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위 계몽시대이후의 18세기 내내 수백의 영국 신사들은 자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원전 고대로부터의 전통인 결투가 빅토리아 시대까지 계속 되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죠지 3세 치하의 유명한 제임스 길크라이스트(20세기 유명 테너 가수 말고)는 무려 172회의 1대1 결투를 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투의 관습이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은 1500년대 들어서부터였는데, 어찌나 신하들이 이 결투로 많이 죽어나갔는지 제임스 1세는 결투 금지법안을 발효하기도 했지요. 그 뒤를 이은 챨스 1세나 국왕을 참수한 올리버 크롬웰도 마찬가지로 결투를 사회 내에서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공화국 시대가 끝나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후부터 결투는 다시 유행을 탔고, 챨스 2세는 ‘사람 죽이는 일’을 싫어했고 결투 또한 혐오했으나 특별히 법적 제한 조치를 취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와 동시대 프랑스의 군주였던 루이 13세는 결투를 금지시키기 위해 제도적으로 아주 강압적인 정책을 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결투로 맺어진 우정..,;]
물론 이러한 결투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며 비판한 지식인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결투가 마치 상류층 고유의 전통이자 특색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결투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했지요. 마구잡이 쇼핑, 도박과 함께, 결투 또한 ‘차갑고 계산적이기만 한’ 하층민들의 특성에 대비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상류층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ㅁ-
물론, 원래 영국법상 ‘분노가 치밀어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한 살인은 과실치사로 인정되는 한편, 화가 나는 상황에서 시간이 한참 지나 이성을 찾은 상태에서 한 살인은 그야말로 고의적 살인으로 인정되는 만큼, (결투는 서로 감정상하고 난 다음에 날을 잡아서 며칠 후 하는 거였으니 대부분 후자였죠) 기소된 결투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했습니다만, 상류층의기조와 사회 분위기 때문에 법관들, 판관들은 범법 결투자들을 기소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군대, 특히 장교들 사이에서는 결투가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쟁이 없는 시기의 병영이나 군사기지에서 훈련 외에는 음주와 도박이 주된 일이였고, 여기서 발생한 장교들끼리의 감정싸움은 그대로 결투까지 이어지기 마련이었죠. 이건 해군에서 특히 심했습니다. 승조원들밖에 보는 사람이 없고, 오랜 해상 생활 등으로 기분이 날카로워진 사람들로 가득한 전함 안에서 결투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겠죠. (포레스터의 ‘혼블로워’ 시리즈에서 묘사된 혼블로워가 생도 시절에 벌어진 결투처럼)

몇몇 군 내 결투들은 군법회의로까지 이어졌습니다만, 민간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소자가 벌을 받는 일은 정말 드물었습니다. ‘호랑이’ 로슈 소령의 경우가 그러한데, 로슈 소령은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자 자기를 고발한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해 그를 죽이고, 또 그 고발자에게 ‘거짓’ 증언을 해준 동료 장교에게도 결투를 신청해 그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옛 상관이었던 대령에게도 찾아가 지난 날의 앙금을 풀고자 또 결투를 신청해 죽였지요. 그는 군법회의에서 모두 면죄되었습니다.
이런 결투들은 17세기 동안은 레이피어 또는 단검을 가지고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투를 자주하는 상류층 자제들을 위해 검투술 학원도 난립했지요. 그런데 이러니까 문제는 더 부자여서 학원을 많이 다녀 검술이 더 뛰어나게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실력 차이가 발생하고, 결투는 공평하지가 못하게 되겠죠? 검술이 더 뛰어난 사람이 무조건 다 이기게 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18세기부터는 좀 더 공정하고 운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권총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또 솜씨 좋은 총잡이가 다 이기는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으나, 당시의 머스킷 피스톨 성능으로는 설사 특등사수가 잡는다 하더라도 결과는 거의 운에 달린 거나 다름없었지요.
