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에 있어서의 어려움.

고대사, 특히 초기 그리스나 초기 로마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역사가 또는 사학도들이 정독하고 연구해야하는 그 대상은 그러한 초기 역사를 기록한 고대 역사가들의
역사서들인데, 이 역사서라는 것들의 신용성이 높지가 않다는게 큰 문제다.

티투스 리비우스(58 BC ~ 17 CE)의 "도시의 건국에서부터(AB URBE CONDITA)" 같은 역사서는
그야말로 로마 건국에서부터 그의 시대까지의 역사를 장대하게, 그리고 극히 세밀하게 묘사한다.
(비록 중간의 여러권들이 사라지고 현대까지 남아 전해내려온건 몇 되지 않지만)

루키우스 메스트리우스 플루타르쿠스 (46 CE ~ 120) 의 "생애(영웅전, VITAE PARALLELAE)"는
수많은 고대 영웅 위인들의 삶과 업적들을 역시 자세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가들의 '세밀한' 기록들은 대체 어떻게 남았을까?
심지어 '역사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존제하지 않던 시대의 영웅들의 업적들마저도 상세하기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물론 리비우스나 플루타르쿠스는 그들 이전 역사가들의 기록들을 참고하고 분석하여 자신들의 책을
집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은 역사서에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또는
'그러한 인물이 합당히 지녔을법한' 이야기나 묘사들을 창작해 집어넣기도 했다.

그들 이전의 역사가들은 또 어떨까.

고대의 기준으로 볼 때 역사란 신화나 철학이나 다름 없는 장르이고 개념이었다.
그리고 역사의 기록은 무엇보다도 "현대와 후대의 시민들이 읽고 마땅히 본받아야 할,
또는 피해야 할 행위, 업적
" 이어야만 했다. 역사의 목적은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인물의 업적은 과장되고, 체제에 적대적이었던 자들의 행위는 악행으로 부각되고,
이러한 기록행위가 반복되다보니 이야기에 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결국은

역사와 전설을 서로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물루스같은, 선구자적 건국 지도자가 분명 존재하기는 했을 것이다.
킨키나투스같은 모범적인 시민이 분명 존재하기는 했을 것이다.
코리올라누스같은 '반역자'도 분명 있기는 했을 것이다.
카밀루스같은 영웅적 정치가가 실제로 로마 공화국을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저술들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됀다.
그 기록들은 반드시 고고학 발굴 유물등 실재하는 증거물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료들(존재한다면)과
함께 교차검증되어야만 한다.

"Differentiating Facts from Fancy."

고대사 (로마사) 연구란, 다시 말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핑백

  • '3월의 토끼집' : 2009 3월의 토끼집 12대 "추천" 포스트 2009-12-31 08:37:16 #

    ... 는 불멸의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보면서 개똥철학적으로 생각해보자 쓴 글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쓰긴 했는데 결국 얻게 될 뻔한 답은 '공부엔 끝이 없다' 정도겠지요. 9월: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의 문제점. 어찌보면 이 글 한 달 전에 쓰여진 글(위 8월 추천 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고대사 연구만 그렇겠습니까? 끝없는 교차검증과 냉정하고 비판적 시선을 견지해야 ... more

덧글

  • aeon 2009/09/18 12:09 #

    그래도 아예 자료가 없는거나 다름없는 한국 고대사 부분보다야 낫죠(...)
  • 월광토끼 2009/09/18 21:40 #

    이.. 일제가 다 파괴한 탓이라능!? [...]
    한국 고대사는 뭐... '과학적인' 접근이 힘든 분야처럼 보입디다.
  • vermin 2009/09/18 12:10 #

    찌직
    어 이게 무슨 소리지
    푸코 뒷구녕 찢어지는 소리 아냐?
  • 행인1 2009/09/18 13:17 #

    ????
  • 월광토끼 2009/09/18 21:41 #

    미쉘 푸코?
    마키아벨리 뒷구녕도 찢어짐
  • Allenait 2009/09/18 12:38 #

    굳이 로마사가 아니더라도 고대사 영역에서는 전설과 역사가 적당히 섞여 버린것 같습니다.
  • 월광토끼 2009/09/18 21:48 #

    음... 늘 그런것이 아닙니다. 실증주의적인, 나름 합리적인 '학자'의 자세를 가지고 역사를 대한 고대의 역사가들도 꽤 많이 있으니까요.

