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찬양과 키케로 비하의 원류, 민족주의 사관

민족주의와 정치종교의 탄생

[Theodore Mommsen, 1817~1903]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로마 공화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역사학자들 중에는 독일의 테오도어 몸젠이 있다. 1902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몸젠은 로마 제국사에 관해서는 별 집필을 하지 않았으나 공화국 멸망기와 카이사르 집권기에 대해 중점적으로 쓴 저서 "Römische Geschichte"는 몸젠의 가장 유명한 업적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몸젠이 '로마사'를 집필한 배경을 생각해 봐야 한다. 몸젠이 살던 시대의 독일은 아직도 여러 갈래로 분열되고 허약한 곳, 또는 그런 곳으로 여겨졌다. 통일이 된 '독일제국' 조차 체제가 통일되었을 망정 갈라져 있는 지방 세력들이 제대로 통일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바바리아와 바덴은 여전히 힘을 행사하려 했고 1848년 실패한 혁명과 프랑크푸르트 의회의 유산은 계속해서 사회에 남아 여러가지 분열을 초래했다. 프러시아와 비등한 국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오스트리아와의 충돌도 오래 계속되었다.

몸젠 같은 류의 학자들은 그러한 상태의 독일을 진정한 통일과 빛나는 제국적 미래로 이끌어 갈 '위인'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독일 내 민족주의의 확산이 영웅갈구심리와 합쳐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몸젠은 로마 공화국 역사를 해석하면서 거기에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의 이미지를 투영했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우티켄시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그리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이 인물들 중 그라쿠스와 마리우스 등은 의도는 좋았으나 생각을 잘못한 모순된 개혁가 등으로 묘사하였으며 카토와 키케로는 시대의 개혁을 막으려 악에 받쳐 행패를 부린 위선자들로 표현한다. 몸젠의 사관에서 유일한 영웅은 카이사르다. 몸젠은 '타락한 공화국을 개혁하고 규합하여 이끌어 나간' 카이사르의 위업에 찬양을 바친다. 타락하고 혼란한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카이사르 뿐이었다는 듯한 그의 논조에서 동시에 독일에서 등장해야 할 노이에 카이사르에 대한 갈구 또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키케로, 사회에 필요했던 혁명을 막으려 든 오프티마테스 일파의 수장격 인물은 가차없이 깎아내려졌다. 기회주의자, 위선자, 겁쟁이, 'weathercock'(서양의 옛 집들에 달린 풍향계. 바람에 따라 방향을 이리저리 바꾼다), 소심하고 유약한 바보 등등. 키케로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공격도 이어졌다. 몸젠에 있어 키케로는 입만 살아 있어 그냥 변호사 일에나 전념했으면 좋았을 무능한 인간이다. 마치 1848년 혁명 당시 걸림돌만 되고 현실에서 제대로 된 '행동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오늘날 '입진보'라 불릴만한 독일사회의 대학교수들과 지식인층에 대한 비난을 대신 키케로의 이미지에 투사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웃기는 건 이러한 몸젠의 사관을 영국의 로마사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영국에서도 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콜링우드Robin George Collingwood, 1889~1943 같은 사람들이 그 카이사르에 대한 찬양과 키케로에 대한 비난에 거부감을 보이며 비판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몸젠식 사관을 받아들여, 이는 로널드 사임 경Sir Ronald Syme, 1903~1989 같은 대학자의 사관으로까지 이어진다. (사임의 경우,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의 행적에 더욱 초점을 맞추면서 공화국의 멸망과 제국의 도래를 역사적 필연이자 개선으로 해석한다) 오늘날 로마사 해석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영국 사학계의 관점임을 생각하면 결국 독일 민족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몸젠의 사관은 정말 널리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관이 오늘날 일본/한국에서 '시오노 나나미'로 대표되는 로마 공화국사에 대한 대중인식의 기반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사견을 테오도어 몸젠 같은 대학자의 그것과 견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훗날 E.H.카는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상에 비추어 사관을 형성하는' 사학자의 예로 몸젠을 들었다. 사관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관을 형성한 학자와 그 학자의 사상적 배경을 생각해 봐야 하는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키케로는 자신의 유약한 면들과 우유부단한 고민들을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통해 털어 놓았고,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면모를 통해 키케로에 대한 '찌질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거나 또는 솔직함에 대한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는 '능구렁이같은' 카이사르는 무결점 완벽주의 카리스마 리더로 비춰지며 찬양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면 케케로의 인격에 대해 가해지는 그 비난들은 매우 부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이사르가 키케로만큼이나 속내를 드러낸 서한들을 남겼다면 아마 해석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서한은 없었고, 있었더라도 남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참고:
Kelsey, Francis W. "Theodore Mommsen". Classical Journal. 1919. 14 (4): 224-236.
Mommsen, Theodor. The history of Rome. New York: Philosophical Library. 1959. Book IV: The Revolution
Rosner, Mary. "Reflections on Cicero in Nineteenth-Century England and America". Rhetorica. 1986. 4 (2): 153-182.

