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26 원수: 나폴레옹의 수하들 - 05. 란느


란느 원수는 나폴레옹의 원수들 중 가장 대담하고 재능있는 자들의 하나였다. 나폴레옹은 란느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난장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인이었다."

또한, 란느는 나폴레옹의 '친구'중 하나로, 황제를 감히 ''라고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부하이기도 했다.



 

05. 쟝 란느 Jean Lannes (1769~1809) 원수.



란느는 1769년 4월에 제르에서 가스코뉴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란느 가족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 형편의 농부집안이었으나, 란느와 그 4형제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농사일만 했다. 다만 수도사의 길을 택한 맏형이 쟝 란느에게 쓰고 읽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쟝 란느는 어려서부터 키가 크고 힘이 세 일종의 동네 골목 대장 노릇을 했던 것 같다.

쟝 란느는 염색공의 도제로 들어가 염색업을 직업으로 선택할 예정이었으나, 1792년, 혁명 전쟁의 발발과 함께 그는 6월 20일에 23세의 나이로 제르 제 2 자원병 대대에 자원 입대한다. 같은 마을 출신의 동료들은 자기들 중에서 란느를 장교로 뽑았다. 장교가 된 란느와 그의 대대는 프랑스 남부 전선으로 보내져 전쟁을 치뤘으며 그는 3개월 만에 중위에서 대위로 승진했다. 이 기간에 혁명군 전체가 패배를 거듭하는 동안 란느 개인은 전투, 전술, 지휘 등등을 빠르게 익혔다.

1795년에는 대령이 되었으며, 이 시기 그의 상관이었으며 군 총참모장 샤를 피에르 라메르 장군이 란느대령에 대해 언급한 평을 읽어보면, "개전 초부터 계속 보여준 그의 능력과 자질은 그의 모든 전우들에게 최고의 귀감이 되었다.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도 그가 가진 진짜 자질에 못미친다." 고 할 정도였다.

란느는 1796년 이탈리아 방면군으로 옮겨지고, 이 때 이탈리아 전역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하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맡겨진 모든 임무를 과감하게 수행하는 란느를 눈여겨 보고 그를 여단장으로 임명한다. 란느가 나폴레옹과 우정을 쌓은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여단장이 된 란느는 같은 해의 아르콜레 전투에서 보나파르트의 곁에 서서 함께 아르콜레의 다리를 건너며 돌격하기도 했다. 이집트 원정 때도 따라가 피라미드 전투에서 크게 활약했고, 1799년 나폴레옹의 안개달 쿠데타에서도 병사들을 지휘해 정권 전복에 한 몫 했다.

[군을 선두에서 이끄는 란느 원수]


 

1800년에 란느는 사단장으로 임명되며,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선봉으로 (다시 말해 알프스 횡단) 진격, 6월 9일에는 이탈리아 몬테벨로에서 첫 전투를 치룬다. 몬테벨로 전투에서 란느의 1개 사단 -보병 5천명 -은 오스트리아의 1만 5천 군세를 맞이하여 싸우게 된다. 란느의 사단은 포병과 기병의 후속 병력들과 인근의 빅토르 장군이 파견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면서 돌격을 거듭하며 적의 반격을 몇차례나 막아내었으며, 결국 지원군과 함께 오스트리아군을 완전히 몰아내어 적이 5천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동안 500 여명의 사상자만 내는 대승을 거둔다. 이 몬테벨로 전투는 훗날 란느의 작위의 기원이 된다. (몬테벨로 공작) 란느의 사단은 닷새 후 이어진 마렝고 전투에서도 활약한다.

이탈리아 전역이 종결되고 파리로 돌아온 란느는 같은 해 8월 15일에 루이즈 앙투와네트 게누와 결혼한다. 이는 그의 두번째 결혼이었는데, 첫째 부인과는 불륜 문제로 이혼한 상태였다. 루이즈 앙투와네트는 란느와의 평탄한 결혼 생활 동안 다섯 명의 아들 딸들을 낳는다. 결혼 직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801년에 란느는 외교임무를 맡아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보내져 프랑스 대사로 외교활동을 하며, 영국을 견제하며 프랑스의 이익을 확보하는 활약을 한다. 하지만 이 외교의 성과가 어느정도로 의미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804년, 다른 원수들과 함께 란느도 제국의 원수들 중 하나에 임명된다. 그 이듬해의 아우슈테를릿츠 전투에서 그는 프랑스 전군의 좌익을 지휘하며 프러시아군을 공격하며 견제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새로이 신설된 제 5군단 CORPS V 의 사령관에 임명된다. 란느 원수는 그 제 5 군단을 이끌고 1806년 잘펠트 전투에서 프러시아의 페르디난트 대공을 전사케 했으며, 1807년 6월의 프리틀란트 전투에서는 뮈라와 함께 프랑스군 전체의 한 축을 담당하여, 러시아군의 공세를 가장 먼저 막아내고 또 격퇴하는 공을 세운다.


