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의 결과 - 영국 해군의 "영광스러운 6월 1일".

-그래서. 긴 세월과 과정을 거쳐 '탄생'한 로열 네이비가 그 위력과 능력을 입증한 것은 언제일까.

때는 1794. 프랑스 혁명이 더욱 과격한 노선으로 치달아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하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교전상태가 성립된 때였다. 프랑스는 공포 독재이자 군사 독재 국가로 나아가는 중으로, 그 군대와 그들의 전쟁은 공안위원 라자르 카르노Lazare Carnot의 말에 따르면, ‘전술 기동도, 예술적 전략이고 그딴 것 없는, 무자비한 불과 쇠, 그리고 애국심으로!’ 만들어지고 행해질 터였다. 이것은 해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레스트 군항에 배치된 프랑스 해군 함대의 무수히 많은 장교들은 국외로 도주하거나 단두대에서 끝장났고, 해군도 이제 ‘전략 전술 따위’ 없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적을 무찔러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숙청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도 살아남은 귀족 지휘관은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루이 토마 비야렛 드 쥬와유즈Louis Thomas Villaret de Joyeuse, 1750 ~ 1812 였다.

그런 비야렛-쥬와유즈는 이제 함대 사령관이었다. 브레스트와 세르부르항의 해군전대의 감사를 담당하던 몽따냐르(산악파) 출신의 공안위원 장봉 생땅드레Jean Bon Saint-André 가 비야렛-쥬와유즈의 함대운용 능력과 군율 을 눈여겨 본 덕분이었다. 그런 비야렛-쥬와유즈에게, 1794년 5월, 막중한 임무가 떨어졌다. 당시 신생 프랑스 공화국은 작물 수확의 실패로 식량난을 겪고 있었고, 체제 유지에 필수적인 그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의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막대한 양의 곡물을 무상으로 제공했고, 대규모의 수송선단이 버지니아로 가 이 곡물을 받아 싣고, 4월 2일 체사피크 만을 출항했다. 비야렛 쥬와유즈와 그의 브레스트 함대에 주어진 임무는 이 수송선단을 호위해 무사히 본국까지 호송해내는 것이었다. 공안위원 생-땅드레가 기함에 승함한채, 브레스트 주둔함대의 전열함 26척은 영국 해군의 눈을 피해 5월 17일 출항, 대서양으로 나아간다.


한편, 이 때 브레스트 항 프랑스 함대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동시에 대서양의 프랑스 상선과 수송선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영국 해군 해협 함대(Channel Fleet)도 프랑스 해군과 수송선단의 동태를 감지하고 이를 요격하기 위해 나섰다. 이 함대의 지휘관은 리처드 하우 제독Admiral of the Fleet Richard Howe, 1726~1799 이었다.


[Lord Howe]


하우 가문의 3형제는 모두 군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로, 맏이인 죠지 하우는 7년 전쟁의 북미 전역의 뒤껜 요새 전투(1758)에서 전사했고, 막내인 윌리엄 하우는 미국 독립 전쟁에서 벙커 힐 전투에 참전한 육군 장교였다. 둘째 리쳐드 하우는 열 네살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한 후로 평생을 해군에 몸 담았고 안슨, 버논, 호크 등 전설적인 제독들 휘하에서 복무했다. 까뭇하게 탄 피부 때문에 수병들 사이에서 ‘검은 딕’ (영어에서 이름 리쳐드의 줄임 애칭은 딕이다.)이라 불리우던 리쳐드 하우는, 1794년에는 이미 근 50여년을 해군에서 보낸 68세의 노련한 노장이었다.

