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네이비의 탄생 - 2. 건함세의 시대

1633년. 의회는 이미 해산되고 없었다. 버킹엄 공작에 대한 처우를 놓고 촉발된 의회와 왕 사이의 갈등은 파국으로 치닫았고 버킹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 파국을 악화시키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 왕 찰스 1세는 즉위 직후부터 늘 그랬듯, 돈이 궁했다. 의회가 없으니 국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걷어도 될까? 찰스 1세는 과거 엘리자베스 1세 치세 때 언급되다 묻힌 이야기를 되살렸다. Ship Money. 건함세. 이는 보통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들로부터 세금을 걷거나 배를 대여하는 제도를 의미했는데, 찰스 1세는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물론 모두가 반발했고 왕에 대한 지지도는 곤두박질 쳤다.

자, 여기서 이 건함세 문제는 보통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징세 = 폭군의 압제, 이런 식으로만 설명되기 마련이고, 건함세 자체 목적에 대해서는 대게 침묵되거나 ‘찰스 1세가 왕실 국고를 채우려는 수단’ 정도로 뭉뚱그려져 넘어가게 되는데... 건함세가 무엇인가. 해군 유지세다. 그런데 어떻게 이 문제에서 해군을 빼고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 (해산되었던 의원들도 포함해서)은 불평불만을 토로했지만 건함세를 지불했다. 그래도 칙령은 칙령이었으니까. 그렇게 1634년 최초의 건함세가 징수되었고 이는 8만 파운드란 액수에 달했다. 그리고 런던과 그 외 몇몇 큰 항구도시들은 돈 대신 선박을 증여했다. 1년 후인 1635년 7월, 24척에 달하는 영국 해군 함대가 영국 해협에서 순찰을 돌았다. 북해까지 쳐들어 오는 알제리 해적들로부터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최초의 해군 정기 순찰제가 확립되었다. 1637년, 역대 최대의 군함으로 90문의 대포를 탑재한 Sovereign of the Seas (바다의 군주)가 취역했다. 그리고, 이제 각 군함들에는 성직자와 의사가 배치되었고, 승조원들과 장교들은 점점 일용직이 아닌 정규직 군인들이 되어갔다. 물론 아직도 월급이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상황은 점점 나아져 갔다.

그렇다. 찰스 1세는 이 건함세를 해군을 운용하는데 쓴 것이다.


[HMS Sovereign of the Seas]



한편, 이때까지 해군이란 돈 많은 중상층 지주 또는 상인들, 즉 ‘젠틀멘’들과 부잣집 자제들이 부와 명예를 쫓아 들어와 지휘하는 집단이었다. 군함의 지휘는 당연히 그런 이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점점 해군이 상비군화 되어가고 승조원들이 계속 함에 탑승하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업 해군 장교 집단’이 나타났던 것이고, 놀라운 것은 그 출신 성분들이었다. 함선의 조타수, 갑판장, 포술사, 심지어 더 낮은 계급의 선원들까지. 이 새로운 집단의 이름은 ‘tarpaulin officers’. 검은 타르에 찌든 지저분한 함상 작업복을 입은 장교들이란 소리였다.

1637년에는 이 ‘타폴린’ 계 장교 출신이었던 윌리엄 랜즈보로 함장과 마찬가지로 ‘타폴린’ 함장들이 이끄는 네 척의 해군 전대가 북아프리카 해적 소굴인 살리로 쳐들어가 다섯 달 동안이나 항구를 봉쇄하여 영국인 포로/인질들 3백명을 석방하고 해적선들을 나포, 불사르며 물자를 빼앗는 업적을 세운다. 건함세가 세운 업적이라고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


