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의원 헬렌 더글라스에 관한 이야기

[1948년 전국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연설하는 더글라스 의원. 여론과 민주당원들은 '더글라스를 사상 최초의 부통령으로!'를 부르짖었으나 그녀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1945년부터 1951년까지의 시간 동안, 435명 정원의 미 하원에서 여성은 단 10명에 불과했다. 그 10명 중 단연 독보적인 존재는 헬렌 게해건 더글라스Helen Gahagan Douglas였다. 더글라스 의원은 전직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 배우이자 전직 오페라 가수였으며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행적이 보여주는 이미지 - 국회에 진출한 스타 미녀 - 와는 거리가 먼 진짜 개혁가이자 진보 정치가였다.

더글라스 의원은 뉴저지의 보수적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독한 공화당 지지파 집안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FDR의 집권과 그 뉴 딜 정책에 감화받고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1931년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그녀의 남편 멜빈 더글라스(이 사람도 유명 배우고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오르고 조연상은 두 번이나 수상했다)를 따라 할리우드로 이주하고 나서 부터는 그 진보적 성향이 더욱 밖으로 표출된다. 당시 영화계는 대놓고 진보 개혁파이자 급진적인 정치 성향이 가득했고 더글라스 부부도 이를 따랐다.

그녀는 이주 노동자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오클라호마주에서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 했다가 절망적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떠돌게 된 수많은 농부들에 대해 알게 되자 그녀는 그 이민자 캠프들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게 더글라스의 첫 정치적 행보였다. 슈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대변되는 바로 그 상황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더글라스의 연구와 연설들은 루즈벨트의 관심을 끓었고 그녀는 곧 이에 대해 국회에서 증언도 하였으며 백악관에도 초청받았다. 곧 그녀는 영부인 엘라노어 루즈벨트의 친구가 되었고 1940년에는 루즈벨트 3선의 선거 운동 대표도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 주 민주당의 부대표가 된다. 1944년 그녀가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고 있던 할리우드의 부자 배우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오지 않고, 캘리포니아 제 14 선거구, 즉 극빈층들 - 그것도 히스패닉, 흑인, 백인, 중국인등 인종문제도 꼬이고 꼬인-이 모여 살던 로스 앤젤레스 도심에 출마했다.

더글라스 의원은 자신의 하원 임기 동안 인권운동, 여성인권운동, 연방 의료보험, 교육제도 개선 등에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열정으로 투신했다. 그렇지만 적극적일 수록 그녀에게는 더욱 더 많은 적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 정적들은 그 '적극적 진보' 성향에서 공격하고 트집잡을 거리들을 잔뜩 잡아내었다.

1950년 더글라스 의원이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을 때 공화당 쪽 대적자는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리차드 M. 닉슨이었다. 닉슨은 당시 불기 시작하던 적풍赤風, 즉 '반공' 시류에 편승해 선거를 이기려 했다. 온갖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성차별적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닉슨의 이 상원의원 선거 운동은 너무나 더러웠고, 또 효과가 좋았다. 선거 바로 전 날 밤에는 수만 가구에 발신자 불명의 전화가 와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I think you should know Helen Douglas is a Communist'.헬렌 더글라스가 공산주의자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결국 더글라스 의원에게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고 그녀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더글라스는 패배하면서 닉슨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 "Tricky Dick". 이 Tricky Dick이란 별명은 닉슨의 정치인생 내내 그를 따라가게 되는 아주 적절한 별명이었다.

사실 워터게이트 사건 아니더라도 이 선거만 가지고도 닉슨은 천하의 비열한 족속으로 분류받아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1950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는 곧 FDR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진보정책'이 '반공정책'과 냉전의 힘 앞에 무릅을 꿇은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더글라스 의원의 정치생명도 끝났다.) 더글라스 의원은 1980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헬렌과 남편 멜빈 더글라스. 이 부부는 49년의 결혼생활 내내 금슬이 좋았다.]




더글라스 의원으로 대변되던 여성인권향상과 여성의 정치참여는 잠시 사그라들었다가 다시 1970년에 부활, 페미니스트들의 투쟁 끝에 결국 결실을 맺어, 1972년에는 교육에서, 1974년에는 재계에서, 1976년에는 군대에서, 성차별들이 불법이 되었다.


