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적 전쟁수행의 결과

[시라쿠사 항구에서 풍비박산나는 아테네 원정 함대]


오랜만에 하는 고대사 포스팅.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기원전 415년 부터 413년까지 근 2년 간 치뤄진 시칠리아 전선은 소위 '아테네의 황혼'으로 상징될만한 것이었습니다. 위풍당당하게 떠난 대해군과 그 함대가 싣고 갔던 중장보병대들은 시칠리아 섬에서 시라쿠오사 군대와 스파르타 지원군 사이에서 압사되어 무익하게 스러져 버렸고, 이 패배에서 아테네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칠리아 원정군 사령관직을 수행했던 니키아스Nicias, 470 BC ~ 413 BC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많은 병사들 대다수는 지금 자신들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만약 우리가 후퇴해 본국에 돌아가게 되면 정 반대의 말을 할 것이다. 자신들의 지휘관들이 뇌물을 받아 챙겨 후퇴하게 되었다고. 아테네 국민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나는, 차라리 적군의 손에 최후를 맞이할 망정 불명예를 뒤집어 쓴 채 내 동료 시민들에 의해 부당하게 죽고 싶진 않다."

처음부터 이 무리한 원정을 반대했었고, 억지로 사령관직을 떠맡은 후에는 병으로 건강이 나빠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사령관직에서 물러나게 해달라고 간청했음에도 정부에 의해 거부당한 사람의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후퇴를 하지 못하고 꾸물대다가 결국 기원전 413년 9월 13일 벌어진 최종 전투에서 패배해 스파르타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처형당했고, 그 휘하 장졸들은 전멸 당하고 잔존 7천명은 시라쿠사의 채석장의 노예로 전락했지요.

네, 소위 '스트라테고스'(장군)들은 그 지휘권을 '데모스'(시민)들에 의한 투표를 통해 위임받았습니다. 국가의 모든 공직이 그랬고 이건 군 지휘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군들은 군을 지휘했지만 그 군인들은 복무가 끝나면 당장 그 장군들의 생사를 좌우할 존재들이였던 겁니다. 그래서 니키아스 뿐 아니라 수많은 아테네 장군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망설이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아테네 체제는 오늘날 시각에선 매우 특이합니다.시민(투표권 있고 선거출마권도 있는 남자 유산계급) 3만 명 중 무려 7백 명이 공직에 종사하며 도시를 운영했고 이 중 대부분은 추첨에 의해 공무를 수행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여기 참여해야 했고 이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행하는 공무에 대해 무지한 아마츄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7백 명 중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것은 단 백 명도 채 안되었습니다. 이 백 명의 ‘선출된 전문가’들 중에는 특히 군사 지휘관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10명의 장군들과 10명의 부대장들, 2명의 기병대장들, 그리고 그 밑의 10명의 부기병대장들로 아테네 군대를 책임졌습니다.

여기서 이 군지휘권이 다른 공직들과 유별나게 다른 점은 바로 연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개인이 장군직을 맡는 것에는 제한이 없었고 시민들의 동의만 있다면 몇번이고 그 자리에 재선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기원전 5세기 중반 15년 내내 군 통수권을 맡을 수 있었고 기원전 4세기에는 포키오노스가 45년(!) 동안 장군직을 역임했지요.

그러나 이 군지휘권이란건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지는 10명에게 나눠지는 것이었고 한 개인이 가진 힘은 정말 작았습니다. 독재정Tyranny(현대적 의미의 폭정과는 다름)에서 민주정으로 전환했던 아테네답게 어떤 분야에서든 1인이 가진 권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다수의 장군들은 한 부대를 통솔하는데도 여러명이 들어갔지요. 고대 로마군에서 대부대의 경우 두 명의 집정관들이 지휘했던 것과 마찬가지 경우인데, 아테네 군은 이게 더욱 심했지요. 상기 언급한 시칠리아 원정을 이끈 것도 세 명이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 라마쿠스, 그리고 니키아스의 세 명이 기원전 415년에 시칠리아 원정군 전체를 함께 통괄했었지요. 이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지휘관들끼리 전략, 전술을 놓고 반목하거나 대립하게 될 경우 군대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위험도 낳았습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민주정의 이름 하에 아테네 시민 의회는 해외 원정군에까지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멀리 나가 있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부대에도 완전히 때늦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뒷북' 명령들을 내렸고, 또 군 실정과 상관없는 민간의 이해가 지나치게 많이 개입되어 있는 이 명령들을 장군들은 또 군말없이, 또 그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의회 지침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귀국 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했으니까요. 누군가가 고발을 하고, 재판이 있고, 그 후 추방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으로, 적어도 정치생명이 끝장나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니키아스 말고 또다른 예로, 데모스테네스의 경우가 있습니다. 시칠리아 원정 14년 전에 아테네의 장군 데모스테네스는 군을 이끌던 중 스파르타군의 공격에 패해 200여명의 보병들을 잃었는데, 이 때 잔여병력은 모두 아테네로 귀환했지만 그 지휘관인 데모스테네스만 혼자 같이 가길 거부하고 남았습니다. 본국에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웠던거지요.