[1808년 12월 ~ 1809년 2월. 사라고사 전투]



1808년에 '반도 전쟁'이 시작되면서 란느는 처음으로 개별 지휘권 -대군을 지휘하는-을 받아 작전을 수행하는데, 여기서 그의 군대는 몽세와 모티에의 뒤를 이어 1809년 1월부터 사라고사 공략에 들어간다. 다른 이들은 실패한 이 처절하게 피비린내나는 포위전, 나아가 시가전 끝에 란느는 사라고사를 손에 넣는다. 2차 세계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흔히 비견되곤 하는 이 사라고사 전투에서 프랑스군 사상자가 그나마 적을 수 있었던 것은 란느의 공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반도 전쟁 기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빨치산 게릴라 전, 그리고 잔혹한 전투들은 란느로 하여금 나폴레옹의 전쟁 자체를 의심케 했다. 그는 사라고사 전투 후 "저 빌어먹을 보나파르트가 우리를 다 죽게 만들고 말거야." 라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예언이 된다.



1809년 5월 22일,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한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란느의 군단은 마세나와 함께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뤘다. 교전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 란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이 때 오스트리아 군 포대에서 날아온 포탄 하나가 땅바닥에 부딪혀 튕겨 오르며 란느의 꼬여 있던 두 다리 한가운데에 명중한다. 쓰러진 란느는 부관에게 "별거 아냐. 나 좀 일으켜 주게" 라고 얘기했으나,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1809년 5월 에슬링. 란느와 나폴레옹]


 

그는 양 다리를 다 잘라내어야 했다. 그의 다리가 잘리는 동안 황제 나폴레옹은 그 곁에 서서 눈물 흘릴 뿐이였다고 한다. 란느가 일주일 후 결국 부상의 악화로 죽었을 때, 나폴레옹은 대성통곡을 하며 '친구'이자 휘하 최고의 명장의 죽음을 슬퍼했다.


란느는 다부와 마세나와 함께 나폴레옹의 수하들 중 '최고'의 반열에 올려지는 장수다. 전략, 전술에 대한 이해와 응용이 탁월했으며 늘 주변상황에 대한 판단이 명확했다. 이탈리아 전쟁 때부터 나폴레옹의 친구였으며 나폴레옹에게 있어 그의 죽음은 가장 안타까운 손실이었다. 그 후 몇년 간 나폴레옹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란느의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누가 전에 베시에르를 두고 '은영전'의 '키르히아이스'와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아니다. 키르히아이스는 란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을 터.


[에슬링 전투 두 달 전에 그려진 란느의 초상화.]





참고로, 란느의 가계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직계손인 필립 란느 드 몬테벨로는 현재 미국의 뉴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을 지내고 있다.



이 연재 기획의 전 글들을 읽으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kalnaf.egloos.com/tag/26MarechauxDeNapoleon



ps. 현재 이 연재기획을 진행하면서 "반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반도 전역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많을 것을 감안, 곧 새 연재 "Peninsular War"를
병행 진행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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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토끼집' : 베시에와 란? 2013-03-04 13:23:38 #

    ... http://kalnaf.egloos.com/2263543#4321905 http://kalnaf.egloos.com/2272806#4321904 뮈라님이 이 글을 보실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래전에 쓴 글에 상세한 덧글을 달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블로그를 ... more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1/30 16:16 #

    이번 건 좀 슬프네요....ㅠㅠ
  • 파도지기 2009/01/30 16:18 #

    읽으면서 정말 키르히아이스를 떠오르게 만드는 장군이더군요.
    믿고 한 독립된 부대를 맡길수 있는....
    이런 부하이자 친구를 일찍 보낸 건, 남아있는 친구에게도 충격이 크죠.

