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칼레비의 폭풍 1-1

옛날 (2년 전) 쓰던 판타지 소설의 리뉴얼이자 재시작입네다.
조금 창피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써 올려 봅니다.




성자 아아론(Aaron)이 구주(救主)의 은총을 받아 세상을 구원한지 1220년 또는 1221년 째 해인 (이에대해서는 신학자들간의 심각한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아아론력 1220년의 12월 9일. 칼레비(Calehbi) 대륙 북부에 위치한 강대한 국가, 갈루스(Garlus) 왕국의 수도 루앙(Louan)에서는 살을 에이는 듯 매섭게 싸늘한 그 겨울날씨와는 정 반대로, 대단히 뜨겁고 긴박한 사건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루앙 시의 6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남서구에 수없이 늘어선 건물들 중에서도, 우아한 대리석 기둥 장식들이 눈에 띄는 6층 건물이 그 사건의 무대였다. 건물의 정문 층계참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여기저기 유리창도 박살나, 본래 깨끗하고 우아했을 무대는 상당히 지저분해져 있었다. 지금 그 지저분해진 건물 6층의 발코니 근처, 밖으로부터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선 누군가가 대단히 뜨거운 어조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사건에 더욱 흥과 열을 더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앞서 말한 우리의 요구사항들이 앞으로 두 시간 이내로 수락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관철될 때까지, 인질들을 1분에 한명씩 처형하겠다!”

건물 주변을 에워싼 채 총을 겨누고 있던 푸른 제복 차림의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부터 들려온 그 강경한 입장표명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테러리스트란 자들의 천편일률적 어휘와 사고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추가 발표에는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들의 수중에는 통합당 민의원 하이메헨과 육군 소장 윌리엄스가 있다. 부득불 처형을 시작하게 될 때는, 이 둘이 첫 타자가 될 것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테러리스트가 발코니로 두 명의 장년 남자들을 터밀어 내보냈다. 둘 다 머리가 상당히 벗겨져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둘 다 바둥거리며 비슷한 말들을 외쳐댔다.

“오오, 우리들을 어서 빨리 구해주게! 우리들을 무사히 구조하지 못하면 기필코 그 책임을 철저히 물을…”

그러나 그 둘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다시 붙잡혀 건물 안으로 끌려갔다. 다시 예의 그 테러리스트가 외쳤다.

“잠자코 우리 요구사항을 이행하라. 모든 것은 트레비아를 위해. 트레비아 독립 만세! 만세! 만세!”

그 말이 끝나자 건물 안으로부터 ‘트레비아 독립 만세’의 구호를 외치는 다른 목소리들의 외침이 소음을 더했다. 이에 푸른 제복을 입은 자들, 즉, 사건이 터지자마자 달려왔던 수도 치안군 제 1대대 소속의 군인들은 이에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빌어먹을. 썩어 문드러질 반도 놈들. 피비린내 나는 지옥에 떨어질 놈들! 젠장, 왜 진작 인질들의 신원파악을 하지 않았지? 앙!?”

수도 치안군 제 2대대 1중대의 지휘관 개해건(Gahagan) 대위는 옆에 서있던 중위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은 분노하고 있기 보다는 공포에 겨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금의 상황이 단순한 테러 사건 또는 인질극이 아니라, 그다지 특출나지도 못했던 자신의 경력과 직위가 끝장날 대사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갈색 구레나룻을 길게 기른 중년의 대위는 덜컥 겁이 난 것이었다. 중대가 아니라 대대급이 당장 달려와야 할 사건에 자신이 책임자로 보내진 상황도 원망스러웠다. 이 때 대위의 큰 손에 잡혀 흔들리던 중위는 필사적으로 상관의 주의를 옆으로 돌리려 했다. 중위의 노력 덕에 개해건 대위는 현장에 새로이 나타난 일군의 사람들이 옆구리에 찬 칼을 쩔렁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해건 대위, 이것 참 오랜만일세.”

