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웨일즈 점령과 웨일즈 정체성 존속에 관하여.

오늘날, 스코틀랜드와는 달리 웨일즈는 더욱 영국(잉글랜드)와 일체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웨일즈어를 할 수 있는 웨일즈 인은 전체 웨일즈 인구의 20%밖에 되지 않으며, 웨일즈가 영국의 국토로 정식 통합된 것은 1535년의 일인터라 이제 '웨일즈'라는 별개의 국가와 민족이라는 인식은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Welsh Identity라는 것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고,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노르망디 영주 윌리엄이 영국을 침공한 후부터, 영국 침공전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재물이나 영지를 보상받지 못했거나 야만적 호전성을 충족시키지 못한 하급 노르만족 기사들은 남부 웨일즈에 지속적으로 침공해 들어갔다. 웨일즈인들은 노르만족의 점령에 불만을 품은 앵글로 색슨족 지방 귀족들의 반란들을 조장하거나 지지하면서 노르만 통치를 방해하였기에 윌리엄은 휘하 기사들의 웨일즈 공격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웨일즈의 헐벗은 산간지대는 공격자에게 불리한 지역이었으나, 그나마 풍족한 남부 웨일즈는 계속된 노르만 기사들의 군사적 모험들에 의해 점차 앵글로-노르만 지방으로 변모해 갔다. 헨리 1세 치세에 이르면 이곳은 이미 웨일즈가 아닌 영국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북부 웨일즈는 계속해서 영국으로부터의 공격과 영향을 저항했다. 헨리 1세를 승계한 스티븐 왕의 치세 때인 1136년에는 웨일즈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났고, 스티븐이 사촌 '여제' 마틸다와 내전을 벌이느라 신경쓰지 못하는 동안 북부는 물론 남부 웨일즈까지 모두 독립된 국가로 변모한다.

스티븐의 뒤를 이은 헨리 2세는 웨일즈를 복속시키기 위해 1157년에 대규모로 침공해 들어갔으나 웨일즈인들의 저항과 보급의 어려움 때문에 실패했다. 그는 1163년에 다시, 이번엔 제대로 준비해 쳐들어가 웨일즈인 대공들을 굴복시키고 자신을 국왕으로 인정하게 했다. 그러나 웨일즈 자체를 영국에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헨리 2세의 침공은 웨일즈의 지질적, 정치적 독립성의 유지를 인가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앵글로-노르만인들과 웨일즈인들 사이의 잦은 전쟁과 소규모 약탈들은 민족간 충돌이라고 보긴 어렵다. 웨일즈는 분열된 지방이었고 그곳의 웨일즈인 영주들은 오히려 영국으로부터의 침공자들을 반기며 연합해 자신들의 라이벌 영주들을 몰락시키려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일치적 정치상황에서도 '웨일즈'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 개념은 켈트족 '아서왕' 전설로 대표되며 존재, 유지되었고, 이 12세기 중엽의 웨일즈 독립 상황은 그러한 아서왕 전설의 부흥기이기도 했다.

몬모스의 그러퍼드(죠프리)는 웨일즈 애국심 고취를 위해 아서왕을 비롯한 웨일즈의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들을 부각시키는 (다시 말해 사실과는 거리가 먼) 책을 썼고, 그 외 많은 웨일즈 문인들, 시인들이 등장해 과거 웨일즈의 영광과 선조들의 영웅담을 노래했다. 이 웨일즈 문학 증흥기 때 웨일즈인들은 '트로이의 아이네아스의 후손이자 로마 공화국의 창립자인 브루투스'가 영국 '브리톤' 족의 선조였으며 아서왕은 그 브르투스의 직계 후손이라 주장했다. 그들이 믿은 바에 따르면 아서왕은 언젠가 다시 아발론에서 부활해 웨일즈로 돌아와 웨일즈를 영광과 승리의 날로 돌려 이웃의 앵글로-노르만인들을 섬에서 내쫓을 구세주였다.