아직 함장급이던 시절의 호레이쇼 넬슨은 한 편지에서 상관에 대한 존경심 가득히, 하우 제독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을 정도다. “He is the first and greatest Sea-officer the world has ever produced”(그는 세계가 배출한 최고이자 최대의 해군 지휘관이다)




어쨌든, 5월 2일, 전열함 25척으로 이루어진 하우 제독 휘하 해협 함대는, 프랑스 곡물 수송선단의 위치를 예측하고 이를 중간에 가로채기 위해 포츠머스 군항에서 출항한다. 이 때 아직 브레스트의 프랑스 함대는 발이 묶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열흘이 넘게 수색하고도 허탕을 친 해협 함대가 5월 18일 영국 해협으로 돌아왔을 때, 브레스트 항은 비어 있었다. 하우는 뒤늦게나마 이를 쫓아 대서양으로 다시 향했다.

두 함대는 대서양에서 항해하는 동안 각자의 적국 상선들과 수송선들을 격침시키거나 나포시키면서 나아갔다. 영국 상선들 몇 척이 나포당했고 영국 함대는 프랑스 지배 하의 네덜란드 상선들을 나포했다.

그러던 중 영국 함대는 비야렛-쥬와유즈의 함대 최후미에서 뒤쳐져 가던 ‘오다씨외Audacieux’ 함을 5월 25일에 발견한다. 오다씨외 함은 속력을 내 도망가 본대와 합류했으나, 이는 영국 함대에 그대로 프랑스 함대의 위치를 알려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두 함대가 서로 마주친 것은 5월 28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이 날은 풍랑이 심하고 각 함들이 지나치게 산개되어 있어 이것이 의미 있는 교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럼에도 하우 제독은 끈질기게 함대를 이끌어 비야렛-쥬와유즈의 함대를 놓치지 않았고, 29일에는 상당한 규모의 포격전이 벌어진다. 하우의 함대는 풍향 반대방향에서 선열진Line-ahead-formation으로 접근, 프랑스 함대의 전열을 끊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이 날의 교전은 결정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3등급 전열함 HMS ‘오리온Orion’의 1st Lieutenant 에드워드 베이커는 일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날이 밝자 적 함대가 어제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풍향을 따라 항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중략) 프랑스 배들은 포각을 매우 높여 우리 돛대들과 삭구에 성공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으나, 우리 함대는 그냥 적들의 선체에 최선의 포격을 가했다. 적 함대의 전열이 흐트러지자 우리는 만세 삼창을 하였으나 곧 적 함대 전체로부터 지능적이고 빠른 속도의 근거리 포격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모두들 비범한 사기로 이를 견뎠다. 우리 수병들은 아주 비범하게(uncommonly well) 행동했고 화약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모든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베이커가 적고 있는데로, 프랑스 함대는 나름 선전했고, 영국 함대의 선두함 HMS ‘시저Caesar’는 위에서 언급된 그 맹포화에 위축되어 프랑스 함대 전열에 뛰어들지 못하고 우회해버렸다. 적 함열을 분단시키려는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이 때문에 시저함의 바로 뒤에 따라오던 2등급 전열함 HMS ‘퀸Queen’이 타격을 입어 그 함장 존 허트가 전사하기에 이른다. 함대기함 1등급 전열함 HMS ‘퀸 샬로트Queen Charlotte’ 함상의 장교들은 이 광경에 분노해 험한 말들을 쏟아내었으나 하우 제독은 차분하게 “귀관들은 입 다무시오Hold your tongues, sirs.”라 말하고 다음 기회를 노렸다.

하우 제독의 함대 중 29일의 교전에 참가하고 피해를 입은 것은 총 11척으로, 모두 돛대를 노린 프랑스 해군의 포격에 의해 속도가 저하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그 교전으로 인해 풍향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으나, 피해 입은 돛대와 삭구들을 보수해야 했는데다가 오후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30일은 교전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31일에도 안개는 계속되었다. 그동안 29일의 교전에서 큰 피해를 본 프랑스 함 세 척이 함대를 이탈하고 모항으로 돌아갔으나, 이 빈자리는 다시 세 척의 타 함대 분견대가 30일 지원으로 합류하여 채워졌다.


