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역사 서술에 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Howard Zinn. 1922~2010.
[사진은 1945년 1월의 것으로, 그가 영국에 배치 된 미육군 항공대의 폭격수였을 때이다]



하워드 진이 1980년에 쓴 "A People's History of America"는 대단히 성공적인 책이었다.
책은 전세계적으로 수천만권이 팔렸으며 역사서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상업적으로.




하지만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하워드 진이 이 책을 통해 '민중사'를 대중과 학계의 관심에 놓이게 한 것은, 다시 말해 주류 사회에 편입시킨 업적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언제나 비주류에 있던 맑시스트계 사학자들의 논조를 세련되게 다듬어서 대중에 알렸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서는 공정해야, 또는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 법. 진의 '미국 민중사'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책이다.

People's History, 민중사란 그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세계 흐름을 주도하는 국가 지도자나 정치가들, 그리고 밀실야합에 의한 정부 정책들에 중점을 두고 '지도자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기존의 역사학을 성토하며, 그 밑에서 혹사당하고 무시당해온 일반 대중과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서술하는 수정주의 역사서다.

그래서 그는 그다지 주목 받지 않은 사건들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노동자, 여성, 흑인, 인디언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심지어 미국사를 얘기할 때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1919년 시애틀 대파업 사건에 대해서까지 대단히 공을 들여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그 '소외받아 온' 계층은 자신들만의 역사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워드 진이 묘사하는 '민중'은 자신들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나 누군가 압제자들에 의해 사기 당하고, 핍받 받고, 끌려다니기만 하는 허약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미국사의 모든 것을 class struggle, 계층 갈등으로, 그것도 상류층에 의한 일방적인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그런 식의 서술이 되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여성', '흑인', '인디언'들은 개별 집단이 아닌 '피억압자'라는 하나의 모호한 군상으로 뭉뚱그려진다. 이것은 역사 속 민중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비하하는 식이다.


게다가 국가주의/애국주의를 견제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 까진 좋은데, 그게 지나치면 또 국가에 대한 공격이 되어 버린다. 미국 건국사를 다루는데 있어 'Founding Fathers'들은 어떠한 이상이나 비전이 있어 공화국을 세운 사람들이 아닌, 단순히 다루기 힘든 민중들을 말 고분고분 듣게 만들기 위해 속이고 manipulate 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러면서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에 대해서조차 그것이 정당한 전쟁이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며 그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시각을 조명하고, '정말 그게 사람들이 일치단결해서 나찌와 일제의 억압에 저항한 것일까' 또는 '반전론자들이 탄압받지 않았는가' 같은 의문을 전면에 내세운다.


'민중'에 관심과 중심을 두고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국가와 정부, 그리고 그 지도 집단을 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피지배 민중이라는 주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공정성이 흐려진 것이다. 진의 책을 읽다보면 미국의 역사는 비탄과 절망과 사악한 억압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중사는 칭찬할 만한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이정도로 수정주의, 사회주의적 역사관을 정연한 논조로 피력하며, 그것도 제대로 된 사료를 제대로 사용하여 서술한 사학자는 드물기 때문이다. 적어도 진이 제시한 fact들 자체에 오류는 없다. 다만 어떤 fact들을 모아놓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사관도 필요하고, 배울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필요성을 제하여 따로 놓고 본다면, 이 "미국민중사"는 절대로 공정한 책이 아니다.



뭐, 그렇다 해도 하워드 진의 미덕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것이고, 그것만큼은 그가 그 '행동' 덕에 얼마나 엄청난 돈을 벌어 갑부가 되었건 간에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다.

그의 거의 극렬한 수준의 반전 성향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실제 참전하여 자기 손으로 소이탄을 타인의 머리 위로 흩뿌리며 전쟁의 참상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맨 위 사진도 그의 군 시절 것으로 올려 논 거고)












ps. 재밌는 건 진이 한국과 한국전에 대해 발언한 부분입니다. 이건 민중사에 실린게 아니라
1998년 잡지에 기고한 논설에서 '대통령들의 거짓말'을 논하며 언급한 건데

Truman also lied to the nation about our war in Korea, saying we were fighting for democracy (hardly, since South Korea was a military dictatorship).

미국의 한국전 참전 명분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였지만 한국은 독재국가였다 라고 지적하는게 재밌군요.

덧글

  • 네리아리 2010/01/30 15:39 #

    공정한 역사서는 아니다...............아이쿠아
  • 만슈타인 2010/01/30 15:39 #

    역사에서의 공정... 참 어려운 것입니다. 있는 지도 궁금하고요.

    안 보이던 다른 한 쪽을 조명해 준 것 자체로도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책이라 봅니다.
  • 초록불 2010/01/30 15:58 #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후학들의 의무겠지요...^^;; 저야 더 좋은 책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독자일 뿐이지만...
  • gforce 2010/01/30 16:03 #

    개인적으론 하워드 진이라는 학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본인의 문제보다도 그 저작 가지고 인간들이 쳐대는 드립들이 참 끔찍하죠. 그런 의미에서 노암 촘스키 이 망할 노인네는 빨리 사회주의 파라다이스로 가 줬으면.
  • 산왕 2010/01/30 16:46 #

    사; 사회주의 파라다이스!
  • Mr 스노우 2010/01/30 16:17 #

    잘 보았습니다. 많은 면에서 공감합니다.
  • Allenait 2010/01/30 16:23 #

    그래도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로군요
  • dunkbear 2010/01/30 17:46 #

    군사 독재 이전에 자유당 독재도 있었고... ㅜ.ㅜ
  • 허리가아프군 2010/01/30 19:30 #

    하워드진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있습니다.

