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리 와우를 하고 부족을 해도 역사 포스팅은 꾸준히 합니다-
1812년 6월, 미국인들이 "제 2의 독립전쟁"이라고 과장해 부르기도 하는 전쟁인 "1812년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전 대통령인 존 아담스는 그 아들이자 아버지처럼 정치가인 존 퀸시 아담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해군은 너무나 릴리퍼트인스러워서, 걸리버가 그 위에 물을 쏟으면 그대로 깊이 수장되어버릴 것이다." -(our navy) .... is so Lilliputian that Gulliver might bury it in the deep by making water on it.-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난쟁이 나라 릴리퍼트에 비유)
이 비유도 사실 미해군에게는 과분한 평가였다.
덩치비교는 이 포스트( http://kalnaf.egloos.com/2379397 ) 참조.
캐나다에 배치된 영국해군의 북아메리카 전대만해도 74문의 3등급 전열함과 다섯 척의 프리깃, 그리고 네 척의 슬루프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1개 전대만으로도 미해군의 전체를 박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탓에, 개전 직후 뉴욬에서는 영국 해군 전함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당당히 들락날락하면서 항구를 오가는 미국 상선들을 유유히 약탈하고 나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 해군은 그 거대한 영국해군을 3년 후 종전의 순간까지 끈질기게 괴롭힌다.
사실 미해군은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전쟁의 불씨가 타오르고, 양국간의 외교/사회적 분위기가 악화일로로 치닫으며, 영국해군이 마구 바다를 활보하고 있던 1812년 1월에조차,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이 상정한 프리깃 10척의 추가 건조안은 공화당원들로 가득찬 의회에서 즉각 기각당했다. 이 국회의원 나으리들은 "해군의 성장은 국가를 폭정과 제국주의와 끊이지 않는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것"이라며 해군 규모 확장과 관련된 모든 안들에 반대했다.
또는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 아담 지베르트의 말처럼, "우리 배들은 기껏해야 영국 해군의 전력목록을 (나포당함으로써) 늘려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어차피 싸우면 무조건 박살날건데 뭐하러 수를 늘리냐'는 견해가 팽배해 있었다. 그랬기에 선전포고 직전인 5월에는 군용 선창과 조선소의 건축과, 전열함의 건조에 대한 안들이 하원과 상원 양쪽에서 모두 부결되었다.
정치가들만 막장인게 아니라, 해군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다. 미해군이 개전 당시 보유하고 있던 군함들은 그 1/3이 너무나 낡고 유지보수도 되지 않아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해군성은 해전은 커녕 바다일 전반에 완전히 까막눈인 무능한 민간 정치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랬기에 각 함의 함장들이 자력, 현장판단으로 작전을 수행해야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대서양 건너편의 영국에서 몇몇 사람들은 신중을 기하자는 의견과 함께 걱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영국의 잡지 "The Statesman"지는 "바다의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도 더 어려운 상대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거의 우리 영국인들과 대등할정도로 바다와 해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프랑스인들은 상상조차 못할 대담한 전략들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는 논지의 기사를 실었다.
외교관이자 영국 하원의원이던 어거스터스 포스터는 개전 직전에 캐나다 핼리팩스에 주둔중이던 북아메리카 전대의 지휘관 해군중장 허버트 소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함대는 미 해군 함선들과 1대1 교전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해군이 숫적으로는 극미했지만 함선 일기토에서는 우세할 가능성이 있으며, 영국해군이 전함을 단 한 척이라도 미해군에게 잃게 될 경우 사회 여론에 굉장한 악영향과 사기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포스터 의원의 예측은 거의 예언 수준으로 들어맞았다.
1812년 6월 18일에 전쟁이 시작된 직후 영국해군의 전략은 캐나다의 자국 무역로를 보호하는 한편 미국의 주요 무역항들을 모조리 봉쇄해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미해군 준장 존 로져스 제독은 미해군의 전 함선들을 모두 한 곳에 집중시켰다. 전세계 바다에 나가있는 미국의 상선들 대부분은 아직 자국에 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선들을 영국 해군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전략이었는데, 정말 영국 함대는 소수의 함선들이 전력이 집중된 미해군에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도 전력을 집중시켜야 했으며, 그 덕택에 항구 봉쇄가 풀려 거의 꽤 많은 수의 미국 상선들이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미 함대는 다시 흩어져 영국 무역로를 치고빠지는 전략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여기서.



1812년 7월 12일, 아이작 헐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Constitution"이 영국해군 프리깃 HMS "Guerriere"와 매사츄세츠 앞바다에서 마주쳐, 35분 동안 격전을 치뤘다. 게리에르는 주 마스트들을 모두 잃고 엄청난 사상자와 함께 컨스티튜션에게 항복했고, 직후 배는 불태워져 침몰했다.