비야렛-쥬와유즈 제독은 그동안 영국 함대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애썼고, 5월 31일 밤 동안 거리를 어느 정도 벌려 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하우 제독은 6월 1일 새벽 동안 맹렬히 그 거리를 다시 따라잡았고, 결국 오전 8시 경에는 두 함대가 서로 지근거리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기함의 함장 로저 커티스는 ‘퀸 샬로트’의 수병 하나가 동료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모습을 봤다고 적고 있다. “I think we shall have the fight today. Black Dick has been smiling.”(내 생각엔 오늘 결전을 치르게 될 것 같아. ‘검은 딕’이 미소짓고 있어!) 노장은 적함대가 손에 들어왔다고 느끼고 웃고 있었다.

[the Glorious First of June, 1794; plan of the action (PAD8870)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전투 배치 상태를 알리는 드럼이 맹렬히 울리는 가운데 수병들은 목이 터져라 애국가인 (공식 국가인 God Save the King-Queen과 함께 애창되는) ‘Rule Britannia’를 제창하였고, 하우 제독은 이렇게 외쳤다. “더 이상 교범도, 신호도 필요없다!” 그러다가 갑판 위에서 한 어린 사관후보생을 발견하여 하우 제독은 그 소년에게 위험하니 갑판 아래로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소년은 “Please sir, I am captain Montagu’s son. What would my father say if I left the deck during the battle!?(제독 각하, 제발요. 저는 몬타규 함장님의 아들입니다. 만약 제가 전투중 갑판을 떠났다고 말하면 저희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제독은 그 사관후보생을 자기 곁에 머무르게 했다. 26척의 전열함들 중 21번째 열에 있던 3등급 전열함 HMS ‘몬타규Montagu’의 함장은 공교롭게도 함과 같은 성을 가진 제임스 몬타규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어린 아들 몬타규가 아닌 아버지 몬타규였다.

이 6월 1일의 전투는 오전 9시 반, 프랑스 함대가 접근해 오는 영국 함대에 선제 포격을 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상기 언급한 ‘오리온’함의 장교 에드워드 블레이크는 그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기 전, 적함들로부터의 포격은 매우 정확하고 격렬했다. 우리 함대는 포격이 유효탄을 내지 못하거나 큰 위력을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선제포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장거리 포격을 지능적으로 할 줄 아는 자들이었다. (중략) 그러나 일단 접근하게 되자 우리는 적함대에 가장 비범한 포격을 아주 훌륭한 기강으로 퍼부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접근전을 시작한지 약 한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 때는 이미 여섯 척 정도의 적함들이 모든 돛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훌륭한 접근전 이전에 영국 함대도 전투를 쉽게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함대의 전열은 매우 딱붙어있어 틈을 허용하지 않았고, 3등급 전열함 HMS ‘브룬스윅Brunswick’은 전열을 뚫을려다 프랑스 전열함 ‘벙죄르Vengeur’와 거의 충돌할 뻔 하다 서로 엉켜 싸웠고, 그 뒤를 따르던 ‘오리온’함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엉켜 싸워야 했다. 함대의 25척 중 오직 일곱척만이 프랑스 함대의 전열을 분단시키고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이 일곱 척의 선두에 제임스 감비에James Gambier 함장이 지휘하는 HMS ‘디펜스Defence’가 항진해 나가며 포화를 퍼부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함대 기함 퀸 샬로트였다. 그 과정에서 퀸 샬로트 함도 주돛을 잃었으나, 전열 분단에 성공했을 때는 이미 프랑스 함대의 전열함 11척의 모든 돛대들이 포탄에 꺾인 상태였다.


