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 02.

본디 라파예트는 조용하고, 투박한 청년으로, ‘군인 가문’의 명예와 라틴어에는 해박했지만 소위 말하는 ‘궁정 예법’에 상당히 서툴렀다. 한번은 그가 파리에 있을 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주최한 파티에서 왕비 본인과 춤을 추게 되었는데, 그가 어찌나 춤과 예법에 서툴렀는지 왕비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폭소를 터트렸다고 했다. 그리고 라파예트의 이러한 성격을 그의 장인은 매우 못마땅해 했다.

노아이유 공작 가문에서 라파예트를 사위로 맞아들인 것은 거의 순전히 사윗감의 재부 때문이었다. 사돈이 될 라파예트 후작 가문에는 장성한 남자가 없었고, 라파예트 본인은 겨우 열일곱 살에 친가와 외가 양측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터였다. 노아이유 공작은 아마 쉽게 어린 사위로부터 재산을 떼어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라파예트 후작 본인도 결혼 얼마 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노아이유 공작과 라파예트 후작은 늘 사이가 안 좋았다. 장인이 시키는 일을 사위는 불복종하면서 훼방 놓았고 사사건건 대립하며 싸웠다.


한편, 라파예트는 1774년에 왕실 근위대를 떠나 노아이유 연대*의 대위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메츠의 주둔지에서 생활하며 세구르 백작 루이 필립 등 평생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런데 메츠 주둔지에서 라파예트는 상당히 특이한 존재였다.


*(부대 명 앞에 가문 이름이 붙는 것은 옛날 봉건시대의 잔재. 봉건 영주 개인이 소집한 가신들로 이루어진 부대. 물론 이제는 왕실 소유의 군대지만, 여전히 그 부대를 창단했던 오래된 가문들은 해당 군 부대들에 대해 상징적 권한을 가졌다.)



훗날 딸레랑 (혁명정부, 나폴레옹 1세, 루이 18세, 샤를 10세, 루이 필립을 모두 섬긴 외교관 / 외무장관)은 70년대를 회상하면서 “그 시절에 살아보지 못했다면, 행복이라는 게 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70년대가 젊은 귀족들에게 있어 최고로 걱정 없이 즐겁고 평온한 시대였다는 뜻이다. 이 때 프랑스의 젊은 귀족들은 캬바레를 전전하며 음주와 도박과 구애/연애와 매일 끊이지 않는 파티에 전념하는 것이 일상 그 자체였다. 이런 젊은 귀족들이 장교단을 이루는 군 주둔지 주변도 그러한 귀족적 여가생활의 온상이었다. 저녁때 병영에서 장교들을 보기란 힘든 일이었을 정도로 귀족들은 자신들의 복무기간을 노는 걸로 때웠다.


[이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한 장면. 이런 이미지를 상상하면 된다.]



이런 곳에 라파예트는 앞서 말했듯, 유별난 존재였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기혼남이었으나 혼외 연애행각 -다시 말해 불륜-에 몰두했고, 이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과 연애란 별개의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라파예트는 아내 아드리엔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썼으며, 그 편지에 자신의 일상생활 -친구들과 어울려 댄스파티에 가는 등-을 자세히 묘사했다. 또한, 그는 노는 일에 전념하는 자기 친구들과는 달리 실제 군사이론과 전략전술 공부, 병영생활 그 자체를 익혔다.

그가 그 군사기술을 실제로 활용하게 되는 것은,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프랑스의 젊은 귀족들이 한창 여자들 뒤를 쫓아다니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편의 영국령 북아메리카 뉴잉글랜드 식민지들에서는 반란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기에, 영국왕 죠지 3세의 동생인 글로세스터 공작이 결혼문제로 인한 형과의 불화로 영국을 뛰쳐나와 유럽 전역에서 방랑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1775년에 프랑스 메츠를 방문했고, 라파예트 후작이 북미 대륙의 반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글로스터 공작의 리셉션 파티에서였다.

이때부터 라파예트 후작은 ‘미 대륙의 고통받는 시민들이 영국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에 피가 들끓었다고 한다. 또는 그랬다고 그 자신이 수십 년 후에 쓴 회고록에 적고 있다. 당시 프랑스의 젊은 귀족-장교들에게 있어 미국 반란은 외인부대로 파견되어 전공과 명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처럼 여겨졌고, 라파예트 또한 그러한 명예욕 때문에 미국 독립 혁명에 관심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라파예트는 영국과 싸우다 전사한 아버지의 일 때문에라도 영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라면 뭐든 환영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리셉션 후 파리로 돌아온 라파예트는 미국독립에 대한 프랑스의 지원을 촉구하는 모임등에 참석하며 미국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프랑스에 파견된 미국대사 실라스 딘]