10월 25일, 북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해군 프리깃 HMS "Macedonian"이 스티븐 데카투르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United States"와 마주쳤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압도적인 포격을 마세도니안에게 퍼부었고, 마세도니안은 그대로 항행불능 상태에 빠져 항복했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마세도니안을 나포해 보스턴 항까지 끌고갔다.
12월 29일, 윌리엄 베인브릿지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Constitution"은 브라질 앞바다에서 영국해군 프리깃 HMS "Java"와 마주쳐 세시간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결국 자바는 4백명의 선원 중 13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상태로 항복했고, 선체의 침수상태가 심각해 그대로 침몰되었다.
영국 해군의 준 기관지인 "Naval Chronicle"지는, 이 패배들에 대해 "입에 담기도 고통스러운 주제"라고 표현했다. 이 부끄러운 패배들에 대해 영국 내에서 해군의 자성을 요구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대한 변명들도 터져나왔다.
미해군 프리깃들이 일련의 교전들에서 영국해군 동급함들에 대해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미해군 프리깃들이 동급 영국 함선들에 비해 우월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미해군 프리깃들은 전폭과 전장이 모두 영국 프리깃들보다 넓고 길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대포들을 장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튼튼하고 큰 선체 덕에 그 많은 포들도 보다 더 강력한 포들로 이루어졌다. 영국 해군 프리깃들이 38~48문의 18 파운드 포들을 장비하는 동안 미해군 프리깃들은 54문의 24파운드 대포들로 무장했다.
또한 건조에 사용된 목재와 설계도 미군 함선들이 더 단단하게 되어있었다.
HMS "Java"와 USS "Consitution"이 교전을 벌였을 때, 자바는 선체 곳곳이 박살났으며 주 돛대가 날아가는 피해를 입었던 반면, 자바에서 발사한 포탄들은 컨스티튜션의 선체에 아무 손상도 주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이 전투 덕에 컨스티튜션은 별명으로 "The Old Ironside"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차이는 영국인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패배의 이유였다.
'프리깃이라고 발표해 놓고선 실제로는 전열함이었다! 우린 프리깃대 프리깃 싸움이 아닌 프리깃 대 전열함의 불공정한 싸움에서 진거야!' 라는.
그래서, 영국 해군성Admiralty는 1813년에 이런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해군성 장관 존 W. 크로커가 각 함대 사령관들에게.-
[국왕 폐하의 모든 프리깃들은 앞으로, 미국놈들이 비록 '프리깃'이라고 부르지만, 훨씬 더 크고, 많은 포를 장비하여 '프리깃'이란 함급을 훨씬 넘어서는, 오히려 '전열함'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배들과 1대1의 교전을 벌이는 것을 가능한한 최대로 회피하라. 만약 적함과 마주치게 될 경우 될 수 있으면 거리를 유지한 채 지원군을 기다려 합류, 수와 기동력의 우세를 점하여 승리가 보장되었다고 판단될 때만 공격하라.]
(전문 번역은 귀찮아서 그냥 서머라이즈했다.)
원어 전문은 아래.

실제로 이게 효과가 있어, 1814년 3월 28일에는 미해군 프리깃 USS "Essex"가 영국해군의 프리깃 HMS "Phoebe"와 HMS "Cherub"과 교전, 나포되었고, 1815년 1월에는 또다른 미해군 프리깃 USS "President"가 프리깃 4척으로 이루어진 영국해군 1개 전대에 포위되어 항복했다.
하지만 그걸로 오케이?
미해군이 '그저 동급함에 비해 성능이 좋은 함' 몇척을 보유했을 뿐?
전략을 바꾼 영국해군은 미해군을 그대로 발랐나?
아니었다.
1812년 6월, 미국인들이 "제 2의 독립전쟁"이라고 과장해 부르기도 하는 전쟁인 "1812년의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전 대통령인 존 아담스는 그 아들이자 아버지처럼 정치가인 존 퀸시 아담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해군은 너무나 릴리퍼트인스러워서, 걸리버가 그 위에 물을 쏟으면 그대로 깊이 수장되어버릴 것이다." -(our navy) .... is so Lilliputian that Gulliver might bury it in the deep by making water on it.-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난쟁이 나라 릴리퍼트에 비유)
이 비유도 사실 미해군에게는 과분한 평가였다.
덩치비교는 이 포스트( http://kalnaf.egloos.com/2379397 ) 참조.