[HMS Defence at the Glorious 1st June 1794, by Nicholas Pocock]



한편, 프랑스 함대 74문급 전함 ‘앵패튜외Impetueux’와 ‘뮈씨위Mucius’ 두 척의 교차포화에 사이에 얽힌 HMS ‘말보로Marborough’는 단 한개의 돛대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웠는데, 이 때 그 함장 죠지 크랜필드-버클리가 중상을 입어 갑판 아래로 호송되고, 부함장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최선임 위관 존 몽크톤이 지휘를 맡고 잠깐 포연이 걷혔을 때, 적함 ‘앵패튜외’의 함장 두빌이 항복을 영어로 권하자, “I’ll be damned I should ever surrender!”라고 외쳤다. 이 외침에 ‘말보로’함의 수병들은 만세삼창 후 다시 포문을 열어 ‘앵패튜외’의 남은 돛대들을 모조리 꺾었고 그중 앵패튜외의 함장 두빌도 전사했다. 그럼에도 나중에 ‘말보로’함은 근처의 호위함에 구조요청 신호를 보내고 견인되어 전장을 이탈해야했다. 다행히 적함 ‘앵패튜외’는 후속으로 도착한 HMS ‘러셀Russell’에 의해 점거당한다.


[Te Glorious First of June, by Philippe-Jacques de Loutherbourg.
가운데의 전함이 바로 하우 제독의 기함 '퀸 샬로트'다.]


그동안 하우 제독의 기함 ‘퀸 샬로트’는 모범을 보이며 비야렛-쥬와유즈의 기함 ‘몽타뉴Montagne’를 향해 달려갔고, 몽타뉴에 현측 50 포문들의 일제 포격을 쏟아부은 다음에 그 뒤를 따라 오던 ‘쟈코뱅Jacobin’ 함과도 포격을 주고 받으며 큰 피해를 입혔다. 퀸 샬로트함은 곧 프랑스 함들과 뒤엉켜 난전에 들어간다. 여기서 프랑스측 기함 ‘몽타뉴’는 하부 포갑판의 요원들이 퀸 샬로트로부터의 포화에 패닉에 빠져 제대로 대응 포격을 하지 못하는 추태를 보여주었다. 이 와중에 몽타뉴 함의 함장 뽈 바지르가 전사한다.

오전 11시가 좀 넘은 시각에 이르면 영국 함대 전반부에 속해 있던 함들 10여척은 모두 혼전 속에 뒤엉켜 접근전을 벌이고 있었다. 근거리 포격전은 모든 수병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장전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영국 포술사들이 속사포화를 퍼붓는 통에 프랑스 함대의 출혈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초기에 돌진하면서 ‘벙죄르’함과 엉켜있던 HMS ‘브룬스윅’은 결국 최후의 일제사격으로 벙죄르의 선체 바닥에 큰 구멍들을 뚫었고, 몇 시간 후 벙죄르 함은 3백명의 수병들이 아직도 타고 있는 채 격침당했다.

그러나 그런 브룬스윅도 선미돛을 잃었으며 그 함장 존 하비는 머스킷 사격에 당해 전사한 상태였다. 개전 초 ‘몬타규’함도 그 함장 제임스 몬타규가 장거리 포격에 복부를 맞아 전사했으며, 2등급 전열함 HMS ‘벨레로폰Bellerophon’에서는 그 탑승 제독인 토마스 파슬리 제독이 날아온 포탄에 왼쪽 다리가 날라갔다. 하우 제독의 기함 ‘퀸 샬로트’에서도 함상 해병대의 지휘관 토마스 넬빌 중위가 프랑스 함대의 ‘쟈코뱅’함과의 포격전 중 포탄에 맞아 전사했고, 부함장 스네이프 더글라스가 혼전 중 HMS ‘지브롤터Gibraltar’의 오인 포격으로 인해 중상을 입어 갑판 아래로 호송되었다.