마찬가지로, '브리타니아'라는 단어의 표현이 이 웨일즈 민족주의 물결 속에 의미가 변한 것도 특기할만하다. 웨일즈인들은 로마인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섬을 지배했던 '브리톤'족의 후손이었기에, 웨일즈인들은 웨일즈 지방을 브리타니아로 불렀다. 그러던 것이 12세기에 단순히 웨일즈에 국한되지 않은 섬 전체에 대한 명칭으로 확대된 것은, 오로지 웨일즈인들만이 브리타니아 전체의 적법한 지배자여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였다.


[Llywelyn ab Iorwerth]


웨일즈 증흥기는 영국 플랜테이저넷 왕조가 쇠약해진 존 왕 치세에 절정에 달해, 류웰린 압 로웨르스(Llywelyn the Great, 1173~1240)가 웨일즈 내 모든 영주들의 위에 선 대공으로 서 웨일즈 통일을 이루기까지 했다. 류웰린 사후에는 영국의 헨리 3세가 틈을 노리고 웨일즈로 다시 침략해 들어왔으나 이는 실패, 류웰린의 아들 다피드를 웨일즈의 통치자로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 웨일즈 공국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헨리 3세 이후 에드워드 1세 치하 영국과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며 끝나게 된다. 에드워드 1세는 1277년에 웨일즈를 침공했고 이 때는 별 전투 없이 웨일즈인들이 항복한다. 그러나 이후 영국법을 웨일즈인들에게까지 적용하려는 시도에 분노한 웨일즈인들 전체가 민족 정체성을 걸고 반발한 1282년에 정말 대규모 전쟁이 벌어진다.

1282년의 웨일즈 전쟁에서 웨일즈인들은 몇차례 큰 승전도 경험했으나, 에드워드 1세의 군세 앞에 결국 1283년 류웰린 압 로웨르스의 손자 류웰린 2세가 오어윈 다리의 전투에서 전사함으로 인해 웨일즈의 저항은 끝이 나게 된다. 결국 이 전쟁은 에드워드의 정복전쟁으로 끝났고, 웨일즈 대부분이 영국의 직접통치를 받게 된다. 웨일즈를 정복한 직후 에드워드는 대대적인 프로파간다 정책을 통해 웨일즈민 정체성을 영국민의 것으로 통합하려 했다. 그는 아서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던 전설적 무덤을 발굴해(또는 발굴했다고 선전) 영국으로 옮기는 행사를 벌이면서 웨일즈를 구하러 돌아올 아서는 정말로 죽어버렸고 돌아오지 못하리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브리타니아'란 단어의 용법도 영어에 통합되어 이는 더이상 '켈트족 브리톤의 땅'이 아닌 '앵글로인들에게 통치되는 영국섬 전반'을 의미하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점령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실질적인 통치정책을 통해 웨일즈를 확실히 영국령으로 만들려 하였다. 1283년부터 에드워드는 웨일즈에 대대적인 영국민 이주/정착 정책을 히행하였다. 플린트, 애버리스트위스, 러들란 등의 영국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웨일즈 전역에 성채와 요새들을 쌓아 병력을 주둔시켰다. 영국인들이 이 요새화된 지역에 들어와 colonization을 시작했고 패배한 웨일즈인 귀족들의 땅이 후하게 분배되었다. 웨일즈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도 퇴역하여 이 웨일즈에 영구 정착하도록 유도되었다.

[Caernarfon Castle]


그러나 이러한 적극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웨일즈가 완벽하게 영국에 통합된 것은 아니었다. 웨일즈의 정체성은 오히려 영국이라는 변장 하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웨일즈 시인들의 웨일즈 문학은 14세기까지도 계속 이어졌고 이는 웨일즈 문화를 오히려 영국 전역에 퍼트리는 역할을 하였다. 다시 말해 영국의 웨일즈 점령은 문화적으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상호적인 작용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서왕 전설은 그 이전처럼 웨일즈에 국한되지 않고 영국 전역의 신화로 굳어질 수 있었다.

문화적인 면 이외에 인종적인 면에서도 웨일즈 통합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 1세가 시작한 웨일즈 점령정책에 의해 웨일즈에 이주, 정착한 영국인들은 현지 웨일즈인들과 결코 동화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영국인 정착민들이 가진 특권과 우월한 재력, 그리고 현지인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들은 웨일즈 일반 민중들 사이에 질투와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웨일즈인들의 정체성을 역으로 상기시켰다. 앞서 말한 웨일즈 시인들의 14~15세기에 걸친 존속은 그러한 정체성 존속의 상징이었다.


