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네이비의 탄생 - 3. 공화국의 시대

찰스 1세는 대해군 건설과 해양강국을 꿈꾸었으나 그의 정치력 부족과 그 신하들의 몰이해는 찰스 1세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하지만 그 반역자 신하들이 선포한 공화국은, 그 청교도식 철권통치를 유지할 대규모 육군 외에도 거대한 해군을 건설,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찰스 1세가 죽고 ‘공화국’이 출범했을 때 영국의 함대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은 워릭 백작 로버트 리치Robert Rich, Earl of Warwick, 1587~1658였다. 워릭 백작은 의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대규모의 해군 증건 계획을 밀고 나간 사람이어았다. 의회는 찰스 1세가 추진했던 건함세와 유사하게 소금과 돼지고기에 세금을 높이 책정한 후 그 세금으로 육군과 해군을 동시에 운용했고 무역에서 얻는 세관 수입 또한 해군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해군 사령장관 워릭 백작은 이 세금을 통해 장기적인 건함계획을 수립, 실현시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더 이상 무장상선 따위가 해전에서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해져갔고 오로지 해전에 특화된, 해군만을 위한 ‘싸움배’들이 조선소에서 대량 건조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식으로 1650년에 이르면 무려 72척이나 되는 군함들이 해군에 소속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군함들은 모두 이제 ‘무장상선’ 따위가 아닌, 순수한 군사 목적의 전투함들이었다.

의회 주도의 ‘Commonwealth’(공화국)가 크롬웰 독재 치하 ‘Protectorate’(호국제)으로 바뀐 무렵에는 영국 해군은 6만명의 군인과 133척의 전투함들로 구성된 상비 정규군이자 대함대로 불어나 있었다. 이 때 영국 해군에는 단순히 100문 대형 전열함 뿐 아니라 중소형의 고속 전함인 프리깃, 스페인어 프레가타fregata에서 따온 함급들이 포함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영국은 그 무역로에 가해지는 위협들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무기 뿐 아니라 그 무기를 운용할 사람들의 질과 그들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다. 1653년에는 일반 승조원들의 월급을 24 실링으로 올렸고, 또한 포획 상금을 함장이 독차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승조원들에게도 어느정도 분배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승조원들과 함장들 사이는 굉장히 가까워져, 능력있는 함장들은 존경을 받았고 또 능력있는 함장들은 부하들을 굉장히 아껴, 함을 바꿀 때도 승조원들을 데리고 가기까지 했다. 이는 소위 ‘타폴린’ 함장들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서 생긴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회-정부에서도 직접 일반 선원들에 대한 주의를 깊이 기울이기 시작했다. 1649년에 함대 지휘관들에게 보내진 의회의 지령서는 포로 교환의 기회나 물자 확보의 기회가 있을 때면 반드시 행하라고 명령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as it will tend much to the satisfaction of the seamen when they see that care is had of them.’ (자신들이 돌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원들이 매우 만족해 할 것이다) 해전에 있어서의 하급 선원들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일까?

그러는 동안 영국은 점점 바다 건너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과 외교적 충돌을 빚기 시작했다. 영국이 내전을 종료하는 시점과 비슷한 무렵에 네덜란드도 스페인과 휴전협정을 체결했고 곧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확장하고 무역량으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해 나갔다. 크롬웰 정권의 고급 장군들 중 하나였던 죠지 몽크(훗날 왕정복고를 주도할)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The Dutch have too much trade, and the English are resolved to take it from them.”(네덜란드인들은 무역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우리 영국인들이 좀 뺏어와야만 한다)

*그리고 죠지 몽크는 실제 바다로 직접 나아가 함대전을 지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발표된 것이 1651년의 항해 조례 – Navigation Acts였다. 영국과 영국의 모든 식민지들은 오로지 영국 선적의 배로만 무역을 할 수 있으며 다른 국가와의 무역은 금지되었다. 중상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국 해협을 지나는 모든 함선들은 영국에 대한 예로 국기를 내리고 지나야 했다. 누구 마음대로?

