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중앙일보 어느 사설 스크랩

"일제 경찰, “한 달 내 화장실 1500개 설치” 강압적 명령"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420540)

지상에 도시가 출현한 이래 분뇨 처리 문제는 도시 생활의 대표적인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일찍부터 집약 농법이 발달한 동아시아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생태적인 보완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 문제를 조금 경감시킬 수 있었다. 바쿠후 시대 일본 에도(江戶)에서는 분뇨 장사꾼들이 돈을 내고 분뇨를 쳐갔는데 귀족의 것이 평민의 것보다, 남자의 것이 여자의 것보다 비쌌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묘사한 대로, 조선시대 한양에도 분뇨 수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덕에 분뇨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도로 위에 쇠똥·말똥·개똥 천지이던 환경도 도시민들의 분뇨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한편으로는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교외 지역이 산업화함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냄새와 위생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됨에 따라 분뇨 문제가 새삼 도시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당국에 분뇨 수거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제 당국은 조선인의 위생 관념 부족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들은 특히 서울의 중심 가로인 종로에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대로변 상점에 변소가 없어 상인들이 요강의 내용물을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 탓이라고 진단했다.

1932년 7월 종로경찰서는 종로 대로변 상점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다. 1535호의 상점에 변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경찰은 그들에게 한 달 내에 변소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8월 31일 경찰은 그때까지 변소를 설치하지 않은 735호의 상점을 적발해 2~3일 내에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했다. 상점주들은 부랴부랴 비좁은 가게 한 구석을 잘라내어 옹색한 변소를 만들었고 경찰은 한 달 새 무려 1535개의 변소를 만드는 ‘실적’을 올렸다.

오 늘날이었다면 시민들이 오히려 당국에 공중변소를 설치하라고 요구했을 상황이지만, 그때는 요구의 방향이 정반대였다. 전제정치하에서는 관리가 시민들을 부리지만, 민주정치하에서는 시민이 관리들을 못살게 군다. 그런데 시민들의 요구는 너무 다양하고 자주 상충된다. 그러니 민주 사회의 관리는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1500개의 변소를 만드는 능력보다 1500명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능력이 더 소중한 오늘이지만, 실적만으로 관리를 평가하는 풍토는 여전한 듯하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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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는 똥 푸는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서도 다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굵게 강조한건 제가 해 놓은건데, 저런 화장실 설치하는 냥 이루어진 강압/관료적 '근대화'라는게

정말 얼마나 득이 되는 것이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나저나 저는 한국에 있을 때는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그리고 잡지인 시사IN을 사서 봅니다.

중앙일보는 요즘 기사 질들이 참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핑백

  • Romancer's place 설원의 별장 : 근대의 의미와 식민지 근대성. (5) 2013-10-27 00:49:23 #

    ... 려고 하는데요-식민지 근대성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났습니다. '당국'이 조선에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어떤 식으로 추진했는지 참고할 만한 월광토끼님 포스트가. http://kalnaf.egloos.com/3013166 뭐 이건 이거라 치고... 어쨌든 1920년대에 이르면 식민지 조선의 교육열은 비등하게 되지요. 보통학교의 학력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을 ... more

덧글

  • 꽃곰돌 2010/08/31 14:59 #

    조선/중앙이 동아/한국의 경영난 때 스타급 기자들을 많이 스카웃해갔죠 그 뒤로 퀄리티만 따지면야 저 두 신문이 확실히 뛰어납니다. 기사 자체는 참 좋아요; 결론이 괴랄해서 그렇지...
  • dunkbear 2010/08/31 15:18 #

    조선은 정치/경제면만 빼면 읽을 거리가 좋은 편이죠...
    중앙은 구독하질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서도... 동아의
    경우 신동아에서 가끔씩 개념 기사를 내놓기도...
  • Cicero 2010/08/31 20:51 #

    박노자-허동현의 대담을 처음으로 연재한게 중앙이었습니다. 나름 중앙도 어느정도 기사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고민은 하는것 같더군요.
  • 진냥 2010/08/31 16:13 #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는 어떤 사람이 노상방뇨를 했다가 일본인 순사에게 붙들려 뺨을 맞고 옷을 찢기고 땅에 눈 오줌을 도로 먹도록 강요당한 사건이 실렸다지요. 참으로 근대적인 처사입니다...=ㅅ=
  • Allenait 2010/08/31 16:48 #

    ....매우 근대적인 처사(..) 로군요.
  • ArchDuke 2010/08/31 17:40 #

    청결을 사랑하는 일본인 순사
  • 01410 2010/08/31 16:49 #

    저런 사례 중에서 제일 유명한 건 파리잡기 운동 아니겠습니까.
    해충박멸을 위해 집마다 식구 머리 수만큼 파리채를 구비하라고 해 놓고서는
    나중에는 젖먹이 머리수까지도 세어서 요건불비->단속 실적 향상. 이란 식이었죠.

    뭐 일본 본토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만...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의 회고 보면 그래도 오사카에서는 나 법대교수요, 하고 조목조목 따지면 으스대던 형사가 고개숙이고 굽신대며 도망갔다고는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0/08/31 18:53 #

    가와카미 하지메라면... 戰前 일본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아닌가요?

    가와카미의 제자 중 하나인 미즈타 미키오는 훗날 고도성장시대 대장대신을 역임한 걸로 압니다...
  • 01410 2010/08/31 23:11 #

    아 죄송, 다키가와군요. 정정합니다.
    출전이 장경학 교수님 회고록 원고인데 다키가와편 안에 가와카미 의원면관 사건과 같은 챕터라서 헷갈린 것 같습니다.
    + 가와카미 교수도 나중에 교토대 학장 하면서는 전공투 세대들과 충돌하게 되죠. 운동권과의 대립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전전에는 좌익으로 찍히고, 전후에는 운동권과 삐그덕대고..
  • 천지화랑 2010/08/31 16:54 #

    류큐에서 인두세 생기게 만들고는 "인두세때문에 류큐인들은 일본 병합을 원함 ㅋ"거리던 게 일본이니까요 -_-;;
  • ArchDuke 2010/08/31 17:43 #

    반년이라면 몰라도;
  • 행인1 2010/08/31 18:41 #

    뭔가 사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만드는 '근대화'로군요.-_-;;
  • 에드워디안 2010/08/31 18:58 #

    글쎄요, 전 개인적으로 저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예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 프랑켄 2010/08/31 19:37 #

    위에 댓글 다신 분들은 필요성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만........그리고 아무리 필요성이 있다고는 하나 이렇게 땜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공중화장실이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 Cicero 2010/08/31 20:50 #

    많은 분들이 경제적 수치만을 놓고 제국주의의 착취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제국주의의 전장한 폐해는 아무대책없는 전통사회의 파괴를 통한 근대화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임금노동의 개념이 없던 서아프리카제도에 화폐제도가 도입되었을때, 임금노동을 하던이들사이에서 극심한 기아가 발생했었습니다. 백인들은 곡물가가 터무니없이 치솟아 임금으로는 부족했던게 아닌가 했지만 실상 문제는 이곳사회가 잉여가치의 교환개념이 없어, 곡물을 추가생산을 지양했고, 시장에 내놓을 곡물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덕분에 농업에 종사하다가 임금 노동을 시작한 이들은 식량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기에 굶주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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