*한편 여성인권이 신장되는 가운데에도 '커리어 위민'들은 직장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가정에서의 전통적인 여성역할에도 충실하려 애를 썼고, 이 때문에 그러한 직장인 여성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1971년에 적절한 육아 지원법이 상정되어 양원을 다 통과하였으나.... 바로 그 때 대통령인 닉슨이 이것을 비토했다.




ps. 아래 트윈드릴님의 덧글도 참조해 주세요. 제가 써놓은 내용대로는 좀 편향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덧글

  • 들꽃향기 2010/06/12 18:03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순히 '영화스타에서 정치인으로'라는 가십거리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역동적인 정치행력에 봉사했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그나저나 닉슨의 더러운 술수는 비단 수문(水門)사건(?) 뿐만 아니라, 저런 의원선거에서도 적절히(?) 잘휘되었었군요. ㄷㄷ
  • 소시민 2010/06/12 19:16 #

    1950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는 곧 FDR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진보정책'이 '반공정책'과 냉전의 힘 앞에 무릅을 꿇은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 나름 메카시즘의 전조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크핫군 2010/06/12 22:11 # 삭제

    닉슨이 이것을 비토했다.

    -직업전선에 뛰시면서 집안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자식으로써 씁쓸함과 분노를 느낍니다.
  • 행인1 2010/06/12 22:28 #

    마지막 줄에서 역시 폐주 닉슨 답다는 '오해'가...
  • 궤도운 2010/06/12 23:11 #

    1960년의 tv 프로그램 삐질삐질만 아니었어도 미국은 좀더 암담했겠죠.

    언젠가 <프로스트 vs 닉슨>을 봤는데 픽션이긴 하지만 닉슨의 여우같은 모습을 잘 살려냈더군요
    강추하는 영화입니다. 정작 한국에서는 흥행이 안습이었지만.
  • 가르시미르 2010/06/13 00:42 # 삭제

    이분이랑 어느 나라 여성부랑 차이가 매우 많이 나 보이는데 이건 내 눈의 착각인건가?
  • 스푼맨 2010/06/13 00:49 #

    닉슨은 이래저래 깔만한 부분이 많군요.
    400명이 넘는 하원의원 중 여성이 10명정도 였다라...
    서구도 여성평등이 이루어진지는 얼마 안됐군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6/13 01:05 #

    .................... 저러니 워터게이트 같은 사건을 일으키죠.
  • widow7 2010/06/13 01:17 # 삭제

    우리 나라 페미야, 그네를 지원하는 게 진보다, 하고 주장하니까..... 향단이냐, 그네나 밀게?
  • 트윈드릴 2010/06/13 02:56 # 삭제

    http://en.wikipedia.org/wiki/United_States_Senate_election_in_California,_1950

    제가 알고 있는 헬렌 더글라스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위키를 찾아봤습니다.

    "1944년 그녀가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14번 선거구를 택한 것은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 가운데 은퇴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희생정신
    으로 포장하는 역사책을 "여성사" 입장으로 본 것 말고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데
    출처 부탁드립니다.

    10명의 여성 하원의원 중 헬렌 더글라스가 가장 유명했던 이유는 그녀가 진보적인것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할리우드 미녀 여배우 출신이고 쇼맨쉽에 능숙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글은 여성사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지만, 헬렌 더글라스가 입법절차보다는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아젠다를 대중에게 직접 알리려고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Douglas had little interest in mastering legislative processes, preferring instead to call attention to her agenda while using her celebrity to gain public exposure and awareness for specific programs.7 "

    http://womenincongress.house.gov/member-profiles/profile.html?intID=61

    더글라스와 닉슨 사이의 추악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먼저 시작한 진영은 더글라스입니다.
    당시 한국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국가안보"는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되었고, 하원임기
    내내 "외교: Foreign Affairs" 위원회 소속이었던 더글라스는 닉슨을 국가안보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선제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닉슨이 양비론으로 몰기 위해 더글라스를 공산당으로 몰아부친 것입니다.

    (닉슨 꼴을 보면 아마 더글라스가 선빵 날리지 않았더라고 공산당 딱지는 붙였을 거 같네요.
    물론 더글라스가 공산주의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 그녀가 공산당 동조자란 것은
    분명히 다르고, 그 딱지붙이기는 잘못된 것 맞지요,)
  • 트윈드릴 2010/06/13 03:13 # 삭제

    "더글라스는 패배하면서 닉슨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 "Tricky Dick". 이 Tricky Dick이란 별명은 닉슨의 정치인생 내내 그를 따라가게 되는 아주 적절한 별명이었다."

