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자료: 반도전역에서의 술트 원수의 땡깡





반도 전역에 있어 중기에는 스페인 침공 프랑스군에 확실한 수뇌부라는게 없었습니다.

각 군들이 따로 활동하고, 뭔가 통일된 사령부라는게 부재한 상태인거지요.
이게 굉장히 불편한 겁니다. 최고 통수권자인 나폴레옹은 스페인에 안오고 계속 중유럽에서 싸우거나 파리에 머물고 있고, 스페인 전역은 사실상 그곳에 파견된 원수들이 알아서 꾸려나가는 상태였거든요.


[스페인 왕 죠셉 보나파르트]



스페인 왕위에 앉은 죠셉 보나파르트는 동생 나폴레옹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 "지휘권을 통일해 달라" 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나폴레옹은 형의 요청에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안돼. 나 말고 누가 그 지휘관들을 다 통솔할 수 있겠나? 지휘권을 누군가에게든 맡기면, 지휘권을 받지 못한 다른 자가 불만을 품고 명령에 응하지 않을거야. 불편하겠지만 계속 그런 상태로 동등한 권한의 지휘관들이 상호 협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셔."

그 말은 사실이었죠.

1812년에 반도 전역에서 영국군이 우세를 점할 기미가 보이자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떠나기 직전에 전령을 보내서 지휘권을 통일시킵니다. 반도 전역의 총사령부를 마드리드로 정하고, 죠셉 보나파르트가 통솔권을 지니며 그 군사적 보좌는 쥬르당 원수가 담당한다는 것으로 정한거지요.


여기에 다른 원수들이 불만을 품었습니다. 쥬르당 원수가 좀 존재감도 없었는데다가, '혁명 전쟁 때 정점을 찍은, 지금은 그냥 은퇴하셔야 할 노인장'으로 취급했고, 왕 죠셉 보나파르트를 "군사軍事라고는 X도 모르는 민간인" 정도로 무시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황제의 명령이 있으니 다들 여기에 복종하긴 했는데, 한 명 여기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니꼴라 술트 원수입니다.


[장-드-듀 니콜라 술트 원수.]




죠셉 왕은 1812년 1월에 바다호스 요새와 시우다드 로드리고 요새가 위험에 빠지자 술트의 군세를 불러들여 이를 방어하려고 했는데, 술트는 "카디스 공략이 더 중요함" 이라고 하며 왕명을 무시합니다. 영국군의 공세를 이 시점에서 막을 수 있는건 마르몽 원수의 포르투갈 방면군밖에 없었고, 이들만으로 웰링턴의 영국-포르투갈군을 막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구요. (게다가 카디스는 어차피 난공불락인 상태로 건드리지도 못한지 2년이나 된 상태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병력도 많았던 술트가 이를 무시함으로 인해 이어지는 살라만카 전투에서 영국군이 승리합니다.

여기에 1812년 여름에 수도 마드리드까지 끝장 나서 후퇴하게 된 죠셉이 다시한번 전군을 집결시키려 하는데, 술트는 계속 이에 불응하며 "싫삼 니들이 나 있는 곳에 오세요. 내가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이 더 중요함" 이란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더 웃기는건, 계속된 의견 충돌에 화를 낸건 죠셉이 아니라 오히려 술트 원수였다는겁니다. 그는 죠셉 왕이 스페인 귀족들과 암약을 맺고 부당 이득을 보려 했다는 모함을 담은 편지를 나폴레옹에게 보냅니다. 문제는 이 편지를 전달하기로 한 배의 선장이 프랑스로 안가고 영국 지중해 함대 때문에 그냥 다시 발렌시아에 정박해서, 마침 그곳에 있던 죠셉에게 이 편지를 전달했다는거죠. 죠셉도 일단 보나파르트고 황제의 형이니까 전달하면 되겠지, 싶어서 전해준건데, 당연히 죠셉은 이걸 읽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그래서 죠셉은 동생 황제에게 즉각 편지를 보냅니다.

