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1808~1813)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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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5월의 오포르토 전투 직후 술트와 그의 프랑스 군단은 포르투갈을 빠져나가 후퇴했으나 웰즐리는 술트를 쫒지 않았다. 영국군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포르투갈 수비'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기회가 포착된다. 프랑스에 대한 저항을 지속 중이던 쿠에스타 장군 지휘하의 스페인 정규군과 합류하여 일전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웰즐리는 즉각 본국에 편지를 보내어 스페인 영토로의 진군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답장은 그가 편지를 보내고 2주 후인 6월 11일에 도착했는데, 국방장관 캐슬레이가 조성한 여론 덕택에 웰즐리의 요청은 허가되었다.

즉각 웰즐리는 2만 1천 명의 영국-포르투갈 군을 이끌고 타구스 강줄기를 따라 스페인 내로 진입한다. 영국군이 쿠에스타의 스페인군 3만여명과 합류한 것은 7월 20일 오로페사에서였다. 오로페사는 수도 마드리드로부터 100마일 이내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마드리드 탈환이 눈 앞에 와 있는 순간이었다.


[스페인군 사령관 쿠에스타. 이 판화는 젊을 적 모습. 1809년에 그는 이미 70세를 넘보는 나이였다.]


웰즐리와 쿠에스타가 이런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스페인 내의 프랑스군이 여러곳으로 넓게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술트의 군단은 다시 재편성과 보급을 끝마친 상태에서, 네의 군단과 모르티에의 군단과 합쳐 하나의 큰 군세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은 영국군과 포르투갈에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포르투갈 재침공 준비를 하고 있던 이 군세는 멀리 북쪽의 자모라에 위치해 있었고, 영국군과 스페인군이 합류한 오로페사로부터는 일주일 거리였다. 이 때 마드리드를 지킬 수 있는건 빅토르 원수 휘하의 제 1 군단 2만 3천 명과 세바스티아니 장군 휘하의 제 4 군단 1만 5천 명, 그리고 마드리드에 위치한 죠셉 보나파르트 왕 직속의 1만 5천여명이었다.


죠셉 보나파르트와 프랑스군 수뇌부는 영국군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겨우 7월 22일이나 되어서야 입수했고, 이 때 이미 영국-스페인 연합군은 마드리드로부터 70마일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프랑스군은 그제서야 황급히 수비 전략을 수립하는데, 일단 세바스티아니 장군의 제 4 군단과 빅토르 원수의 제 1 군단이 합류해야만 했다.

웰즐리와 쿠에스타도 이 정보를 확인했고, 마드리드로 진군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세바스티아니의 군단이 빅토르의 군단과 합류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에 쿠에스타는 마드리드 남동쪽의 세바스티아니 군단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베네가스 장군의 1만 여명 규모의 스페인군에게 명령을 내려 세바스티아니의 이동을 막게 한다.

그런데 베네가스 장군은 쿠에스타와 사이가 안좋았다. 쿠에스타는 무능하고, 늙었으며 고집이 센 지휘관이었고 베네가스 또한 유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베네가스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바스티아니의 군단은 7월 24일에 빅토르 원수의 군세와 무사히 합류 했으며 손쉬운 승리의 기회는 물건너간다.

이 때 쿠에스타는 당장 마드리드로 진군할 것을 제의하는데 이 때 영국군은 물자가 다 떨어졌다. 보급 상황을 크게 염려한 웰즐리는 진군을 거부한다. 일단 스페인측으로부터 군량을 사기로 했으나, 그 군량은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웰즐리는 군량 보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자기 휘하의 영국군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잘 알았다. 굶주리게 되면 생각없이 약탈에 나설 것이 뻔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쿠에스타는 혼자서라도 가겠다며 영국군을 내버려둔채 전진했다.

쿠에스타가 전진한 시점은 세바스티아니와 빅토르의 프랑스군이 합류한 시점과 동일한데, 이 때 자기 군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군대를 맞닥트린 쿠에스타의 스페인군은 즉각 대오도 갖추지 못한채 후퇴한다. 이들은 다시 7월 26일에 영국군과 탈라베라에서 합류한다.

탈라베라는 웰즐리가 선택한 전장이었다.