한편, 1776년인 이 때 미국에서 파견된 대사 실라스 딘은 프랑스의 지원을 얻기 위해 파리에서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공식적이고 외교적인 지원에 대한 확답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실라스 딘은 무턱대고 프랑스 군 장교들과 접촉해 미국 대륙군에서의 높은 직위와 보수를 약속하며 일종의 외인부대를 구성하려고 했는데, 이는 많은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그는 미 대륙 의회에서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넘어서는 무리한 제안들과 약속들을 남발했다. 그리고 그런 제안에 현혹된 장군이나 장교들은 미국에서 공을 세우고, 더 나아가 ‘그 야만인들을 구슬려서 그 후진국의 왕으로 군림’하려는 야망과 계획을 준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동안 1776년 7월, 미국의 독립선언.]



그렇게 해서 온갖 어중이떠중이들과 무능한 야심가들이 장교단의 상당부분을 구성, 미국에 대한 프랑스의 비공식 지원의 일환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라파예트는 비교적 늦은 1776년 12월에 실라스 딘과 접촉했기에 그는 다른 동료 장교들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향한다. 이 때 실라스 딘이 라파예트에게 약속한 것은 대륙군 준장의 지위였다. 라파예트는 꿈에 부풀어 출발을 준비한다.


하지만 젊은 후작이 출발을 기획할 때 즈음 영국 정부가 프랑스의 미국 반란주들에 대한 비공식적 지원에 대해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갑작스러운 외교마찰을 피하고자 한 프랑스 정부는 미국으로 출발하는 지원들을 일시 중단시켰는데, 이에 라파예트는 자신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이용, “라 빅투아르”라는 배를 한 척 사들인다.






http://kalnaf.egloos.com/tag/LifeOfLafayette

덧글

  • 카니발 2009/08/11 12:29 #

    배를 아예 한 척 샀다니... 역시 돈이 있어야 뭐가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나그네 2009/08/11 14:05 # 삭제

    대인배라고 밖에는...;;;; 역시, 악역이든 선역이든 역사에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일단 통은 크네요.;;;
  • dunkbear 2009/08/11 13:51 #

    남들이 놀 때 공부하다니... 헐헐... 대단한 분입니다. ^^
  • 조이 2009/08/11 14:54 # 삭제

    잘 읽었습니다. 초기 프랑스 지원자들이 좀 경악스럽네요. "미국가서 식민지애들을 구슬려서 왕이 되어야지" 라니.... 미국대사가 얼마나 큰 약속들을 남발했길래.....
  • 검투사 2009/08/11 14:57 #

    역시... 파리의 귀족들이 그냥 도왔을리가 없다 싶더니... =_=;
    "후진국의 왕이 되겠다"라... 대략 어느 나라 판타지 소설 등에서도 나오는 거 아닌지?
  • GQman 2009/08/11 16:36 #

    라파예트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http://kalnaf.egloos.com/2454972 이게 떠오르네요.
    리얼 엄친아. 능력이 되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다.ㄷㄷㄷ
  • 지나가던과객 2009/08/11 17:01 # 삭제

    그 당시 주류와는 약간 어긋나는 일편단심의 피끓는 청년이었군요
  • Allenait 2009/08/11 18:07 #

    야..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 계원필경Mk-2™ 2009/08/11 19:00 #

    저사람이 배를 사들여 신대륙으로 떠난지 200여년후에 바다 밑에 자기 이름의 잠수함이 다닌다고 생각하면 뭔가 기묘한 느낌이 드는 군요...
  • 효우도 2009/08/11 19:55 # 삭제

    남들 놀고 불륜할때 일하고 아내에게 편지 꼬박 쓰는 성실한 사람이군요.
  • 건방진 얼음의신 2019/02/04 18:27 #

    근데 나중에는 분륜을 저지르게 되죠 하하 ^^
  • 나아가는자 2009/08/11 20:31 #

    '배'라... 혁명을 지원하려면 돈이 필요하군요.
  • 홍월 2009/08/11 20:32 #

    좀 딴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보고 있으니 영화 라 파예트가 보고 싶어지네요ㅎ
  • 나디르Khan★ 2009/08/11 20:37 #

    역시 성실이 재산인건가요..물론 돈은 전제조건이고....
  • JOSH 2009/08/11 23:01 #

    미국에 못 가게 하면

    답 : 배를 사면 된다.

    ...
  • 2009/08/12 17:2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mperor 2009/08/20 00:19 # 삭제

    호오, 역시 라파예트는 비범하고 걸출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군요.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 2011/03/27 18: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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