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6 08:50

근대 이전 영국법 관련 몇가지 이야기들. British History



이번 영국사 수업에서는 Common Law Writs에 대해 여러가지 사례들을 탐구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다름아닌 Legal History(법제사:法制史) 전공 교수님이라서,
'역사의 흐름' 또는 '사건/인물' 이런 부분은 그냥 지나치고, 대신
[당시의 여러가지 판례들이나 법 제정 과정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유추한다]는 것을 기본 골자로.


아무튼. 그래서 그에 관련해서 수업 노트 필기 내용 몇가지 끄집어내고 자료 보충해서 잡담 몇가지.


1.
영국에는 "해사법정" 이라는게 있습니다. Court of Admiralty.
이게 뭐 해군 내 벌어진 사건사고나 인사이동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곳일 것 같죠?

물론 그런 일도 처리하지만, 주된 일은 해운법 관련 민사소송 처리.
'군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민간업무가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군요.

특히 17세기 중반 (1650년대)에 그 업무량이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민간선박의 선주-선장간의 충돌, 출자자와 선주간의 소송, 선원들 임금 미지급 문제,
선박 충돌 사고 해결 등등등.


2.
그런데 이 해군성 법정에서 처리한 해운관련 법안들 중에 웃기는게 있습니다.
선박이 해안에 좌초했을 시 그 선박의 화물 처리 문제 입니다만...

처음에는 '좌초한 배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존재할 경우, 선재 화물과 재화는 모두
원 선주 또는 선원들에게 돌아간다
'는 법안이었던 모양입니다.
'생명체'라는게 선원은 물론이고 뭐 닭이라던지 돼지라던지 이런 것도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게...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을 경우' 면?
그럴 땐 발견자 또는 해당 해안의 토지소유자에게 고스란히 귀속된답니다.
...문제 있죠. 발견자가 좌초선박 안에 있는 생명체를 다 죽여버리고 입씻으면?

그래서 나중에 법안을 바꾸는데, 이제
'무조건 선박의 원 선주에게 절반, 발견자 또는 생존자의 구조자에게 절반.'으로 바뀝니다.

헌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어서 '발견자'라는게 모호해서
좌초된 선박을 구조한 지나가던 배의 선장과 선원들 모두에게 상금이 지급되게 되다보니
또 여러가지 부담이 크겠죠?

그래서 판사들이 판결원칙을 바꿔서 '생존자들을 직접적으로 구조하는데 참가한 선원들만'
상금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배 선장이나 손 놓고 있던 다른 선원들은
제외되는거죠.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라..... 끝이 나지 않으니 이 얘긴 여기까지.




3.
'마그나 카르타' 도래의 1215년 이전에는 '중죄Felony'에 해당되는 범죄의 경우 그 유명한
'물의 심판'이란 것을 했는데. 피의자를 물에 던져넣어서 뜨면 유죄, 가라앉으면 무죄.

ㄱ-

'마녀사냥'에만 이런걸 한게 아니란 말입니다.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일이란 거죠.

그런데 1215년 이후 무려 교회측에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건 하느님의 가르침에 어긋난 일이야! 좀 더 정의롭게 법집행을 하도록!'

그래서 그런 야만적 방법은 없어지고, 대신 배심원에 의한 심판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이 원시적 배심원 제도라는게, 요즘과는 달라서 피의자의 이웃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문제는.

피의자가 재판 후 유죄로 확정되면 피의자의 토지가... 그 이웃들에게 분배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피의자들은 어떻게 했느냐? 입 꾹 다물고 묵비권 행사. 그리고 배심 재판 거부.

왜냐고요? 그렇게라도 하면 자긴 죽더라도 하다못해 자식들에게라도 땅을 물려줄 수 있거든요.

ㄷㄷㄷ



4.
배심 재판 제도로 또 이것저것.
중세 영국 -13세기-에서는 형사재판에서의 기소도 Jury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소를 하는 이웃들이 '그냥 피의자가 평소 미워서' 합심해 모함하는 거면 어떡합니까?

그런 의혹이 제기되자 새로운 법이 생겨났는데, 피의자가 '저 배심원단은 나에 대한 개인적 원한으로
불공정하게, 감정적으로 날 기소했다
!'고 선언하면, 또 그 사실을 판별할 새로운 배심원단이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이게 "DE ODIO ET ATIA"라는 법안인데, '배심원단의 중립성을 판별하기 위한 배심원단'이 이렇게
만들어지다보니까...