[웨일즈를 '해방'하는 오웨인 글린드웨르]


헨리 4세 치세기인 1400년에 웨일즈의 귀족 오웨인 글린드웨르는 이러한 민중들의 반잉글랜드 정서를 통해 대규모 민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오웨인의 반란에 의해 웨일즈 전역에 다시 독립심이 만발했고 잉글랜드계 정착민들은 웨일즈로부터 도망나와야 했다. 오웨인의 웨일즈 군대는 민중의 지지 덕에 여러차례 영국측 반란진압 시도들을 분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웨인에 의한 웨일즈 독립은 무려 1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한 일반정서에 의해, 영국의 진압군이 대규모로 침공했을 때 웨일즈군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자인 오웨인을 배신한 웨일즈인은 없었으며, 오웨인 본인도 영원히 잡히지 않았다.

오웨인의 반란은 웨일즈 역사상 마지막 대규모 반란이었다. 헨리 4세를 승계한 헨리 5세의 웨일즈 통치 정책은 아주 유화적인 것이었고 이 유화적 정책이 효과를 보자 이는 후대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유화'에도 불구하고 웨일즈의 'identity'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정치적 독립성은 사라졌으나 문화적인 독립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이는 1535년 헨리 8세 때 정치적, 제도적으로 웨일즈가 완전히 '잉글랜드'의 일부가 된 이후에조차 존속했다.

19세기 웨일즈에서의 공업확장을 통해 급진적 사상의 웨일즈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힘을 얻으면서 웨일즈 민족주의도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고 이는 오늘날에까지 이어진다. 그덕에 20세기에 웨일즈는 소급적으로나마 정치적 자치권을 재확보하는 단계를 밟았고 이 덕분에 1997년에 웨일즈 국회National Assembly for Wales가 발족하여 웨일즈의 자치를 수립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Davies, R.R. "Colonial Wales," Past & Present, No. 65 (Nov., 1974), p.3-23.

James, Lawrence. Warrior race: a history of the British at war. New York: St. Martin's Press, 2003.

Pryce, H. "British or Welsh? National Identity in Twelfth-Century Wales". English Historical Review. 116 (468): 775-801.

핑백

  • '3월의 토끼집' : 시스템과 무관히 내 멋대로 해보는 2010 이글루 결산 2010-12-29 09:46:35 #

    ... 일즈, 잉글랜드- 중 하나로 손꼽힘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성과 대외 인지도가 가장 낮은 곳이죠. 그곳이 어떻게 연합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또 그랬음에도 어떻게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고, 유지하게 되었나를 설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웨일즈인들의 발음이 대단히 시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 more

덧글

  • 네비아찌 2010/08/18 10:10 #

    아서 왕 전설을 잉글랜드가 더 떠받들게 된거라던지, 수백년 잉글랜드 지배 하에서도 20%나!!! 웨일즈어 인구가 남아있다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UK 국기에 웨일즈의 용 문양도 추가하자는 운동이 있다던데, 요즘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네요.
  • 월광토끼 2010/08/18 10:14 #

    현재 진행형이지만 대중적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위장효과 2010/08/18 11:41 #

    그러니까 다섯 개 근위보병연대중 유일하게 영어와 더불어 웨일즈어 홈페이지를 운영한 게 웰시 가드였었죠(영국육군 군제 개편후 홈피들이 다 사라져서 안타깝지만)
  • 2010/08/18 10:4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8/18 10:46 #

    George 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영국 하노버 왕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_-;
  • 초록불 2010/08/18 11:00 #

    웨일즈 어는 영어와 많이 다른지 궁금하네요.
  • 월광토끼 2010/08/18 11:50 #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래는 웨일즈어로 쓰인 시입니다.

    "Y gwynt oedd yn ddistaw, a’r môr oedd yn dirion"
    쓰여진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이 그윈트 오에드 인 디스토, 아르 모르 오에드 인 디리온.

