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전의 원인과 찰스 1세를 위한 변.


["부상당한 왕당파"]



현대의 수정주의 사학자들의 영국사 연구는, 18세기 중반의 권력 이동기에 이르기까지 ‘Parliament'(국회)라는 집단의 성향은 어떤 중요 사안에 있어서든 언제나 중립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의회의 권한과 왕권이 대립할 경우 의회의 자세는 최대한 충돌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으며, 대부분의 의원들의 경우 주된 관심은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의 정책과 경제였다. 찰스 1세와 그 유명한 영국 내전기에 이를 때까지조차, 존 핌(John Pym, 1584~1643)같은 과격 급진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왕권을 억누르고 의회 권력을 강화한다!” 따위의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으며, 국왕의 권력 남용시에도 ’불평은 하되 반항할 의도는 없는‘ 태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국사학계 수정주의 사학자의 거두였던 콘라드 러셀(Conrad Russell, 1937~2004, 이전 포스팅에서 이미 설명한.) 백작이 대표적 저술 “Parliaments and English Politics 1621~1620"(1979)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콘라드 러셀의 해석에 따르면 대규모 내전으로까지 치닫게 된 17세기 전반 영국의 정치 혼란 상태는 어떤 확고한 이념 갈등이 빚은 ‘예고된 폭발’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불안 요소들이 불운하게도 부적절한 시간대에 동시 존재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복잡한 관계와 과정의 결과였다. 스튜어트 왕조의 국왕들이 직면했던 큰 문제들은 내정보다는 경제와 외교 등 국외문제가 유발한 것들이었고, 이 문제들을 초래한 것은 결코 의회도 왕들 본인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왕들은 그 해소방법을 국내에서 찾았고 -다시 말해, 세금을 올렸고 -_-; - 의회는 이에 대해 ‘논쟁’하고 ‘불평’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고 러셀 백작은 그 ‘불평’들에도 불구하고 왕과 의회의 관계는 적어도 1630년 초까지는 양호했다고 설명한다.


1624년에 찰스 1세가 스페인과의 전쟁을 위한 예산안 통과를 요청했을 때 의회가 거부한 것은 그 어떠한 사상적 배경의 영향이 없는, 그저 단순히 ‘돈 내기 싫어서’였을 뿐이었다. 러셀은 이러한 1620년대 모습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좀 더 갈등이 심화되었던 1630년대에 대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피력한다.



그리고 찰스 1세에게도 합당한 '이유'는 있다. 그는 단순히 '절대왕정주의'를 영국에서도 실현시키려 한 야심있는 전제군주, 정도로 단순묘사될 인물이 아니고, 그의 정책들과 의회와 빚은 충돌들에는 여러가지 면모가 존재한다.

영국은 중세기 동안 체계적 정부 관료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헨리 8세 대에 이르러서야 ‘정부’와 ‘관료제’ 비슷한게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왕권의 직접적 권한과 통치 방식은 근본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었으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등 브리튼 섬 내에서의 분란과 유럽 본토 강국들과의 충돌로 인한 끊임없는 무력행사의 필요성 때문에 왕권에는 극심한 재정적 부담이 늘 주어졌다.


[세 얼굴. 반 다이크의 찰스 1세 초상화.]



또한, 찰스 1세가 즉위하던 시기의 유럽은 획기적이고 또 대단위의 군사 혁명이 진행되던 곳이었다. 화기 제조의 기술적 발전과 대규모 상비군의 발전, 그리고 해전 기술의 급격한 발달 -곧 도래하게 된 전열함과 대단위 함대 전투의 시대- 은 각국의 군주들에게 엄청난 국방예산의 증가와 그로 인한 경제 부담이라는 문제를 안겨주었다. 왕권이 강력했던 프랑스에서조차 크게 불어난 전쟁비 지출은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 시기에 국내 반발이나 별 큰 무리 없이 국방예산 증가가 이루어졌던 것은 유럽에서 오직 네덜란드 한 곳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생 독립국에다가 영국을 빼곤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적성 국가였던 네덜란드의 사례는 특별하다)





