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26 원수: 나폴레옹의 수하들 - 06. 베르티에

'참모장' 베르티에.

그는 나폴레옹의 다른 장수들과는 달리
전장에서 말에 올라 칼 쥐고 선봉에서 돌격하는, 그런 류의 화려한 장수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맡겨진 임무를 정확성을 가지고 수행하며 전체적 작전을 보조하는 '참모형' 장군이었다.



06.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 Louis Alexandre Berthier (1753~1815) 원수.



베르티에는 1753년 2월 20일 프랑스 베르사유 근교에서 프랑스 육군 공병대 장교였던 장 밥티스트 베르티에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 밥티스트 베르티에는 어린 아들 루이 알렉상드르에게 군대와 전쟁지식을 교육시켰고, 당연하게도 루이 알렉상드르는 17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다. 처음에는 공병대에 들어갔지만 훌륭한 근무성적과 함께 용기병 연대에 배속받으며 1780년에는 자원병 부대에 지원, 북아메리카로 가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전한다. 독립전쟁이 끝났을 때 베르티에는 중령의 지위에 있었다.

베르티에는 천성이 부관 또는 참모형 장교였으며 그 덕택에 주요 지휘관들의 부관직을 전전하며 근무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베르사유 국민 근위대의 참모장이었으며 바스티유 함락 직후 이어진 폭력 사태에서 루이 16세의 친척들을 보호하고 탈출시켰다.

그러나 그 전적에도 불구하고 베르티에는 혁명정부로부터 공격받지 않았으며 1792년의 전쟁에서는 뤼크너 원수의 참모장을 지냈으며, 뤼크너 원수가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기요틴에서 참수되는 동안은 켈레르만 장군 휘하에서 참모장으로 복무, 계속해서 실패 없는 성공적 경력을 쌓아 나간다. 1796년에는 신설된 이탈리아 방면군의 사단장이자 참모장 직에 임명되었으며, 이는 곧 이 이탈리아 방면군을 총지휘하게 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바로 곁에서 보좌하게 됨을 의미했다.

96년의 이탈리아 전역 내내 베르티에는 나폴레옹을 도왔으며 나폴레옹은 베르티에를 신임하게 되었다. 베르티에는 임무에 대한 열성, 정확성, 빠른 이해력, 소규모 교전에서 포위공성, 대규모 야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풍부히 갖춘 장교였으며, 이는 그를 훌륭하고 이상적인 참모장으로 만들어주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준비로 자리를 비운 동안 베르티에는 이탈리아 방면군을 총지휘했으며 바티칸을 공격하고 피우스 6세를 프랑스에 볼모로 잡아오기까지 했다.

안개달 쿠데타 때 베르티에는 이미 완전한 보나파르티스트였으며 적극적으로 쿠데타에 조력했다. 통령 정부 기간 동안 그는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마렝고 전역에서는 예비군의 총사령관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예비군 사령관은 명목 상이었고, 베르티에 본인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나폴레옹의 바로 옆에서 실질적인 참모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베르티에는 군사작전 뿐 아니라 여러 내정과 외교활동에 투입되었고, 1800년 스페인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한다.


[아우슈테를릿츠 캠페인 무렵의 베르티에.]


나폴레옹은 1804년에 베르티에를 다른 18명의 장군들과 함께 원수로 진급시켰고, 베르티에는 그 직후 아우슈테를릿츠, 예나, 프리틀란트 전역에서 총참모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1809-10년의 반도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직접 이베리아로 진군했을 때도 나폴레옹을 개인적으로 보좌했고, 이는 1814년 폐위될 때까지 나폴레옹이 수행한 모든 군사작전들과 전투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이 폐위되어 엘바로 쫒겨났을 때 베르티에는 돌아온 루이 부르봉 18세에게 용서받았으나 정치나 군사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장원과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취미인 매사냥과 조각에 매진했으며, 나폴레옹이 100일 천하로 귀환했을 때는 나폴레옹과 부르봉 어느쪽의 편도 들지 않고 조용히 머물렀다.


그는 1815년 6월 1일에 밤베르그의 자택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 워털루 전투가 있기 2주 전의 일이었다. 그의 사인은 명확하지 않다. 어두운 와중에 잘못 운신한 건지, 자살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건 아닌지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이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고, 어쨌든 그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앞서 말했듯, 베르티에 원수는 개별 지휘권을 맡지도, 화려하게 무용을 뽐내지도 않았으며 그저 조용히, 정확하게 총사령관을 보좌한 이상적인 참모장이었다. 야전 용병가로써의 능력은 없었는지 몰라도, 그는 참모장이 해야하는 일들을 묵묵히, 훌륭하게 해냈다. 나폴레옹이 수행한 거의 대부분의 작전들은, 베르티에의 뛰어난 작전수립, 실행 능력 덕택에 가능할 수 있었다.


이번 편이 짧을 수 밖에 없는건 그 때문이다.
멋지게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돌격, 이런 것도 없고, 그렇다고 행정과 보급, 작전계획 입안 등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노릇도 아니니, 그저 '훌륭한 참모장이었다' 라는 소리만 반복할 수 밖에.
하지만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자리가 필수 불가결의 요소라는걸 굳이 따로 말 할 필요는 없으리라.




전체 글들을 읽으려면 아래 링크 클릭

http://kalnaf.egloos.com/tag/26MarechauxDeNapoleon


다음편은 누구를 할까.
다음편은 켈레르만 원수가 되겠다.




자료 출처 : David Chandler가 총 편집하고 여러 학자, 군인들이 공동 집필한 "Napoleon's Marshalls"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2/03 17:30 #

    뭔가 엄청 평범한.........ㄷㄷ
  • 침묵제독 2009/02/03 17:47 #

    전 이런 타입들에 대한 평가가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에서 멋진 승리를 이끄는 장수는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겠지만,
    이런 장수들에겐 믿음을 주고 싶네요.
    마지막 죽음이 참 석연치가 않군요.
  • 나아가는자 2009/02/03 17:48 #

    잘 읽고 갑니다.^^
  • 계원필경&Zalmi 2009/02/03 18:12 #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죠...(평범하지만 필요한 원수이군요...)
  • 소시민 2009/02/03 18:32 #

    나폴레옹과 다른 원수들 보다 연령이 많이 높은 것 같군요...
  • blus 2009/02/03 20:24 #

    이번엔 은영전의 케슬러가 생각나네요.ㅎ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아일턴 2009/02/03 23:23 #

    blus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케슬러 또한 극중에서 조용하지만 유능한 인물이었죠
  • 티이거 2009/02/03 23:50 # 삭제

    베르띠에로군요.... 최고의 참모장...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이유중 하나가 베르띠에의 부재라는 소리도 있죠... 단 다른 원수들을 베르띠에를 무지 싫어했답니다. 오만하다고... 덤으로 나폴레옹에게 대놓고 잔소리를 할 수 있었던 직위와 능력을 겸비한 원수였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58126
983
4707574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17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