    전 '초기 로마사'를 경우로 얘기한 겁니다.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나 제정 로마의 타키투스같은 사람들은 전설과 역사를 혼합하지는 않습니다.
  • 아일우드 2009/09/18 12:43 #

    정확한 사료가 필요하죠..
  • 월광토끼 2009/09/18 21:48 #

  • 뽀도르 2009/09/18 12:56 #

    갑자기 환단고기가 생각나는군요.

  • 월광토끼 2009/09/18 21:48 #

    그건 뭐..
  • Lorein 2009/09/18 13:19 # 삭제

    뭘 고대사까지 가서 찾으시나 그런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이 쓰는거 중에 사전 그대로의 의미의 논픽션이란게 있을 수 있나
    척노리스가 쓰면 또 모르겠다만
  • 월광토끼 2009/09/18 21:50 #

    아니, 그거야 '역사가 개인의 주관'이라는 문제인데 그 '주관'이 사실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의 문제일 경우에나 해당되는 말이죠. 그거야 현대 역사학에서나 통용될 얘기고 -_-;

    고대사, 아니 초기 로마사의 경우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라 '텍스트의 재창조'가 이루어진 경우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얘기에요.
  • monsa 2009/09/18 13:41 #

    그렇지요. 그리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리쿠르고스도 실존이 의심된다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사상사적으로 볼때는 그 가공일지도 모르는 존재들이 큰 영향을 끼쳤으니..
  • 월광토끼 2009/09/18 21:51 #

    마키아벨리도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초기사' 부분만 가지고 "역사를 본받자"며 공화정 옹호론을 펼친것과 비슷한 부분이겠죠
  • dunkbear 2009/09/18 13:55 #

    어느 나라 역사는 안 그렇겠습니까만... 역사서는 많아도 탈이고 없어도 탈이네요.
  • 월광토끼 2009/09/18 21:51 #

    그런데 그게 '로마 초기의 역사 서술' 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 같이 느껴집디다.
  • 들꽃향기 2009/09/18 14:00 #

    잘 읽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전쟁사를 재구성하려는 소망이 있는 저로서는, 서구의 리비우스나 플루타르코스의 서술을 보면서 "얘네들은 어떻게 이렇게 개인의 일대기를 세세하게 정리한거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역사와 전설이 어느 정도 혼재되어 있다면 더욱 납득이 가는 것 같습니다.그들이 그런 책을 필한 것은 결국 자신들이 바라는 도덕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었으니 더욱 그러하구요,
  • 월광토끼 2009/09/18 21:59 #

    그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고대의 역사가들은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연구'라고 부를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죠. 1차 사료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관공서에 가서 문서기록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싸그리 무시한채 남이 써놓은 그 사료들의 '해석문'만 읽고, 오늘날 '플레이져리즘'이라고 분류되어도 무방한 행위들을 밥먹듯이 했으니까요.
  • 소쿠리 2009/09/18 14:06 #

    서양 고대사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사 역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정도가 믿을 만한 고대사 문헌이긴 하지만, 신화와 전설, 사실이 뒤섞여 있으니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하긴 힘들겠지요... 역사는 역시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인가 봅니다. 생날 것 그대로의 사실을 복원한다는 것은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어려울 듯... 해석하기 나름이겠죠... ㅎㅎ
  • 월광토끼 2009/09/18 22:03 #

    타임머신이야 불가능하니, 역사학자들은 그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 해야겠죠.
  • 빼뽀네 2009/09/18 14:30 #

    그래서 고대사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상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 월광토끼 2009/09/18 22:04 #

    그중 상당수가 "그 정도 업적을 이룬 위인이라면 당연히 이러이러한 미덕도 지녀야겠지!" 라는 역사가의 생각으로 인해 덧붙여진 미담들로 떡칠을 하고 있을겁니다 =_=
  • 금요일 2009/09/18 18:01 # 삭제