    영어로
    The wind was gentle and the sea a flower
    가 되는 문장입니다 -_-;
  • Skobelev 2010/08/18 12:01 #

    웨일즈어는 영어와 전혀 다릅니다. 단순히 게르만어파니 켈트어파니 하는 식의 계통만 다른 것이 아니라, 알파벳의 구성과 문법구조-한국어는 SOV형, 영어는 SVO형입니다만 웨일즈어는 VSO형이라고 하네요-도 다르다고 하네요.
  • 초록불 2010/08/18 13:06 #

    신기하네요...
  • 효우도 2010/08/18 18:51 #

    정말 많이 다르네요.
  • Esperos 2010/08/18 22:55 #

    어순은 사실 그리 중요한 차이가 아닙니다. 어순 정도는 시대가 지나면 변할 수 있거든요. 저는 켈트어군이 VSO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주인장님이 예시로 든 웨일즈어 문장은 (제가 비록 언어학자가 아니긴 합니다만) 딱 봐도 gwynt가 영어 wind와 대응하고 mor는 mere나 mare랑 대응할 테니 VSO형은 아니네요. 시라고 하니 어순을 바꾸었나 보지요.
  • 초효 2010/08/18 11:27 #

    잉글리쉬맨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마을 경계에 있는 봉우리가 10미터 낮아서 산으로 인정받지 못해 동네가 잉글랜드 쪽으로 편입될 것이라고 하니 격분한(?) 마을 주민들이 흙을 날라다가 10미터를 더 쌓아 산으로 만들어버린....

    근데 영화찍고 재 측정해보니 다시 낮아져서 온동네 사람들이 또 열심히 양동이에 흙을 날라 높였다지요.^^;
  • 월광토끼 2010/08/18 11:52 #

    아 그 영화 저도 재밌게 봤었지요 ^^;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
  • Skobelev 2010/08/18 11:45 #

    음...그러고보면 웨일즈공이라는 칭호가 잉글랜드의 왕이 아니라 그 적자에게 주어진 것도 동화정책의 한 발로일지도 모르겠네요. 체스터백이나 콘월공과 함께 적자에게 주어짐으로써 웨일즈가 별개의 국가가 아닌, 체스터나 콘월과 같은 잉글랜드의 한 지방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식의. ...뭐, 최초의 잉글랜드인 웨일즈공인 에드워드 2세는 에드워드 3세에게 이 작위를 주지 않았다고 하니, 에드워드 1세부터 계속된 동화정책과는 좀 다르겠습니다만 말이죠..
  • 월광토끼 2010/08/18 11:54 #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1세가 '그대들에게 영어를 말하지 못하는 웨일즈 대공을 주겠노라' 말하고서 나중에 카나폰 성 발코니에서 어린 세자 에드워드 2세를 들어올리며 봐라, 얘는 (아직) 영어를 하지 못한단다, 라고 했다는 야사도 전해지지요.

    물론 말씀하신 바대로 웨일즈 대공의 칭호가 왕세자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보다 후대의 일입니다만..
  • 키르난 2010/08/18 12:16 #

    캐드펠 시리즈 덕분에 스티븐왕과 모드왕후의 싸움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는데, 둘은 사촌지간이지요. 중간에 스티븐왕이 아내인 마틸다와 내전중이었다는 부분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스티븐이 헨리 1세의 사촌이고 마틸다(모드)는 딸이고요. 전쟁 당시 마틸다는 프랑스의 앙주 백작과 결혼상태였을테니..'ㅂ';

    여튼 캐드펠 시리즈에서도 웨일즈는 따로 노는 분위기였던 기억이 납니다. 캐드펠 본인도 웨일즈 출신이긴 하지만 생활습관도 그렇고, 왕가 분위기도 그렇고 좀더 옛날(?) 분위기랄까..^^;
  • 월광토끼 2010/08/18 16:25 #

    아아 이런. 제 착각이었습니다.
    엠프레스 마틸다와 마틸다 드 볼로뉴를 착각해버렸군요. 이런 실수를 내가 저지르다니 OTL

    지적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즉각 수정하겠습니다
  • Allenait 2010/08/18 12:26 #

    허. 웨일즈가 스스로를 '브리타니아' 라고 불렀다라.. 대단한 자부심이로군요.
  • 월광토끼 2010/08/18 16:27 #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브리톤인들은 켈트인들이고, 그 켈트인들이 바로 웨일즈인들이었으니, '브리톤인들이 사는 땅'이 웨일즈인건 맞는 말이잖습니까.
  • 꽃곰돌 2010/08/18 13:29 #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월광토끼 2010/08/18 16:28 #

