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네이비의 탄생 - 5. 안슨의 시대

사뮤엘 피프스의 시대도 이미 수십년이 지난 무렵, 18세기 들어 영국의 제해권에 있어 큰 위협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은 스페인도 네덜란드도 아닌 프랑스였다. 루이 14세 때부터 프랑스는 해군에도 큰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루이 15세 치세의 경제적 번영기때는 축적된 부와 확대된 해상무역량을 바탕으로 해군의 규모도 급성장하게 되었다. 1740년에 이르면 프랑스 해군은 영국 해군의 절반 정도의 규모에 당대 최고의 신예함들, 그리고 숙련된 선원과 장교집단을 보유하기에 이른다. 이런 프랑스가 스페인과 동맹을 맺을 때 양국의 연합 함대는 영국 해군과 나름 견주어 볼만한 규모를 형성하기 마련이었고, 이는 영국에 있어 향후 반세기 이상 큰 위협이자 골치거리로 남게 되었다.

그 위협이 현실화되고 영-불 해상충돌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게 된 것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이다. 그런데, 이 전쟁이 발발하는 시점에서 영국 해군은 제대로 준비된 집단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여러 전역들 중 아메리카의 카리브해에서 벌어진 영국과 스페인간의 교전들은 따로 ‘젠킨스의 귀 전쟁(War of Jenkins’ Ear)’이라 불리우는데, 여기서 보여진 영국 해군의 능력은 아직 17세기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니, 민망하기 그지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파나마의 포르토벨로 함락이라는 성공이 잠깐 있었으나 그 외에는 1741년 카르타헤나 침공작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실패와 1744년 툴롱 앞바다 해전의 무승부는 영국 해군의 명성에 오점으로 남았다.


[카디스 침공과 더불어 영국 해군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인 카르타헤나 침공]



2만 7천명이 수륙합동 강습작전에 투입되어서 그 중 1만 8천여명이 죽거나 다치고서도 4천명이 수비하는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한 카르타헤나 침공이나, 화력과 숫적으로 모두 우세를 점한 상태에서도 전열을 무너뜨리는게 두려워 적 함대를 타격하지도 추격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보내준 툴롱 해전 모두 영국 해군이 당시 가지고 있던 계급과 전술, 구조의 경직성과 비능률에서 초래된 사건들이었다. 툴롱 해전에서는 사령관 매튜 제독의 명령에 항명하고 적을 추격해 스페인 함선 한척을 나포해 온 함장 에드워드 호크만이 간신히 해군의 체면을 세워줬을 뿐이었다.

이런 해군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해군성과 국민들은 죠지 안슨의 스페인 무역선 나포 사건에 더욱 열광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슨의 그 세계일주 항행도 무역선과 그 화물의 나포라는 화려한 업적을 제하고 냉정히 보면, 바로 그 해군 비능률성 때문에 참가 병력과 함선의 8할을 잃어버린 대참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은 이런 점에서 해군의 무능함을 밖으로 노출시켰고 그리하여 개혁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보면 의미가 없지 않은 전쟁이었다. 죠지 안슨이 일선 함대가 아닌 해군성에서 보직을 맡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시기와 상황 속에서였다.

[George Anson, 1st Baron Anson, 1697~1762.]


1744년 12월, 막 세계일주에서 겪은 풍파와 괴혈병등으로부터 회복한 안슨 해군 준장(Commodore. 재미있는 건, 이때까지 Commodore란 정식 계급이 아니었고 ‘전대를 지휘하는 선임 함장’이란 ‘개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은 해군성에 배치되자마자 해군성 민간 관료들 못지 않게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안슨은 자신의 의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안슨이 해군성에서 해야되는 일이란, “-to challenge the tyranny of custom, which I find often very troublesome to those who oppose it” 이였다. ‘전통’이란 이름의 문제많은 압제에 대항해 개혁을 일궈내야 된다는 것이었다.