푸른 제복의 치안군 무리를 헤치며 걸어나온, 곤색과 검은색이 배합된 정갈한 장식의 코트를 걸친 십수명의 또 다른 군인들 중에서도, 선두에 선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개해건 대위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고양이가 웃는 것 같은 느낌의 그 미소에 개해건 대위는 바짝 얼어붙으며, 부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황급히 거수경례를 올렸다.

“죠프리 경..!”

“여기선 그냥 플럼비 소령이라고 해두게. 난 기사 이전에 군인일세. 뭐 어쨌건. 지금부터 이 현장의 지휘권은 우리 부정규 특수기병 대대가 맡게 되었으니 그리 알도록. 그러니 개해건 대위, 현재 상황을 보고해 주겠나?”

기사 작위 소유자이자 육군 소령인 죠프리 플럼비(Geoffrey Plumby)는 말을 끝마치고는 품에서 파이프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보는 개해건 대위는 표정을 구기면서도 순순히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 칼튼 호텔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트레비아 분리독립주의자들 중에서도 과격파 단체인 ‘툴리아이 무장전선’ 놈들입니다. 수는 대략 30여명 정도로, 전원 무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1층 로비는 텅 비어있지만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호텔 안에 있던 사람들 대다수는 무사히 빠져나왔으나, 종업원 포함 민간인 약 십여명 정도가 인질로 잡혀있는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때 개해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플럼비 소령이 피식하며 코웃음을 쳤다.

“윌리엄스 소장 각하와 하이메헨 의원님도 민간인 취급인건가?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이 무장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무장수준에 대한 설명을 빠트리면 쓰나.”

개해건 대위는 앞에 선 플럼비 소령 뿐 아니라 그 주위에 선 검은 제복의 부정규 기병들의 얼굴에 조소가 서리는 것을 느끼고는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상대는 지휘계통부터가 다른, 국왕 폐하의 심복들이었다. ‘개새끼들…’ 개해건 대위는 욕을 속으로 삼키고 보고를 이었다.

“네, 안타깝게도 윌리엄스 소장 각하와 하이메헨 의원님 두분 모두 건물 6층에 붙잡혀 계신 모양이고, 그 경호병들은 살해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적들은 석궁과 장검으로 무장하고 있으나, 구형 머스킷과 신형 라이플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비트랩이 도처에 설치되어 있는 탓에.. 1층에서 접근하던 부하 둘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 말에 죠프리 플럼비는 입에 문 파이프를 잘근 잘근 씹으며 턱을 쓰다듬다가 옆에 선 부하를 쳐다봤다.

“그 큰 무기들을 다 어떻게 반입했을까. 백주 대낮의 번화가를 제복 군인도 아닌 자들이 석궁이니 라이플이니를 들고 활보할 수 있을리도 없는데. 아르헬 소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플럼비 소령에게 지목받은 검은 머리칼의 청년, 아니, 아직 소년처럼 보이는 부정규병 소위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매끄럽게 답했다.

“우리 정규군의 제복을 훔쳐 입고 위장을 했던지, 아니면 적중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상 왜곡 마법을 쓰면 8파운드 야포라도 비밀리에 옮길 수 있습니다. 마법사가 있는게 맞다면, 아마 6층까지 올라가는 길목에도 그런 마법으로 트랩들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개해건 대위는 젊은 소위의 억양이 평범한 군인답지 않은, 이상하게 정확하고 우아한 북부식이라고 느꼈다. ‘역시 국왕폐하 직속 부대다워. 분명 상류층의 책상물림 도련님이겠지!’ 개해건은 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비슷한 뜻을 담은 눈길을 소위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 책상물림 도련님으로 보이는 소위는 되려 자기보다 훨씬 덩치가 큰 개해건을 마주 쏘아보았다. 마치 늑대의 그것처럼 퍼런 눈동자가 보여 개해건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내 생각도 소위 자네의 생각과 같네. 개해건, 건물 안의 테러범들은 어떤 복장을 하고 있지? 아, 제복을 입고있는건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필시 마법사가 있는 거겠지. 우리가 출동한 것도 사실 그 때문이고. 개해건, 놈들의 요구사항은.. 아니, 굳이 들을 필요도 없겠지. ‘동지들’, 특히 대역죄인 타이터스 로렐의 사형집행을 취소하고 즉각 석방하라, 트레폴스의 식민 총독부를 폐쇄하고 자치권을 인정해달라, 뭐 이딴 것들 아니겠는가.”