    그나저나 다부는 좀 아는데, 메세나는 잘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 5명뿐이지만, 올려주시는 글에서
    나폴레옹은 중간에 란느나 베시에르가 전사해 버렸으니...참
  • 愚公 2009/01/30 16:18 #

    ...포탄 하나가 땅바닥에 부딪혀 튕겨 오르며 란느의 꼬여 있던 두 다리 한가운데에 명중한다.

    ==> 이거... 좀 심하게 잔인한 장면이었군요...
  • 들꽃향기 2009/01/30 16:55 # 삭제

    조금만 위로 날아갔으면 내가 고자라니...가 나왔을듯 ㄷㄷㄷ

    개인적으로 프랑스 장군중에서 스페인 전역에서 유일하게 보나파르트의 한계를 읽은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 나아가는자 2009/01/30 17:56 #

    아무 교육도 받지 않고, 나선 전쟁터에서 입신양명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대단한 인물이군요.
  • 데프콘1 2009/01/30 18:09 #

    헐 역시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베트남이었군요
  • 멀더요원 2009/01/31 14:44 # 삭제

    그래서 많은 사가들이 나폴레옹의 실질적인 실패는 러시아의 무리한 공략이 아닌

    스페인 공략이라고 봅니다.

    게릴라때문에 그토록 고생을 하고 여기에서 많은 병력을 까먹었으니...
  • 계원필경&Zalmi 2009/01/30 21:25 #

    비록 죽음이 허무하지만 명장입죠...(랄까나 '반도전쟁'은 결국 나폴레옹판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였다는...)
  • 굽시니스트 2009/01/31 07:29 #

    키르히아이스 - "저 빌어먹을 금발의 애송이가 우리를 다 죽게 만들고 말거야."
    언제나 감사히 잘 뵙고 있삽니다 굽신숩신
  • 윙후사르 2009/01/31 13:20 # 삭제

    상당히 유능해보이던 인물이 갔네요.
  • 멀더요원 2009/01/31 14:35 # 삭제

    이 편은 란이군요... 게임 랑펠러에서 능력치는 리더쉽 B 보병 B 기병 C 포병 B였는데...
    마르몽과 능력치가 같았는데 저는 주로 이상하게 란보다는 마르몽을 더 사용했다는...

    제 주력 부대는 언제나 나폴레옹 포병, 다부 보병, 마르몽 포병 여기에 베시에르나 뮤라의 기병을 썼는데..

    흥미로운 인물이죠.. 유일하게 나폴레옹과 맞짱을 뜰 만큼 뛰어난 부관이니...

  • 멀더요원 2009/01/31 14:40 # 삭제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자료들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나폴레옹 휘하의 원수들에 대한 책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사수 2009/02/01 14:32 #

    베시에르에 이어서 란.. 그 둘이 끝까지 살았더라면 정말로 역사가 바뀌엇을 것 같네요;;
  • USAF 2009/04/28 17:10 #

    막스갈로 나폴레옹을 읽으면서 이부분이 제일 안타까웠습니다
    원수 중에서 그나마 허영심이 적었고 충성심이 높았던 군인이었는데말이죠...
    나폴레옹에게 불행한건 유능한 장군들이 어이없게 전사해버리는거죠
  • 크루이트 2009/12/13 20:48 # 삭제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제정시대에 관해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느꼈는데...
    정말 장 란이 죽었을때 가장 아쉽기도 하고 슬프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워털루전투때 그루쉬가 아닌 란이 프로이센군을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어땠을까라고도 생각해보고...
    장 란의 대한 일화중에 정말 멋있다고 느낀게 하나 있었는데
    무슨 전투에서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간에 어떤 전투에서 자신이 지휘하던
    프랑스군 척탄병들이 적의 완강한 저항에 쉽게 공격을 못하자
    '이몸도 원수이기 전에 일개 척탄병이었다' 라고 외치면서 직접 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면서
    백병전을 벌였다던가...
    결국 프랑스군이 적의 저항을 뚫고 이겼다고 하더라고요...정말 인간적으로도 재능으로도
    호감이 가는 인물은 란이 아닌가 합니다.
  • 뮈라 2013/03/02 14:54 # 삭제

    장 란느는 일본식 발음이고 실제로는 장 란입니다. 그리고 키는 대단히 작았습니다.
    이집트 원정에서는 목에 총상을 입엇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이태리 원정에서는 총상을 세군데나 입고도 선봉을 서는 초인적은 용맹을 보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장면 말인데 에슬링이 워낙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서 상처가 화농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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