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한가운데 섰던 어느 후작님 이야기.



미국과 프랑스와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다난한 것이었다. 미국이 건국된 후부터 계속.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불화 정도는 늘상 있는 일이다.

그런 프랑스의, 프랑스인 중에 미국에서 '국부' 의 하나로 대접받는 사람이 있다.




때는 미국독립전쟁. 그것도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1777년 7월 31일 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시의 어느 식당.


하루의 노곤한 업무를 끝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있던, 대륙군Continental Army 총사령관 죠지 워싱턴 중장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온다. 워싱턴은 이미 그 사람의 도착에 대해 의회로부터 통보받은 후였다. 그 사람은 외국인, 그것도 프랑스에서 온 갑부 귀족이었다.

이미 아무런 도움도 안 되며 아무 일도 안하는, 그러고선 거들먹거리기나 하고 급료도둑의 역할만 톡톡히 하고 있던 외국인 자원자(주로 귀족)들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던 워싱턴 중장으로써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프랑스인은 워싱턴을 보자 호들갑스럽게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인 특유의 호들갑스러움과 함께 과장된 친근함을 표시하며, 치기어린 열정을 과시했다.

“오우, 아메히깽 사람 너무 좋아요! 독립! 헤볼루씨옹! 엉글레들의 폭압을 물리치는겁니다! 오오 워싱똥 장군, 존경합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 당장이라도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씹씁니다! 나에게 1개 사단의 지휘권만 맡겨 주시면...”

워싱턴은 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거 순 아직 남자도 안된 애송이가 아닌가?!
대륙군 총사령관은 이 애송이를 형식적으로 짤막하게 환영하고 자리에서 떴다.
‘이 놈은 또 왜이리 들이대?’ 정도를 생각하며.






그게 당시 갓 열아홉 살이 된 라파예뜨 후작 쥘베르 뒤 모띠에와,
당시 45세에 접어든 죠지 워싱턴 중장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석 달 안에 그 둘- 미국인과 프랑스인은 가족;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 둘은 남은 전쟁기간 내내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그 프랑스인은 복무 1년 만에 소장 게급으로 정말 1개 사단 병력을 지휘하게 되며, 블랜디와인, 몬모스, 요크타운 등의 전투에서 용전분투하며 싸웠다. 본국인 프랑스로 돌아갈 때마다 본국 정부와 귀족들을 설득하며 미국에 대한 지원과 원조를 늘리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1788년. 프랑스 파리.

이젠 30세가 된 쥘베르 뒤 모띠에는, 자신의 귀족 작위조차 내던진 채 3부 회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제 1계급이나, 제 2계급이나, 제 3계급이나 모두 동일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유 토지가 아닌, 사람 머릿수로 투표합시다!”

제 1계급과 제 2계급의 사람들은 물론 이 말을 듣지 않았다.
1년 후에 그는 테니스 코트에서 농성중인 사람들과 합류했다.





1834년 5월 20일. 라파에트 후작 쥘베르 뒤 모띠에는 폐렴으로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떴다. 73세의 나이였다.
말년에 그는 전국적인 흑인 노예 해방을 의회에서 소리 높여 주장하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였다.
그래서 국왕 루이-필립은 일반 대중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군대로 막았다.



라파예트 후작의 사망소식이 미국에 닿자, 미합중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국장으로 답하도록 지시했다.

그에 따라, 이때까지 두 전 대통령들, 죠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의 장례식 때와 똑같은 예우와 등급으로 조의가 표명되었다. 각 요새와 군항들에서 25발의 예포를 발사하며 묵념했고, 전군의 장교들은 6개월 간 검은 칼라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했다. 35일간 미국 전역에서 성조기가 조기로, 다시 말해 깃대의 절반 부분에 매달려 휘날렸다. 국회는 의사당 내부에 검은 색의 천을 30일간 걸어놓음과 동시에 전 국민에게 상복을 입어줄 것을 종용했다.


그의 장례식 때 그의 관은 그의 아들 죠르쥬가 미국의 벙커 힐에서 직접 퍼 담아온 흙으로 덮여졌다.





당대 프랑스의 대문호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은 모띠에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라파예트 씨가 죽었다.
생각해보면 난 지금까지 그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에게 불의를 저지른 것 같다.
난 지금껏 그를 일종의 바보로 묘사해 왔었다.
두 얼굴의 사나이.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영웅이지만 이쪽에서는 광대로 취급받는 사람.
하지만 아니었다. (중략)
그의 생애에는 한 점의 얼룩도 없다. 그는 상냥하고, 자상하며, 고결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정원 라파예트 파크]


[프랑스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새 연재 기획 예고였습니다.
제목은 "혁명의 후작" (미정) 정도?

보신 바와 같이 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뒤 모띠에 (1757~1834) 의 생애를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기획한 글입니다.

본편은 연구/조사에 시간이 더 걸리는 관계로 한참후에나 써 올릴 예정입니다.

원래는 "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다음편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시간이 모자라게 되어서 이걸 올립니다.


덧글

  • Allenait 2009/04/16 15:37 #

    그래서 라파예뜨라는 이름이 미국 역사속에 있는 것이었군요.
  • 월광토끼 2009/04/16 15:45 #

    미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이름들 중 하나이지요. Founding Fathers 의 한사람으로써..
  • 르-미르 2009/04/16 15:41 #

    제 1계급과 제 1계급의 사람들은 물론 이 말을 듣지 않았다.
    뒷부분은 2계급의 오타이신 것 같습니다.
    // 라파예트라는 단어는 발음이 괜찮은 것 같아요. 어떨땐 멋있어보이기도 하고 어떨땐 부드럽기도 하고.
  • 월광토끼 2009/04/16 15:46 #

    지적 감사합니다. 방금 수정했습니다.
    어감이 좀 괜찮긴 하지요 :)
  • Silverfang 2009/04/16 15:50 #

    흡사 영화의 예고편같은 장면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갑니다.