ps. 물론 그 개인에 대한 편애라는 점에선, 나도 키케로를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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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의 토끼집' : 시스템과 무관히 내 멋대로 해보는 2010 이글루 결산 2010-12-28 08:37:55 #

    ... 했던 존 피터 알트겔드에 대한 글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2. 그리고 왜 시오노 나나미식의 키케로 비하적 사관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런 인식의 원류가 어디 있는지를 한번 알아보는 글도 썼지요. 독일의 테오도어 몸젠의 덕이고, 그 몸젠은 또 자기가 살던 사회와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그런 생각을 한 것이라는 것을 말 ... more

덧글

  • leopord 2010/08/07 07:52 #

    시오노 나나미가 역사를 이해하는 준거는 사랑♡이니까요. (...)

    사임도 몸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듯하지만, 『로마혁명사』에서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모두와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에게 좀 더 기울어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공화주의자 브루투스와 '사나이' 안토니우스에 대한 호감이 느껴진달까요.
  • 월광토끼 2010/08/07 14:59 #

    아, 로마혁명사를 읽어보셨군요. 전 사임의 문체가 너무 뭐랄까 매마르다 느껴서 그런지 특정인물에 대한 호감... 은 잘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ㅎ;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 leopord 2010/08/08 23:21 #

    저는 번역판을 보았기 때문에 원판의 뉘앙스가 필터링되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말이지요ㅎ

    번역에서도 사임의 건조한 문체를 가능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건조한 서술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 긁적 2011/05/20 18:30 #

    사실 나나미 누님은 역덕+카덕(......)
    덕질로 수십억을 번 위대한 분이십니다!!!!!
  • nighthammer 2010/08/07 08:30 #

    그러고보니 시오노 여사, 몸젠을 꽤 많이 인용했었죠.(...)
    여기에 오리지날이 있었구나!
  • asianote 2010/08/07 09:11 #

    동양이라기보다는 한국과 일본에서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입니다. 사실 동양이란 표현은 너무 막연합니다. 어디를 가르키는지 애매해요. 아시아 전역인지, 아니면 한국, 일본, 중국을 말하는지가요. 동아시아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합당하겠지만 시오노 여사의 책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시오노 여사의 글이 (많이) 팔린 지역인 한국과 일본이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월광토끼 2010/08/07 14:59 #

    그건 글의 논지와 별 관련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원하시니 바꾸지요.
  • 초록불 2010/08/07 09:17 #

    일반적인 인식 뒤에는 대가의 힘이 있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되는군요.
  • Allenait 2010/08/07 09:58 #

    허. 시오노 여사가 괜히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군요
  • 네비아찌 2010/08/07 10:12 #

    시오노 할매는 카이사르 찬양, 키케로 폄하에 필요하면 몸젠의 주장을 인용하고, 카이사르 찬양에 부적절하면 몸센은 틀렸다고 하고 아주 취사선택 하시고 있었죠.
  • 월광토끼 2010/08/07 15:02 #

    그럴꺼라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그러는 모양이군요;
  • Mr 스노우 2010/08/07 10:36 #

    역시 19세기 낭만주의-민족주의-영웅사관은 정말로 밀접한 관계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찬가지로 로맨티시즘이 널리 퍼져있던 영국에 이러한 사관이 쉽게 받아들여진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 월광토끼 2010/08/07 15:03 #