결투는 국가의 인재들을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앗아가기도 하는 존재였습니다. 1803년에는 왕실 해군의 맥나마라 함장이 하이드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육군의 몽고메리 대령의 개가 짖어대었다는 이유로 서로 말싸움을 했고, 말싸움은 결투로 이어져 몽고메리 대령이 사망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맥나마라 함장과 몽고메리 대령은 둘 다 프랑스 혁명군과의 전투들에 참전해 공훈을 세웠던 베테랑들이었고, 그러한 인재들이 적과의 전투가 아닌 아군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국가로서 큰 손실이었죠. (맥나마라 함장은 나중에 해군제독의 지위에까지 오릅니다)

[피트 vs 티어니.]
마찬가지 사건으로, 1798년에는 무려 수상 윌리엄 피트(小 피트)가 하원에서 하원의원 죠지 티어니와 해군 수병들의 함상 훈련도에 대해 입씨름을 하다가 화가 난 티어니가 수상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사건까지 일어납니다. 다행히도 둘 다 총알이 빗나가서 사건은 그걸로 종결됩니다. 만약 그 위험한 시기에 수상 피트가 목숨을 잃었더라면 지금 런던에는 삼색기가 휘날리고 있었을 겁니다.
중요 공직자들이 결투를 벌인건 그게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1809년에는 당시 외무장관 죠지 캐닝 (1827년 수상)과 전쟁장관 캐슬리 자작 (1812-1822 하원의장)이 정치적 견해 차로 결투를 벌여 둘 다 중상을 입고 실려나가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고, 1829년에는 당시 수상이었던, 무려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가 카톨릭 교도 해방법안 가결을 놓고 상원에서 윈첼시 백작과 결투를 벌입니다. 윈첼시 백작은 아예 총을 쏘지 않았고 웰링턴 공작이 쏜 총알은 빗나감으로써 그냥 둘이 화해하는 것으로 끝났기에 망정이지..

[웰링턴 vs 윈첼시.]
결투가 영국 사회에서 간신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도덕성의 사회’가 도래한 빅토리아 시대 중기나 되어서였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되거나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고 그냥 사회 기조에 의해 도태된 거였죠.
영국 땅에서 마지막으로 행해진 결투는 1852년 프랑스인 이민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결투였습니다. -_-
참고문헌: S. Brumwell and W. Speck. Cassell's Companion To Eighteenth Century Britain. Cassel&Co, 2001.























![Weezer - Raditude [Standard Version]](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8678242361_1.jpg)



덧글
시쉐도우 2009/10/25 08:15 # 답글
저 결투사건에서, 월링턴 공은 자신이 명중시킬 의도가 없었다고 했지만(=나는 관대해서 일부러 비켜서 쏜거다~??) 월링턴 공의 사격솜씨는 좀 악명이 있었던지라, 주위에선 '그냥 빗나간 거'라고 수근거렸다고 하더군요.
월광토끼 2009/10/25 08:18 #
하지만 당시 참관인들의 증언으로는, 웰링턴 공이 애초에 아예 엉뚱한 곳에다 총을 겨냥했기 때문에, 의도적인게 맞다고 합디다만.
시쉐도우 2009/10/25 08:26 #
헐~~위키에서 언듯 본 바는 '삑사리'설쪽이었는데, 아무래도 낚인 듯 하군요. (.. );;
월광토끼 2009/10/26 08:02 #
낚인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 입니다.