앞서 말한 최고의 페리클레스조차 기원전 430년에 탄핵을 당해 한 계절 동안 공직에서 쫒겨나고 벌금을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실패를 범했다면, 그 사람을 탄핵하기란 아테네에서는 너무 쉬웠던 겁니다.

이러한 아테네 정치-군-전쟁 관계에서 아주 죽여주는 예가 플라톤이 자기 스승 소크라테스에 대해 논할 때 언급하는, 기원전 406년의 아르기노우사이 해전입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 해군은 (스파르타 주축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함대를 패주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전투 불능 상태에서 표류하던 전함 25척을 이어진 폭풍우 때문에 구난하지 못하고 퇴각했어야 했습니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뒤쳐진 아군을 구하지 못했다는 그 이유로 전투를 지휘했던 8명의 제독들 중 여섯 명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럼 나머지 둘은? 처형당할 것이 두려워서 아예 귀향하지 않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공석이지만 어쨌던 사형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또다른 사례를 들자면 기원전 393년 기소당한 아데이만투스 장군의 예가 있습니다. 그는 무려 10여년 전에 내렸던 판단을 누군가 끄집어냈기에 기소당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정보가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정보들만 조합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27년간 치뤄진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동안 전체 지휘관들 중 10%가 결국 탄핵/기소 당하는 것으로 끝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서 전쟁 후인 기원전 404년부터 기원전 355년까지 50년 동안은 20%의 장군들이 쫒겨났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20건의 재판에서 19건이 유죄로 끝났고, 그 19건 중 14건은 사형, 나머지에서 2건은 영구추방, 3건은 막대한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떤 장군이 자율적/독창적으로 판단해서 전장 상황에 대처하고 작전행동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데모스(시민들) 의회의 결정이 이성적이고 올바를 때도 있고 그들의 지침이 맞아 떨어질 때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결과는 아테네 제국의 패배와 영원한 몰락. 다시금 회복하려고 할 때 즈음에는 북쪽에서 필리포스 2세가 폭풍같이 휘몰아치며 마케도니아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고...


고대 그리스에는 Tyranny 라는 정치체제와 Tyrant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현대어로 직역하자면 폭정과 폭군이 되겠습니다만, 그 때에는 ‘폭爆’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단순히 1인 독재정과 그 1인 군주를 지칭했지요. 아테네는 이런 Tyranny에 오래 지배당하다가 마지막에 정말로 현대적 의미의 ‘폭군’을 만나자 반발, 혁명을 일으키고 민주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러니는 이 민주정이 ‘집단으로서의 폭군’의 집권을 불러왔다는 거지요. Citizen Tyrants. 즉, 중우정치의 폐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하고 쓴웃음 지었을 투키디데스로부터 이를 배울 수 있지요]


핑백

  • '3월의 토끼집' : 시스템과 무관히 내 멋대로 해보는 2010 이글루 결산 2010-12-28 08:38:03 #

    ... 는 공화정 로마사의 와중에서도 대단히 주목해볼만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4. 그리고 그 '민주주의 사회'였다는 고대 아테네에서 그 직접 민주정이 어떻게 중우정으로 변질되어 폐해를 끼쳤는가를 보여주는 글도 썼지요. 이런 면모를 보자면 '체크 앤 밸런스'가 제대로 동작하는 균형잡힌 간접 민주제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가 ... more

덧글

  • M-5 2010/06/13 17:29 #

    아무래도 저 당시 폴리스의 민주정체라는 것은 현대 민주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으니...
    저런 동네에서 나고 자란 플라톤이 민주주의라는 것을 탐탁찮게 보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네요.
  • 푸른미르 2010/06/13 17:43 #

    으음.... 중우정치의 폐해를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이라면
    1인의 뛰어난 천재가 지배하는 독재정치를 지지할 수 밖에 없겠네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6/13 18:09 #

