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 03.


라파예트가 미국으로 갈 결심을 했을 때, 그리고 프랑스의 첫 비공식 원조 -프랑스 외교부의 공작원 보마르셰가 설립한 유령회사 소유의 무기, 기자재, 물자, 그리고 육군 장교단- 가 미국을 향해 막 출발했을 1776년 여름. 8월 27일 지금의 뉴욬 브루클린 일대에서 영국군과 미 대륙군 사이의 대규모 교전이 발생한다. 롱 아일랜드 전투. 영국 육군의 윌리엄 하우 중장의 포위섬멸 작전에 의해 워싱턴의 대륙군 1만은 2천여명에 달하는 사상자와 포로를 남기고, 남은 병력은 밤을 틈타 뉴욬에서 간신히 탈출하는 대패를 당한다.



소교모 접전이 나흘 더 이어졌고, 그 결과는 영국군의 뉴욬 점령이었다.

한두달 후 소식이 당도하자 프랑스 정계의 분위기는 삭 바뀐다. 외무 장관 베르젠느는 영국대사관에 영국의 승전을 축하하는 공식 서한을 전달했으며, 미국으로 향하는 원조는 일시 동결된다. 의회에서는 미국을 계속 도와야하는가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진행되었다. 싹수가 노란 자들을 뭐 하러 돕는단 말인가?



이런 와중에 라파예트의 친지들은 미국으로 가려는 라파예트의 계획을 반대하고 나선다. 라파예트의 장인은 ‘그런 쓸데없는 일’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충고했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라파예트는 오히려 더 미국으로 향하고자 했다.

그는 자기 상관의 비서의 동생 [..;;;] 의 도움으로 프랑스 남서쪽의 보르도 항에서 비밀리에 선원 30명이 항해하는, 배수량 100톤이 채 안되는 작은 선박 “라 빅투아르La Victoire"을 구입하고, 여기에 물자와 무기를 가득 채워 넣는다. 그는 이 사실을 가장 친한 친구들은 물론 아내에게까지 비밀로 했다. 행여나 항구에서 배가 정부에 압류당하는 일이라도 있을까봐 라 빅투아르 호는 스페인 북부의 작은 항구로 옮겨져 계류되었으며 라파예트 본인은 스페인으로 곧장 가는 대신, 자신의 의도를 숨길 영국으로 건너가 관광여행을 즐긴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미국대사와 합의가 되어 있던 몇몇 다른 장교들과 함께 이 일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베르사유에서는 이러한 장교들의 미국행을 막으려 했으나, 라파예트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1777년 4월에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관광 여행을 가기로 한다. 그와 아내 아드리엔 사이에는 이미 두 살 난 딸 앙리에타가 있었고 아드리엔은 또 다른 아이로 임신 5개월 째였다. 그러나 라파예트에게는 사랑하는 가족보다도 영광과 이상이 더 중요했다. 라파예트는 가족과 마르세유에서 만나 거기서 이탈리아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마르세유의 호텔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장인과 아내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편지 한 장이었다.


그는 마르세유가 아닌 스페인으로 내달렸고, 이를 알게 된 루이 16세의 출국 금지 명령서가 항구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라 빅투아르” 선상에 몸을 던지고 4월 20일에 출항한 것이다.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인 아내에게 남긴 라파예트의 편지에서는 “난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었소. 떠나게 된 이제야 죄책감과 슬픔에 몸서리가 쳐지는구려... 당신에게 내가 떠난다는 얘기를 차마 할 용기가 없어 이렇게 편지로 전하오..” 운운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라파예트는 바다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두 달에 걸친 대서양 횡단 기간 내내 멀미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와 함께 미국행을 택한 장교들은 대부분이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그 배에 올랐다. 라파예트는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 중에서 예외는 모로와Mauroy 자작(vicomte)이었다.

모로아 자작은 아무런 환상도 가식도 가지지 않은 채 “돈을 벌기 위해서 군에 들어왔고, 미국행을 자원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다른 ‘가식적인’ 자들 모두 같은 이유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모로아 자작은 훗날 회고록에 “바보와 멍청이들뿐인 그 배 위에서 라파예트 후작만은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그가 미국에 도달했을 때 그곳의 현실을 보고 느낄 실망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에게 미리 사실들을 말해주었다.” 고 적었다. 모로아 자작은 라파예트의 이상주의와 박애주의의 표출에 늘 시니컬하게 반응했으나, 오히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친해졌던 것 같다.

라파예트와 모로아는 미국, 공화국, 이상과 현실에 대해 배 위에서 매일 토론했다.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던 모로아는 “신대륙에서 당신은 우리가 떠나온 대륙(유럽) 보다 더한 악과 공포를 봤으면 봤지, 덜 볼 수는 없을거요.”라고 라파예트를 일깨우려 했다. 하지만 모로아의 비관적 관점도 라파예트의 이상과 열정을 꺾진 못했다.


라파예트는 항해 내내 아내 아드리엔에게 보내는 함상 편지들을 여럿 썼는데, 그 중 마지막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난 그곳에 오직 순수한 호의를 가지고, 어떠한 개인적 야심이나 이기적 욕심도 없이 가오. 난 내 명예와, 그들의 행복만을 위해 노력할 것이오....... 미국인들의 행복은 아마 훗날 인류 전체의 행복과 연결되어있을지도 모르오. (만약 독립하게 된다면) 미 공화국은 앞으로 정의, 평등, 관용, 그리고 자유의 요새가 될 것이오.”



