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영광을 그리다 - 여화가 버틀러 부인의 작품들

여러분. 이 그림을 보신 적 있습니까? 만약 서양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여 영원하라!Scotland Forever!"란 작품입니다. 1881년에 그려졌고, 나폴레옹 전쟁을 다루는 그림들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지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파상공세 후 영국군 중기병대 '로열 그레이 스캇츠Royal Grey Scots' 연대가 프랑스군 전열을 향해 돌격한 유명한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돌격 중에 프랑스군의 폴란드 창기병대에 격파당했지만 -_-) 1960년작 영화 "Waterloo"에서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그 장면도 바로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지요.

아무튼, 오늘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 얘기해 보렵니다.


열흘 전 이 글"두 그림과 영국적 애국주의의 탄생"에서 영국의 '역사 화가'들과
그들이 표츌한 영국에 대한 애국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지요. 마치 우리나라의 '민족기록화' 같이 말입니다. 한국의 경우 김형구 화백의 '한산도 대첩 민족기록화' 나 손수광 교수의 '청산리 대첩' 같이, 교과서나 우표에 실리는 그림들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전쟁' 그림들을 그리며 남성적인 전투적 열의를 표현하며 다분히 19세기 적인 국가주의를 고취시키는
그런 일을 '여성' 화가가 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가죠? 그런데 영국에 그렇게 해서 유명해진 여화백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여화가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버킹엄 궁, 윈저 성, 리즈 미술관,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등에 당당히 걸려 있지요.

그 화가의 이름은 버틀러 부인 엘리자베스 톰슨Elizabeth Thompson, Lady Butler, 1846~1933.





엘리자베스 톰슨은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 이탈리아에서 자랐는데,
그림에 소질과 흥미를 보여 어린 나이에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영국에 돌아온 후 그녀는 20세의 나이(1866)에 런던 여자 예술 학원(오늘날에는 남/여 합쳐서 그냥 왕립 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 입네다)에 입학, 2년간 공부하던 중에 온가족이 아예 이탈리아의 플로렌스(피렌체)로 이민을 갔고, 그녀도 학적을 피렌체 미술학원(Accademia di Belle Arti Firenze)로 옮겨 거기서 미술공부를 계속합니다.

이태리 화풍의 영향을 받았고 주로 종교적인 그림들을 그리던 그녀는 1870년에 파리에 유학을 갔는데, 거기서 프랑스의 전쟁 화가들의 그림들 (메소니에Meissonier의 나폴레옹 전쟁이라던가 혁명전쟁의 묘사 - 지금도 베르사유 궁 전쟁관에 걸려있는)을 보고 뭔가 확 느낀게 있었는지 전쟁화, 역사화로 자신의 작품 주제를 바꿉니다.

그리고는 런던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전쟁 그림들을 그리는데 몰두하고, 그렇게 해서 1874년에는 무려
Royal Academy(왕립 미술원)에 등원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녀의 작품들은 (애국적인)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가슴에 뭔가 불을 확 질렀는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녀는 당대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반열에 오르지요.

데일리 텔레그라프 지에서 그녀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을 정도였고...

게다가 미인이기도 해서 하악댄 남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젊고 아리따운 여화가가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과 상징인 대영제국의 남성미와 비장한 전장에서의 영광을 주제로 대작품들을 그려낸다? 뭐 당대의 연예인이었던게지요.

그녀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결혼을 하는데, 그 상대가 육군 중장 윌리엄 프란시스 버틀러Lieutenant-General Sir William Francis Butler, 1838~1910)입니다.



그냥 아무 사람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굉장히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마음 착한 장군이랑 결혼한 건데,
이 프란시스 버틀러 장군은 반-인종주의에 반-제국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고, 시와 수필을 즐겨 쓰며
교육에 힘써 대학에서 강연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군력은 남아프리카와 줄루 전쟁, 이집트 전쟁에서 쌓았고.

