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 00

어느 명망 높고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 있다.

그가 성장하고 있을 무렵에 대서양 건너의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의 라이벌, 영국의 식민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 귀족은 젊은 혈기에 당장 그 ‘반란분자’들을 '자유의 이름으로 해방'시키는 것을 돕기 위해 자원해 대서양을 건넜다. 젊은 프랑스 후작나리께서는 처음에는 그 독립투사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았으나, 곧 그의 열정과 활약에 감동해 그를 인정했다. 그는 마치 자기 조국을 위해 싸우듯 식민지인들을 도왔다.

수년 후 전쟁은 끝나고 북미 대륙인들은 미합중국이라는 이름하에 독립을 쟁취했다. 이 때 그 프랑스 귀족은 미국인들에게 있어 어느새 ‘건국의 아버지들’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가 고향 프랑스로 돌아가자 프랑스인들은 그를 ‘젊은 스키피오’라고 부르며 전쟁영웅으로 환영했다. 그의 영향력은 증대되었다.

그동안 프랑스의 국내사정은 나날이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혁명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의 전장에서 ‘자유’의 기치를 내걸고 민주공화국을 세웠던 인물들과 나란히 싸웠던, 이제는 청년이 된 그 귀족은 귀족의 신분에도 민중들의 요구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삼부회의가 파국을 맞이하고, 강제 해산된 민회가 테니스장 건물에서 개최되었을 때 그 후작은 다른 귀족들을 설득, 이끌고 찾아가 시국선언에 동참한다.

프랑스 혁명기 내내 그는 중도파로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다. 하지만 점차 과격파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는 위기에 몰렸고, 군통제권을 잘못 사용했다. 과격파들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그는 미국으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국경을 건너는 와중에 오스트리아 군대에 포로로 잡혀, 수년간 차가운 감방에서 옥살이를 했다.

그가 간신히 풀려났을 때 이미 고향 프랑스에는 보나파르트의 통령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그 정부에서 자신이 맡을 일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은퇴했다.

훗 날, 노인이 된 그는 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인들은 이방인, 그러나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그를 꽃비를 뿌리며 환영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된 도시조차 세워져 있었다. 열렬한 환대에 이제는 후작이라는 귀족의 지위도 버린 그 프랑스인은 눈물 흘리며 감동받았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불-미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들먹여지는 이름이다.

그 이름, "라파예트"가 양국의 긴 인연 그 자체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기에.






-새 연재기획, "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예전에 쓰겠다고 큰소리 치고는 아직까지 버려두고 있었죠.
마침 A텀 수업 하나가 끝나서 약간 시간이 넉넉해졌고 쓸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 이제 갑니다?


http://kalnaf.egloos.com/tag/LifeOfLafayette


덧글

  • 르-미르 2009/07/30 12:37 #

    아, 기대됩니다! 두근두근..
  • 장웅진 2009/07/30 12:39 # 삭제

    프랑스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독립선언서 사본 옆에 "빈 양피지"를 걸어놨다던 그 분이시군요. -ㅅ-/
  • 장웅진 2009/07/30 12:41 # 삭제

    그러고 보면 라파예트 후작과 함께 일했던 토머스 페인도 말년의 라파예트 후작과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에게 고통을 당했고, 결국 혁명에 실망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죠. 대략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지난 10년"이 생각나서리... 하긴 그것이 지금의 "쥐폴레옹 등극"의 이유가 되었다고 저는 보네요.
  • 월광토끼 2009/07/31 09:50 #

    사실 '혁명가' 중에 진짜 제대로 된 '혁명'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토머스 페인같은 이상주의자나 그렇지. 그리고, '지난 10년'의 사람들에게 '혁명가'와 동일시할만한 무언가가 있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한국에 혁명은 있었지만 혁명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쥐와 나폴레옹이 동일시 될 만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 검투사 2009/07/31 21:38 #

    그냥 상황에 따른 "비유"입니다. ^^
    기실 저도 적어놓고서도 괴리감이 있다 싶으면서도 어차피... 싶어서...
    (그러고 보니 나폴레옹 1세 시절에도 제국 신민들의 생활은 팍팍했다더군요.)
    아무튼 월광토끼님 말씀 때문에도 <상실의 시대>에서의 미도리의 말이 더 생각나는군요.
    "대학시절에는 맑스니 뭐니 하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책 읽고 떠들어대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면 그들이 비판해댄 대기업에 입사하여 맑스 따위는 읽은 적도 없는 귀여운 아가씨랑 결혼하죠."
    나에게 "세상에 대해 모른다" "운동을 비웃다니 한심한 놈" 하던 자들이 제가 늦깍이 복학한 뒤에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미도리의 말이 틀리지가 않았구나 싶더군요. -ㅅ-
  • Allenait 2009/07/30 12:54 #

    오..!! 기대됩니다
  • Ha-1 2009/07/30 13:56 #

    벌써부터 '깨인'사람이었군요 ; 왠지 차남이나 막내가 아닐까 싶은 ;;

    어떻게 그런 자유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 dunkbear 2009/07/30 14:13 #

    오오... 기대되는군요. ^^
  • 나그네 2009/07/30 14:56 # 삭제

    드디어 새로운 포스팅~ 기대됩니다~
  • sprinter 2009/07/30 15:07 #

    오오 기대됩니다. ^^
  • 조이 2009/07/30 16:10 # 삭제

    정말 기대됩니다^^
  • 萬古獨龍 2009/07/30 16:50 #

    으음! 예전에 쓰신다고 하더니 이제 시작하시는거로군요~ 기대하겠습니다~
  • 네비아찌 2009/07/30 17:12 #

    드디어 라파예트 후작의 일대기를 시작하시는군요.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 소시민 2009/07/30 18:46 #

    기대됩니다 ++
  • 아빠늑대 2009/07/30 21:34 #

    아! 이거 이야기 해 보려고 꼬불쳐 뒀던건데... ^^
  • 계원필경Mk-2™ 2009/07/30 21:43 #

    그러고 보면 이사람의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고 볼 수 밖에 없죠...
  • asianote 2009/07/30 23:48 #

    프랑스는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굉장한 인물이 많이 나온 나라지요. 특히 계몽주의 시대의 인물들을 보면 정말 눈이 뒤집어집니다.
  • shaind 2009/07/31 21:49 #

    라파예트는 나중에 루이 필리프의 즉위(?)에도 영향을 미쳤던가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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