[BHC2740, Lord Howe on the Deck of The 'Queen Charlotte', 1 June 1794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이 때 ‘퀸 샬로트’와의 교전에서 탈출한 비야렛-쥬와유즈 제독의 기함 ‘몽타뉴’는 전속으로 북쪽으로 향해 잠시 전선을 이탈했다가, 아직 교전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혼전을 빠져나온 함들 11척을 다시 규합해 전장으로 재돌입했다. 많은 영국측 전함들은 두번째의 새로운 교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나 하우 제독도 이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즉각 아직 피해를 덜 입은 함들로 전대를 구성해 내보냈다. 이에 비야렛-쥬와유즈 제독은 더 이상의 전투 행위를 포기하고 프랑스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퇴각한다.


이제 일곱 척의 프랑스 전열함들이 전장에 남아 항복했다. 남은 만신창이의 함선들은 간신히 전장을 이탈했다. 항행기능을 상실한채 빠르게 침몰해가던 ‘벙죄르’는 3백여명의 수병들이 탈출해 옆의 영국 전함들이 구조해 주었으나, 백여명은 그대로 탑승한채 함과 운명을 같이했다. 침몰하기 직전 몇몇 수병들이 삼색기를 흔들며 ‘비브 라 나씨옹, 비브 라 르쀠블리끄!Vive la nation, vive la republique(조국 만세! 공화국 만세!)를 외치고 수장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화약의 그을음에 얼굴이 그야말로 시꺼매진 하우 제독은 비야렛-쥬와유즈의 함대가 전장을 이탈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려 기함 함장 로져 커티스의 품에 쓰러졌다. 예순 여덟의 노 제독은 30일부터 근 50여시간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단 1초도 갑판을 떠나지 않은채 지휘를 계속했고 (식사시간에도 함교로 들어가지 않고 옆에 식판을 들고가던 수병의 식사를 뺏어먹었다는 말도 있다) 그 때 한계에 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적함대를 추격하거나 확실히 끝장내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으며 지휘권을 인계받은 로져 커티스는 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돛들을 모두 잃어버린 적함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일곱척만 포획했고 다시 일곱척은 전장에 내버려진 동안 다른 함대에서 온 프랑스 함들이 견인해 끌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렇게 프랑스 함대는 완전한 전멸은 피할 수 있었고 그 동안 정작 작전의 주 목표였던 곡물 수송선단은 무사히 달아나 프랑스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록 전략적으로는 영국이 승리하는데 실패한 것 같아도 수치상으로는 프랑스와의전쟁 역사상 그 유래가 없고 그 10여년 후 트라팔가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다시 없을 엄청난 대승리였다. 프랑스 함대의 전열함 여섯 척이 포획당했고 한 척은 격침당했으며 4천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또 3천여명의 수병들이 포로로 잡혔다.

그 반면 하우의 함대는 단 한척의 손실도 없었고 229명 전사에 724명 부상이라는 다 합해도 1천명이 안되는 사상자만을 내었다. 그 와중에도 고급 지휘관들의 높은 사상률은 영국 해군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져다 주었다.


비록 전략적 목표 달성 실패로 인한 비난이 약간 있긴 했어도 이 전투는 대승전으로 칭송받았고 환영받았다. 전투에 참가한 모든 제독과 장교들은 1계급 특진으로 보상받았다. 사령관 하우 제독에게는 후작의 작위가 제의되었으나, 하우 제독 본인이 자신은 이미 자신의 백작 작위에 만족한다면서 승작을 거부했다.


이 전투는 육지에서 거의 4백여 마일이나 떨어진 해상에서 벌어졌고 그 주변에는 어떤 지표도 없었기에 딱히 이름이 없다. 그래서 이 전투의 이름은 참전 수병들이 자랑스럽게 지칭하던 ‘영광스러운 6월 1일’. The Glorious First of June이다. 비록 프랑스 공화국의 체제 안정을 뒤흔들 수도 있었던 곡물 수송선단 요격에는 실패했지만, '영광스럽다'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승전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Herman, Arthur. 2004. To rule the waves: how the British Navy shaped the modern world. New York, NY: Harper Collins.
Hore, Peter. 2005. The habit of victory: the story of the Royal Navy, 1545 to 1945. London: Sidgwick & Jackson
Rodger, N. A. M. 2005. The command of the ocean: a naval history of Britain, 1649-1815. New York: W.W. Norton.