결과는?

그 "새로운 배심원단" 즉, 피의자와 무관계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점차 이 '배심' 제도의
기본을 구성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서서히 발전해나갔다는 거죠.

기소는 일반인들의 손을 떠나 검사에게 가게 되고.


재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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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스톤 첩자 2009/10/25 21:35 #

    근대 이전 영국법 관련 몇가지 이야기들.1.손자병법에 첩자 편을 보면 생간에 대해 나온다. 적국에 침투해서 정보 수집후 돌아와 보고 하는 첩자. 가장 위험해서 죽기 쉽다던가.2. 인왕산에서 공공근로 하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켈로에서 근무하신 분인데 한국전 당시 그리고 직후 북한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정보 수집하는 첩자를 피스톤 첩자라 불렀다고 한다.-피스톤이 왔다갔다 하는 것 보고 따왔다...... more

덧글

  • 萬古獨龍 2009/10/06 08:56 # 답글

    1. 왠지 고개가 끄덕

    2. 결국 최종형태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3. 결국 토지와 재산의 상속이란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한다능..

    4. 저런 시행착오가 나쁘지만은 않지요...
  • 오토군 2009/10/06 09:00 # 답글

    역시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고...(비유가 좀 이상하지만 신경쓰지 마세요.)
  • dunkbear 2009/10/06 09:12 # 답글

    배심제도의 기원이 의외로 꽤 오래되었네요.
    저는 16-17세기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
  • 슈타인호프 2009/10/06 09:19 #

    처음에는 피의자의 결백에 대한 "보증인" 개념으로 시작된 거라더군요. 결백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놓고 선서를 했다고.
  • 월광토끼 2009/10/07 19:32 #

    네. 슈타인호프님 말씀대로. 기원 자체는 10세기 이전까지도 거슬러올라갈 수 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09/10/06 09:18 # 답글

    1. 혹시 그 당시까지 "전시에는 상선이 해군에 징발되니까" 상선도 해군 법정의 관할에 들어갔던 건가요?

    2. 그 덕에 난파가 잘 일어나는 해안지대 주민들은 배가 나타나면 해변에 서서 좌초를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일부러 등대도 끄고, 아예 쪽배를 타고 디를 쫒기도...좌초한 배에 생존 선원이 있다고 해도 뭐...-ㅅ-;;

    3. 물의 심판 말고도 불에 달군 쇠몽둥이 손으로 잡기 심판, 끓는 물에 손 넣기 심판, 케이크 삼키기 심판, 결투 심판, 기타...ㄷㄷㄷ;;;

    4. 초기 배심제도에서는 인심 좋은 술집 점원은 흉악범인데도 석방 크리, 직무에 충실한 세리는 사소한 잘못으로 유죄크리였다는...뭐든지 정착기가 있기 마련이긴 하죠.
  • 들꽃향기 2009/10/06 12:10 #

    오오 케잌 푸드파이트는 형벌이었던 것이군요 =_=;
  • 슈타인호프 2009/10/06 12:12 #

    케이크를 삼켜서 목이 막혀 죽으면 유죄입니다(...)
  • 羅睺星 2009/10/06 17:37 # 삭제

    그 시절 케이크가 물이나 와인 없이 삼키기 쉬운 물건이었을지...
  • 월광토끼 2009/10/07 19:32 #

    아..... 왠지 상상하기 싫군요. 케이크에 목이 메여 죽는다니 ㅠㅠ
  • 드로이드 2009/10/08 17:17 #

    여기서도 뵙습니다.(...)
    그나저나 케이크 심판 그건 나중에 상세한 이야기 좀. 구두닦이 소년 관련 자료는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 Ha-1 2009/10/06 09:47 # 답글

    영국 해군도 관료주의가 극에 달해서 '강대한 지상 해군'이 된 시절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떠오르는군요;
  • 빛의화살 2009/10/06 10:26 # 삭제 답글

    Court of Admiralty 는 海事法廷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요. Admiralty 라는 낱말 자체에 해사법이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 월광토끼 2009/10/06 10:32 #

    감사합니다. 반영했습니다.
  • asianote 2009/10/06 11:05 # 답글

    정말 현대 법치주의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 tloen 2009/10/06 11:34 # 답글