전쟁은 선전포고보다 먼저 일어났다. 1652년 5월, 네덜란드의 명 제독 마르텐 트롬프가 이끄는 상선과 그 호위함대 40여척이 그 옆을 지나던 25척의 영국 해군 전대 지휘관의 국기 하강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함포전이 벌어진 것으로 제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그 최초의 전투가 바로 굳윈 샌즈의 전투Battle of Goodwin Sands인데, 그 영국측 지휘관이 바로 로버트 블레이크Robert Blake, 1599~1657로, 먼 훗날 넬슨 제독이 ‘나 스스로가 감히 동격에 올라갈 수 없는’ 사람으로 존경한 인물이었다.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



이 때는 처음에 해군 증건을 추진했던 해군 사령장관 워릭 백작이 이미 권력투쟁에 밀려 자리에서 쫒겨난 후였는데, 그 후 해군성에 들어온 것은 육군 지휘관 출신들이었다. 로버트 블레이크도 육군을 지휘한 장성이었는데, 그는 영국 내전 후반기에는 군함을 타고 국왕 충성파의 사략선들을 추격하며 바다에서 경험을 쌓았다. 공화국 성립 후에도 그는 해군 지휘를 계속했고, 그렇게 해서 영국-네덜란드 전쟁 최초의 교전을 시작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굿윈 샌즈의 교전은 양측이 다섯 시간 동안 포화를 주고 받다가 상선대를 보호해야하는 네덜란드 측이 해가 지자 먼저 전장을 이탈하는 것으로 승자없이 끝났다. 그 후 네덜란드 측의 우세와 영국 측의 열세를 증명하는 듯한 전투가 몇 차례 더 벌어졌고, 결정적인 개혁을 불러온 전투가 첫 교전으로부터 6개월 후에 벌어진다.



1652년 12월의 던제네스 전투Battle of Dungeness에서 블레이크의 함대는 다시한번 트롬프의 네덜란드 함대와 맞붙었다. 이 전투에서 숫적 열세를 본 많은 영국인 함장들이 교전 중 허가도 없이 그냥 전선을 이탈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네덜란드 함선은 한 척이 불탔고 그 동안 영국 해군은 다섯 척의 손실을 입었으며,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 블레이크 제독은 특단의 조처가 취해지지 않으면 당장 사임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도망친 함장들 중에는 무역 상선의 선장 노릇을 하던 이도 있었으나, 정규 해군의 정식 지휘관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특단의 조처’가 취해졌으니, 여러명의 불성실한 함장들의 퇴출과 함께 따라온, 다름 아닌 해군율법Articles of War의 탄생이었다. 해군에 차출된 민간 상선이라도 그 지휘는 그 상선의 원 주인이나 선장이 아닌 해군 장교에게 맡겨졌으며 지휘관들간의 확실한 상하 계급관계가 정립되었고, 함선의 승조원들은 물론이고 그 장교들의 행실과 임전 태도에 대한 엄격한 법규들이 발표되었다.

이 엄격한 군법의 탄생은 새로운 해전 방식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는데, 그것이 바로 ‘line of battle’, 즉 전열 해전이다. 더 이상 각 함들끼리 뒤엉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수십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line-ahead-formation에 맞추어 함대 사령관의 지휘에 따라 열을 지어 이동하고 포격을 하는 진형 전술을 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새 법규들은 이러한 진형의 유지와 사령관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 명령 체계를 정비하고 강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정비된 함대와 우월한 건함 기술을 바탕으로 영국 해군은 블레이크 제독의 지휘 하에 다시 영국 해협의 포틀랜드 섬Battle of Portland에서 트롬프의 네덜란드 해군과 1653년 2월에 맞붙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영국의 함대기함 ‘트라이엄프’의 함장과 갑판장이 머스켓 탄에 맞아 전사하고 그 옆에서 블레이크 제독 자신도 중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영국 해군은 결국 군함 한척만을 잃었고 그 동안 네덜란드 함대 스무척을 격침시키거나 불살랐으며 마흔척 이상의 상선들을 나포할 수 있었다. 연안해군의 성격을 띄고 있던 네덜란드 해군으로서는 중무장하고 거대화되기 시작한 영국 해군의 함대를 점점 상대하기 힘들어져가기도 했다.

한편 블레이크와 그 동료들은 또다른 중요한 전투방식을 영국 해군에 들여오는데, 이것은 바로 전투 전 작전회의라는 아주 간단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훗날 넬슨 제독이 그렇게 모든 전술과 지시는 사전에 부하들과 의논하고 정하는 것도 블레이크의 시대에 시작된 일이었으며 이는 전투의 난전화를 막았다. (물론 현장 지휘관의 경직성도 초래했다)

1653년 7월에는 이 전쟁 최후의 전투인 슈헤베닝겐 전투Battle of Scheveningen가 벌어지게 되는데, 네덜란드와 영국 양측 다 백여척 이상의 대함대를 대동한 이 전투에서 그간 네덜란드의 함대를 이끌어왔던 트롬프 제독이 머스킷탄에 맞아 전사했고 결국 네덜란드가 대패했다. 그동안 공화국 영국은 그 거대해진 해군을 통해 바다를 장악하고 네덜란드의 항구들을 봉쇄하며 그 상선과 어선을 닥치는데로 나포, 2천여척에 달하는 배들의 경제활동을 중단시키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주가는 폭락했고 국고는 비어갔으며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네덜란드는 영국과 종전 협약을 맺자고 간청하게 되었다.