    이 별명은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더글라스에게 패배한 맨체스터 보디가 붙인 별명입니다.
    이 후보 경선은 상원의원 선거가 신사적으로 보일 정도로 추악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난무한 경선이었습니다. 더글라스는 현직 상원의원이 연임을 노리려고 하자 "1대1
    토론을 거부하는 동시에" --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감? -- 온갖 딱지를
    붙여 공격한 끝에 결국 연임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상원의원이 건강상 문제를
    명분 삼아 선거를 포기하면서 더글라스를 가리켜 "waging a personal and militant
    campaign against the vicious and unethical propaganda"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겠지요.

    현직 상원의원의 지원을 받은 맨체스터 보디가 경선에 들어오고 나서 둘 사이에 또다른
    공방전을 펼칩니다. 여기서 보디가 더글라스를 "핑크 레이디"로 몰았고, 더글라스는
    어차피 유리한 입장이었으므로 정중한 무시로 일관합니다. 그런데 공화당의 닉슨이
    갑작스럽게 민주당 후보 경선의 1순위 [...]로 떠오르자 닉슨은 본 선거를 치르지
    않고도 승리를 굳히기 위해 민주당원들에게 지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그 안에
    '공화당'이란 명칭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보디로부터 'Tricky Dick'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됩니다.

  • 트윈드릴 2010/06/13 03:26 # 삭제

    . 1950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는 곧 FDR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진보정책'이 '반공정책'과 냉전의 힘 앞에 무릅을 꿇은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더글라스 의원의 정치생명도 끝났다.)

    도대체 어떤 "진보정책"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뉴딜을 잇는 경제정책이라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케인지언이 박살날 때까지 줄곧 유지되었고,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 건설 / 케네디의 뉴프론티어 / 존슨의 위대한 사회 등등)

    사회 인종 문제라면 이 선거는 나중에 닉슨이 대통령 되고 나서 "하나의 상징성"으로 유명해진
    거지, 당시에는 그냥 수많은 상원의원 선거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떨어진 국회의원 선거가 훗날 그가 대통령 되는 과정에 일익을
    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이지, 당시로선 수많은 국회의원 선거 중 하나였을 뿐인
    것처럼요. 사회 인종 문제에 관한 진보정책이 20년 넘게 미루어진 이유는 남부를 기반으로 한
    민주당 보수파가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고, 실제 상징성으로만 따져도 여성사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1948년 대선(스트롬 서몬드)가 저런 듣보잡 선거보단 훨씬 높을 겁니다.

    그리고 국가 안보는 조지 케넌의 저서를 읽어 보시는 걸 추천하고요. '반공정책'은 이념으로
    뭉친 공화당이 만들어낸 신드롬이 아니라 처칠 - 케넌 - 트루먼 등 현실주의 정치가가
    분명하고 현존하는 공산주의의 위험 앞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만들어낸 정책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지만, 역사가 분들이 100년 200년을 보시면서 단기적인 상황 변화는
    무시하는 경향이 종종 보이는데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지 않고 흐름만 읽는 것은
    약간 밸런스가 맞지 않는 역사 연구라고 보여지네요.
  • 월광토끼 2010/06/13 07:15 #

    아,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셨네요.

    사실 제가 더글라스에 대해서 읽은 건 좀 좌편향[..] 되어 있는 교수 (James L. Roark 등)진 들이 쓴 교과서라서 그런지 그런 점만 부각시켰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주요 필자는 여성사학자여서 교과서에 여성사가 좀 비중이 크게 다뤄져서 그렇기도 하고.

    아무튼 많이 배웠습니다.
  • 트윈드릴 2010/06/15 14:52 #

    여성사가 여성 위인에 대해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남성이 과다대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이것은 흑인사,
    소수인종역사, 노동사 등등 비주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책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으로 애초에 업적이 적기 때문에 살짝은 부풀려야 그나마 이야깃거리가 되니까요.

    이런 역사 서술의 문제점은 일부가 과다포장되었다는 것을 이미 인식한 시점에서부터
    낱낱의 사실에 대한 객관성조차 전혀 담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건 마틴 루터 킹 보고 womanizer라고 깎아내리는 인신공격 류와는 다릅니다. 루터
    킹의 업적은 업적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니 따로 분리하면 되지요. 하지만 여성사 책은
    업적부터 크로스체킹을 시작하면 장점이라고 서술한 게 과장이란 게 허다하니까요.)

    그렇다고 여성사를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과도기인만큼 회의적인
    태도를 바탕에 깔고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 2010/06/13 10: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6/15 14: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트윈드릴 2010/06/15 14:39 #

    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정하실 예정이라면 크로스체킹 먼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기억에 의존한 다음 일단 위키에 올라있는 것만 지적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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