    오. 이건 중국 역사서만의 문젯점인 줄 알았더니 서양 고대사도 그렇군요(...)
    이 동네 역사서는 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있었을 법한 일'을 창작해서 넣는 게 관행이라...
  • 월광토끼 2009/09/18 22:38 #

    그러니까 정말 골때리는거죠... "있었을 법한 일" 이라니 그 대체 무슨 ㅠㅠ
  • 금요일 2009/09/18 18:02 # 삭제

    마찬가지로 후대에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었기 때문에 춘추,사기같은 역사서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은 높이 사지만..
  • 월광토끼 2009/09/18 22:39 #

    그래도 사기史記 정도면 사기詐期 없이 훌륭한 역사서 축에 낄 수 있을 겁니다 =ㅁ=
  • sonnet 2009/09/18 18:07 #

    킨키나투스쯤 되면 어린 마음에도 이건 미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월광토끼 2009/09/18 22:40 #

    어이쿠 무려 소넷님께서 덧글을;;

    정말, 킨키나투스의 이야기는 거의 "어린이 위인전" 풍의 미담 느낌이 진하죠.
  • 萬古獨龍 2009/09/18 18:31 #

    과거의 사료에 의존해야하는 후학들로는 정말이지 머리가 아픈 일이 아닐수가 없지요오...
  • 월광토끼 2009/09/18 22:42 #

    그래서 고고학적 검증이 중요합니다.
  • 엽기당주 2009/09/18 18:35 # 삭제

    저도 역사 전공자이긴 합니다만..

    고대사의 비현실적인 사건기재는 꼭 고대라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글이란 의도를 가지고 기록이 되다보니 작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도덕적 판단등 사견이 많이 들어가게 마련이죠.

    고대와 같이 역사와 신화가 딱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이게 더욱 더 두드러져있습니다.

    현대에는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런 기록과 사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는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이고요..

    딱히 과거라고 해서 비현실적이고 오류로 가득찬 역사기술을 했던건 아니라고 봅니다. 기록이라는것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짐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시대에 따라 강약가감이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튼 간혹 어떤 사건에 대해 블로그만 돌아다녀봐도 왜곡과 호도가 어찌나 심한지..후대에 이런것만 이런게 사료로 남으면 거짓말과 은폐의 시대라고 해도 모자름이 없을지도. 흐흐.
  • 월광토끼 2009/09/18 22:46 #

    음.. 전 '과거' 전반에 집중한게 아니라 '초기 로마사'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한 겁니다. 여기에 현대적 의미의 역사학적 자세가 보여지는가 아닌가 그 차이는 단순한 강약가감으로 얘기할 수 있는건 아니죠.

    예를들어 제정 로마나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타키투스나 투키디데스같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역사학자가 봐도 "그들은 우리랑 동업자들이었다"라고 얘기하는게 가능한 정도죠.

    현대의 경우는 그야... '기록을 하는, 할줄 아는, 그리고 읽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아주 기이한 시대임을, 그 특수성을 감안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조이 2009/09/18 21:42 # 삭제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심지어 중국고대사에서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알다시피 중국 고대의 역사저술은 엄청나게 발달해 있었고, 기원전에 이미 "사기"라는 엄청난 대작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기 열전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들이 존재하죠.

    "사마천은 이걸 어떻게 알고 글로 쓴 걸까?"

    예컨대 매우 유명한 "형가의 진시황제 암살사건"을 볼까요?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형가가 암살을 위해 진나라로 출발할 때, 형가의 의거를 알고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고 그의 친구 고점리는 죽으러 가는 친구를 위해 음악을 연주합니다..... 여기서 의문, 이게 사실일까요?

    알다시피 형가는 진시황제 암살이라는 엄청난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보안이 생명인데, 암살하러 가는 사람을 수많은 사람들이 마중나온다? 그를 격려하기 위해 음악까지 연주하고? 더구나 진시황을 죽일수 있는 인물로서 형가를 태자에게 소개한 "전광"은 진시황 암살계획이 새어나갈까 조심하여 스스로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죽음으로서 지키려한 암살계획인데.....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형가를 마중했다? 뭔가 좀 이상하죠?