    1777년 조지 워싱턴과 만난 프랑스의 풋내기 귀족.
    그가 서 있던 곳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는 왜 대서양을 오가며 자신을 불태웠는가?

    미국의 또 다른 국부 라파예트!
    그의 생을 다시금 조명한다.

    뭐 이런식? (이상 뻘리플 끝~)
  • 플루토 2009/04/16 16:03 #

    멋진 사람이군요. 기대됩니다~
  • 오제영 2009/04/16 16:15 # 삭제

    굉장한 사람이었군요!!!

    헐리웃영화에서 백악관이 나올때면 보통 저 동상도 같이 보이는데, 전 당연히 미국인이겠지 했는데 프랑스인이였다니...
  • 인터노바 2009/04/16 16:53 #

    1차대전때 미국인들로 구성된 의용비행단인 라파예뜨 에스까드릴 이름도 이 분 이름에서 따 온거죠.
    예전에 프랑스가 우리 미국을 도왔듯이, 이제는 미국이 프랑스를 돕겠다는 의미로.
  • 네비아찌 2009/04/16 17:18 #

    1960년대 미 해군의 핵탄두 미사일 잠수함 중에도 "라파에트" 함 class가 있었지요. 이정도면 거의 대통령들과 동급이죠....
  • 함부르거 2009/04/16 17:53 #

    오오~~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 Cicero 2009/04/16 18:25 #

    라파예트 일대기를 보면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퍼시 윈드햄 경이 생각납니다. 영국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1848년 프랑스혁명에 혁명군 가담, 이후에는 가리발디의 이탈리아통일운동에 가담하다 남북전쟁발발하자 북군기병장교로 자원복무했죠.

    라파에트 못지 않게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부하들에겐 악명높은 체벌로 유명했다죠. 이양반 기분나쁘면 자기 수염배배꼬는게 버릇이었는데, 나중엔 수염에 손만대도 부하들이 긴장했다더라는...

  • 羅睺星 2009/04/16 18:26 # 삭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군요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네비아찌 2009/04/16 18:42 #

    참, 느낀 바 있어 트랙백 해갑니다~
  • 이준님 2009/04/16 18:44 #

    1. TIMELINE191 시리즈에서는 USA와 사이가 나빠진 프랑스인지라 미국에 현존하는 라파예트 거리가 "힌덴부르크 거리"로 바뀌어집니다. (하기야 자유의 여신상 대신에 지금 스탈린그라드 전승기념탑 복수의 여신이 뉴욕항에 서있는 대체역사 월드니까요)
  • 데프콘1 2009/04/16 19:11 #

    오옷 정말 멋진 사람이네요
  • 미스트 2009/04/16 19:24 #

    진짜 귀족.
  • 륜페이 2009/04/16 20:49 #

    후작은 그냥 하던 대로 생활했을뿐이고 하던대로 살아야할뿐임 ㅋㅋ

  • 꽃곰돌 2009/04/16 20:52 #

    멋진 사람이죠^^ 중학교 시절에 흠뻑 빠졌던 위인 중 한 명이었다는...
    그런데 삶을 알고 나서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저렇게 살 지 말아야지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 萬古獨龍 2009/04/16 21:16 #

    오오, 새로운 연재이십니까아?!?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겠습니다아..!
  • 황제 2009/04/16 23:33 #

    또 다른 진정남이군요.
  • 침묵제독 2009/04/17 00:59 #

    프랑스에 대해 별로 좋다고 생각안하지만,
    라파예트 이사람은 참 흥미있더군요.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티이거 2009/04/17 19:59 # 삭제

    당시 미국 독립에 일익을 담당한 유럽인으로 프리드리히 대왕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장교를 보내(프로이센 장교들 수준 아시죠?^^) 얼치기 대륙군들을 훈련시키고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전제군주가 민주주의 국가의 독립을 지원했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 자신이 상당한 수준의 철학자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중에 대왕이 폐렴으로 죽자 미국에서도 조기를 달고 애도를 표했다는....
  • 나아가는자 2009/04/18 12:45 #

    루이 필립국왕은 집권 초기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정치를 폈다고 알고있었는데, 집권한지 4년밖에 안된시점에서 라파예트의 장례식을 방해할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월광토끼님께서 전에 말씀하신대로 라파예트가 입헌군주정을 주장했다면, 입헌군주정을 받아들였던 루이 필립과 그렇게까지 대립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네요.
    + 라파예트에 대해서는 저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 메낚 2009/04/19 15:58 # 삭제

    미국 혁명이 자세히 따져 보면 사실 경제적인 기원이 더 크다고 하지만, 당시 바다 건너 제국에 맞서서 싸우는 계몽주의의 투쟁이라는 낭만적인 이념적 요소 또한 꽤 커서 프랑스 뿐만 아니라 폴란드나 아일랜드 같은 곳에서도 코슈치슈코나 풀라스키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싸웠지요. 스페인 내전 까지 이어지는 국제 자유주의의 열풍은 여기서 시작된 셈입니다.

  • 밤비마마 2011/08/14 13:43 #

    라파에트 후작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등잔밑이 어두워서 월광토끼님의 포스팅을 이제야 봣네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인물입니다. LA 엔 한인타운 근처 후줄근한 동네에 La Fayette 길이 하나 있어서
    지나갈때마다 아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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