 티이거 2009/01/18 16:15 # 삭제

    재미있었습니다...

    블렌하임궁은 구경은 해본 적이있었지만 저런 에피소드는 몰랐네요..^^

    태클을 하나 걸자면... 말보로 공작에 너무 호의적으로만 작성되었다 싶어서.... 몬거머리 원수의 전쟁의 역사를 참고했구나 싶었더니 하필이면 윈스턴 처칠의 저작이 주였군요^^ 신뢰도은 좀...^^
  • 조각달 2009/01/18 16:17 #

    수고하셨습니다, 잘 봤습니다 :D
  • 함부르거 2009/01/18 16:48 #

    수고하셨습니다. 흥미있는 인물이었는데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존 죠지 밴더빌트 스펜서-처칠 이라... 미국의 그 밴더빌트 가문과는 어떤 관계지요?
    그 가문 딸이 말보로 공작가로 시집왔던 건가요?
  • 굽시니스트 2009/01/18 18:00 #

    아아 정말 근래 참으로 잘 읽은 명문입니다;; 이런 훌륭한 글을 베풀어 주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굷신굽신
  • elfineris 2009/01/18 18:02 #

    연재글중 중간것 부터 읽기 시작했었는데 새로 글이 올라올때마다 꼭꼭 봤었지요.

    오늘 완결 보고 난 뒤에앞에부분도 읽어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려요~!

  • 파도지기 2009/01/18 19:07 #

    잘 읽었습니다.^^
    우니스턴 처칠의 저작이 주 참고였다고 해도,
    그렇데 전기를 쓸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생각되는군요.
    처칠가문의 위대한 시조.
  • 에로거북이 2009/01/18 20:21 #

    잘 읽었습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 데프콘1 2009/01/19 00:09 #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처칠가문은 항상 심장마비로 죽네요^^
  • 달산 2009/01/19 01:08 #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DOSKHARAAS 2009/01/19 16:39 #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진한 글.
  • 레이트 2009/01/21 15:53 #

    재미있었습니다~~
  • 파냐투 2010/01/16 20:30 # 삭제

    감사합니다. 재밌고 유익한내용이네요.
  • 혈제진 2011/04/21 23:41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
  • baccano 2011/05/21 20:54 # 삭제

    정말 최곱니다 말보르 공작 헠헠
  • 감사합니다 2012/06/10 01:25 # 삭제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짱이다 진짜 유럽의 이순신
  • RanomA 2013/02/09 09:37 # 삭제

    잘 모르던 역사를 정말 재미있고, 상세하게 속속들이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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