안슨에게는 조력자도 있었다. 과거 사뮤엘 피프스의 사촌이자 피프스를 해군성으로 데려왔던 샌드위치 백작 에드워드 몬타규의 직계 증손자 존 몬타규가 1748년 수석 해군대신(the First Lord of the Admiralty)에 취임하는데, 그는 의욕을 보이는 안슨에게 ‘당신이 실질적인 해군성의 수장이나 다름 없으니 그리 생각하고 일해달라’고까지 말하며 협력했다. 그래서 안슨은 수월하게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안슨이 도입한 여러가지 사안 중 하나가 해군 장교의 제복. 과거 그냥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사제’ 옷을 알아서 입고 다녔던 장교들과 제독들과 달리 1748년부터 영국 해군의 지휘관들은 벽색의 제복을 입기 시작했다. 이것은 해군 장교들의 전문성과 자부심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제복 도입보다 더 큰 변화는 바로 해군 전함 분류법의 개정이었다.

[BHC1044 Launch of a Fourth-Rate on the River Orwell. circa 1748.
(Repro ID: BHC1044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그 이전까지 ‘전열함’의 개념은 상당히 모호하여 상황에 다라 함대가 구성되고 가용 함선이 막 전투에 참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1~6등급의 등급 분류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나뉘어져, 확실하게 ‘전열함Battleship-of-the-line’으로 구분되는 것은 오로지 70문 이상의 대포를 탑재한 1~3등급 함선들로 국한되었고, 그 이전까지는 전투에 막 참여하던 60문급 또는 그 이하 4~6등급 함선들은 간단하게 ‘순양함cruiser’으로 분류되게 되었다. 또한 각 등급의 함선들은 모두 동일한 배수량과 함포수를 지니게 되었다. (사뮤엘 피프스가 개혁을 시작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슨 이전까지는 같은 등급이라도 디자인에 따라 달랐다.)

또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고급 장교들에 대한 개혁이었다. 제독들의 수가 너무 적다 보니 훌륭한 함장들이 진급을 하지 못한채 썩고 있었고 기존의 제독들은 너무 늙거나 능률적이지 못했다. 대부분 실적보다는 복무 기간 위주로 승진되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안슨은 ‘Rear Admiral-without distinction’이라 하는, 실적과 능력이 없이 나이만 들은 함장급들을 모두 제독급으로 승진시키고 퇴역시키는 조치를 취하여 능력 있는 젊은 함장들에게 등용문을 열어주었다.

또한 그때까지 육군에 있던 해병대의 통솔권을 해군으로 가져온 것도 안슨이 한 일이었다. 이 조치는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해군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같은 이유 때문에 징집 체계Press Gang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군법 조항을 더욱 엄격하게 개정시켜, 미숙련 선원을 징집하더라도 빠르게 단련시킬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해군의 계급 체계도 정비되었고, 이에따라 앞서 언급한 Commodore 등의 모호한 개념도 정식 계급이 되었다.

그리고 전략적인 면에서, 안슨에 의해 드디어 플리머스를 모항으로 하는 영구적인 ‘서부 전대Western Squadron’가 창설되었다. 서부 전대란 무엇인가. 훗날 그 유명한 해협함대Channel Fleet가 되는 함대로, 프랑스 북부 해안의 브레스트 군항과 르 아브르 항 사이를 완전히 틀어막는다는 개념이었다. (훗날 프랑스와 관계가 동맹관계로 변하고 독일의 위협이 증대되자 해협함대는 본국함대Home Fleet로 변하고 목적도 프랑스가 아닌 독일 해군의 대서양 진출을 막는데 초점을 두게 되었다) 포츠머스에 있는 주력 함대와는 별도로 플리머스에 배치된 이 함대는 대서양으로 나가는 적도 대서양으로부터 접근하는 적도 모두 막기 쉬운 위치에 있어, 안슨 제독은 바로 이 함대를 지휘해 제 1차 피니스테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으며, 그 후임인 호크 제독도 같은 함대로 같은 장소의 제 2차 피니스테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궤멸시켰다.