National Maritime Museum of Greenich, London (그리니치 국립 해사박물관)


Ps. Howe를 ‘하우이’라 번역하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데 그것은 틀린 것이다. ‘하우’다.

덧글

  • 2010/09/29 15: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29 17:05 #

    네, 감사합니다. 바삐 써내려가다보니 헷갈려 써버린 것 같습니다;;
  • Allenait 2010/09/29 16:01 #

    수병의 밥을 뺏아 먹다니 저런..(?)

    그리고 브룬스윅 말입니다만, 브룬스윅이 일제사격으로 벙죄르 바닥에 구멍을 낸 거죠..?
  • 월광토끼 2010/09/29 17:05 #

    네 맞습니다. 제 착각입니다.
  • hyjoon 2010/09/29 16:05 #

    전역과 넬슨이 하우에 대해 쓴 글을 보니 생각나는 문구가 있네요.

    용감하고 정의롭고 확고하며 강직하고 개인의 공적을 시기하지 않고 찬양할 수 있으며, 이 공적을 자신의 영광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자는 훌륭한 장군이 될 수 있다-조미니
  • 월광토끼 2010/09/29 17:09 #

    현실이 인용하신 문구대로겠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0/09/29 19:52 #

    해저 2만리에 나오는 바로 그 벙죄르 호의 침몰이 저렇게 이루어졌군요. 네모 선장이 그렇게 비통하게 묘사하던 벙죄르 호의 장렬한 최후, 감사히 보았습니다^^
  • 월광토끼 2010/09/30 13:28 #

    물론 그 장렬한 최후는 사실 어느정도 왜곡 보도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공화국 정부의 프로파간다 정책에 의해 대부분의 수병들이 영국 전함들에 의해 구조되었고 또 몇개월 후에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은폐, 왜곡하고는 '모든 수병들이 항복을 거부한채 배와 침몰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쥘 베른의 대에도 그런 인식이 시정되지 못했다는 얘기도 되니 약간 안타깝지요.
  • deokbusin 2010/09/29 20:48 # 삭제

    1. 영국이 그렇게나 열심히 치켜주는 넬슨이 지휘했던 해전들에게 대중적인 표현으로 자랑할만한 형용사들이 붙지 않고 영국해군이 치룬 거의 모든 해상전투가 그러한데, 오직 6월 1일 전투에게만 '영광스러운'이라는 형용사가 공식적이다시피 붙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의 승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자료에 따라선 영국해군의 신호체계 개혁이 하우의 시대에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호체계가 완전해진 상태에서 전투를 지휘한 넬슨 보다는 하우를 더 높게 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예전에 한국어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하우 항목에서 하우의 능력을 넬슨보다 더 높게 보는 표현을 읽고서 꽤 충격을 받았던 추억이 있기도 합니다.



    2. 중국측 자료를 보니까, 하우의 모친이 조지 1세와 상당히 가까운 친족이었던 덕분에 승진이 무척이나 빨랐다더군요. 그러한 찝찝한 사연이 있기는 해도 상선들까지 포함하면 범선시대에 유례없는 백 척이 훨씬 넘는 선박들이 관계된 저 해전의 승리를 이끌어낸 지휘만으로도 1차대전중에 영국이 만들려고 했던 속칭 애드미럴 급 순양전함의 이름들 중 하나로 쓰일 만하고 1937년 부터 만들던 조지 5세급 전함들의 이름으로 정해지는 건 어떻게 보면 운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만들어질 영국해군의 군함들에게 후드, 앤슨, 하우, 로드니의 이름이 명명될 날은 언제 올려나요? 신형 항모야 오랜만에 만들어지는 주력함이다 보니 신왕 등극의 해에 건조되는 전함의 이름으로 신왕의 이름이 주어지는 관례를 변형해서 따랐다고 쳐도, 해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저 수많은 영국인 해장들의 이름이 최근에 만들어지는 함선명으로 부활하지 않는 걸 보면 영국과 그 해군의 몰락(?)이 아주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 월광토끼 2010/09/30 13:08 #

