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4월 10일, 미국 버지니아주 어포마톡스 법정 건물 앞.
"I am glad to see one real American here."
(여기 '진짜' 미국인이 있다는게 기쁘군.)
-연맹군 항복식에서 세네카 족 인디언 출신의, 연방군 엘리 S. 파커 준장을 발견한
연맹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대장이 한 말.
"We are all Americans, sir."
(우리 모두가 미국인입니다, 장군님.)
-로버트 E.리 대장의 말에 대한 엘리 S. 파커 준장의 대답.
"I am glad to see one real American here."
(여기 '진짜' 미국인이 있다는게 기쁘군.)
-연맹군 항복식에서 세네카 족 인디언 출신의, 연방군 엘리 S. 파커 준장을 발견한
연맹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대장이 한 말.
"We are all Americans, sir."
(우리 모두가 미국인입니다, 장군님.)
-로버트 E.리 대장의 말에 대한 엘리 S. 파커 준장의 대답.
태그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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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Silverfang 2009/04/07 09:19 # 답글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싶은데정확히 어떤거다! 라고 정의하기엔 저로써는 무리네요;
월광토끼 2009/04/07 10:27 #
아래 아예네님이 잘 해석해 주셨습니다.
Allenait 2009/04/07 10:19 # 답글
단 한 단어로 수많은 뜻이 담겨 있군요.리 대장의 진짜 아메리칸은 요즘 식으로 하는 native american 이겠고, 파커 준장은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 말 같습니다.(...맞나요..?)
월광토끼 2009/04/07 10:26 #
바로 그런 뜻이죠.
Allenait 2009/04/07 10:43 #
맞는 말이었군요.. 감사합니다간혹 가다가 American 이라는 말은 그때 그때 다른 경우가 많아서 많이 헷갈리더군요
제노테시어 2009/04/07 10:24 # 답글
저때 엘리 준장이 북군 장군들 중에는 가장 기품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항복서명서를 엘리 장군이 작성했다던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군요.;;;
월광토끼 2009/04/07 10:26 #
어유,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네, 엘리 준장도 그 서명서의 작성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그 서명서는 엘리 준장의 글씨로 쓰여 있습니다.
월광토끼 2009/04/07 10:28 #
아니, 엘리 준장이 아니라 '파커 준장' 이어야 하지만..
울트라김군 2009/04/07 10:56 # 답글
체임벌린 소장이 서명서를 작성하면 내용이 점점 철학적으로 변할거 같군요[...]
월광토끼 2009/04/07 16:07 #
철학적이라기보단 수사적, 문학적이 되겠지요 -_-
울트라김군 2009/04/07 17:07 #
아 그렇군요...-ㅅ-
이네스 2009/04/07 15:04 # 답글
우문 현답이군요.
월광토끼 2009/04/07 16:07 #
그 말대로입니다.
jager 2009/04/07 15:05 # 답글
항복 문서 자체는 그랜트가 초안을 잡지 않았나요?
월광토끼 2009/04/07 16:06 #
물론 그랬지요. 그랜트의 초안에 파커와 다른 사람이 같이 수정, 보완했고..
gforce 2009/04/07 18:19 # 답글
다만 Real American 하면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모 주지사=_=
윤민혁 2009/04/07 19:06 # 답글
엘리 파커가 준장이 된 건 1866년 기병대 전과 이후 1867년 3월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찾아보니 1865년 4월 9일에 준장이 됐다는 이야기도 보이는군요.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에선 중령으로 나오고... 좀 찾아봐야 할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865년 의용군 준장 대우 정규군 중령, 1867년 3월 정규군 준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1863년 정규군 공병중위로 임관, 의용군 대위 대우 참모장교가 됐다는군요)
월광토끼 2009/04/08 12:43 #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제가 확실하게 하지 않은 부분을 언급해 주셔 감사합니다.정확히 말하자면 1867년 3월 2일에 연방정부의 전공 심사를 통해 정규군 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윤민혁 2009/04/08 18:46 #
오, 역시 67년 3월 정규군 준장 진급이었군요. 1865년 종전 이후 공병중령에서 군복을 벗지 않고 기병으로 전과한 것에도 당시 육군총사령관이었던 그랜트와 이것저것 관련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마침 그 시기에 작은 인디언 전쟁이 두 차례 정도 있었고, 그 해결에 파커가 개입했었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본인 의사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랜트도 인디언 전쟁 관련해서 파커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고 보입니다.