[BHC0369 Lord Anson's victory off Cape Finisterre, 3 May 1747
(Repro ID: BHC0369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전술적인 면에서는 전열 전투line-of-battle가 더욱 유연하게 바뀌었다. 앞서 말한 피니스테르 해전에서 안슨 제독은 전열을 유지하다가도 프랑스 함대에 균열이 생기자 전 함대에 전면 추격General Chase을 명했다. 이것은 함렬을 무너뜨리고 각 함장의 현장 판단에 의해 적함을 선택해 공격하게 한 것인데, 이러한 예는 넬슨 제독의 대까지, 아니, 1차 세계대전 비티 제독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온 해군의 ‘적극적인 공격성’ 개념을 배양하게 되었다.


안슨의 뒤를 이어 해군을 지휘한 호크 제독은 앞서 말한 툴롱 해전에서 혼자 그 ‘적극성’을 보인 지휘관으로 시대를 이끌어나간 주역이었다. 본래 그는 툴롱 해전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진급에 실패, 제독급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나이만 먹고 있었는데, 결국 ‘without-distinction’ 명단에 올라가게 된다. 안슨이 국왕 죠지 2세에게 그 명단의 결제서류를 가져갔을 때 국왕이 ‘이 친구 툴롱 전투에서 활약한 사람 아닌가? 그런 용감하고 열렬한 장교가 무시당하게 놔두진 않겠네!’라고 말하며 그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본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BHC2754, Admiral Edward Hawke, First Baron Hawke, 1710-81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그 후부터 호크의 군력은 화려했다. 제독급으로 승진한 후 해협함대의 지휘관으로 배정되어 1747년 10월의 제 2차 피니스테르 해전에서 프랑스군 1천여명을 사살하고 전열함 여섯척을 나포하는 전공을 세워 영국 해군 최고의 명 제독들의 반열에 오른다. 호크는 안슨이 시범을 보인 그 유연한 전열 전투를 그대로 답습했고, 안슨이 도입한 기조를 해군에 전통으로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안슨은 1751년부터 1762년까지 수석 해군대신을 지냈고 호크는 66년부터 71년까지 그 직위에 앉는다.



한편, 안슨이 수석 해군대신을 지내던 시대는 제 1대 채텀 백작 윌리엄 피트가 영국 총리를 지내던 시대이자 진정한 세계대전이였던 7년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총리 윌리엄 피트, 육군 총사령관 존 리고니에 장군, 그리고 수석 해군대신 죠지 안슨 제독이 힘을 합해 수립한 전략은 긴밀한 육-해군 공조를 가능케 했고, 이후 유명하게 된 ‘영국 해군이 전 세계에 발사하는 육군이란 이름의 포탄’ 개념이 영국의 정책에 뿌리깊게 자리잡게 된다. (물론, 이 정책이 언제나 효용성 있는 것은 아니었다.)



Herman, Arthur. 2004. To rule the waves: how the British Navy shaped the modern world. New York, NY: Harper Collins.
Hore, Peter. 2005. The habit of victory: the story of the Royal Navy, 1545 to 1945. London: Sidgwick & Jackson


본 연재 기획 1~4까지 보기:

http://kalnaf.egloos.com/tag/RoyalNavy


덧글

  • deokbusin 2010/09/21 14:54 #

    앤슨의 시대에 'cruiser'라고 하는 명사가 정식으로 함종에 사용되었는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보편적으로 알려지기로는 범선시대에 있어서 60문 이하의 함종은 프리깃과 등외함인 슬루프와 코르벳 등으로 나눈다는 정도이거든요.
  • 월광토끼 2010/09/21 15:05 #

    크루저라는 명사는 안슨은 물론이고 17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명사고, 이걸 함선의 전투 적성 분류에 넣은건 안슨이란 얘기지요.

    해군에 있어 크루저란 개념을 처음 사용한건 이미 1600년대 네덜란드 해군의 cruizer 였습니다.
  • 월광토끼 2010/09/21 15:42 #

    그리고 혹시나 싶어 위키피디아를 찾아봤는데 거기는
    From 1756 on, the Royal Navy no longer classified smaller two-deckers of the fourth rate (primarily the 50-gun ships) as ships of the line. It generally classified them, like all smaller warships used primarily in the role of escort and patrol ("convoys and cruising") vessels, as "cruisers", a term that covered everything from the smaller two-deckers down to the small gun-brigs and cutters. The larger fifth rate, generally two-decked ships of 40 or 44 guns (and thus technically not "frigates", although 40-gun frigates were also built during the Napoleonic War), also fell into this category.

