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예트 후작 쥘베르 모티에의 일생 - 04.

다들 이걸 먼저 써달라고 요청하시기에 이렇게 써 올립니다 ^^;


라파예트와 그의 동료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 디딘 건 1777년 6월 13일의 일이었다. 8주간의 긴 항해 끝의 상륙이었다. 라파예트 일행이 탄 빅투아르 호의 원 목적지는 챨스턴 항구였으나, 영국 해군 프리깃함 두 척이 항구를 봉쇄중이었기에 급히 회두, 추적을 피하다 일부는 내려 육로를 통해, 나머지는 계속 배로 다시 밤을 타 몰래 챨스턴까지 간다.

챨스턴에 도착한 일행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이미 챨스턴에는 스스로를 고위 장교 또는 고관대작이라고 사기 치면서 으시대고 지역주민들의 돈을 갈취하려드는 프랑스 장교들로 가득했고, 전반적인 프랑스인들에 대한 불신-불과 2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미 식민지 민병대와 영국군은 프랑스군과 인디언들을 상대로 처절한 전쟁을 치뤘었다!-으로 인해 프랑스 ‘외인부대’들을 그다지 환영할 의사가 없었다. 여기에 문명과 고급문화의 선두주자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인들이 정작 ‘촌구석’ 미국 땅에서 ‘개구리와 달팽이를 먹고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야만인들’ 취급 받았으니, 파견된 프랑스 장교들도 미국 땅과 미국인들에 대한 안좋은 인상만 가득 가졌다.

라파예트 본인은 (그가 빅투아르 호에 싣고 온 물자, 그리고 그의 높은 지위 덕에)마을에서 환대받았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민병대 지휘관인 윌리엄 물트리 장군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챨스턴 여관에서 함께 묵은 다른 장교들과 라파예트의 서로 판이한 그 날 경험에 대한 감상이다.

다른 장교들은 ‘견딜 수 없는 챨스턴의 물가’라던가, ‘끔직하기 짝이 없는 침소’, ‘더럽고 맛 없는 물’, ‘팍 삭고 못생긴 여자들’ 등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고 그런 내용을 일기에 적었다. 허나 라파예트 혼자서만 완전히 다른 감상을 적고 있었다. 미국에 체류한지 6일 째에 프랑스로 가는 배 편에 부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라파예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미국인들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요… 검소하고 소박한 예법,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태도, 애국심과 자유에 대한 열망, 평등한 인간관계등… 특히 나를 매료시킨 것은 모든 시민들이 서로 형제와 같다는 것이오. 미국에는 거지도 없으며 우리가 ‘농부’라고 부르는 하층 소작민들도 없소. 모든 시민들이 다 평등한 수준의 재산을 가지고 있고, 가장 땅이 많은 지주와도 동등한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있소.”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열 아홉 살의 청년 장교/귀족은 미국에 대해 완전히 콩깍지가 쓰여 있었고, 그의 눈엔 미국의 모든 것이 (심지어 부정적인 면까지) 다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다.

빅투아르 호에 싣고 온 물자를 챨스턴에서 팔고 식료품을 산 후, 라파예트 일행은 도보로 필라델피아까지 가기로 한다. 당시 필라델피아 시는 미국의 수도 역할을 맡고 있었고, 여행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했다. 한여름의 뜨겁고 습기 찬 미국 동해안 중남부를 통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챨스턴에서 바가지를 쓰고 산 비루먹은 짐말들은 여행 며칠만에 죽어 쓰러져 버렸다. 결국 라파예트 일행은 짐들을 다 길가에 버리며 남은 건 등에 짊어매고 걸어가야 했다. 일행의 다른 장교들이 불평 불만을 터트린 건 당연한 일이다.

다들 “미국인들은 좀스럽다” 라던가 “프랑스에서 우리가 들은 것 보다 훨씬 미국이란 곳은 열악한 곳이었다!” 또는 “유럽의 어떤 전장도 이 여정만큼 힘들지는 않았다”거나 “모기들에게 뜯겨 죽을 것 같다” 같은 기록들을 남기고 있는데, 이런 때 마저도 라파예트는 그런 것들에 초연한 채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메리카는 거대한 숲과 강으로 가득차 자연의 젊음과 광휘가 느껴진다오! 북쪽으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난 이 아메리카와 그 주민들이 더욱 좋아지고 있소.”

그가 여정 도중 매릴랜드 주 애너폴리스를 지날 즈음에 다시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고향에서 전전 긍긍하며 기다리고 있을 임신 8개월의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밝게 쓴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일행이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건 챨스턴에서 도보로 출발한지 32일이나 지난 7월 27일 일요일 아침에서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일요일인지라 의회와 정부도 휴일이었고, 꾀죄죄한 몰골의 그들이 대륙 의회의 의장이었던 존 핸콕의 집 문전에 가자 핸콕은 그들을 집에 들이지도 않고 외국 장교 심사단장인 로버트 모리스에게 보냈으며, 로버트 모리스는 라파예트 일행에게 그 다음 날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의회 건물 앞에 간 라파예트 일행은 문 앞에서 여러 시간을 서서 기다렸는데, 한참 후에 나온 로버트 모리스는 “불어를 잘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 줄 테니 할 말은 다 그에게 하시오”라고 한 후 훌쩍 떠나버렸다. 그 불어를 잘 한다는 사람은 또 라파예트 일행을 ‘아벵튜린’, 즉 군인이 아닌 ‘모험가들’로 지칭하며 건물 안으로 들이지도 않고 ‘의회는 당신들의 미래에 복이 있길 바라오’따위의 인사 후 내쫓아버렸다!