[The ROYAL NAVY]
캐나다에 배치된 영국해군의 북아메리카 전대만해도 74문의 3등급 전열함과 다섯 척의 프리깃, 그리고 네 척의 슬루프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1개 전대만으로도 미해군의 전체를 박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탓에, 개전 직후 뉴욬에서는 영국 해군 전함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당당히 들락날락하면서 항구를 오가는 미국 상선들을 유유히 약탈하고 나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 해군은 그 거대한 영국해군을 3년 후 종전의 순간까지 끈질기게 괴롭힌다.
사실 미해군은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전쟁의 불씨가 타오르고, 양국간의 외교/사회적 분위기가 악화일로로 치닫으며, 영국해군이 마구 바다를 활보하고 있던 1812년 1월에조차,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이 상정한 프리깃 10척의 추가 건조안은 공화당원들로 가득찬 의회에서 즉각 기각당했다. 이 국회의원 나으리들은 "해군의 성장은 국가를 폭정과 제국주의와 끊이지 않는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것"이라며 해군 규모 확장과 관련된 모든 안들에 반대했다.
또는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 아담 지베르트의 말처럼, "우리 배들은 기껏해야 영국 해군의 전력목록을 (나포당함으로써) 늘려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어차피 싸우면 무조건 박살날건데 뭐하러 수를 늘리냐'는 견해가 팽배해 있었다. 그랬기에 선전포고 직전인 5월에는 군용 선창과 조선소의 건축과, 전열함의 건조에 대한 안들이 하원과 상원 양쪽에서 모두 부결되었다.
정치가들만 막장인게 아니라, 해군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다. 미해군이 개전 당시 보유하고 있던 군함들은 그 1/3이 너무나 낡고 유지보수도 되지 않아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해군성은 해전은 커녕 바다일 전반에 완전히 까막눈인 무능한 민간 정치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랬기에 각 함의 함장들이 자력, 현장판단으로 작전을 수행해야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대서양 건너편의 영국에서 몇몇 사람들은 신중을 기하자는 의견과 함께 걱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영국의 잡지 "The Statesman"지는 "바다의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도 더 어려운 상대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거의 우리 영국인들과 대등할정도로 바다와 해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프랑스인들은 상상조차 못할 대담한 전략들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는 논지의 기사를 실었다.
외교관이자 영국 하원의원이던 어거스터스 포스터는 개전 직전에 캐나다 핼리팩스에 주둔중이던 북아메리카 전대의 지휘관 해군중장 허버트 소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 함대는 미 해군 함선들과 1대1 교전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해군이 숫적으로는 극미했지만 함선 일기토에서는 우세할 가능성이 있으며, 영국해군이 전함을 단 한 척이라도 미해군에게 잃게 될 경우 사회 여론에 굉장한 악영향과 사기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포스터 의원의 예측은 거의 예언 수준으로 들어맞았다.
1812년 6월 18일에 전쟁이 시작된 직후 영국해군의 전략은 캐나다의 자국 무역로를 보호하는 한편 미국의 주요 무역항들을 모조리 봉쇄해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미해군 준장 존 로져스 제독은 미해군의 전 함선들을 모두 한 곳에 집중시켰다. 전세계 바다에 나가있는 미국의 상선들 대부분은 아직 자국에 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선들을 영국 해군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무사히 귀환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전략이었는데, 정말 영국 함대는 소수의 함선들이 전력이 집중된 미해군에게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도 전력을 집중시켜야 했으며, 그 덕택에 항구 봉쇄가 풀려 거의 꽤 많은 수의 미국 상선들이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미 함대는 다시 흩어져 영국 무역로를 치고빠지는 전략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여기서.



1812년 7월 12일, 아이작 헐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Constitution"이 영국해군 프리깃 HMS "Guerriere"와 매사츄세츠 앞바다에서 마주쳐, 35분 동안 격전을 치뤘다. 게리에르는 주 마스트들을 모두 잃고 엄청난 사상자와 함께 컨스티튜션에게 항복했고, 직후 배는 불태워져 침몰했다.
10월 25일, 북대서양 한가운데서 영국해군 프리깃 HMS "Macedonian"이 스티븐 데카투르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United States"와 마주쳤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압도적인 포격을 마세도니안에게 퍼부었고, 마세도니안은 그대로 항행불능 상태에 빠져 항복했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마세도니안을 나포해 보스턴 항까지 끌고갔다.
12월 29일, 윌리엄 베인브릿지 함장 지휘하의 미해군 프리깃 USS "Constitution"은 브라질 앞바다에서 영국해군 프리깃 HMS "Java"와 마주쳐 세시간동안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결국 자바는 4백명의 선원 중 13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상태로 항복했고, 선체의 침수상태가 심각해 그대로 침몰되었다.