    라고 나와있고,

    또 혹시나 싶어 "Patrick O'Brian's navy : the illustrated companion to Jack Aubrey's world"Philadelphia : Running Press, ©2003. 을 확인해 봤지만 역시 마찬가지 내용이 적혀 있군요. 아무래도 제가 맞게 적어놓은 것 같습니다.
  • deokbusin 2010/09/22 11:43 # 삭제

    아아, 고맙습니다. "상식"이라는 건 때로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19세기 후반 증기선의 시대에 기능은 분명히 범선시대의 프리깃과 동일한데, 함종은 '프리깃'이 아닌 '크루저'가 된 어느 함종의 분류경위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린 건 기쁜 일이군요.^^
  • 2010/09/21 14:5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21 15:06 #

    루이 14세가 서거할 당시 국고가 탕진되어 있었던 것인데, 루이 15세 치세 1730년대에는 영국과의 우호적 관계, 영국의 서인도제도 해적 소탕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성장기가 다시 찾아왔던 것입니다.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1735년 무역은 엄청난 흑자와 성장률을 자랑하고 있을 정도고 말입니다. 설탕과 럼주, 노예 무역 등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만큼이나 해상무역의 재미를 봤다고 합니다.
  • 개발부장 2010/09/21 14:57 #

    어쨌건 1~3급 전열함은 '와야 할 함대결전에 대비해서' 대기하고 정작 열심히 일하는 건 4등급 이하 ㅗㄹ벳들;;

    해군역사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영국해군도 저럴 때가 있었군요. 그러나그 흑역사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했으니 대영제국 해군이 있는 거겠죠. 과연 한국해군은 고칠려나요.
  • 월광토끼 2010/09/21 15:08 #

    범선시대 해전사에 이름을 따로 남기는 주요 전투함들은 오히려 전열함이 아닌 5등급 프리깃함들인 경우가 많다는게 참 재밌지요.

    한국해군은... 글쎄요 ^^; 육방, 아니 포방부가 그 성질이 좀 바뀐다면 달라지겠지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9/21 15:08 #

    영국해군에도 저런 흑역사가 있었군요.
  • 월광토끼 2010/09/21 15:43 #

    흑역사 없는 집단이 있겠습니까만ㅇ느
  • Allenait 2010/09/21 15:21 #

    저 유연한 전열이 이때 도입되었군요.
  • 대한민국 친위대 2010/09/21 15:31 #

    국민방위군급 영국해군의 역사에 경악했는데(카디프 원정이라던가 카디프 원정이라던가.....), 초반에 언급되는 경우는................orz
  • 월광토끼 2010/09/21 15:43 #

    카디'스' 겠지요. 스페인의 항구 Cadiz.
  • 대한민국 친위대 2010/09/21 23:08 #

    으아아아아아아앜!!(.........)
  • 검투사 2010/09/21 16:15 #

    호크 제독은 결국 그 적극성 덕에 썩어빠지고 복지부동하던 조직의 윗대가리들에게 무시를 당했던 것이군요. 그러고 보면 남의 나라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에도 안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 월광토끼 2010/09/22 12:07 #

    안슨이 있어도 포방부에 막혀서 아무것도 못하리라 생각합니다만 -_-;;
  • hyjoon 2010/09/21 16:38 #

    때로는 위기가 기회가 된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월광토끼 2010/09/22 12:07 #

    적절합니다.
  • guybrush 2010/09/21 18:14 # 삭제

    위에 댓글 단 분들의 글을 읽고 댓글 남깁니다.