한편 존 햄덴이라는 자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의회의 동의없이 강제한 징세는 사유재산 소유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는 것이었다. 국왕 대 햄덴Rex v. Hampden 사건에서 법원은 3대 2의 비율로, 왕실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임판사 코벤트리 공은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나무로 만든 장벽은 우리 왕국 최고의 보호벽이며(주: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나온, 아테네 인들의 해군건설에 빗댐) 우리 왕국의 부와 재산이 존중 받기 위해서는 제해권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나무 장벽’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장벽이었고, 이는 1639년에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가열찬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네덜란드가 승리를 거머쥐고 있는 중이었다. 북해로 올라왔던 스페인 해군 함대가 네덜란드의 명 제독 마르텐 반 트롬프의 전술에 휘말려 패배하고 영국 해안의 ‘다운즈’로 도망쳐 온 것이 발단이었다. 트롬프 제독의 네덜란드 함대가 이를 추격해 따라왔다. 중립국인 영국의 영해에 들어온 두 함대에게, 그곳에 이미 대기 중이었던 영국 함대 10여척의 지휘관인 존 페닝튼 경이 당장 전투를 중지하고 영해 밖으로 떠날 것을 종용했다. 네덜란드의 트롬프 제독은 이를 가볍게 비웃었다. 결국 다운즈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스페인 함대는 박살났다. 스페인측 지휘관 오쿠엔도 제독의 함대 기함은 무려 1천 6백여발의 포탄을 얻어맞고 격침당했으며 그 휘하 40여척의 전함들이 침몰하거나 불살라지는 동안 네덜란드 해군은 단 한 척의 피해만을 입었다. 그 동안 영국 함대는 무엇을 했는가. 양측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허공에 포 몇 발을 발사한 후 전장을 이탈했다.

[다운즈 해전에 속속 집결하는 네덜란드 전함들]



1639년 10월의 이 다운즈 사건은 ‘건함세 함대’의 존재 의의와 징세 명분을 박살냈다. 외국의 함대가 영해로 들어와서 항의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이를 막거나 쫓아낼 힘조차 없는 것이 영국 해군이었다. 그리고 그 1639년에는 건함세가 겨우 절반밖에 걷히지 않았다.

그동안 영국 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돈 쓸 곳은 늘어만 가는 동안 국민들의 불만도 쌓여갔다. 3년 후 내전이 터졌다.



1642년 영국 내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해군은 월급이 꽤 많이 밀려있는 상황이었다. 건함세의 득을 봤던 세월은 이미 끝났고 1639년부터 해군은 다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굶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새 내전에서 국왕의 편을 드는 해군 장교나 선원은 거의 없었다. 귀족 함장들은 충성파에 속했으나 자신들이 지휘하는 함과 승조원들을 충성파에서 싸우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동안 그 ‘타폴린’ 지휘관들에 의해 의회측의 편을 든 해군 함대는 충성파 항구도시들을 봉쇄하고 런던의 국제무역 항로를 순찰돌며 지켜, 의회파의 전쟁자금을 확보해 주었다.


[군인들에게 조롱받는, 포로 신세의 찰스 1세]


그동안 육지에서는 찰스 1세의 모든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가 길게 이어졌던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이 났다. 1649년에 찰스 1세는 처형당하고 공화국으로서의 영국, 즉 Commonwealth 시대가 시작되었다. 헌데 웃기게도, 그 의회가, 자신들이 목을 잘라 죽인 국왕의 대해군 건설의 꿈을 이어나가고 실현시키게 된다.




참고문헌:
Herman, Arthur. 2004. To rule the waves: how the British Navy shaped the modern world. New York, NY: Harper Collins.
Hore, Peter. 2005. The habit of victory: the story of the Royal Navy, 1545 to 1945. London: Sidgwick & Jackson
Oppenheim, M. 1894. "The Royal Navy under Charles I". English Historical Review. 9 (33): 92-116.