    또다른 사례. 사기에 의하면 진시황은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여불위도, 진시황의 어머니도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걸 뒷받침하는 문서기록이 발견된 것도 아니구요. 그런데 무슨 수로? 더 묘한 것은, 이건 사기의 초나라의 마지막 왕의 스토리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거기에서도 "초나라 마지막 왕은 사실 재상 춘신군의 아들이었대"거든요. 비슷하죠?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 완전히 100% 문헌기록에만 의지해서 역사서를 저술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보기도 합니다. 즉 당시 떠돌던 소문, 문학작품 같은 것도 참고해서 책을 만든 게 아닌가 하고 여기기도 합니다. 즉 동양이나 서양이나 고대사 쪽의 기록은 좀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의 역사학적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건 절대 아님. 사기의 거의 대부분의 기록들은 매우 정확함.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될수록 사기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 계속 증명되고 있는 상황임)
  • 월광토끼 2009/09/18 22:57 #

    사마천의 사기 정도면 거의 사기적으로[..;;] 훌륭한 사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불위나 형가의 사례는 그야말로 '소문'을 집어 넣은 것이겠지만, 적어도 "목이 셋 달린 두꺼비 떼가 연못에서 기어나와 울어대어 사람들이 종말의 징조라 수군거렸다" 수준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ㅁ-
  • 크핫군 2009/09/18 23:13 # 삭제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도 있는데요 뭐... 이정도까지야 ㅡ,.ㅡ
  • 계원필경Mk-2™ 2009/09/18 23:22 #

    제일 좋은 방법은 로물루스가 갑자기 살아나와서 후대 인간들에게 정론직필하라고 하는 거지만... 현실은 역시 교차 검증이죠...(저걸 보니 좀 빗나가긴 했지만 고대 로마사에 대한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의 대립이 떠오릅니다...)
  • aeon 2009/09/18 23:46 #

    하긴 그렇게 따지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기와 내전기는 꽤 정확한 편이긴 하겠습니다. 프로파간다 치고는 꽤 사실에 입각해서 적었으니까요.
  • 원생군 2009/09/19 00:00 #

    고대사라..., 어느 나라건 고대사는 자료가 부족한 법이죠. 그런 의미에서 그걸 다 정리한 아랍인들은

    좀 흠좀무
  • 터미베어 2009/09/19 00:49 #

    솔찍히 그정도라도 있는게 어딘지..
    한국 고대사는 진짜....

    중원3국설이라던지...도저히..(고구려 맥궁 플레이트메일 종이장설등..)
  • 나아가는자 2009/09/19 06:53 #

    서양에서는 아무래도 'history'라는게 이야기로 되서, 서양의 역사서는 재미있게 읽기는 좋고, 중국쪽에서 역사서는 무슨 자료집같아서 읽는게 부담되는거 같아요. 중국, 동양의 사서는 없는 사실을 꾸며내기 까지 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맘에 안드는 인물은 편집으로 표시하죠. 예를 들어 온갖 도적놈, 살인자들의 열전들 사이에 자신이 맘에 안드는 인물의 열전을 슬쩍 집어넣는 식으로요.
  • blue 2009/10/14 00:18 # 삭제

    '사기'라는 역사책을 참 좋아하는데, 어떤 설에는 '사기열전'을 역사소설의 원류로 보기도 하더군요. 시바 료타로는 그의 소설 '항우와 유방'에서 사마천이 각지를 여행할 때 그 지방의 소문이나 전설을 채집한듯 하다고 적고 있는데 타당한듯 합니다. 사실 항우의 최후와 같은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사기의 묘사는 상당히 뛰어나죠.

    제가 학부시절 써클을 오래했는데, 몇년 어디 갔다가 와서 이야기를 해보니 저학년 때는 사실이었던 일들이 세월이 지나자 구전자의 가감이 덧붙여져 '이상한 전설'이 되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더군요. 뭐..고대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요.
  • DreamersFleet 2010/08/12 17:08 #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저술들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됀다.
    그 기록들은 반드시 고고학 발굴 유물등 실재하는 증거물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료들(존재한다면)과
    함께 교차검증되어야만 한다.

    ===>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이런 걸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로마사가 있나요?
    읽다보면 다 뒤죽박죽인것 같아 정신만 사나워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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