    그것도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사회 기조가 사관의 배경이라 설명할 수 있겠군요.
  • 아브공군 2010/08/07 10:53 #

    시오노 할매야.... 카이사르 동인녀.
  • 긁적 2011/05/20 18:31 #

    아. 그러고보니 여자한테는 덕후라는 말을안 쓰죠(.....)
  • 바보이반 2010/08/07 11:18 #

    로마인 이야기는 솔직히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 다음은 종이장 채우기위해 악전고투하며 쓴 기운이 느껴지더군요.
  • 월광토끼 2010/08/07 15:10 #

    사실 몸젠도 '로마사'를 집필하다가 카이사르에 대해서까지 쓰고 난 다음에는 힘과 관심이 다해서 제국사 부분은 아예 책도 내지 않았고, 나중에 관련 내용은 강의노트 짜집기로 출판되었지요 ㅎㅎ
  • Marcus878 2010/08/07 15:28 #

    저는 오현제 까지는 재미있게 읽히다가 로마가 쇠락해가는 시점부터 그런 느낌이 강해지더군요.
  • 들꽃향기 2010/08/07 12:18 #

    19세기 영국을 보면 칼라일 스스로도 결국 영웅주의 사관의 대표자가 될 수밖에 없었듯이, 사회 내부에서 팽배해 있던 영웅주의 사관이, 독일과 조건이 다른 영국에서조차도 몸젠의 사관을 받아들이게 한 주요한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남희 여사도 언제나 몸젠을 주로 인용하기를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 월광토끼 2010/08/07 15:12 #

    바로 그 영국에서는 그로부터 불과 반세기 지나서는 영웅주의 사관 또는 인물사적 관점이 지나간 옛 시절의 구닥다리 유행으로 치부되게 되었으니 재밌는 노릇입니다. ㅎㅎ
  • 카군 2010/08/07 12:29 #

    어쩐지 시오노 여사가 키케로 깔 때 몸젠을 엄청 인용한다 싶더라니;;; 역시 이래서 동인지는...(...)
  • 엽기당주 2010/08/07 12:44 #

    그렇다고 몸젠을 까기도 좀 그런게

    역사학이라는게 당대의 역사학자가 몸담던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않을수가 없는게 현실이라..

    오히려 그런것이 투철했기 때문에 몸젠이 대역사가라로 역사에 남게 된거겠죠.

    역사만큼 그 역사에 연관이 있는 집단이나 사회와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분야가 거의 없죠.

    아예 민족주의나 국가의 이익을 벗어난 역사가 과연 존재했던적이 있나가 의문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흐흐흐.
  • 쪼히 2010/08/07 12:46 #

    어렸을적 로마인이야기를 읽을때 시오노 여사의 키케로 폄하에 되려 키케로에 관심을 갖게 됐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역사적 배경과 인간의 관계를 볼때마다 느끼는것이지만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 소시민 2010/08/07 12:48 #

    후세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의 한 사례군요... 역시 비판적 수용이 중요한듯 싶습니다.
  • 스토리작가tory 2010/08/07 19:43 #

    여담이지만
    월광토끼님이 포스팅하셨던 <키케로가 보낸 편지>를 본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ㅎ
  • 행인1 2010/08/07 20:25 #

    그나저나 독일(이라기 보단 프러시아) 역사학자의 로마관을 영국 학자들이 그대로 수용했다는게 좀 놀랍군요. 대륙과 영국의 차이를 뛰어넘는 시대상인건지...
  • искра 2010/08/08 02:57 #

    개인적으로 시오노 나나미 여사 덕에 한길사로부터 로마 여행과 한길 그레이트북스 100권을 받아서 닥찬양을 해도 모자라지만, 대학 들어가서 정식으로 역사학을 공부하니 시오노 여사의 사관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느끼게 됐지요. 뭐 사실 정규 역사학자도 아닐뿐더러.
    근데 그런걸 다 떠나서 몸젠의 로마사가 한국어로 번역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가 그렇게 흥했는데도 고전이 된 로마사가 번역된게 거의 없어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와 로마 혁명사 정도만 번역이 됐지...