특히 섬나라 영국으로서는 해군 증강이 가장 큰 관건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해군은 돈 먹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찰스 1세의 악명 높은 건함세(Ship Money)는 이 때문에 생겨난 물건이었고, 영국 내전을 코앞에 둔 갈등고조의 시기 동안 영국의 지식인과 정치가들은 늘 ‘해군 유지를 위해 대체 돈을 얼마나 쓰는 게 납득할만한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곤 했다. 또한, 스튜어트 왕조의 도래와 함께 합쳐진 스코틀랜드와의 감정적 불화, 그리고 헨리 8세가 점령한 후 반항이 끊이지 않았던 아일랜드의 문제는 다른 모든 외국과 평화관계를 유지했다손 쳐도 계속 돈 쓸 곳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만약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문제가 없었다면 과연 1642년에 내전이 발발했을까?

물론 종교 문제가 있긴 했다. 위의 식민지 분란 문제에도 종교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스코틀랜드의 침례교회가 영국식 기독교화를 극렬하게 거부한 것과 아일랜드의 가톨릭교인들이 청교도를 거부한 것이 그것이다. 영국 국교회에서의 왕권 강화를 꾀하던 찰스 1세의 종교 정책이 왕비 앙리에타의 신앙(가톨릭) 문제와 권위주의적 교회체제의 성립 가능성과 합쳐져 의회와 일반 시민들에게 큰 반감과 불안을 불러일으킨 것은 내전 발발을 일으킨 중요 요소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 종교 문제에도 불구하고 1637년의 스코틀랜드 분쟁(Bishop's War) 직전까지 영국인들은 왕권에 반항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협력하고 있었다. 훗날 내전에서 의회파를 이끌었던 수많은 귀족들과 상인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국왕 정책을 일단은 따랐던 것이다. 그 올리버 크롬웰조차 건함세를 꼬박꼬박 지불했다! 내전에서 국왕과 왕당파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 중 상당수가 당시 국왕 정책의 큰 비판자들이기도 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해, 대규모 내전의 발발 가능성은 내전 발발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전혀 가시거리에 들어와 있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콘라드 러셀과 그 지지학파의 주장에 반대하며 기존의 ‘확고한 이념적 대립과 그 대립의 지속적 가증’이 존재했음을 주장하는 논리는 계속 전개되고 있으며,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Todd, Margo. 1995. Reformation to revolution: politics and religion in early modern England. Rewriting histories. London: Routledge.

덧글

  • Allenait 2009/11/28 13:22 #

    저도 전에는 이념적 대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꽤 괜찮은 설명이군요.
  • 迪倫 2009/11/28 14:03 #

    잘읽었습니다. 안그래도 다음 글을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간의 주도권 쟁탈에 대해 쓰려던 참이었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네덜란드는 확실히 유럽에서 별종이었죠...
  • 월광토끼 2009/11/29 08:39 #

    감사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들꽃향기 2009/11/28 14:42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정작 의회파에 대항하는 왕당파라고 '왕권신수설'적이거나 기타 '대응사상'적 면모가 있던 것도 아니라는 점은, 영국내전을 윌리엄 3세의 추대에까지 이르는 '영국적 시민혁명'의 연속선상으로 보는 종래의 테제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의회파 내부의 사상적 요소의 분석을 통해, 왕권저항적인 측면을 연구하려는 시도는 유효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대응하려던 이들이, 그들의 사상에 대한 '대립항'이 아니었다면 종래의 통설에서 주장하던 '혁명적'인 요소가 희석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월광토끼 2009/11/29 08:41 #

    사실 19세기까지 종래의 영국사가 너무 획일적으로 해석되고, '시민혁명'이라는 식으로 과대포장된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혁명을 겪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요.
  • 아브공군 2009/11/28 14:57 #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아주 복잡하디 복잡한 이유들이 겹치면서 결국 폭발한 거군요... 잘 읽었습니다.
  • 월광토끼 2009/11/29 08:41 #

    감사합니다. 추가로 후속 포스팅을 할 생각입니다.
  • 헤르모드 2009/11/28 14:57 #

    잘 읽었습니다. 수정주의 학자들의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 월광토끼 2009/11/29 08:42 #