    사실 편향되었다는 말이 맞는 책이긴 하더군요.

    민중사 보단 민중억압사 같은 느낌의.(물론 민중저항사도 나오지만)

    개인적으론 2차세계대전을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의 대립끝의 땅따먹기 정도로 보긴 합니다만.
  • 소시민 2010/01/30 19:34 #

    역시 공정성은 독자가 직접 여러 주장들을 찾아 봄으로 완성되는 것이군요...
  • 이준님 2010/01/30 19:39 #

    저도 하워드 진의 책을 보고 감동(!)까지 했지만 어디까지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나름보수분의 책이나 대중적인 책을 같이 사봤죠. ^^;; 오히려 그러니까 눈이 열리더군요.

    그래도 "미국 민중저항사"(짤방에 나온 책)은 나름 낫죠. 한XX쪽에서 밀어주고 번역해준 책은 좀 개그인게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전에 대한 진실"을 밝힌 사람으로 "스토운"을 지적한건 개그지만요.(전 스토운을 좀 점잖고 깊이 있는 진중권급 인간으로 보거든요. 스토운이 52년에 낸 책을 보면 거의 김성모 수준이라고 보기때문에)
  • 허리가아프군 2010/01/30 19:50 #

    하워드 진선생도 가끔 지나칠때가 있으시더군요.(너무 지배 피지배 개념만 보신다던지)

    제가 아직 책을 다 못읽어서 그런데, 위에서 언급하신 내용이

    어디서 나오는 내용인지 가르쳐 주실수 있습니까?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ps.이준님 블로그는 항상 감사히 잘 보고있습니다.

  • 레이니 2010/01/30 22:24 # 삭제

    한국전쟁 등 공산주의와 관련된 부분은 하워드 진 선생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워드 진이 그 부분을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련과 중공 등 다시 상대편이었던 공산주의 세력의 자료가 공개되기 전까지 I. F. 스토운의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 1952 이나 이쪽의 고전으로 취급받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981 등은 꽤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는 저서로 취급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양쪽 자료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좀 더 사실에 다가갈 수 있어서, 웬 헛소리를 저렇게 써놨나 비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저게 더 진실에 가까워보였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60-70년대 공산권 국가의 실상이 나중에 서방에 알려지기전까지, 소련은 사회주의를 지상에 실현시킨 낙원으로 알고 있는 지식층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한 예로 경제학의 대부인 폴 샤무엘슨의 책 Economics(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에서조차 소련을 칭찬했었습니다.(추후에 삭제했지만).
  • 허리가아프군 2010/01/31 11:15 #

    눈물나는 1차사료의 중요성 이군요 ㅠㅠ
  • 이준님 2010/01/31 11:25 #

    그냥 뻘 덧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예 스토운의 한국전 비사에 대한 포스팅으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 렌덮밥 2010/01/31 01:01 # 삭제

    마지막 문구가 인상깊네요. 역설일까요.
  • 비로그인 2010/01/31 04:03 # 삭제

    제가 알기로는,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불완전하나마
    UN 감시하에 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선출된 "민주주의 정부"인데 -_-;;

    물론 서울 버리고 도망간 건 막장짓이고 1952년 이후로는
    민주주의 이름 붙여주기도 아깝지만,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당시에는 엄연히 "민주주의" 아닐까요?

    월광토끼 님이 생각하시는 "군부 독재"의 정의가 궁금하군요...
  • 허리가아프군 2010/01/31 11:14 #

    많은 독재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당선 되었죠.

    히틀러도 그렇고, 무가베도 그렇고, 그외에 이란 대통령인 무하마드도 투표당선입니다.

    1950년 전쟁이전이라도 이승만정부가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권력을 확립하기 위해

    어떤짓을 하셨는지 조사해보신다면, 차라리 어느정도 괜찮은 왕정이(국가가 어느정도 제꼴을 갖춘)

    나을거라고 생각하실겁니다.
  • 월광토끼 2010/01/31 11:22 #

    제가 말을 더 확실하게 할 걸 그랬군요.

    하워드 진의 저 문장은 '그 후로 한국은 군부 독재 국가가 되었으니 한국전쟁이 무슨 소용이었냐' 란 뜻이고, 저도 그런 의미에서 낄낄거리며 저 문장을 올려 놓은 겁니다.
  • -_- 2010/01/31 21:35 # 삭제

    균형이라....

    전체적인 조망 아래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균형이라고 배우는 게 보통인데

    실제로는
    자기 위치에서 꼼짝않으면서
    이견을 가진 사람을 극단으로 밀어대는 것을 균형과 중용이라
    부르짖는 어용들이 많아서 큰일입니다.
  • Cheese_fry 2010/02/01 06:34 #

    잘 읽었어요. 책 읽으면서 선동적인 글귀들이 걸려서 불편하긴 했었는데.. 음. 그리고 괴소문의 진실을 밝혀주셔서 고맙습니다~ 후후..
  • 들꽃향기 2010/02/01 13:28 #

    말씀하신대로 하워드 진의 서술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특히 미국 건국의 수립자들이 대중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념적인 기반을 갖췄다기보다는 지배층의 이익의 관점으로 서술했다는 점 등은 전술하신대로 문제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의 매력은, 그러한 자신의 성향을 정론으로 포장하지는 않으려 하고, 또 한 자신의 그런 성향에 대해서 솔직하게 술회하는 것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던가요..? 자신이 폭격기 조종사로서 독일 도시들에 폭격을 하던 경험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애닮은 일이지만, 당시에 반파시즘을 위해 싸운 자신의 대의와 참여는 지금이라도 그러할 것이라던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 황제 2010/02/01 22:30 #

    투사의 책이죠.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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