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롤터 문제



1704년 8월 1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영국 해군 함대가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남쪽 끝자락의 항구 지브롤터 앞바다에 나타났다. 함대가 포격을 퍼붓는 가운데 지브롤터 북쪽에 영국 해병들과 일군의 네덜란드 육군이 상륙해 스페인 본토로부터 지브롤터를 고립시켰다. 영국군은 8월 2일에 지브롤터 총독 디에고 데 살리나스에게 항복을 요구했고, 총독은 거부했다. 8월 3일에는 대규모의 포격이 도시 그 자체에 가해졌고, 요새 방벽들이 무너지며 해병 1천여명이 상륙하여 짧은 시가전 끝에 마을을 점령하고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았다. 총독은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영국과 네덜란드의 군인들은 민가를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했으며 카톨릭 성당들을 불태웠다. 그들은 그곳에 계속 주둔했고, 원래부터 거주하던 3천여명의 스페인 민간인들은 도시를 떠나 지브롤터 북쪽 땅에 정착했다.

그렇게 지브롤터는 영국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713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우트레히트 조약과 함께 종결된다. 우트레히트 조약에서 스페인은 영국의 지브롤터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때부터 지브롤터는 영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식민지 중 하나가 되었다. 대서양으로 향하는 지중해의 출입구에 위치한 이 항구는 영국 해군 전대의 기지가 되었고, 지중해에서 오가는 영국 상선들을 보호하고 지중해 안의 적국 함대를 감시하는 거점으로써, 해군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무역 상인들도 지브롤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720년대 중반에 영국의 첫 수상 로버트 월폴은 스페인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국방비 지출 감소를 위해 지브롤터 반환을 제안했으나, 국내에서의 엄청난 반대로 인해 그 안건은 순식간에 잊혀졌다. 이 얘기는 국방비 문제로 1780년대에 다시 한번 수상 셸번 백작 윌리엄 페티에 의해 제시되었으나, 마찬가지로 거센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그러는 동안, 본 거주자들이 떠나 빈 지브롤터에는 주둔 영국군의 가솔들과 영국 상인, 제노바 상인, 말타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정착했고, 그렇게 해서 지브롤터는 점차 스페인으로부터는 동떨어진 곳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계속해서 지브롤터를 돌려받으려고 노력했다. 영국과 전쟁이 터지면 스페인이 가장 먼저 군대를 투입하는 곳도 지브롤터였다. 1727년과 1779년에도 지브롤터는 공격받았으나, 영국은 이를 계속 지켜냈다. 특히 1779년에는 10만 병력과 함선 48척과 야포 450문으로 대공세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브롤터 방위 사령관 죠지 어거스터스 엘리엇의 뛰어난 지휘로 그 최대의 시도조차 무위로 돌아갔다. 스페인은 전쟁들을 끝낼 때마다 협상 테이블에도 지브롤터 문제를 내놓았으나 영국은 이를 번번히 거부하거나 무시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자 스페인으로서는 더이상 무력으로 지브롤터에 손 댈 수 없게 되었고,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영국에 있어 지브롤터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영국군의 지브롤터 방어]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에는 독일이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에게 지브롤터 공격을 대신 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프랑코는 독일군이 지브롤터에 아예 눌러앉을 경우를 대비해 그 제안을 거부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프랑코는 지브롤터 반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스페인 지도자가 되었다. 스페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 하려던 1954년, 즉 지브롤터 점령 250주년인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브롤터를 방문했을 때 스페인은 이를 스페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프랑코는 지브롤터 주재 스페인 영사관을 철수시켰고, 국경 통행에 엄격한 제한과 감시를 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1966년에는 UN 총회에서 스페인의 지브롤터 영유권의 정당성을 주장, 관철시켰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나. 우트레히트 조약에 따르면 지브롤터의 통치권과 영유권은 오로지 영국 정부에 있었으나, 1966년 이후 영국은 방침을 바꿨다. 1969년, 영국 정부는 지브롤터인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영국령 존속 문제를 영국인들이 아닌 지브롤터인들의 손에 맡겼다. 물론, 더이상 스페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지 오래인 지브롤터인들은 지브롤터가 스페인에 반환되는 것을 원치않았다. 지브롤터의 첫 시장이 된 조슈아 하산의 계략대로였다. 스페인은 이에 격렬하게 항의했고 지브롤터와의 국경을 완전 폐쇄, 통행과 통상을 금지시켰으며 통신선도 끊었다.

지브롤터 문제로 인해 냉전기 영-서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지브롤터인들은 더욱 스페인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해외 식민지 지브롤터는 모든 식민지들이 떨어져나가는 가운데에도 계속 영국령으로 남았고, 오늘날까지도 지브롤터인들의 영국에 대한 충성은 변하지 않는다. 2002년에 영국은 스페인과 지브롤터 통치권을 공유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지브롤터인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현재 지브롤터에는 3만명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국가로 자랑스럽게 "God Save the Queen"을 제창한다.




