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26 원수: 나폴레옹의 수하들 - 03. 쥬르당

'나폴레옹의 원수들' 이번회에서는
그 이름이 정말 알려져 있지 않은, 그만큼 활약도 고만고만했던 사람을 소개한다.

저번에 소개한 베르나도트, 베시에르에 이어 이 사람도
이름(First-Name)이 '장-밥티스트'다.



03.

장-밥티스트 쥬르당Jean-Baptiste Jourdan (1762~1833) 원수.

[공화정부 시절의 젊은 쥬르당.]



쥬르당은 1762년 프랑스 중부의 리모제의 평범한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때 리옹의 상인에게 도제로 보내져 장사를 배울 것이였으나, 14세 때인 1776년에 미국 독립전쟁을 돕기 위해 파견되는 의용군에 졸병으로 자원입대한다. 1783년에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고 의용군도 해산되자 그는 리모제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가게를 차려 비단 장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1792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터지고 신생 공화국이 유럽 각국으로부터 위협받게 되자 쥬르당은 장사를 떼려치고 혁명군에 입대한다.

그는 오뜨-비엔느 소속 제 2 자원병 대대의 대대장으로 전장에 나섰는데, 미국독립전쟁 때 활약한 경험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훌륭히 전쟁을 수행한다. 파마르 전투나 니어빈덴 전투 등 프랑스 북부 전선에서 여러차례 공을 세운 그는 이미 1년 후인 93년 7월에는 자원병 사단장의 직위에 앉게 된다. 갓 서른 살이 된 이 전직 장사꾼은 같은해 9월에 북프랑스 방면군 전체의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그러자마자 10월에 와티니(Wattignies) 전투가 터졌고 그는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오스트리아군을 패퇴시킨다. (비록 프랑스군 피해가 살짝 더 많았지만)

오합지졸의 자원병들로만 구성되있다던 프랑스군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승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였다. 그의 정치적으로 중도적인 성향 때문에 그는 당장 의심과 공격의 목표가 된다. 위험을 느낀 쥬르당은 사표를 내고 고향 리모제로 돌아가 비단 장사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1794년 봄에 정부는 그에게 다시 군을 지휘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사령관으로 복직한다.

1794년 초 쥬르당과 그 휘하의 군세는 프랑스-오스트리아령 벨기에 경계에 위치한 상브르강 유역에서 계속해서 전투를 치뤘으나 당초 목표인 상브르 강 도하에는 실패만 거듭했고 그에 따라 군의 사기도 낮아졌다. 정부에서는 쥬르당에게 한번만 더 공격을 시도하라 요청했고, 1794년 6월 중순에 그의 군세는 상브르강을 성공적으로 건넜을 뿐만 아니라 벨기에 내로 진군, 플루뤼스(Fleurus)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른다. 여기서의 승전으로 인해 오스트리아군은 벨기에 지방에서 철수했으며, 전선은 고착상태에 빠진다.


[1794년 플뤼뢰스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쥬르당 원수. 그러나 플뤼뢰스의 승전은 왠지 쥬르당이라는 군인 개인보다는 로베스피에르와 공화국 정부의 공적으로 돌려지고 있다.]




1796년 프랑스 공화정부의 대규모 공세는 3 군세의 진공으로 이루어졌는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끌던 이탈리아 방면군은 대성공을 거둔 방면, 쥬르당의 군세는 오스트리아군이 전군을 집결시켜 공격함으로써 암베르크 전투와 뷜츠부르크에서 패퇴한다. 쥬르당은 공세의 실패가 공화국 정부의 무리한 강압 때문이라 항변했지만 어쨌든 쥬르당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다년간 근신한다. 전쟁에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에는 참여하기 시작했고 98년에는 '쥬르당 법'으로 알려지게 된, 20세에서 25세 사이의 미혼 남성을 징집하는 징병법안을 입안, 통과시킨다.