    한국해군은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인재는 충분한데 입안하는 정책이 채택이 안되는 경우이죠. 한국해군은 좌파한테도 까이고 우파한테도 까입니다. 미제의 앞잡이라고 까이고, 북한이 눈앞에 있는데 대양해군 드립이나 한다고 까입니다. 심지어는 돈만 많이 드는 해군 그딴게 뭔 필요있냐고 육군한테도 까입니다. "바지선에 K-9 자주포 실어서 사격하면 다 맞추는데 비싸기만 한 구축함이 뭔 필요냐?"고 이야기하는 육군 영관장교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적도 있습니다.

    정책 입안이라는 건 해군에서 하더라도 그걸 채택하는 데에는 국방부와 국회의 권한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이 국방부는 육군들이 꽉 쥐고 있는 육방부(포방부) 수준이고, 국회의원들은 국방위원들조차 전문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힘겹게 국방부를 설득해 정책이 채택되더라도 국회에서 심의할 때 잘립니다. 국회의원들의 국가전략에 대한 인식수준은 뭐... 과거에 고속정 양산 드립 했던 분이 국회에서도 국방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국방위원이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예산이 없으면 정책 집행을 할 수 없고, 정책 집행이 안되면 해양전략, 나아가 국가전략이 무너지는 겁니다.

    해군전략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략도 그렇듯이 정책이라는 건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라기보다는 채택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수준이 문제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22 12:07 #

    저도 같은 취지에서 포방부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 LoneTiger 2010/09/21 21:36 #

    재미있게 읽었네요. 전쟁사 시리즈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네요

    물론 성공적인이야기가 전쟁사로 남긴 하겠지만요 (...)
  • 월광토끼 2010/09/22 12:08 #

    왜 성공적인 것이 전쟁사로 남는다는거지요..?;;
  • LoneTiger 2010/09/22 23:09 #

    마지막 말은 뭔가 붙인다는게 실수 한듯요 D:
  • 행인1 2010/09/22 00:46 #

    점점 우리가 아는 그 영국해군의 모습이 갖추어져 가고 있군요. 그나저나 프랑스 해군도 나름 발전을 도모했고 괜찮은 발상도 여럿 있었다는데 결과는....
  • 월광토끼 2010/09/22 12:10 #

    영국처럼 해상에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는 해운국이 아닌, 기본적으로 육상세력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예산이나 정책의 문제 이전에 수병의 충원이 불가능했습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바다를 경험한 사람이 없어서 함의 승조원으로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들까지 마구잡이로 징병해야 했던 프랑스와 해사 경험이 풍부한 무역선 선원들이 도처에 널려있어 징집할 수 있었던 영국과는 결국 '사람'에서부터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지요.
  • 들꽃향기 2010/09/22 02:31 #

    그러고보니 젠킨스의 귀 전쟁은 영국해군의 이런 저런 흑역사가 많아서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ㄷㄷ 다만 저시기 영국해군의 강점은 저런 실패와 과오를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 같네요. ㄷㄷ
  • 월광토끼 2010/09/22 12:11 #

    물론, 흑역사기도 하지만 규모 자체도 그리 큰 전역이 아니었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요 ^^
  • 위장효과 2010/09/24 09:19 #

    어찌보면 주기를 주욱 타는 거 같기도 합니다. 대략 알프레드 대왕 시절부터 시작해서 선각자들이 나타나서 그동안 쌓인 악습과 구폐들을 제거하고 (무슨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청소하는 헤라클레스도 아니고) 그래서 기틀을 다져놓고 그 사이 또 뻘짓좀 하다가 다시 확! 잡아놓고...

    앤드류 커닝햄 제독 말대로 "해군이 전함 한 척 건조하는데 3년 걸리지만 전통을 세우는데는 300년이 걸린다!"...300년이 아니라 근 천년에 가까운 전통이 서 있으니 지역해군이 된 지금에도 로열 네이비가 그 위상을 자랑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 월광토끼 2010/09/24 10:31 #

    그럼에도 그 위상이란게... 참..

    수석 해군대신이 내각의 일원이던 것도 옛말이고 이젠 통합 사령부 산하 군대인데다가 이젠 돈 없다고 핵잠을 쓰네 마네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천년 전통마저도 눈물 나올 지경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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