Cicero 2009/04/07 21:47 # 답글
얼마전부터 남부연맹편에 섰던 체로키족에 관한 포스팅을 작성하는 입장에서 좋은 정보가 된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월광토끼 2009/04/08 12:47 #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만, 되려 별로 쓴 것도 없는 입장에서 부끄러워집니다.여담이지만, 전 나중에 독립전쟁시 모호크 족의 추장이었던 죠셉 브란트에 대해서도 쓸 예정입니다.
키케로님께서 올리신 체로키족 와티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조이 2009/04/08 12:13 # 삭제 답글
그런데 정말 파커 준장이 아메리카 인디언 출신이었나요? 당시에 유색인종이 무려 장군이 되는게 믿겨지지가 않아서....
월광토끼 2009/04/08 12:45 #
위 윤민혁 님의 덧글과 제 답글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엘리 사뮤엘 파커는 혼혈도 아닌, 이로쿼이 인디언 연합체의 하나인 세네카 족 출신 순수 인디언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군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임관도 허락되지 않았지만 마침 그의 절친한 친구가 이후 연방군 전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율리시즈 S. 그랜트였다는 점에서 파커에게는 운이 따른 것이죠.
윤민혁 2009/04/08 19:09 #
월광토끼님 말씀대로 순수 인디언입니다. 이로쿼이 인디언 연합체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주로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인디언이라 타 지역 인디언들처럼 절멸전쟁에 노출되지는 않아서 - 17세기와 18세기에 미국과 전쟁을 한 후에 상당히 고생하긴 했지만, 평원인디언처럼 명백한 운명 따위에 노출되지는 않았습니다. - 연방정부와 전쟁상태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백인들과 함께 공부를 하거나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공직은 어려웠어도요. 파커의 경우 1830년대 후반에 법관이 되려고 법률사무소에서 일했고, 직장에서도 따돌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법률사무소 장기 근무로 법관 시험 응시자격이 생긴 뒤에야 "유색인종의 응시는 받지 않는다"는 내부규정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정도였죠. -_-; 그 뒤에 토목공학 교육을 이수하고 나서는 연방정부에서도 별 거리낌 없이 꽤 중요한 임무를 맡길 정도는 됐습니다. (그가 1852년 이후 세네카족의 족장(Sachem)이었다는 것도 작용은 했으리라고 봅니다만.) 당시 완공된 지 얼마 안 됐던 에리 운하 보수임무를 맡아서 미국을 거의 가로지르는 여정에 오르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월광토끼님이 소개한 그랜트와의 우정도 이 시기에 다진 겁니다.그때 그랜트는 아버지 공장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불우한 퇴역 대위에 술고래였죠. -_-; 그랜트는 젊은 시절부터 인디언 전쟁 및 대외침략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인디언 토목기술자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절멸정책에 가까운 인디언 정책을 추구했습니다만, 그 배경은 연방정부를 공개적으로 적대하는 - 그 원인은 고려하지 않고 - 인디언의 소탕과 정부에 협조하는 인디언의 보호였으므로, 남북전쟁 참전을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연방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견해에서 시작된 것이지 인종차별이나 명백한 운명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파커와 친구가 되고, 대통령이 되자마자 파커를 육군성 직할 인디언 문제 담당관으로 뽑아버리는 파격을 저지른 거죠.
또한 파커가 저 정도 직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내전 상황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랜트가 파커를 임관시켰던 1863년은 빅스버그 공략작전 중이라 부대기동 및 병참유지에서 공병대의 힘이 크게 필요했는데 마땅히 믿을 만한 공병장교가 없었고, 엘리 파커는 1850년대 초반부터 연방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하 관련으로 전국을 누빈 꽤 저명한 토목공학기술자였기 때문에 그랜트가 그의 입대명령을 받아내기가 그나마 수월했죠. 게다가 일단 입대한 지 1년만인 1864년 초에 그랜트가 정규군 중장으로 육군총사령관이 된 덕분에 더 이상 큰 공병 일이 없었던 동부전선으로 그랜트를 따라간 뒤에도 유색인종으로서는 매우 순조롭게 복무한 편입니다.
조이 2009/04/08 19:23 # 삭제 답글
그랬군요. 월광토끼님. 윤민혁님.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