    아테네가 괜히 몰락한게 아니군요.ㅡㅡ;;
  • 2010/06/13 18: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6/14 17:00 #

    뭐 어디 그것 뿐이겠습니까. 그런 사례들이야 최근 몇년간 너무 자주 봤지요.
  • 피그말리온 2010/06/13 18:27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에 딱이네요....
  • ArchDuke 2010/06/13 18:47 #

    잘 보았습니다. 요즘에도 통할것 같기도 하고.....
    로마는 어떤 점에서 이런 단점을 방지 할수 있었습니까?
  • 월광토끼 2010/06/14 10:35 #

    사령관의 행동 자체에 제약이 적었고 또한 그리스와는 달리 '파트리아키', 즉 귀족층이 존재했으며, 법 체제가 달랐기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기소당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지요.

    물론 그 '1인자 견제'는 엄청나서 권력의 정점에 올라간 사람은 그 다음에 엄청난 공격에 시달리게 되기에 알아서 기어야 했지요. 예를 들어 스키피오가 대표적이지요. 한니발을 무찌른 '공화국의 영웅'이 공금횡령 혐의로 탄핵 당하고 재판에 휘말리니까 그냥 자기 별장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 ArchDuke 2010/06/14 19:51 #

    허허허.....그런 뒷 이야기가 있었군요.
  • nighthammer 2010/06/13 19:59 #

    근데 시칠리아 원정 군 지휘를 보면 니키아스가 다 말아먹은 꼴이라.(...)
    알키비아데스는 출발하자마자 신성모욕 혐의받고 스파르타로 도주, 라마코스는 초기에 전사, 나중 데모스테데스가 후발대 끌고 오기 전까진 니키아스가 단독 사령관인데 오만삽질을 다해가며 말아먹었죠.
    민주주의 정부가 아니라 다른 어떤 체제라도 니키아스는 목숨 부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거기다가 '유능한 1인' 인 페라클레스가 지도할 시기의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3년만에 파산위기에 몰렸던 반면 그 이후의 아테네는 역병으로 7~8만이 죽어나가는 악조건 하에서도 스파르타를 굴복 직전까지 몰고갔다는 반면교사도 있습죠. 아르가시누이 해전도 그 뒷처리는 중우정치의 표본으로써 욕먹고 있지만 전투배경이나 전투 준비를 보면 또 반대로 아테네 찬양을 하게 되기도 하고.(재정 파탄, 인구수 부족(아테네 인구 30만 중 역병+시칠리아 원정으로 날라간 인구가 10~12만...), 해군 괴멸 시점에서 신전 지붕 긁고 전 시민이 돈을 탈탈 털어 각출하고 머릿수 부족을 노예들까지 동원해 보충해서 110척 함대를 완전히 새로 짜 올려 스파르타 해군 격파...) 뭐, 단점만 있는 건 아닌 셈입니다.
  • 월광토끼 2010/06/14 17:01 #

    니키아스가 그 삽질 하기 싫어서 '나 돌아갈래' 애걸복걸 했는데도 정부가 거부했으니....


    단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패배의 과정에 그 단점들이 크게 일조하긴 했지요.
  • nighthammer 2010/06/14 18:11 #

    근데 저 원정이 저렇게 커진것 자체가 니키아스 탓이 좀 큰지라...
    나중 데모스테데스도 '니키아스 저인간이 너무 소극적으로 굴면서 삽퍼서 상황이 이렇게 된거임.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나갔으면 해낼수 있었음' 이란 결론을 내리기도 했고, 단순히 보긴 살짝 어렵습니다.
  • nighthammer 2010/06/13 20:03 #

    그리고 아테네 제국 재건이야 1년만에 민주정 회복, 10년만에 코린토스 전쟁 참전으로 함대, 장벽, 제국 재건까지 어느정도는 해냈다 볼수도...무지막지한 인구감소로(펠로폰네소스 전쟁 10년 뒤 아테네 인구가 전성기 시절의 절반이던가...) 인해 결국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이였지만.
  • 월광토끼 2010/06/14 17:02 #

    제국 재건까지는... 뭐,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료에서 필리포스 2세 등장까지 시간차가 그리 많지 않은걸 감안한다면 상당한 회복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암호 2010/06/13 20:27 #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났지요. 전쟁이라는 것은 평화와 다른 가치를 두는 것인데 말이죠....
  • Rei 2010/06/13 20:55 #