    ..중국측..?;;;

    아무튼, 네 맞습니다. 리쳐드 하우의 모친 샬로트가 죠지 1세의 이복남매였지요. 승진이 빠를 수밖에요. 하지만 그런 배경 조차도 능력과 실적이 뒷바침 되야 가능한 것이고, 실로 그러하였으니 다행아니겠습니까.


    말씀하신 이름들은 실로 대형 수상 전투함에 어울릴 이름들인데, 그리 될려면 대영제국의 위세가 1세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리 되는 것은 아마 엄청난 세계사적 대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리라 보여지며, 그런 대이변이 발생하면 1차적인 타격을 입고 도미노로 쓰러질 여러 국가들 중 하나가 또 영국일 것이기에.

    지금의 처지로 전락한 영국 해군의 그 비참한 몰락에 대해서도 근시일 내 포스팅을 하나 할 생각입니다.
  • tloen 2010/09/29 22:29 #

    고급 지휘관들의 높은 사상률은 영국 해군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져다 주었다.

    멋진 말이군요

  • 행인1 2010/09/29 23:41 #

    프랑스 해군은 왠지 혁명전에도 영국에 밀리던게 혁명 이후에는 장교단이 박살나면서 더 심해진 느낌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30 13:21 #

    처음부터 경쟁을 할 수 없는 격차를 외교/동맹 전략을 통해 좁혀보려 하던 것이었고 그 전략으로조차 영국 해군을 이길 수 없었던 거니까 말입니다.
  • 헐퀴 2010/09/30 01:29 # 삭제

    함장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영국이 입은 피해가 크구나.'라고 봤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이래서야 부하들이 장교들 말을 안 들을 수가 없겠지요.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
  • 월광토끼 2010/09/30 13:22 #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

    물론 당시 해상전의 특성상, 지휘를 하려면 갑판에 서 있어야 했으며 제복덕에 눈에 띄고 늘 조준당하는 존재였던만큼 총 맞기 싫어도 총을 맞게 되는 자리가 함장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 2010/09/30 11: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09/30 13:03 #

    아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Montagne 인데, 제가 정신없이 쓰다보니 손가락이 미끄러졌나 봅니다 =ㅅ=; t와 g가 키보드 위치상 붙어있지요[...]
  • 지나가던과객 2010/09/30 12:40 # 삭제

    침몰하는 프랑스 배에 남은 백명의 선원들도 나름 비장미가 흐르는군요.
  • 월광토끼 2010/09/30 13:20 #

    비록 징집병들일지라도 '공화국 이념'이란 걸 정말 마음으로 믿고 있던 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되는 부분이지요..
  • 월광토끼 2010/09/30 13:30 #

    하지만 또 기록에 따르면 자포자기한 프랑스 수병들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그 창고에 있던 술들을 죄다 꺼내 진탕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그 비장미 넘치는 광경을 연출한 것이라고도 하니... 이건 좀 너무 '깨는' 얘기일까요 허허
  • 들꽃향기 2010/10/02 14:00 #

    잘 읽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이, 정작 육상에서는 영국 해군은 장거리 사격전을 선호하고 프랑스군은 근접 육탄돌격을 선호했고, 이 차이가 프랑스인들 스스로가 '자기들 국민성에 맞는다.'라고 선호되던 것에 비해서, 해상에서는 반대되는 양상을 보이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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