쥬르당은 1799년에 다시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으나 다시 오스트리아군에게 스토카크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완전히 실망, 앙드레 마세나에게 군대를 넘기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나폴레옹의 안개달 18일 쿠데타 당시에는 나폴레옹에게 반대하고 나서며 쿠데타를 멈추려 했지만 실패하고,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성공하자 의회에서 쫒겨난다. 그럼에도 1800년에 나폴레옹은 다시 쥬르당에게 군 요직을 제의했고 쥬르당은 새 정권과 타협한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1804년에, 쥬르당도 원수로 임명된 18명 중 하나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2년간 복무하다가 나폴리 왕으로 임명된 죠셉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동생)의 군무상서로 선택되었으며 죠셉이 스페인 왕으로서 1808년에 스페인으로 향했을 때도 그와 함께 갔다. 쥬르당은 스페인 전선에서 장군들에게 전략안을 제의하고 조언을 했으나 아무 소용 없었고, 그의 군대가 웰링턴의 영국군에 의해 비토리아 전투에서 완패한 후부터 그는 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00일 천하 당시에는 나폴레옹과 합류하여 워털루에서 소규모 부대의 지휘를 맡았으나 역시 별 활약은 하지 못한 채 전쟁이 끝난다. 그는 부르봉 왕가가 용서해주어 작위를 받았으나, 그 후 작은 공직들을 전전하며 지냈다. 1830년의 파리 7월 혁명 때는 파리 시민 측을 지지했다. 말년에는 엥발리드(퇴역 군인들의 요양시설. 나폴레옹 3세 즉위 후 나폴레옹 1세의 무덤과 군사박물관으로 탈바꿈 한다)의 운영원장으로 여생을 보내다 1833년에 조용히 세상을 뜬다.



능력 없는 장군은 아니었으나 그의 활약은 주로 혁명기 직후 공화정부 하에서였으며 나폴레옹 통령 정부와 제 1제국 시기에는 그다지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그가 대적한 적장들은 대부분 그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들이었으며(비토리아에서 영국의 웰링턴이나 스토카크에서 오스트리아의 카를)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배경여건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제 1 제정 프랑스군은 젊은 장군들의 활약터였으며 그같은 노장들은 이미 그들의 시대를 풍미한 후였다고나 할까.




다음회는 안습의 그루시. 그루시 후에는 나폴레옹의 절친한 친우였던 란.


http://kalnaf.egloos.com/tag/26MarechauxDeNapoleon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1/24 18:09 #

    그래도 어찌저찌 성공은 한 사람인데 왠지 슬퍼보이네요.....ㅋ
  • 핌군 2009/01/24 18:29 #

    한때의 성공도 맛보고 말년도 나름 평탄히 보내고 천수도 다 누린 바람직한 (?) 케이스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_-;;;
  • 나아가는자 2009/01/24 18:54 #

    잘 읽었습니다. 주르당이라는 이름을 로베스피에르 전기에서 읽은기억이 있는데, 다시 봤네요. 그리고...아시겠지만, 플뢰리스전투의 공적을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에 돌리려는 사람들의 주장은 혁명정부의 여러 전시통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해서 전쟁을 잘 뒷받침했기 때문이라고 보는것 같습니다. 뭐, 주르당같이 귀족도 아닌 하사관출신이 중령에 선출되어 대대를 지휘한다는 것도, 혁명군의 장교를 귀족출신장교를 제외하고 장교를 선출하자고 한 로베스피에르에게 공을 돌리더군요.- 이상은 로베스피에르전기의 주장.
    - 다른 혁명관련 책도 읽어야 하는데, 프랑스대혁명사 같은 책은 80년대 번역이라 한자가 곳곳에 있어서 아직도 제대로 못읽고 있습니다. 너무 시각이 편향된거 같아서 걱정이긴 한데,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을 못찾았네요. ㅜㅜ
  • 계원필경&Zalmi 2009/01/24 18:58 #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군요...(다른 원수들에 비해서 말이죠...)
  • 개발부장 2009/01/24 21:42 #

    ...아니, 진짜로 보람차고 성공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만 이건--;;
  • 티이거 2009/01/24 21:47 # 삭제

    그런데 궁금한게... 그렇게 혁명정부가 전시통제정책을 잘 펼쳤으면 혁명정책 초기의 그 참사와 툴롱에서의 추태 등이 왜 보이는 건지... 화가 출신 장군에 의사 출신.... C8.... 결국 툴롱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지휘관이 군인 출신(좀 뭐한 표현..^^)장군 뒤고미에...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부오나파르테가 뜨기 시작했죠....
  • BigTrain 2009/01/24 22:08 #

    다음 회가 그루시라. 기대됩니다. 과연 어떠한 안습행로를 보여줄 것인지...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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