[2007년 9월 10일, 스페인으로 반환되는 것을 반대하는 지브롤터인들의 시위]




David Keys의 BBC HISTORY Magazine 2010년 11월호 기고문 "Rival claims on Gibraltar"를 참조했습니다.

덧글

  • 한단인 2010/12/05 16:37 #

    헐.. 10만 명으로 밀어붙였는데 못 깨다니..
  • 월광토끼 2010/12/06 12:45 #

    그리고 저곳을 영국군이 점령하는데 필요로 했던 건 2천명..
  • 한단인 2010/12/06 13:07 #

    컿..
  • 검투사 2010/12/05 16:54 #

    1389년에 세르비아가 오스만투르크에 패배한 뒤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이 떠나고 (이슬람교도가 되는 조건으로) 알바니아인들이 이주해 살게 되면서 610년 뒤에 코소보 사태 -> 코소보 독립으로 이어지는 그것과 비슷해보이네요. -ㅅ- 결국 스페인으로서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얘기...
  • 월광토끼 2010/12/06 12:46 #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앞으로도 스페인은 계속 지브롤터를 탐내겠지만 반환될 가능성은 없지요.
  • 행인1 2010/12/05 17:41 #

    지브롤터의 귀속문제를 지브롤터 주민들에게 맡겨버린건 왠지 모르게 저 유명한 "계획대로다" 짤방이 연상되는군요.
  • 월광토끼 2010/12/06 12:46 #

    데스노트 말씀이시지요?
  • 들꽃향기 2010/12/05 20:58 #

    영국의 식민지 반환문제에서 저곳만큼 과격하게 반환에 반대하는 곳도 드물 것 같습니다. (...)
  • 월광토끼 2010/12/06 12:53 #

    그러게 말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밖에서 보면 "왜 식민지로 남으려 하지?" 하며 어리둥절해하기 십상이지요.
  • 모에시아 총독 2010/12/05 22:19 #

    제3자인 우리들로서는 재미있는(당사자들은 참 난감하겠지만) 문제로군요.
  • 월광토끼 2010/12/06 12:53 #

    당사자들로도 그다지 난감할 건 없는 문제입니다. 스페인만 복장 터질 뿐.
  • 대한민국 친위대 2010/12/05 22:45 #

    영국령 홍콩이 반환되었을 때는 당시 영국의 국력이 중국에 비해 규모가 작았다는 것이 문제(...)고 홍콩인들이 반환을 극렬히 반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저 동네는 뭔가 다르군요(...). 만약 반환되면 홍콩반환 이전 홍콩인들처럼 해외이주 러쉬인가요...(응?)
  • 네비아찌 2010/12/05 23:21 #

    홍콩인들은 대다수가 중국인이었지만 지브롤터인들은 대다수가 영국인의 후손으로 인적구성을 물갈이한 게 근본적인 차이겠죠. 포클랜드도 영국인의 후손들이 산다는게 영국령으로 남는 중요한 근거겠구요.
  • 월광토끼 2010/12/06 12:54 #

    네비아찌님이 말씀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홍콩은 이제 금새 다시 중국에 동화되어 가고 있고요.
  • 누군가의친구 2010/12/05 23:27 #

    지브롤터는 대영제국으로써는 상대방을 언제든지 찌를수 있는 비수와 같은 존재였으니 말입니다. 그게 스페인이였든, 프랑스였든, 나치 독일이었든 말입니다.
  • 월광토끼 2010/12/06 12:55 #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함대도 극소수로 줄어든) 영국에 큰 전략적 이득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지요. 더 이상 수에즈 운하도 장악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군다나.
  • 청천벽력 2010/12/05 23:32 #

    이는 인종청소의 유효성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린 사례로써...음?
  • 월광토끼 2010/12/06 12:56 #

    뭐, 자발적 피난이었으니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말입니다 ㅎ
  • Allenait 2010/12/05 23:57 #

    저도 어째 영국에서 '계획대로다' 를 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월광토끼 2010/12/06 12:56 #

    물론 엘리자베스 2세의 지브롤터 방문에 스페인을 자극하려는 의도야 없었다고 합니다.
  • 소시민 2010/12/05 23:58 #

    만일 영국령으로 남아있기 힘들게 된다면 스페인에 병합되느니 차라리 독립국을 선포하려

    할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이쯤 되면 주민들로서는 스페인과의 동질성 같은건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요.
  • 월광토끼 2010/12/06 12:57 #

    다만 독립국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작은 영토와 적은 국민이로군요.
  • 배길수 2010/12/06 00:04 #

    왠지 "The Italian man who went to Malta" 생각이 나는 게(...)
  • 월광토끼 2010/12/06 12:59 #

    -가 뭔지 몰라서;;
  • 배길수 2010/12/06 15:05 #

  • 네리아리 2010/12/06 10:19 #

    모 섬나라 높으신 분들 "계획대로...."
  • 萬古獨龍 2010/12/06 10:20 #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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