    아직도 영국 해사법정과 해상법의 권위는 전세계적입니다. 거만한 미국 법정이 판결을 가끔이나마 인정해 주는 몇 안되는 외국 법원이기도 하지요
  • 월광토끼 2009/10/07 19:33 #

    아.. 무려 미국법정에서 인정하는 정도였습니까;
  • 효우도 2009/10/06 12:01 # 삭제 답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고 버그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버그는 끝이 없지요.
  • 들꽃향기 2009/10/06 12:11 # 답글

    교회가 신명재판의 폐지를 요구하다니요...어흙흙....승리의 교회라는...ㅠ

    잘 읽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해사법정의 기원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알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 월광토끼 2009/10/07 19:33 #

    감사합니다.
  • Allenait 2009/10/06 13:10 # 답글

    교회가 전의 악습을 폐지하자! 라 목소리를 높인 케이스가 의외로 좀 있더군요
  • 십니까 2009/10/06 13:52 # 답글

    결투재판도 공의회에서 폐지하자고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물의 재판도 교회측에서 이의를 제기한 거로군요.
    늘 유익한 지식 감사합니다.
  • 카니발 2009/10/06 14:04 # 답글

    1.마지막에 언급하신 법 개정은 '그렇게 하다보니 선주들이 별로 구조를 안 하더라...'라는 문제가 생겨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2.교회가 말렸다니 외외군요. 아무래도 교회=이단 심판=마녀 사냥 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박혀있어서인가요...;

    3.기소당하는 일이 없는게 제일 좋은 결말이군요. 뭐 이런 살벌한...;
  • 羅睺星 2009/10/06 17:35 # 삭제 답글

    3.어버이의 은혜는 가이없어라....
  • 소시민 2009/10/06 18:42 # 답글

    3. 피의자가 재판 후 유죄로 확정되면 피의자의 토지가... 그 이웃들에게 분배된다는 겁니다.

    - 현재로서는 상상도 못할 조항이군요 ㄷㄷㄷ
  • blue ribbon 2009/10/06 18:59 # 답글

    정말 웃긴법들이 많네요.
    영국은 차원을 초월.
    역시 섬나라들은 차원이 다릅니다.
  • 월광토끼 2009/10/07 19:34 #

    웃긴법들이 있었지만 계속 개정해나갔고 가장 법치주의적 국가가 된 게 아니겠습니까.
  • 조이 2009/10/06 19:16 # 삭제 답글

    3. 마녀 재판의 경우에도, 진짜 교회의 이단심판관이 하는 재판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의외로 우리가 생각하듯이 무지막지한 건 아니었다던가? 문제는 바로 아마추어 재판관들이 마녀를 잡는다고 돌아다닐 때... 즉 영주님이라든가 귀족들이 마녀재판을 하려고 할 때 정말 경악스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구요. (피의자가 마녀로 결정될 경우 그 재산을 몰수할 수 있으니까....)
  • 월광토끼 2009/10/07 19:34 #

    말씀하신대로입니다.
  • 미친과학자 2009/10/06 19:57 # 답글

    1. 당시 해사법정 판사의 고충 인터뷰 "그렇다고 월급을 더주기를 하나..."

    2. 해운법 진화! (틀려)

    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산의 매력이란....

    4. 이것도 웬지 "배심원의 중립을 판단하기 위한 배심원들의 중립을 판단하기 위한 배심원의 중립을..."식으로 가다가 지금의 모습이 된듯한 느낌.
  • 월광토끼 2009/10/07 19:34 #

    네. 당시에는 정말 부동산이 재산 그 자체를 의미했죠...
  • 원생군 2009/10/07 00:09 # 답글

    역시 옛날 법은 판타스틱...
  • 이사무 2009/10/07 04:14 # 삭제 답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배 선장이나 손 놓고 있던 다른 선원들은
    제외되는거죠.'

    ---> 조금 다른 얘기긴 하지만 소설 '혼블로워'에 나오는 포획 상금 관련 내용이 생각나네요.
    나포되는 배를 시야에 두고 있는 함정의 함장이나 승조원들도 상금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어서
    기를 쓰고 나포 현장에 접근하려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면 위의 해사법처럼 포획 상금 제도에도
    어떤 변화가 있진 않았을까 또 궁금해지네요.
  • 월광토끼 2009/10/07 19:35 #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흥미가 생기네요. 한번 뒤져봐야겠습니다.
  • 드로이드 2009/10/08 17:16 # 답글

    무려 교회, 에서 미치도록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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