마치 후대의 미국인이 덧붙인 문장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이상론에 젖은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훗날 정말 그렇게 될지는 라파예트는 물론이고 미국인들 본인도 확신할 수 없는 시기였다.



덧글

  • 카니발 2009/08/21 13:01 #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가끔 위대한 인물들은 가족들에게 너무 심한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네요.
  • 월광토끼 2009/08/22 05:51 #

    다 그렇죠. "가족에 얽매이는 나약한" 사람은 영웅이 못 된다느니 뭐 이런 사상도 있고.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르-미르 2009/08/21 13:17 #

    모로와 자작은 시크하지만 라파예트에겐 따뜻한 도시의 남자군요 (틀려)
    마지막 보니 라파예트는 엄청난 이상주의자로군요;;
  • 월광토끼 2009/08/22 05:52 #

    열 아홉의 열혈 소년
  • 검투사 2009/08/21 13:55 # 삭제

    아무리 "비밀"로 해야했다지만... 그래도 화이트베이스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응?)
  • 월광토끼 2009/08/22 05:53 #

    아니... 뭐 개인이 배를 구매하는데 무슨 전열함이라도 샀겠습니까 -_-;
  • Allenait 2009/08/21 13:57 #

    라파예트 정말 이상주의자였군요.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시크한..(..)
  • 월광토끼 2009/08/22 05:54 #

    하지만 아내를 정말 사랑하긴 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09/08/21 14:00 #

    모로아 자작의 태도는 마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를 연상시키는군요^^
  • 월광토끼 2009/08/22 05:54 #

    아... 듣고보니 그렇네요 ^^
  • 효우도 2009/08/21 14:16 # 삭제

    흠. 이상주의적이고 현실을 잘 모르는 도련님 티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에게 충고를 해주는 자도 있었군요. 사람은 그렇게 다른자와 만나며 성장하는 것이겠지요.
  • 월광토끼 2009/08/22 05:55 #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현실을 모르는 도련님'의 순수한 열정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습니다.
  • JOSH 2009/08/21 16:49 #

    후... 인생으로 영화찍는 사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가 철저하네요.

    하지만_장인은_나의_적.txt
  • 월광토끼 2009/08/22 05:55 #

    그래서 다음 편에 쓸거지만 장인은 사위의 행동 욕하고 다녔다는 ^^
  • Cicero 2009/08/21 19:07 #

    헤센군이 처음으로 투입되었던 전투가 롱아일랜드전투와 뉴욕전투였었죠.

    이렇게 보니 동일한 사건이라도 알지못했던 면을 알수있군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월광토끼 2009/08/22 05:56 #

    네,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키케로님의 헤센군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행인1 2009/08/21 19:46 #

    라파예트의 편지는 마치 재퍼슨이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월광토끼 2009/08/22 05:57 #

    그렇죠. 사실 제퍼슨과 라파예트가 훗날 서로 주고받은게 많았습니다. 둘 다 이상주의자에다 열혈 행동파였으니까요.
  • 함부르거 2009/08/21 20:57 #

    저런 사람이었기에 외국인임에도 미국인들에게 '국부'로 존경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런 이상주의자도 있어야 역사가 움직이는 거겠죠.
  • 월광토끼 2009/08/22 05:57 #

    그렇습니다. 냉정한 현실파악과 논리/이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저런 감성적인 요소도 중요한 드라이브가 되죠.
  • 나아가는자 2009/08/22 01:36 #

    잘 읽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인용한 편지의 내용이 참으로 와닿는군요.

    + 그런데 질문요. 9번째 줄에 '의회에서는 미국을 계속 도와야하는가'라고 나오는데,
    당시 프랑스에서 '의회'라고 표현하신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월광토끼 2009/08/22 05:58 #

    그야.. 고관대작들의 회의죠? ^^; 사실 Congress나 Commitee라는 표현이 굳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모임'이라는 뜻만 있는건 아닙니다.
  • 굽시니스트 2009/08/22 07:59 #

    마지막 편지는 정말 손발 오그라드니즘이 철철 넘치는 명문이군요.....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인들이 저걸 읽으면서 암 그렇고 말고- 라고 고개를 끄덕일 생각을 하니....
    아무튼 진짜 웬만한 대하 역사소설 정도는 가볍게 짬시켜버릴 대단한 행적이로군요....
  • 지나가던과객 2009/08/22 11:42 # 삭제

    아내가 임신중에 미국으로 갔군요. 부부싸움중에 아내가 불리할 것 같으면 저걸로 역전을 노리겠군요.
  • 황제 2009/08/23 02:45 #

    아아~ 18세기의 체 게바라가 여기 있구나....
  • 몽달곰팅 2009/08/25 09:04 #

    미국독립전쟁에서 라파예트는 이름만 들었지 잘 모르는데 이 글 통해서 잘 보고 있습니다^^
    (혹시 캐나다지역에서의 전쟁에서 총탄맞아 죽는 장군이 이 사람인가요?;;;;;;)

    HBO드라마 존 아담스에서도 라파예트는 거의 언급안되었던 것 같은데...
    미국놈들 남의 도움 안받았다고 뻣대는건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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