[1809년 7월 27-28일 탈라베라 전투]



이곳으로 진군해 온 프랑스군은 빅토르 원수가 총지휘하는(그리고 죠셉 보나파르트 왕이 관전) 4만 6천 명이었으며 이를 막아내야할 영국-포르투갈 군은 2만 1천명에 여기에 스페인군이 3만 3천명에 달했다. 숫적으로는 5만 4천의 연합군이 더 우세했으나 문제는 스페인군이 겉잡을 수 없을만큼 오합지졸이라는데에 있었다.

7월 27일에 탈라베라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스페인군은 아주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전장 상황 파악을 위해 보내진 프랑스군 척후 기병대가 스페인군 쪽으로 슥 달려왔고, 이 기병들에게 스페인군 선견대가 일제사격을 가한다. 그런데 이 사격 소리에 뒤에 있던 부대가 '프랑스군이 벌써 여기까지 다가왔다! 영국군이 무너진게 틀림없어!' 라는 식으로 착각, 혼란을 일으켰고, 전투는 아직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약 2천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당장 대오를 무너트리고 '패주'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통제해야 할 쿠에스타 장군은 늙은 몸에 부상까지 입어 골골하게 '누워'있는 상태에서 전투를 지휘해야 했다. 결국 지레 겁 먹고 도망갔던 병력은 간신히 제어되어 전장에 복귀했지만, 결과적으로 영국군은 스페인군의 조력을 그다지 신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전투를 치뤄야 했다. 스페인군이 공격을 견뎌내기를 기대하는게 무리라 생각한 웰링턴은 쿠에스타에게 가장 방어하기 쉬운 지점을 골라주었고, 그 덕에 프랑스군은 스페인군 방어선으로는 제대로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27일 저녁에 프랑스군은 대대적인 전면공세를 영국군 진영 중앙에 가했고 격렬한 공방전이 오간 끝에 이 공세는 양 측의 무승부로 끝난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을 때도 영국군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언제 프랑스군의 공세가 재개될 지 몰랐던 상태에서 이들은 제대로 휴식 없이 대기해야 했다. 숫적 열세의 군대가 방어전을 치를 때 흔히 있는 일이었다.

프랑스군의 빅토르 원수는 28일 오전 5시가 되어서야 공격을 재개했는데 이 공격은 전면 공세로 이어지지 못했다. 죠셉 왕과 그 보좌관 쥬르당 원수, 그리고 세바스티아니 장군과 빅토르는 제대로된 의견 조율이나 작전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였고, 빅토르의 군세만이 공격에 참가한 것이다. 이 공격은 프랑스측이 큰 피해를 입은채 격퇴된다.

28일 아침에 프랑스군의 전면 공세가 대규모 포격과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역시 집중되지 못한채 전선 전체에 걸쳐 분산되었으며 이 때 웰즐리의 배치가 빛을 발했다. 영국군은 고지대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고, 프랑스군은 한 여름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 저지에서 고지로 올라 전진해야 했으며, 느리게 올라오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적절히 배치된 영국군은 효율적으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진공에 실패한 프랑스군이 등을 돌려 후퇴하면 영국군은 어김없이 고지에서 저지로 착검 돌격을 감행했고, 이 때마다 프랑스군은 큰 손실을 입었다.

[돌격하는 제 48 보병 연대.]

[돌격하는 제 29 보병 연대.]



저지대의 평지에서 공세를 받은 것은 기강과 규율이 제대로 잡힌 근위 보병대Foot Guard 연대들을 포함한 보병들이었는데, 이들은 엄폐물이나 높이의 이점 없이도 세바스티아니 휘하의 프랑스군 공격을 제대로 잘 막아낸다. 이 부분에 있어서 영국 근위 보병대는 영국의 보병대가 프랑스의 보병대를 대등한 규모로 상대했을 때 얼마든지 호적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결국 2시간에 걸친 아침 공세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게다가 영국군의 포격은 점차 일점 집중포화로 바뀌었고, 프랑스군이 공격을 가하는 진로에 그대로 불벼락이 떨어졌다. 이 때에 이르러 전군에 걸쳐 병력 소모가 지나치게 심해졌으며 공격을 재개한다 해도 성과를 거둘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 프랑스군 지휘부는 후퇴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28일 낮까지 4만 6천의 프랑스군 병력 중 무려 7천 5백 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거나 포로가 된 상태였다.