핑백

  • '3월의 토끼집' : 로열 네이비의 탄생 - 3. 공화국의 시대 2010-09-13 08:07:28 #

    ... 49-1660". English Historical Review. 11 (41): 20-81. 로열 네이비의 탄생 - 1. 버킹엄 공작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2. 건함세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3. 공화국의 시대 앞으로 이어질 글들: 4. 페피스의 시대 5. 안슨의 시대 6. 샌드위치의 시대 ... more

  • '3월의 토끼집' : 로열 네이비의 탄생 - 4. 페피스의 시대 2010-09-14 17:39:11 #

    ... Royal Navy, 1545 to 1945. London: Sidgwick & Jackson 로열 네이비의 탄생 - 1. 버킹엄 공작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2. 건함세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3. 공화국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4. 페피스의 시대 앞으로 이어질 글들: 5. 안슨의 시대 6. 샌드 ... more

덧글

  • 성민스 2010/09/09 16:07 #

    늘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일착인가!
  • hyjoon 2010/09/09 16:18 #

    크롬웰 시기의 영국 함대의 성장이 괄목할만 하죠.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 행인1 2010/09/09 16:34 #

    그러고보니 저 시절에는 네덜란드가 바다를 호령하던 시절이었군요. 다음편에는 크롬웰의 '항해조례'가 나올 차례오군요.
  • asianote 2010/09/09 16:57 #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한다면 바로 전임자가 엄청나게 비판받았던 정책이 후임자를 통해 그대로 계승된다는 점이지요. 삼봉 정도전 대감의 목은 날라갔지만 그 정책틀은 거의 바뀌지 않고 태종에 의해 시행되는게 대표적 사례지요.
  • =_=/ 2010/09/09 20:57 # 삭제

    카이사르는 칼 맞았지만 그 분이 결정한 인사는 그대로 시행되었다... 라던가...;;;
    (아니면 원수정, 군주정으로의 이행..;; 이라던가)
  • 월광토끼 2010/09/10 00:30 #

    비열한 옥타비안의 사례는 좀 다릅니다만.



    정도전의 정책 얘기는 재미있군요.
  • kinoko 2010/09/09 17:59 #

    좋은 글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
  • 네비아찌 2010/09/09 18:23 #

    알제리 해적들이 북해까지!!! 그런데 걔네들 배로 거친 북해를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10 00:29 #

    네덜란드 상인들하고 사바사바해서 우월한 유럽 돛을 사서 쓰기도 했답디다
  • 누군가의친구 2010/09/09 20:20 #

    다운즈 해전 당시 영국해군의 승무원 입장은...

    "배를 버려라!"

    로 표현할수 있을까요?...ㄱ-
  • Allenait 2010/09/09 20:49 #

    찰스 1세는 싫지만 해군정책은 좋다! 인건가요..
  • =_=/ 2010/09/09 20:59 # 삭제

    찰스 1세가 보기보다(?) 똑똑한 왕이었군요. 왕권이 약해서 슬플 뿐이었나..;;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다음 포스트도 기대하겠습니다 ^^
  • 조이 2010/09/09 22:00 # 삭제

    네비아찌// 다음의 디스이즈 토탈워 카페에 당시 알제리 해적들의 활동에 대한 글이 있더군요. 읽어보니까 당시 알제리 해적들이 지중해 전역에서 해적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북해까지 쳐들어와서 해적활동을 벌이더군요. 보니까 입이 딱 벌어지는게.... 유럽 각국이 바르바리 해적의 공격에 공포를 느끼고 있더라구요.
  • 네비아찌 2010/09/09 23:39 #

    대단하네요. 지중해용 배로는 북해의 파도를 버티기 힘들었을텐데, 북해용 배를 따로 만들었을까요?
  • ArchDuke 2010/09/10 03:16 #

    이제 재대로 좀 돌아가.................꿈도 희망도 엄서........
  • 효우도 2010/09/10 16:45 #

    군인에게 조롱받는 찰스 안습.
  • 가엘 2010/09/14 10:24 #

    하지만 현대에는 크롬웰이 조롱받고 찰스1세는 동정표 (아닌 사람도 많지만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삼왕국 전쟁사 또는 단순히, 영국 내전사

7년전쟁 북미전역

말보로 공작의 일생

로열 네이비 이야기

이베리아 반도전쟁

라파예트 후작의 일생

영국육군 블랙왓치 부대史


통계 위젯 (화이트)

134145
973
4703278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1420

I Support ROKN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아지캉 최고

9mm Parabellum Bullet

the pill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