  • Caesaris 2010/08/18 02:15 #

    (뭔가 이상한 오타가 나서 삭제후 다시 작성했습니다;)
    나나미여사는 사실 동인지작가니까요 (..응?)
    저도 카이사르를 좋아하지만 나남희씨의 키케로 디스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키케로가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키케로가 더욱 좋아졌달까요.
  • 우리봄이 2010/08/22 12:32 #

    주인장께서는 키케로를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럼 다음과 같은 키케로의 행적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서 로마로 진군했을 때,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폼페이우스와 함께 그리스로 탈출했는데, 키케로는 별장에 은거해 버리고 나중에 카이사르가 스페인에서 고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그리스로 간 일.

    파르살로스에서 폼페이우스가 패전한 후에 다른 동료들은 아프리카로 스페인으로 재기를 노리고 흩어졌는데, 키케로는 포기하고 로마로 돌아온 일 (카토는 아프리카에서 자살까지 하죠).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때는 그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나중에 암살됐다니까 그제서야 암살자들 칭찬하고 나선 일.
  • 월광토끼 2010/08/22 18:48 #

    그런 일화 하나하나에까지 연연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나중에 따로 글을 써 올리겠습니다
  • 우리봄이 2010/08/23 00:15 #

    먼저 인사가 늦었네요.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로마사에 대해 아는 대부분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이고, 그래서 어떤 선입관 또는 오류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시오노씨의 특정 인물에 대한 지나친 찬양을 좋아하지는 않고요. 키케로에 대해서 글을 쓰실 생각인 것 같은데 기대하겠습니다.
  • RegnaCroxe 2011/05/20 17:49 #

    미묘한 데에서 글이 끊겨 있군요. 수정 중이신가요?
  • 카구츠치 2011/05/20 18:00 #

    저도 음...? 싶었는데 다들 말을 안 하시길래.. 수정 중이신가 보네요.
  • Jes 2011/05/20 18:07 #

    이글루스 오류 같은데요. 글 쓴 날짜가 1970년임. 그건 수정했더라도 지금 올라올 수가...?

    게다가 다른 덧글들도 작년에 작성된 거네요.
  • 효우도 2011/05/20 18:18 #

    어? 예전에 읽은 글인듯 한데 다시 수정한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리플들을 보니 오류같군요.
  • 긁적 2011/05/20 18:28 #

    ㅋㅋㅋㅋㅋㅋ 키배를 할때도 내면의 찌질함보다는 구글링에 걸린 덧글의 존재가 중요하기는 하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해도 저는 카이사르한테 키케로보다 뛰어난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혹 반대되는 사항을 집중적으로 포스팅 해주시거나(^^; 염치없지만) 관련 서적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 월광토끼 2011/05/20 18:41 #

    http://kalnaf.egloos.com/search/키케로/
    서적을 추천해 달라 하시니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1864 를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시오노 나나미를 [간지로 2016년] 이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만슈타인 2011/05/20 19:29 #

    카이사르는 참 평가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키케로야 솔직한 면이라도 있지만 카이사르는 머...
  • 진성당거사 2011/05/20 20:10 #

    확실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 시오노 여사가 어딘가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몸젠을 지나가듯이 언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로마사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편이라 왈가왈부할 편은 못됩니다만, 이전에 몸젠의 책을 저희 학교 중도에 있는 낡아빠진 영역본으로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 이곳저곳에서 참 책의 외견만큼이나 허름하고 낡은 논의/주장들이 보여 혀를 내두른 적이 있지요.

  • 광대 2011/05/21 10:07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가 평가가 안좋은건가요?
  • 데지코 2011/05/21 15:23 #

    하지만 저는 그 시절에 키케로와 가이우스가 서로가자고 하였으면 가이우스를 따라 나섰을 겁니다.

    남자가 세계정복 좀 하겠다는데 그걸 막으면 안되요
  • 파파라치 2011/05/22 02:04 #

    1. 몸젠과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카이사르를 찬양하고 키케로를 비판한 마이클 파렌티 같은 좌파 지식인도 있지요.

    2. 어느 쪽이 옳았냐의 문제는 별개로 하고, 정치인으로서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목에 힘좀 주려면 군사력이 필수였던 시대에.

    3. 맑시스트로서 히틀러와의 유화 정책을 지지하고 스탈린 독재를 옹호했던 카가 저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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