    다음에는 기존 테제를 답습한 학자들의 해석에 대해 써 보지요.
  • 샤티엘 2009/11/28 15:25 #

    잘 읽었습니다.
    역시 돈문제는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으며 그 어떠한 논리나 설명보다 더 강렬하게 다고오는 군요.
    물론 돈만이 문제된것은 아니겠지만, 겉으로 들어난 부분에서 더 파고들어 먹고 사는 문제-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돈문제-를 관과 하지 않은것도 나쁘지 않네요.
  • 월광토끼 2009/11/29 08:42 #

    물론 돈 외에도 여러 요소가 있다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 쿠로이치 2009/11/28 16:34 #

    아직 풋내기 정치학도로서, 영국 정치사를 배울때 언제나 의회 vs 왕권의 관점으로 배우고 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신선하군요~
  • 월광토끼 2009/11/29 08:43 #

    그 의회vs왕권의 관점이 지나친 단순 일반화라는게 문제지요.
  • deokbusin 2009/11/28 20:03 # 삭제

    1. 잘 읽었습니다.

    2. 쉽 머니는 예전에는 선박세라고 번역되곤 했습니다.

    3. 어째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찰스1세 항목과 비슷하다고 느껴질까요?^^
  • 월광토끼 2009/11/29 08:43 #

    1. 감사합니다.
    2. 선박세입니까?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 검색해 보니 건함세라 나오고, 사실 그 세금의 목적이 건함이었던 점 때문에 그렇게 썼습니다만.
    3. 유감이지만 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 행인1 2009/11/28 21:44 #

    이런 사실도 있었군요. 잘 읽고 삽니다.
  • 월광토끼 2009/11/29 08:44 #

    잘 읽고 '삽'니다.... 인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 나아가는자 2009/11/29 00:56 #

    수정주의적 관점의 문제제기는 굉장히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당시 영국의회가 왕의 뜻에 투덜거리며 그냥 따라갈만큼 무력한 집단이었을까라는 의문은 듭니다. 1624년인가, 1628년에 영국의회에서 증세안이 통과되자 왕이 눈물을 흘렸다라는 기록이 있는것은 그만큼 의회가 왕이 다루기 까다로운 문제였던거 같고...
    그래도, 스코틀랜드 문제 등 브리튼문제라는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러셀의 시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견이었고,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월광토끼 2009/11/29 08:44 #

    물론 의회가 무력했다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크게 저항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것 뿐이지요.
  • 조이 2009/11/29 22:38 # 삭제

    영국 내전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것 밖에 모르다보니,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되니 놀랍습니다. 특히나 왕당파 지도자들이 정작 내전 이전에는 찰스 1세의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그러니까 이런 건가요? 내전 이전에는 "요즘 국왕이 하는 일들이 하나같이 엉망진창이구만. 이대로 두면 안되겠어" 라고 하다가 내전이 터지니까 "아무리 국왕이 실수가 많다고 해도, 반역이라니? 용납할 수 없다"가 된 건지?
  • 루움 2009/12/01 00:08 # 삭제

    저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슷한 사례일 수도 있겠지만, 의회군 총사령관 토머스 페어팩스는 국왕의 처형을 막고 목숨이라도 건져내려고 노력했었다고 하더라고요...
  • 월광토끼 2009/12/01 11:12 #

    하하, 네. 그런 느낌이였겠지요.
  • 루움 2009/12/01 00:04 # 삭제

    공부하면서 콘러드 러셀의 이름을 어디에서 들어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이 주장을 담고 있었더군요;;; 배우고 갑니다.
  • 월광토끼 2009/12/01 11:13 #

    배움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수부기 2010/04/24 08:57 #

    잘 읽고 갑니다. 어째서 유럽은 프랑스가 루이 16세 목 벴을 때완 달리, 영국이 찰스 1세 목 벤 건 무심하게 바라봤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냥 흔히 있는 '반역'이나 정치 충돌 정도로 바라보는 것. 크롬웰은 사보나롤라 쯤 되는 망상가라 여기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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