[스헤베닝겐 전투]


물론, 당시 ‘호국경’ 크롬웰은 네덜란드보다 스페인과의 전쟁이 더 급해 그다지 가혹한 조건을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네덜란드의 경제는 몇년 지나지 않아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그 10년 후인 제 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때는 그 네덜란드 함대가 영국 함대를 쳐부수는 일까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바다의 패권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는 중이었다.

또한, 공화국 시기 동안 영국은 찰스 1세가 꿈도 꾸지 못했던 두가지 위업을 달성했는데, 그것은 지중해 전대와 서인도제도 전대의 창설이었다. 물론 아직은 지브롤타가 영국 손에 있지 않았으나 이제 영국 해군은 ‘감히’ 지중해로 향하는 상선들을 호위하며 지중해를 드나들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제 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에서 이어지는 영국-스페인 전쟁에서 자메이카 섬과 그 유명한 포트 로열을 영국이 상륙작전을 통해 점령함으로써 서인도제도에 확실한 영국의 근거지가 마련되었고, 동시에 영국 해군의 서인도제도 전대도 창설되었다.

이렇게 영국은 이미 영국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듯한 '제해권'을 서서히 쌓아올려가기 시작했다.



Herman, Arthur. 2004. To rule the waves: how the British Navy shaped the modern world. New York, NY: Harper Collins.
Hore, Peter. 2005. The habit of victory: the story of the Royal Navy, 1545 to 1945. London: Sidgwick & Jackson
Oppenheim, M. 1896. "The Navy of the Commonwealth, 1649-1660". English Historical Review. 11 (41): 20-81.



로열 네이비의 탄생 - 1. 버킹엄 공작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2. 건함세의 시대
로열 네이비의 탄생 - 3. 공화국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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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행인1 2010/09/12 22:59 #

    드디어 영국 해군의 명성이 시작되는군요. 찰스 1세가 그토록 바라던게 그를 권좌에서 글어내린 크롬웰 치하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니 아이러니입니다.
  • 라라 2010/09/12 23:01 #

    비교는 무의미하나 저무렵 조선 생각하면......
  • 월광토끼 2010/09/13 13:15 #

    병자호란 피해 복구하고서 북벌론 나오던 때 아닌가요?
  • 누군가의친구 2010/09/13 00:05 #

    크롬웰 치하에서 해군력이 강화된게 아이러니 하면서 역시 인간은 필요하면 별수 없음을 느낍니다.
    그러저나 네덜란드는 참...ㄱ-
  • 월광토끼 2010/09/13 13:15 #

    네덜란드가 안타깝죠
  • Allenait 2010/09/13 00:57 #

    네덜란드 해군이 연안해군 성격이라.. 의외군요. 그쪽도 대양해군일줄 알았는데 말이죠
  • 월광토끼 2010/09/13 13:16 #

    물론 저 시대에는 아직 누구나 연안해군일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대양으로 나아간다 ≠ 대양에서 장기 작전수행
  • 네비아찌 2010/09/13 01:32 #

    이번에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보고 왔는데 1층 입구에서 관람객이 처음 마주치게 되는 전시물이
    렘브란트의 그림도 아니고 델프트 도자기도 아니고 바로 네덜란드 해군의 옛 함포와 함선 부품들이더군요.
    암스테르담 해양박물관도 기대하며 갔더니 2011년까지 수리중이라 실망하고 돌아왔습죠.
  • 월광토끼 2010/09/13 13:17 #

    그 해양강국으로서의 역사가 나름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겠지요
  • 2010/09/13 07: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13 13:18 #

    감사합니다. 즐거이 봐주신다니 저도 즐겁습니다.
  • 눈팅 2010/09/13 08:09 # 삭제

    네덜란드는 목재 부족, 조선소의 영세함 등으로 커다란 배를 건조할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 월광토끼 2010/09/13 13:19 #

    잉글랜드 북부의 좋은 목재, 그리고 그 소모 후에는 신대륙 뉴잉글랜드의 목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영국이 참 운이 좋은거지 말입니다
  • Ciel 2010/09/13 08:44 #

    마스터 앤 커맨더를 보면 함장이 부하들을 데려가는게 규정위반인 것 처럼 묘사되던데... 어느쪽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 월광토끼 2010/09/13 13:19 #

    오브리 시대와 이 시대 사이에 한세기 반의 차이가 있는거 아시죠? ^^;
  • Ciel 2010/09/13 22:38 #

    소설 읽으면서 전혀 그런생각을 안해서...;ㅅ;
    그럼 어떤 시기에 어떤 계기로 그런 규정이 생겼고, 하지만 다들 쌩깠다는 이야기일까요;
  • hyjoon 2010/09/13 09:06 #

    점점 재미있어지는 군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 월광토끼 2010/09/13 13:20 #

    네 곧 써 올리겠습니다
  • 개발부장 2010/09/13 10:13 #

    [영국 해협을 지나는 모든 함선들은 영국에 대한 예로 국기를 내리고 지나야 했다.]