“마, 말씀하신 그,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한 시간 반 후부터 윌리엄스 장군님과 하이메헨 의원님의 목숨이 위험에 쳐할 겁니다.”

개해건 대위의 다급한 말에도 불구하고, 플럼비 소령은 아주 무심한 표정을 짓더니 여유로운 손동작으로 입에 문 파이프에 연초잎을 털어 넣은 후 손가락을 그 위에서 튕겼다. 그러자 퍼런 빛이 손가락 끝에서 번뜩이더니 곧 연초잎에 불이 붙었다. 개해건 대령과 주변의 치안군들이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자 플럼비 소령은 씨익 웃었다.

“성냥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참 편리하지. 우리들은 말이야. 흠 흠. 중대 집합!”

담배 연기를 몇번 머금던 플럼비 소령은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휘하에 데리고 온 군인들을 정렬시켰다. 그리고는 차갑고 매서운 어투로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국왕 폐하의 하늘같은 은혜도 몰라보는 하룻강아지 같은 식민지 반란분자놈들이 얼빵하게도 마찬가지로 얼빵한 육군 장군님과 철새 정치꾼 한 놈을 붙잡고 있다. 둘 다 6층에 잡혀 있고, 거기까지 올라가는 길은 함정과 적들로 막혀있다. 그러니 시원하게 뚫어버리고 인질들을 끌고 나오면 되겠지! 라이함 대위, 적들의 위치는 다 색적했나?”

상관에게 호명받자 일행 중 유난히 키가 큰 청년이 한걸음 앞으로 나와 보고했다.

“예, 중대장님. 치안군이 파악한 대로 호텔 1층은 텅 비어있습니다. 2층 중앙계단에 두 명, 계단 앞 복도에 다섯 명이 있고, 3층에는 인질들로 보이는 사람들 아홉 명이 3층 중앙 로비에서 테러리스트 여섯 명에 의해 감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상 계단을 두 명이 지키는 걸로 보입니다. 4층에 네 명 정도가 복도에 모여 있고, 여기서도 또 네 명이 비상 계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5층에는.. 5층과 6층에는 몇 명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안됩니다. 제 색적 마법을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그야 그렇겠지. 자, 여기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는 두 곳인가. 그렇다면 라이함 자네가 2소대와 함께 정면 돌파를 하고, 내가 1소대와 비상계단으로 돌입하지. 좋아, 그렇다면 정확히 5분 후 돌입을 개시한다.”

그러자 그때까지 멍하니 보고만 있던 개해건 대위가 다급히 외쳤다.

“죠프리 경! 그렇다면 인질들의 안전은…! 지금 무턱대고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나 죠프리 플럼비와 그 휘하 검은 제복의 군인들 열 일곱명은 개해건 대위의 만류를 들은채 만 채 호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개해건 대위 뿐 아니라 주변의 치안군들도 당황해 그들을 제지하려 했으나 어느덧 그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찬 칼들이 쩔렁 거리는 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분명 하늘은 화창했는데 호텔 주변 시야는 마치 안개가 낀 듯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대위님, 저들은 대체.. 저들이 ‘그’ 부정규 부대입니까?”

개해건 대위는 부하들의 약간 겁에 질린 듯한 어조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래. 빌어먹게 재수없는 마법사 놈들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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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르-미르 2010/11/22 12:29 #

    카, 칼레비!
    리뉴얼로 돌아오다니요 엉엉 ㅠ
  • 눌눌 2010/11/22 13:19 #

    오...오오?!
    기대하겠스빈다!!
  • 이렇게 2010/11/23 03:19 #

    살짝 다아시 삘도나고...기대되네요~
  • saint peter house 2010/11/29 10:01 #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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