영국 해군의 준 기관지인 "Naval Chronicle"지는, 이 패배들에 대해 "입에 담기도 고통스러운 주제"라고 표현했다. 이 부끄러운 패배들에 대해 영국 내에서 해군의 자성을 요구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에 대한 변명들도 터져나왔다.
미해군 프리깃들이 일련의 교전들에서 영국해군 동급함들에 대해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미해군 프리깃들이 동급 영국 함선들에 비해 우월한 설계였기 때문이다. 미해군 프리깃들은 전폭과 전장이 모두 영국 프리깃들보다 넓고 길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대포들을 장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튼튼하고 큰 선체 덕에 그 많은 포들도 보다 더 강력한 포들로 이루어졌다. 영국 해군 프리깃들이 38~48문의 18 파운드 포들을 장비하는 동안 미해군 프리깃들은 54문의 24파운드 대포들로 무장했다.
또한 건조에 사용된 목재와 설계도 미군 함선들이 더 단단하게 되어있었다.
HMS "Java"와 USS "Consitution"이 교전을 벌였을 때, 자바는 선체 곳곳이 박살났으며 주 돛대가 날아가는 피해를 입었던 반면, 자바에서 발사한 포탄들은 컨스티튜션의 선체에 아무 손상도 주지 못한 채 '튕겨' 나갔다. 이 전투 덕에 컨스티튜션은 별명으로 "The Old Ironside"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차이는 영국인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 패배의 이유였다.
'프리깃이라고 발표해 놓고선 실제로는 전열함이었다! 우린 프리깃대 프리깃 싸움이 아닌 프리깃 대 전열함의 불공정한 싸움에서 진거야!' 라는.
그래서, 영국 해군성Admiralty는 1813년에 이런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해군성 장관 존 W. 크로커가 각 함대 사령관들에게.-
[국왕 폐하의 모든 프리깃들은 앞으로, 미국놈들이 비록 '프리깃'이라고 부르지만, 훨씬 더 크고, 많은 포를 장비하여 '프리깃'이란 함급을 훨씬 넘어서는, 오히려 '전열함'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배들과 1대1의 교전을 벌이는 것을 가능한한 최대로 회피하라. 만약 적함과 마주치게 될 경우 될 수 있으면 거리를 유지한 채 지원군을 기다려 합류, 수와 기동력의 우세를 점하여 승리가 보장되었다고 판단될 때만 공격하라.]
(전문 번역은 귀찮아서 그냥 서머라이즈했다.)
원어 전문은 아래.

실제로 이게 효과가 있어, 1814년 3월 28일에는 미해군 프리깃 USS "Essex"가 영국해군의 프리깃 HMS "Phoebe"와 HMS "Cherub"과 교전, 나포되었고, 1815년 1월에는 또다른 미해군 프리깃 USS "President"가 프리깃 4척으로 이루어진 영국해군 1개 전대에 포위되어 항복했다.

[영국해군 전대에 포위된 미해군 프리깃 USS "President"]
하지만 그걸로 오케이?
미해군이 '그저 동급함에 비해 성능이 좋은 함' 몇척을 보유했을 뿐?
전략을 바꾼 영국해군은 미해군을 그대로 발랐나?
아니었다.























![Weezer - Raditude [Standard Version]](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8678242361_1.jpg)



덧글
Bluegazer 2009/05/17 08:50 # 답글
마스터 앤 커맨더의 프랑스 사략선 아르셰롱이 실은 미 해군 프리깃을 모델로 한 배였다더니 어째 겹치는 부분이 많네요. 프리깃이 아니라 전열함 수준이라는 평가라던가 최신형 설계라던가...
BigTrain 2009/05/17 09:55 # 답글
1970년대까지도 미해군은 독특한 프리깃 분류법 - 구축함보다 위의, 다른 나라였으면 '순양함'으로 분류될 법한 -을 유지하는데, 그게 유구한 전통이었군요.
萬古獨龍 2009/05/17 09:56 # 답글
오오... 갈수록 점점 흥미진진해지네요... 굿!
gforce 2009/05/17 10:09 # 답글
미국의 고립주의를 높게 평가하는 저로서는 공화당 의원들의 논거를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더군요.
지나가던과객 2009/05/17 10:11 # 삭제 답글
뭐지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는 백전불태'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은?미국은 영국애들에게 겁을 먹은 상태에서 자국 해군의 전력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위를 점한것 같네요
토나이투 2009/05/17 10:19 # 답글
요즘 관심 가지고 보는 보드게임이있는데...미국은 전열함 클래스가 없...그에비해 영국은 1급 에서 5급 까지 다 사용하고 전열함은...전열함은...