그래서 부부 사이도 좋았다지요. 애를 다섯 명이나 낳았고. 남편은 아내의 화가 생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동안 버틀러 부인은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킵니다.


설명은 이쯤하고, 그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The Roll Call". 크리미아 반도에서 전열을 가다듬는 영국군의 모습. 1874년작].


["The Colours". 크림 전쟁의 알마 전투에서 진군하는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1899년작.]


["The Return from Inkerman". 크림 전쟁의 인커만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제 20 랭카셔 보병연대. 1877년작.]


["The 28th Regiment at Quatre Bras". 워털루 며칠 전 콰트르-브라 전투에서 프랑스군 기병대를 상대하는 제 26 글로스터 보병연대. 1875년작.]


["The Dawn of Waterloo". 워털루 전투를 앞둔 새벽, 전투 준비 중인 용기병대. 1895년작.]


["Steady the Drums and Fifes". 알부에라 전투에서 전의를 고취시키는 제 57 웨스트 미들섹스 보병연대의 군악대. 1897년작.]


["Balaclava".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돌격 후 전멸하고 돌아온 경기병 여단의 생존자. 1876년작.]


["Retreat From Mons". 1차세계대전 중, 몬스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밀리자 함께 후퇴하게 된 영국군 기병대. 1927년작.]





다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자주 사용되는 그림들이지만, 그 그림들을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요. 그 그림들을 실는 글들은 '역사'에 대한 글이고, 그림들은 그저 '시각 자료'의 용도로만 첨부될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알고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썼습니다.

아무튼, 멋진 그림들이지않습니까?

덧글

  • 른밸 2010/01/22 08:27 #

    다들 한번씩 본 그림이지만, 당연히 남자화가가 그린줄 알았는데 여화가일줄이야...

    그런데 토끼님- '열흘 전 이 글'에 걸려야 할 링크가 그 뒤 본문 전체에 걸려버렸습니다;; 수정하셔야할 듯;;
  • 월광토끼 2010/01/22 08:32 #

    실수. 수정했습니다.
  • Allenait 2010/01/22 08:29 #

    저도 무심결에 남자 작가인줄 알았습니다(..)

    덤: 링크가 잘못 걸린것 같군요
  • 월광토끼 2010/01/22 08:32 #

    실수. 수정했습니다 -_-;;
  • 이준님 2010/01/22 08:32 #

    남편의 빽이 있어서 몇장면은 실제 참전자내지는 실제 부대원이 "재현"한것도 있지요. 가장 윗그림도 실제 기병대를 몇번이나 돌격시키게 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존 키건 영감 말마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구성을 위해서 실제와 다른 부분이 좀 있다고 하지요. 이를테면 기병대가 저렇게 밀집해서 질주하면 잘못하면 말끼리 얽혀서 밟혀죽습니다. --
  • 월광토끼 2010/01/22 08:36 #

    아. 실제 워털루 전투에서는 땅이 비온 뒤 질척하게 젖어있었기에 기병대가 저렇게 질주(Full Gallop)하지 않고 보통 속도 구보(Trot)를 했지만 극적 연출을 위해 저렇게 했다지요 -_-; 설명 할까 말까 했는데.

    남편 빽으로 '재현'한 얘기는 처음 듣는데 그것도 재밌군요. 허허.
  • 이준님 2010/01/22 08:33 #

    덧: Roll Call은 1974년 박정희때 그렸나요?
  • 월광토끼 2010/01/22 08:34 #

    아이고 이런 실수를 ㄱ-;;;; 고쳤습니다.
  • dunkbear 2010/01/22 09:20 #

    그녀의 집안에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나 봅니다. 레이디 버틀러의 여동생도 시와 에세이
    문학가로 활동했는데 그 여동생의 첫번째 시집에 일러스트를 그려주기도 했다고 하니...
  • 월광토끼 2010/01/22 10:17 #

    이태리에서 사는 사람(외국인)들은 다 어느정도는 예술가적 기질이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 들꽃향기 2010/01/22 09:57 #