"나 이런 사람이랑 더 이상 같이 일 못해먹겠다. 얘 좀 짤라줘"


그 편지는 전달되는데 두 달이 걸려서 모스크바에 가 있던 나폴레옹에게 전달됩니다.

그 편지가 황제에게 당도한 시각은 바로 모스크바가 잿더미가 된 바로 다음 날.
전군 철수와 그 끔찍한 모스크바 퇴각전의 시작이었는데요, 심신이 지친 나폴레옹은
답장에 그냥

"지금 스페인에 술트만큼 능력있는 지휘관은 없으니까, 그냥 둘이 화해해서 잘 협조해서 난국을 타개해봐" 라고 적습니다. 사실 그거 말곤 답이 없었죠.


그 답장이 오기도 전에 워낙 심성이 여린(?) 사람이었던 죠셉은 그냥 술트를 따로 불러다가 "다 잊고 화해하자"고 했는데, 그럼에도 술트는 여전히 비협조적으로 뻣뻣하게 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 때 술트가 잘 협조했다면 웰링턴의 진공은 불가능했을 겁니다만....



아무튼 이 무렵 술트 원수의 행동들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만큼 하극상에 몰상식한 것들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프랑스의 반도 전쟁 패배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거지요.

전에 썼던 "술트원수" 글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묘사를 안했기 때문에
뒤늦게 보충하는 의미에서 썼습니다.



참고자료: Glover, Michael. "The Peninsular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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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토끼집' : 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 14 (1809~1814) : 비토리아를 향해. 2010-06-22 12:18:37 #

    ... 에, 참모장을 대신 맡을 사람으로 니꼴라 술트 원수가 발탁되어 그 2만명과 함께 스페인에서 차출된다. 죠제프 왕 입장에서는 그 사이 나쁘던 술트가 없어져 (술트 원수의 땡깡참조) 그제서야 스페인 방면군에 대한 통일된 지휘권을 확보할 수 있어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곧 나폴레옹 본인이 스페인 방면의 전략에 개입 ... more

덧글

  • 들꽃향기 2009/03/28 10:10 #

    이런 땡깡질을 부릴만큼 나폴레옹이 신임했다는 건데...;; 정작 그런 인물이 정치적 행보는 박쥐였다니요 ㄷㄷ
  • 萬古獨龍 2009/03/28 10:32 #

    이래서 역사란.... 후후.
  • Allenait 2009/03/28 11:57 #

    역사란 이래서 참(..) 고집이 역사를 망치는군요
  • 행인1 2009/03/28 12:33 #

    지휘권을 통일해야 하는걸 다들 아는데 그걸 맡을 사람이 없었다라.... 참 안습이군요.
  • 미친고양이 2009/03/28 15:15 #

    지난 포스팅과 같이 읽어보니 반도전역에서 영국에게 포섭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군요.;;;
  • 조이 2009/03/28 15:17 # 삭제

    흐흠... 그것 참.... 그런데 죠셉 보나파르트도 의외로 능력있었던 모양이네요.
  • 황제 2009/03/28 23:55 #

    나름대로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평판을 받았죠.
  • FELIX 2009/03/28 16:19 #

    한마디로 키르히아이스급 인재의 부족이라 할 만 하네요. 원체 나폴레옹대의 업적이 개인의 천재성에 많이 기댄지라 전역이 광역화될 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지요.
  • hawkeye 2010/02/22 22:30 # 삭제

    아니 근데 왜 나폴레옹은 한때 술트 원수를 유럽 최고의 장군이라고 칭찬했을까요?
  • 방랑자 2010/02/22 22:50 # 삭제

    아우스터리츠에서 술트의 활약을 보면 그런 말에 하나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확실히 고집부리며 엉망으로 하긴 했지만 비토리아 전투 이후에는 웰링턴을 상대로 정말 훌륭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뭐 사실 술트의 최대 삽질은 백일천하 당시 참모장으로서의 삽질이지만 이건 시킨 나폴레옹의 삽질이 더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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