    스페인내전에서는.. 사상에 따른 내부 갈등도 많았지요. 우파 쿠데타군이 그나마 잘 조직된 것에 비해...
  • 월광토끼 2010/06/14 17:03 #

    스페인 내전에서의 공화파 행태는 .... 어휴. 그딴 놈들이 좌파랍시고.
  • 지나가던과객 2010/06/13 20:35 # 삭제

    프랑스혁명과 볼세비키혁명때도 군대에서 투표로 상급지휘관을 뽑아다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 월광토끼 2010/06/14 17:03 #

    네, 그랬었지요. 그래서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 Rei 2010/06/13 20:52 #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연방의 적군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었지요..
    특정 분야의 엘리트에 대한 혐오와 차르를 지지하는 세력이 남아있는 군을 통제하기 위해서였긴 하지만서도.

    부하들이 명령을 따를 지 말지 투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치장교가 동의하지 않아서 많은 피해를 낸 것도 있고.. 거기더 뭣보다도 정말 무능력해서 많이 말아먹었지요..
  • 샤티엘 2010/06/13 21:27 #

    아테네 멸망기는 민주정이 아니라 중우정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군요.
  • 단멸교주 2010/06/13 21:32 #

    민주주의가 항상, 언제 어느때나 승리한다는 것도 어찌보면 막연한, 그리고 근거없는 믿음일지도 모르겠군요...
  • Allenait 2010/06/13 21:52 #

    진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군요..
  • 행인1 2010/06/13 23:12 #

    니키아스가 시칠리아 원정 반대자였다는건 여기서 처음 알고 갑니다.
  • 위장효과 2010/06/14 08:37 #

    펠로포네소스 전쟁사를 읽다 보면...도대체 원정 반대자를 그 해당 원정 사령관으로 임명한 이유가 뭔지 당시 아테네 민회의 꿍꿍이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 nighthammer 2010/06/14 09:32 #

    결국 온갖삽질끝에 그 원정 자기 손으로 말아먹고 붙잡혀서 처형.(...)
  • 행인1 2010/06/14 09:36 #

    위장효과/ 혹시 '한번 * 되어바라!'는 반대파의 속셈이 있었을지도...
  • 월광토끼 2010/06/14 17:03 #

    저도 궁금합니다.
  • ㅇㅇ 2010/06/14 00:06 # 삭제

    한국 진보들은 입만 열면 국민에 의한 통치와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죠.그럼 이 포스팅을 올리신
    월광토끼님은 이들에 대해 찬성이라는겁니까? 반대라는 겁니까?
  • 나인테일 2010/06/14 02:23 #

    그거랑은 전혀 관계 없는데요?
  • 엽기당주 2010/06/14 10:11 #

    이분 흥분하신듯..
  • 궤도운 2010/06/14 11:55 #

    신났네 이 친구.
  • 월광토끼 2010/06/14 17:04 #

    제 글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 blus 2010/06/14 04:07 #

    사실 시칠리아를 점거해서 스파르타를 포위하는 대전략의 입안자인 알키비데아스가 신성모독혐의로 고발된 후 스파르타로 망명한 시점에서 접었어야 할 전략이지만...사실 스파르타와의 전쟁과 그에 따른 아테네의 고립 사태를 유발했던 것이 인근 폴리스로부터 과도한 수탈을 저지른 페리클레스라는 포퓰리스트(?!)의 권력에 있었기에 참 뭐라 단정짓기 힘든 사항이 아닐까 합니다.
  • 월광토끼 2010/06/14 17:04 #

    블루스 님 말씀도 맞습니다.
  • 궤도운 2010/06/14 11:55 #

    처해이다 -> 처해있다, 거니다-> 겁니다 의도적인 오타인가요? ㄷㄷ;;
  • 월광토끼 2010/06/14 17:04 #

    이런, 오타가 산재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지나가는 1人 2010/06/14 17:24 # 삭제

    저는 그저 막연히 '페리클레스가 죽어서 아테네가 망한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또 아니었군요.잘 읽고 갑니다~~
  • 황제 2010/06/15 03:30 #

    이건 민주정도 뭣도 아닌 염소들의 합창이야!!!
  • 가엘 2010/06/16 06:55 #

    당시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랑 많이 달랐으니까요 :h

    철수해야한다니까 2배의 원정군을 증파하고... 유능한 지휘관들이 전부 처형당한 아테네 최악의 원정이기도하지만 이거 끝난후에도 아테네가 버틴게 더 무서워요..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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