    그러고보니 웰링턴 공작은 정작 레이디 버틀러가 그린 카르트브라 전투의 그림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고 하더군요. 전장은 그림으로 저렇게 밝게 표현될 곳이 아니라던가요 ㄷㄷ
  • 월광토끼 2010/01/22 10:16 #

    ...'어느' 웰링턴 공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서 웰즐리는 1852년에 작고했는데;
  • 들꽃향기 2010/01/22 10:24 #

    아 제가 알고 있는건 다른 화가에 대한 평이었나보군요. 일전에 웰링턴 공장이 워털루 전투를 묘사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이건 아니잖아~'했다는 얘길 들어서요. 저의 착오였나봅니다. 죄송합니다.
  • 월광토끼 2010/01/22 10:27 #

    아니, 죄송하실 것 까지야;; ^^;
  • 엽기당주 2010/01/22 11:12 #

    밀피넷의 주인장님이 생각나는군요. 갑자기..

    밀피넷 주인장님이 메이저에 등극하시면 거의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기도..
  • 월광토끼 2010/01/23 16:46 #

    누군지 몰라 찾아봤는데, 밀리터리 피규어를 좋아하는 여자분이셨군요
  • 소시민 2010/01/22 11:46 #

    버틀러 장군 은근히 프라이스 대위 닮았군요.
  • 월광토끼 2010/01/23 16:47 #

    -라기보다 그저 수염이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이라 -_-;
  • 대한민국 친위대 2010/01/22 13:54 #

    여류화가의 그림이라니... ㄷㄷㄷ;;;
  • 월광토끼 2010/01/23 16:47 #

    그런데 요즘 '여류화가'란 표현도 성차별적이라 그냥 구분없이 '화가'로 불러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0/01/22 14:22 # 삭제

    근데 남편되기는 분이 반제국주의라니 그당시 사회와 대조되는 점이 우습네요
  • 월광토끼 2010/01/23 16:48 #

    성향이 그랬다는 거지요. 그런 얘기도 공공연하게 하고.
    하지만 그런 제국주의의 무력을 행사하는 직무를 소흘히 하지도 않았다네요 -_-
  • 네비아찌 2010/01/22 15:31 #

    화가가 여자분이라는 점에 한번 놀랬고,
    남편이 장군이었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이 반 인종주의, 반 제국주의자였다는 점에 또 놀랬습니다.
    결론. 멋진 그림, 멋진 화가, 멋진 남편.
  • 월광토끼 2010/01/23 16:48 #

    멋지지요.
  • 굽시니스트 2010/01/23 00:09 #

    아아, 방금 영화 포페더스를 보고 문득 떠올리게 되는 것이 역시 월광토끼님의 이 포스팅이지 싶습니다.

    제국의 영광, 붉은 군복은 정말 저 섬나라의 우월함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하는군요

    (옛날 게 아니라 02년 히스레저의 포페더스 말입죠^^)
  • 월광토끼 2010/01/23 17:09 #

    오오 굽시니스트님도 포 페더스 보셨군요. 의외로 그 영화 본 사람이 많지 않던데...

    그나저나 이글루에서는 굉장히 오랜만입네다^^

    시사인 123호 만화 잘 봤습니다. 3Bell과 In원과 호박이 인상적이더군요 :D
  • 울트라김군 2010/01/23 01:45 #

    몇몇 그림에서 전장의 피로감이 느껴지는게 참으로 인상깊습니다.
  • 행인1 2010/01/23 21:10 #

    그런데 종교화 그리던 분이라서 그런지 어떤면에서는 종교적인 느낌도 좀 나는듯 합니다.
  • 위장효과 2010/01/25 11:57 #

    The Colours 같은 그림은 스코틀랜드 근위연대 홈피 메인 타이틀에도 실려있으니 어느정도 위상을 가지는지 알만 합니다.
    밀피넷 쥔장 에바님은 아기 재우고 몰래몰래 비네트 만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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