[탈라베라 전투 종결 후 부상자를 운송하는 영국군 병사들]


물론 영국군의 피해도 대단히 컸다. 2만 1천의 원 병력 중 5천 4백이 죽거나 다치고 실종되었다. 전군의 1/4의 손실이었다. 장교들의 피해도 컸으며 여단장급 장성이 둘이나 전사했다. 한편 스페인군은 전투에 별로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쿠에스타는 병력 손실을 1천여명 상당으로 보고해왔다. 스페인측의 이 손실이 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군이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긴 했으나, 영국군은 물자도 부족한데다 마찬가지로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탈라베라 전투의 결과 영국의 전술적인 승리였으나 전략적 규모로는 무승부였고, 영-서 연합군은 더 이상 마드리드로 진군해 들어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웰즐리가 염려했던, 멀리 북쪽에 위치해 있던 술트 원수 휘하의 5만 5천 대군이 영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남진하는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 만약 영국군의 동쪽에 술트의 군세가 위치하게 된다면, 마드리드와 포르투갈 사이에서 영국군은 그대로 고립, 전멸당하게 될 공산이 컸다. 8월 1일 술트의 군세의 동향을 보고받은 웰즐리 경은 쿠에스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즉각 기수를 돌려 포르투갈로 돌아간다.



........

한편 스페인군은 홀로 남았으나 어쨌건간에 이들은 마드리드로 무모하게 진격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바 데 또르메즈와 오카나에서 죠셉 왕과 빅토르 휘하의 프랑스군에 의해 완벽히 격멸당했다.








* 참고서적





http://kalnaf.egloos.com/tag/PeninsularWar



ps.

비중과 페이싱 조절하는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 써 놓고 보니까 너무 전투 하나의 세세한 부분에 문자를 많이 할애한 것 같습니다.
이래가지고 언제 1813, 또는 너 나아가 1814년 뚤뢰즈까지 기술하겠나 싶어서..

앞으로는 전투 개개의 경과에 대해 기술하는 부분을 좀 줄여야 겠습니다.

덧글

  • Allenait 2009/02/18 11:24 #

    스페인군 이거 의외군요. 그래도 어느 정도 힘은 발휘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총 소리에 지레 겁먹고 패주라니.

  • 데프콘1 2009/02/18 12:50 #

    유명한 일화죠. 자기 총소리에 놀라서 튀기-_-;; 물론 그당시에 실탄 훈련을 한 영국이 대단합니다.
  • 윙후사르 2009/02/18 14:45 # 삭제

    저 스페인군. 분명히 16세기~17세기 중엽까지 테르시오로 온 유럽을 덜덜 떨게 하면서 모든 공격을 다 튕겨내던 그 친구들 맞습니까?
  • 시쉐도우 2009/02/18 15:22 #

    윙후사르 님//뭐... 제2차 세계대전때 추태를 보여준 프랑스군이나 이탈리아 군도 한때는 유럽(과 그 인근지역)을 호령했던 선조가 있었지 않습니까? ( ");; 프랑스 제국이나 로마 제국의 영광은 어드메요~~( ");;

    그나저나 자기들이 쏜 총탄에 놀라서 도망치는 수준의 군대를 가지고 마드리드를 독자탈환하겠다고 덤빈 쿠에스타 장군이야 말로...뭘 믿고 진격한 건지.--;; (그냥 의무감? 뿐이었다면 좀 난감..--;)

  • umberto 2009/02/18 17:57 # 삭제

    아아... 한때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신대륙을 정복했으며 유럽을 호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의 후예가 고작 총소리에 놀라 도망가다니....... --;;;;;;;;; 나라가 망쪼가 들면 정말 어쩔 수 없나 봅니다.
  • 나아가는자 2009/02/18 21:09 #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뛰어난 무기나 보급이 아니라, 싸우려는 의지와 용기 그리고, 기강인거 같습니다.
  • Lorein 2009/02/19 08:18 # 삭제

    나아가는자/ 뛰어난 무기와 보급이 결국 싸우려는 의지와 용기, 기강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죠.

    뛰어난 지휘관을 비롯한 재사들의 진가가 드러나는건 열악한 상황에서라는 또다른 증거로군. 하지만 프랑스군이 당시 저정도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단것도 좀 놀라운데..요 전 포스팅들도 좀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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