    감사합니다.
  • Cicero 2010/08/18 14:57 #

    90년대 방영되었던 TV시리즈 "영인디아나존스"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군요.
    1차대전 도중의 영국에서 인디가 페미니즘운동하는 여성을 만나 사귀다가 둘이서 몇개국어까지 할수 있는지 자랑하다가 페미니스트가 웨일즈어로 말하자, 인디가 못알아먹는 신이 있었지요.
  • 월광토끼 2010/08/18 16:28 #

    하하하 정말 웨일즈어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요.
    그런데 웨일즈 내에서도 웨일즈어를 하는 사람들이 주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더욱 더 영어만 쓰려고 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 아브공군 2010/08/18 16:41 #

    위에 나온 웨일즈 어 읽는 법 보니까 읽기는 편한데...
    ....뜻을 모르니 OTL
  • 월광토끼 2010/08/20 08:09 #

    저도 어려워서 모릅니다 OTL
  • nibs17 2010/08/18 18:01 #

    밖에서 보기에는 스코틀랜드나 북 아일랜드에 비해 아이덴티티가 훨씬 낮아보이는 웨일즈 출신인 긱스같은 대단한 선수들이 굳이 잉글랜드를 마다하고 웨일즈 선수로 뛰는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어느정도 알겠네요.
  • 월광토끼 2010/08/20 08:09 #

    연관성이 있지요
  • 전직 환빠 Jes 2010/08/18 22:36 #

    그런데 20%나 자기 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더 놀랍네요
  • 월광토끼 2010/08/20 08:10 #

    반세기 전만해도 그 비율이 60%는 되었다고 하니..
  • 행인1 2010/08/18 22:42 #

    아서왕 무덤이 이장(?)된 것에 저런 사연이 있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 월광토끼 2010/08/20 08:10 #

    그렇지요. 더 이상 웨일즈만의 것이 아닌 영국 전체의 것이 된 거니까요. 공공재 드립?(쿨럭)
  • Caesaris 2010/08/19 01:00 #

    웨일즈쪽도 현재 많은 사람이 영어만 쓰고 있나 보군요. (그래도 오랜 세월간 지배받았는데 20%나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단하지만)
    제가 아일랜드에서 살고있는데 C모 게임(..) 으로 유명한 고이델어는 그저 학생 킬러가 되서(외국인만 면제) 현지 애들이 오히려 까고 있더라고요 - _-; 웨일즈쪽 인식은 어떤지 모르지만 언어 사용비율이 낮아지는건 왠지모르게 슬프네요
    이번에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월광토끼 2010/08/20 08:11 #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아일랜드에서 사신다니 부럽습니다..
    아이리시 펍에서 맥주나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며 사는 생활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 C모 게임이 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
  • Caesaris 2010/08/20 22:24 #

    아일랜드..
    펍은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참 다들 좋으신 분들인것 같아요.

    C모 게임은 미연시/애니 클라나드입니다 (..)
    제작자가 CLANNAD 가 고이델어로 '가족' 인줄 알고 (원래는 고유명사라나;) 썼다가 아니라고 밝혀진 적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 금린어 2010/08/19 01:24 #

    웨일즈어가 줄어드는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장 저부터도 어릴때부터 '국어'가 2개에 따로 제2 외국어까지 배워야 한다면 짜증날것 같긴 하네요.

    개인적으로 문법구조보다 발음과 알파벳의 차용에 관심이 있어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웨일즈 어의 명사들이 '환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독특한 울림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 흥미로웠었습니다.
  • 월광토끼 2010/08/20 08:12 #

    사실 '판타지 소설'들의 원류가 켈트 민요나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주류 판타지의 시초인 톨킨은 그 중세 켈트어를 전공한 학자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8/19 09:46 #

    아서왕 전설이 널리 퍼진 배경이 저거였군요.
  • 월광토끼 2010/08/20 08:13 #

    그렇습니다. 그게 나중엔 프랑스로도 건너가서 살이 붙으며 방대해지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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