미국에 오기 위해 두 달 간 영국 해군 초계함을 피해 항해하고, 다시 육지로 한달 간 험로를 뚫고 달려온 라파예트와, 그와 함께 온 다른 열 네명의 프랑스 육군 장교들은 그렇게 필라델피아 시 관공서 앞 체스트넛 거리에 문전박대를 당한 채 멍하니, 입을 헤-벌린 채 서게 되었다.

(위 내용은 전부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뒤부아송Dubuysson 백작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라파예트를 무안하게 만든 그 문간]




사실 이런 문전박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국의 프랑스 파견 외교관 실라스 딘Silas Deane은 수많은 프랑스 육군 장교들을 미국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고, 많은 능력 있는 장교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헌데 딘의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장교들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약속들을 남발하며 모병했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장교단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장교들이 각자 여단장이니 사단장이니 소장이나 중장이니 하다못해 대령이니 하는 확보 불가능한 보직들을 약속 받고 미국에 몰려 들었으니 이게 어디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래 의회에서 딘에게 허락한 것은 단 네 명의 공병장교들의 확보였는데, 미국에 처음 도착한 프랑스발 수송선이 싣고 온 것만 장군 한 명, 대령 한 명, 대위 열 명, 중위 아홉 명, 의무장교 네 명. 그 뒤를 이어 도착한 배들은 더 잔뜩 그런 군인들을 싣고 있었다.


딘은 당연히 의회에 의해 본국으로 파직 후 송환 당했는데,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 그가 대륙군에 정식으로 임관시켜 밀어 넣은 장교들은 전부 합해;

중장 세 명, 준장 다섯 명, 대령 일곱 명, 중령 열 여섯 명, 소령 열 두 명, 대위 열 두 명, 중위 이십여명이라는, 장교들로만 일개 중대를 구성해도 좋을 숫자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대륙군에는 그렇게 많은 장교가 전혀 필요치 않았다]



이들 모두 영어를 끔찍히 못했으며, 자신들의 군사적 재능에 대한 허영적 자부심과, 직위와 연봉에 대한 욕심과, 미국인들에 대한 경멸로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대륙군 총 지휘관 죠지 워싱턴 장군은 의회에게 ‘아 이딴 놈들 고만 좀 보내시오. 이 놈들이 다 우리 군의 사기와 물자와 군자금을 깎아먹고 있소!’라는 항의 서한을 수십 번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수많은 장군과 장교들을 다시 배 태워 프랑스로 보낼 수도 없었다. ‘프랑스와의 우호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라파예트를 포함한 열 다섯 명의 또 다른 프랑스 장교들이 환대를 받았겠는가?


[요한 드 캅, 쥘베르 모티에 라파예트, 그외 등등 대륙군 내 프랑스와 독일 출신 장교들]


to be continued


본 기획의 이전 글들: http://kalnaf.egloos.com/tag/LifeOfLafayette



본 기획의 참고 서적:

Gaines, James R. 2007. For liberty and glory: Washington, Lafayette, and their revolutions.
New York: W.W. Norton & Co.

Unger, Harlow G. 2002. Lafayette. New York: John Wiley & Sons.

덧글

  • dunkbear 2010/01/25 09:20 #

    라파예트 후작의 저 편지들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한 내용으로 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콩깍지가 씌워져도 저런 고생을 하고 좋은 얘기가 나올 수 있을 리가....
  • 아브공군 2010/01/25 09:50 #

    저도 일부러 밝게 쓴 것 같다는.... 그리고 고생해서 와 보니 '너무 많아서 필요 없음' 이 된 장교들은.....ㅠㅠ
  • nighthammer 2010/01/25 09:56 #

    콩깍지의 힘은 무시무시하네요. 정말.
  • 들꽃향기 2010/01/25 11:01 #

    간만에 쓰신 라파에트 관련 잘 읽고 갑니다. 그런데 짤방에서 독일계 장교들을 언급하셨는데, 아직 이 시기에 슈토이벤 남작을 비롯한 독일계, 프로이센계 장교들은 도착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네요.
  • Allenait 2010/01/25 11:48 #

    진짜 아내를 위해서 일부러라도 밝게 쓴것 같군요
  • 슈타인호프 2010/01/25 12:18 #

    ................장교 중대 ㄷㄷㄷ;;;;

    딘은 지나치게 열성적이었던 겁니까, 아니면 가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약속을 부도낼까봐 걱정한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캐스팅한 자들의 재능이 불안해서 일단 많이 보낸 걸까요--;;
  • 청풍 2010/01/25 18:37 #

    그 거대한 숲과 강으로 가득차 자연의 젊음과 광휘가 느껴지는 아메리카와 그 [원]주민들은 지금....
  • 격화 2010/01/25 20:10 #

    역사는 재미있군요.

    … 물론 후대에서 책으로 보았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만요. ^^;
  • 행인1 2010/01/25 22:48 #

    풍운의 꿈을 안고 도착한 신대륙에서 말 그대로 '잉여' 취급을 받았을 라파예트의 심정이 어떠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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