上杉謙信 2009/05/17 10:32 # 답글
한국해군구축함들이 실제 배수량을 보면 다른나라에선 프리깃인 경우가 많다던데 ㅋ
방랑자 2009/05/17 10:38 # 삭제 답글
최소한 "상"편에서는 "영국이 못해서가 아니라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진" 거군요. ...하편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사불상 2009/05/17 12:54 # 삭제 답글
급이 달랐다는거군요. 왠지 한국 해군과 미해군이 떠올라서 안습...그러나 저러나 개떼엔 답이 없는데 그래도 털린건가...
티이거 2009/05/17 13:01 # 삭제 답글
上杉謙信/ 그 다른 나라라는 동네는 당연히 성조기를 국기로 사용하는 동네겠죠? 문제는 예전 함선 분류포를 보면 충분히 구축함 클래스인데 그 동네에 비교되는 것이죠... 뭐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모 국가는 전함 클래스를 가지고 해협통과문제때문에 순양함이라 우기고 동아시아의 모국가는 최신형 순양함 클래스를 구축함이라 말하는 데요 뭐... 대함미슬 쇼크 이후 명확한 국제 기준 자체가 사라진 판국이라...^^
오제영 2009/05/17 13:06 # 삭제 답글
재밌게 보고갑니다.... 인데아악 또 절묘한 곳에서 끊으셨어!!!!!
Ciel 2009/05/17 13:20 # 답글
上杉謙信/ 한국이 과대평가를 하는게 아니라, 주요 강대국들이 자국의 함선 클래스를 과소평가하고 있는겁니다.일본이라던가 러시아라던가....
곤충 2009/05/17 13:32 # 삭제 답글
개함 우월주의orz어쨌든 이제 미해군의 프리깃이 나포되가기 시작하니 낙관적으로 보아도 작전에 나가서 돌 수 있는 놈들은 1~3척정도 일텐데, 어떻게 벼텼을지 궁금해 집니다.
엘에스디 2009/05/17 14:10 # 삭제 답글
음 making water on it은 '쉬야를 하면'이라는 뜻 아닐까요? 'ㅁ'
언논 2009/05/17 14:16 # 답글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지금 미해군을 생각하면 저런 평가들이 참 재미있네요. 그리고 USS Consitution이 함명이 지금도 쓰이나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함명이군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위장효과 2009/05/19 17:04 #
컨스티튜션은 저 프리깃함이 그대로 보존되어서 미 해군 현역 함선 명부에 아직도 올라있습니다. 함에 현역 해군 수병도 배치되어 있고요.
조이 2009/05/17 14:18 # 삭제 답글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당시 미국 해군의 개함우월주의, 굉장히 흥미롭네요. 그걸 보니까 우리나라 KD-3 세종대왕함이 다른 동급함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무장을 한 것도 떠오르고....
이준님 2009/05/17 14:38 # 답글
좀 마이너한 대체 역사물을 쓰는 모 작가의 책들인 독일제국의 함대와 싸우는 1902년이나 영국과 싸우는 1862년이라는 작품에서 미국 해군이 쓰는 전술이 바로 저런 거였지요. 승리는 불가능하다라는 아마존 평이 의외로 많았습니다만 그렇게 불가능한건 아니군요. (물론 그 소설들에서는 홀랜드의 잠수정이나 철갑함과 같은 미국의 신무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요)
Empiric 2009/05/17 14:57 # 삭제 답글
making water on it은 오줌을 싼다는 의미 같군요.
긁적 2009/05/17 19:58 # 답글
흠.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내용이네요. 다음호를 기대합니다.그나저나 와우와 부족전쟁의 와중에서도 양질의 포스팅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군요 (...)
윙후사르 2009/05/17 20:11 # 삭제 답글
도대체 미국의 프리깃이 영국의 전열함 급이면 미국의 전열함은 영국의 뭐가 되는 겁니까!!!
Allenait 2009/05/17 21:00 # 답글
전에 어디 보니까 영국군 함선은 타국의 함선보다 상태(퀄리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 같더군요. 나포된 적함이 최고였다 - 라는 글을 어디서 본것 같습니다
瑞菜 2009/06/24 18:37 # 답글
하긴 객관적 열세를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바다에서 프랑스 함대를 쓸어버린 영국에,
안 그래도 전쟁의 빌미가 영국 해군의 미국 선원 불법 강제 징병이었으니.
하지만 "전투는 쪽수가 아니라 근성인 것입니다?"
미국판 김화백의 양키 스피릿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