Leia-Heron 2009/10/26 14:04 #
악명 높은 사격솜씨였다면 오히려 엉뚱한 곳에 총을 겨냥하는 편이 상대편 사망 확률을 높이는 것이 아닐지......ㄷㄷ;
들꽃향기 2009/10/25 08:52 # 답글
역시나 정열의 프랑스인 -_-/ 마지막 결투자의 대미를 장식하다니요...ㄷㄷ
이준님 2009/10/25 09:13 # 답글
영국은 아니지만 미국의 알랙산더 해밀턴과 아론 버와의 결투도 세기의 개그였지요. 아론버가 결투 이후에 벌인 행각도 꽤 재미있고ps: 고어 비달의 "버"에서는 아예 버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던게 생각납니다. 결투 부분은 아주 간략히 넘어갔지만요.(찌질 버젼의 독립영웅들과 마지막 반전이 재밌지만요)
Cicero 2009/10/25 20:25 #
앤드류 젝슨도 결투하다 사람죽인게 정적들 사이에서 주요 씹을거리가 되었죠. 정작 사망한 결투 상대자도 만만치 않게 죽인 사람이라능...
월광토끼 2009/10/26 08:03 #
해밀턴이 살아있었다면 Federalist의 입지가 어떻게 되었을지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카니발 2009/10/25 10:06 # 답글
맘에 안드는 상관도 결투로 쓱싹해버린 로슈 소령은 대체...;그를 부하로 삼고 싶어할만한 상관들이 있었을까요 -_-;
월광토끼 2009/10/26 08:04 #
글쎄요. 그 사람 아마 그래서 동인도 회사로 가서 인도와 벵갈서 여생을 보낸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카군 2009/10/25 10:50 # 답글
수상 vs 하원의원에 외무장관 vs 전쟁장관이라. 정말 대단하군요orz
월광토끼 2009/10/26 08:04 #
막장이지요.
엘레시엘 2009/10/25 10:52 # 답글
소설 삼총사의 시대 배경은 루이 13세때였던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강압적인 결투 금지 정책이 루이 13세때부터 있었던건가요?
월광토끼 2009/10/25 10:59 #
아이코. 제 착오입니다. 수정합니다.아이고 민망해라. 아이고 민망해라.
월광토끼 2009/10/26 08:05 #
랄까 제가 엘레시엘님 덧글 보고 또 착각했네요.네. 루이 13세 때부터입니다.
효우도 2009/10/25 11:24 # 삭제 답글
"문제는 더 부자여서 학원을 많이 다녀 검술이 더 뛰어나게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실력 차이가 발생하고, 결투는 공평하지가 못하게 되겠죠? "사교육 문제는 어딜가나 있군요.
월광토끼 2009/10/26 08:05 #
태곳적부터.
터미베어 2009/10/25 11:44 # 답글
검술결투는 보통 퍼스트 블러드 룰이었던걸로 아는데퍼스트 블러드 룰이면 양자가 죽어서 실려나갈일은 없지만....
권총결투는........맞으면 최소 중상, 재수없으면 둘다 사망...
결투자끼리 감성이 심히 않좋으면 상대방이나 자신이 죽을때까지 지속.....
차라리 검술결투가.....
월광토끼 2009/10/26 08:06 #
권총결투는 빗나가면 그걸로 끝이고 화해합니다.님은 '아이리쉬' 결투법을 지금 인용하고 계신데, 그때그때, 지역마다 달랐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터미베어 2009/10/26 16:23 #
권총결투라고 하고 책에 쓰여져있는 부분에 그렇게 적혀있더니...일부 지역 국한이었군요..
John 2009/10/25 13:30 # 답글
결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 내막을 보니가 참 황당한 사례들이 많군요...
피그말리온 2009/10/25 15:01 # 답글
실력이라기 보다는 거의 운에 맡겼던 싸움이었군요. -_-;;;;
Allenait 2009/10/25 15:10 # 답글
우리의 Old Hickory도 여러번 결투했다죠(..)
월광토끼 2009/10/26 08:07 #
잭슨같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게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그도 결투로 몸에 박힌 총알 때문에 평생 고생했습니다.