    이건 그야말로 "꼬우면 덤벼" 수준이군요; 다른 국가도 이런 짓을 요구한 예가 있습니까?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경제적 문제만 알고 있었지만 이래서 야 이건 뭐;
  • 월광토끼 2010/09/13 13:20 #

    당연히 네덜란드는 꼬와서 그리 못하겠다 했고 그래 전쟁이 터진 것이고..


    종전 협약 맺고 나서는 네덜란드 함선들이 국기를 하강하는 굴욕을 그대로 감수해야 했지요
  • 초효 2010/09/13 13:32 #

    저런 범선 한 척을 만드는 데 3000여 그루의 나무 부분부분이 이용되었다지요.
    노르만 정복기 당시만 해도 국토의 3분의 1이 숲이었던 영국 삼림이 아작나는 시대였지요.(뭐 동시기 유럽도 개간이니 건함이니 해서 상황이 비슷비슷 합니다만...)

    아무튼 배 한 척 만드는 데 재원도 엄청나게 들어갔는 데(현대로 치면 거의 이지스급 1척 가치), 건함 과정에서 부실하게 제작해서 먼 바다로 출항해서 돌아오지 않은 배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어쩔 땐 노획한 프랑스나 스페인의 선박이 더 우수하기도 했다고...)
  • kds 2010/09/13 13:34 # 삭제

    처음 글 남겨보네요. 오래 전부터 눈팅만 해왔는데 항상 양질의 포스팅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소하지만 몇 가지 표기중 눈에 띄는 것이 있어서 맞는 표기를 찾아봤습니다

    Warwick 워릭
    Goodwin sand 굿윈사주(砂洲/모래톱)
    Dungeness 던저네스
    Scheveningen 스헤베닝언
    지브랄타 - 지브롤터

    처음엔 워릭만 눈에 띄었는데 찾고 보니 좀 많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월광토끼 2010/09/14 10:10 #

    한국 표준 외국어 표기법인가요?

    워릭과 스헤베닝겐, 지브롤터로 반영 수정했습니다. 스헤베닝겐은 실제 발음을 들어보니 스헤베닝겐이 맞더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굿윈샌드의 경우 사주 부를 굳이 번역해야 된다는 생각은 안들어서 그냥 뒀습니다.
  • 가엘 2010/09/14 10:21 #

    하지만 네덜란드가 후일에 승리할 때에는 살짝 통쾌한 마음도 들어요!
  • Cuchulainn 2010/09/14 10:42 # 삭제

    1. 하지만, 영국이 제해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랑스의 전대미문의 병신짓이 있었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될겁니다. 꼴베르부터 "영국이 바다를 장악하게 두면 안돼.." 라는 경고를 남겼었는데, 육군으로 손쉽게 까부술 수 있는, 하지만 가까운 네덜란드는 박살내고, 네덜란드랑 손잡고 대항해도 힘이 될까 말까한 영국과과는 오히려 동맹을 맺는 그야말로 기상천외의 병신짓은 프랑스나 할 수 있는 짓입죠. (전 저 뒤로 프랑스 인간들은 사람으로 안봅니다 낄낄낄.)

    2. 네덜란드는 태생적으로 결함을 지니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네덜란드에서 힘을 휘두르던 연맹쪽에선 군비 지출이 늘어나면 그게 상업이익에 지장을 준다고 해서 해군 지원에 물심양면으로 극도로 인색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르텐 트롱프나, 미키엘 드 라이터같은 명장들을 제가 거의 이순신에 맞먹지 않나 나름 생각하는 이유가, 그 둘이 치뤄야 했던 전쟁상황이 치트공 상황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치트공같으면 일본해군이 경험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나 -_-;;) 나라 밖에도 적, 나라 안에도 적, 고립무원에 도무지 도움이 올 곳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네덜란드의 멸망을 막았으니 그 나름대로 엄청난 위업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전열함 교리가 처음 나온 것은 1500년대 후반으로 알고 있습니다. 1630년대에 가면 프랑스 해군 교범에도 전열을 이뤄 전투를 치르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고요.
  • 부가티 2010/09/16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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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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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기사 원문 보기:
    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1007/h20100706153816111720.htm
    http://www.gwangnam.co.kr/news/news_view.htm?idxno=2010082619243207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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