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 전쟁(1808년~1814년) 병력 손실 집계

[그림은, 참전 병력 대비 손실율이 가장 높았던 알부에라 전투를 묘사한 것]



1808년 8월 21일 비메이로 전투 - 영국군 7백명 / 프랑스군 2천명
1809년 1월 11일 코루나 전투 - 영국군 8백명 / 프랑스군 1천 5백명
1809년 5월 12일 오포르토 전투 - 영국군 120명 / 프랑스군 4백명
1809년 7월 27~28일 탈라베라 전투 - 영국군 5천 4백명 / 프랑스군 7천 5백명
1810년 7월 20일 코아 전투 - 영국군 3백명 / 프랑스군 1천명
1810년 9월 27일 부사코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1천 2백명 / 프랑스군 4천 5백명
1811년 5월 11일 후엔테스 데 오뇨로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1천 5백명 / 프랑스군 1천 5백명
1811년 5월 16일 알부에라 전투 - 영국군 6천명 / 프랑스군 6천명
1812년 1월 8일~20일 시우다드 로드리고 전투 - 영국군 1천 7백명 / 프랑스군 530명
1812년 3월 16일~4월 6일 바다호스 전투 - 영국군 4천 8백명 / 프랑스군 1천 5백명
1812년 7월 22일 살라만카 전투 - 영국군 3천명 / 포르투갈군 2천명 / 프랑스군 7천명
1813년 4월 13일 카스타야 전투 - 영국/스페인군 4백명 / 프랑스군 1천 3백명
1812년 9월 19일~10월 21일 부르고스 전투 - 영국군 2천명 / 프랑스군 6백명
1813년 6월 21일 비토리아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5천명 / 프랑스군 8천명
1813년 7월 25일 피레네 전투 - 영국군 2천 2백명 / 프랑스군 1천 8백명
1813년 7월 28일 소라우렌 전투 - 영국군 2천 6백명 / 프랑스군 4천명
1813년 8월 25일~31일 산 세바스티안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5천명 / 프랑스군 2천명
1813년 10월 7일 비다쏘아 전투 - 영국/포르투갈/스페인군 1천 6백명 / 프랑스군 1천 5백명
1813년 11월 10일 니브유 전투 - 영/포/스 군 2천 6백명 / 프랑스군 4천 4백명
1813년 12월 10일~12일 니브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5천명 / 프랑스군 6천명
1814년 2월 27일 오르테즈 전투 - 영국/포르투갈군 2천 1백명 / 프랑스군 2천 6백명
1814년 4월 10일 툴루즈 전투 - 영국군 4천 7백명 / 프랑스군 3천 3백명
1814년 4월 14일 바욘느 전투 - 영국군 850명 / 프랑스군 9백명

+그외 이런 저런 소규모 교전 (토레스 베드라스 방어선에서의 것도 포함) / 공성전들의 전투 피해


영국/포르투갈 (그리고 이따금씩 스페인) 군의 반도 전쟁 전체 전사/부상자 총합 6만 3천
영국군과 교전에만 국한한 프랑스군의 반도 전쟁 전체 전사/부상자 총합 7만 2천


*어느 전투에서나 '연합군'의 병력 구성비는 영국군이 대부분이고 포르투갈군은 1개 사단 또는 이하 여단급으로 참전.
스페인 정규군은 특기할 만큼의 규모를 가진 단위부대가 참전한 전투가 세 번에 불과.

*해당 목록은 교전중 인명손실에 국한함. 아사, 동사, 병사자 수는 집계되지 않음.
*프랑스군의 대 게릴라전 또는 스페인 정규군과의 야전 시 손실을 모두 포함하면
어림잡아 약 8만명은 넘어설 것으로 추산됨

*부상자의 전선복귀율은 고려하지 않음. 자료 불충분.


이런 전쟁이었음에도 반도 전쟁이 나폴레옹 전쟁사를 다루는데 있어 거의 무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폴레옹 본인이 참가하지 않으면 상관없단 말인가..

사실 이건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워털루 전투 참전자에게 전공 훈장을 수여했음에도 워털루 이전 프랑스 혁명전쟁부터 반도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장에서 복무한 군인들에 대한 Recognition은 무시되기 일수였고, 관련 훈장도 존재하지 않아 빅토리아 여왕 치세의 1840년대 말 이점이 큰 논란이 되었었다. 결국 The Military General Service Medal 1793 - 1814 이라는 전공 훈장이 1847년 인가되어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이제는 노인이 된 베테랑들 2만 6천여명에게 수여되었다.

[저 전투 명들이 보이는가. 그 이름도 찬란한 비토리아와 살라만카, 툴루즈 등. 이게 1847년에나 와서야 인정되었다는 것이 이 훈장을 수여받던 노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기막힌 처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오로지 '생존'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어서 전사자 유족들이나 1847년 이전에 사망한 사람들의 유족은 훈장을 받지 못했다.

핑백

  • '3월의 토끼집' : 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1808~1814) - 完 2010-12-17 17:09:28 #

    ... 했다. 단순히 영국 주도 연합군과 프랑스군이 벌인 주요 회전들에서의 병력손실만 집계해도 대단히 큰 수치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 "반도 전쟁(1808년~1814년) 병력 손실 집계" 참조. 또한, 단언하기는 성급하지만 이 전역에서 영국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나폴레옹은 아마 전력을 다해 동부전선에서 연합군을 무너뜨 ... more

덧글

  • asianote 2010/08/27 10:58 #

    그나마 인정이나 되었으니 다행인 듯. 인정도 못 받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요?
  • 아브공군 2010/08/27 11:00 #

    우리 나라도 저런 경우 많죠.....
  • hyjoon 2010/08/27 11:12 #

    어째 남의 나라 얘기같지만은 않군요.
  • Allenait 2010/08/27 11:23 #

    그래도 인정을 받아서 다행이군요. 그나마.
  • 누군가의친구 2010/08/27 12:50 #

    그리고 당시 트라팔가 해전 당시 배에 탑승했던 여성인 제인 타운센트의 메달 신청은 기각당했습니다. 책을 읽어보다가 왜 1847년에 신청했나 했더니 원인이 될 사건이 있었군요. 이 여성의 경우 트라팔카 해전 당시 HMS 디파이언스에서 부상병 간호를 헀었고 함장의 보증서도 제출했음에도 영국 정부가 유사한 사례를 두려워한 나머지 기각해버렸지요.
  • 대한민국 친위대 2010/08/27 14:40 #

    속된 말로.... 돋네요. 저런 경우가 다 있다니;;;;
  • 행인1 2010/08/27 17:38 #

    마치 동북아 어느 나라 같네요. 그나저나 훈장의 모양이 참 독특합니다.
  • 2010/09/02 10:5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03 11:07 #

    아이고 지나친 과찬이십니다.

    저는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사람도 못되고 그냥 공부할게 한참 많은 학부생에 불과합니다요 ㅠㅠ 그저 가진게 있다면 글쓰는 부모님 밑에서 글쓰는 연습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읽어나가는 것 하나 뿐인데 이건 그냥 열심히 읽고 쓰는 걸 하는 것 밖엔 없습니다...
  • 가엘 2010/09/05 22:09 #

    답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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