조이 2009/10/25 16:04 # 삭제 답글
흐흠... 전 옛날부터 서양의 결투를 항상 경악스러운 눈으로 봤었죠. "일반사회에서 개인들이 제멋대로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국가가 전혀 손대지 않다니, 뭐 이런 XX같은 일이 다 있냐?" 는 생각으로요. 월광토끼님의 글을 보니 더더욱 경악스럽습니다. ^^;
월광토끼 2009/10/26 08:08 #
"상류층" 마인드란 것에 좀 그런게 많습니다.
토나이투 2009/10/25 17:33 # 답글
알랙산더 푸슈킨도 권총결투로 세상과 들을 져버린 분이죠심지어 정부의 음모론과도 연관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고 시를 쓰더니만 정작 자신은 그대로 가버린 비운(?)의 인물입니다
천하귀남 2009/10/25 17:46 # 답글
헨리 모즐리의 선반기술도 일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이분의 기술덕에 총기정밀도가 왕창올라가서 운에맞기는 결투가 아니라 제대로 조준만하면 확실히 가버리는 총기가 나왔으니까요.
월광토끼 2009/10/26 08:10 #
그럴 수도 있겠군요.
갈매나무 2009/10/25 18:00 # 답글
미국의 그 유명한 해밀턴은 무려 현직 부통령인 아론 버와 결투를 하다가 사망했죠... 더 가관인 것은 '살인자'인 버는 잠시 도피했다가 복귀해서 그대로 부통령 임기를 마쳤다고 합니다..OTL
월광토끼 2009/10/26 08:12 #
버는 부통령 임기 마친걸로 끝이었습니다만. 그 사람 정치 생명은 그걸로 끝났었습니다.버의 업적은 해밀턴을 살해함으로써 Federalist의 생명줄을 끊어놨다는 것.
이준님 2009/10/26 08:19 #
버는 나중에 -정치 모략인 냄새도 짙지만- 연방을 분열시켜서 외국에 팔아먹고 황제가 된다는 음모로 기소되기까지도 했지요.
라라 2009/10/25 19:49 # 답글
프랑스 수학 천재 갈로아가 프랑스 경찰의 음모로 결투로 죽은게 생각나는군요죽기 전 날 밤 새서 쓴 논문...
피트가 죽었다면 영국은 프랑스 식민지가 되는건가요?
월광토끼 2009/10/26 08:12 #
그런 뜻으로 썼습니다.
迪倫 2009/10/25 20:24 # 답글
당시 약간 허세로 결투의 상처가 없으면 사나이로서의 매력이 없다능...그래서 목숨 건 심각한 결투 외에도, 서로 약간 "미세한" 상처를 주고받는 정도에서 결투를 하는 것도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월광토끼 2009/10/26 08:12 #
감사합니다. 그런 '미세한' 결투는 좀... --;
Zannah 2009/10/25 20:44 # 답글
결투 사교육!!
행인1 2009/10/25 21:22 # 답글
결투 도구가 검에서 총으로 바뀐 이유가 저런 것이었군요...
LVP 2009/10/26 05:26 # 답글
중세에도 날잡아서 칼싸움하던게, 아예 총질로 진화(?)했근영 'ㅅ';;;그나저나 엠파이어 토탈워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 그러니까, 결투 중 총을 상대방 콧잔등에 집어던지고 도망간다던가, 오발새고 나서 자기가 꼴까닥한 사례도 있었나요?
월광토끼 2009/10/26 08:13 #
재수가 나쁘면 길가다가 미끄러져 뇌진탕도 일으킵니다.엠파이어 토탈 워에 묘사된 사항은, 간단히 말해 CA스튜디오의 '유머'입니다.
위장효과 2009/10/26 20:32 # 답글
역시나 헝가리 출신이라 앰스카 올츠이 남작부인-여남작이라 해야하나-이 저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 풍속에 대해서 좀 어두웠군요.그녀의 대표작인 "스칼릿 핌퍼넬"시리즈에서는 "영국에서는 이 오래된 상류귀족들의 풍속이 법으로 금지되고 있었다"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