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 아처-쉬 사건과 "윈슬로우 보이"

1908년 10월 영국. 한 해군 사관 생도가 오스본 해군학교를 떠나 집에 힘없이 귀가했다. 당시 13세의 죠지 아처-쉬George Archer-Shee는, 동료 생도의 5실링 어치 우편환Postal Order을 기숙사에서 훔친 죄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소년은 10월 7일에 장난감 기차를 구입하기 위해 15실링 6펜스의 돈을 교내 우체국에서 우편환으로 송금했다. 같은 시각 다른 생도의 우편환 5실링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우체국에서는 누군가가 5실링 상당의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꿔갔다. 우체국 직원은 15실링 6펜스를 송금한 사람과 5실링의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꾼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즉 죠지 아처쉬라고 증언했다. 학교측은 죠지 아처쉬의 범행을 확신하고 퇴학시킨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 Martin and George Archer-Shee, 1910]


그러나 귀가한 죠지 아처쉬는 자신의 무죄를 줄기차게 주장했고 이를 믿은 그의 아버지, 은행가 마틴 아처쉬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해군성에 공식 항의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법정 공방도 불사하려 했으나, 해군성을 고소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였다. 아무도 소년의 무죄를 믿지 않는 가운데 아처쉬 일가는 사건을 법정에 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해군성, 더 나아가 정부는 이를 무마시키려 했다. 그러자 마틴 아처쉬는 당대 최고의 법정 변호사이던 에드워드 카슨 경Sir Edward Carson을 고용했다. 에드워드 카슨 경은 소년의 무죄를 확인해 보기 위해 3시간 동안 면담을 했고, 결국 무죄를 확신하고나서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잘 나가는 변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의구현 사명에 불타던 카슨 경은 아주 적은 선임비용만을 받고 소년의 변호에 임했고, 고대의 유산이 되었던 권리청원법-국왕 또는 국왕 대리인에 의해 불의가 행해졌을 경우 신하를 보호하는 법안-을 끄집어내 하원에 상정시켰다. "FIAT JUSTITIA - Let right be done (정의가 행해지도록 하라)"이라는 구호 아래 결국 아처쉬 사건은 법정에 올라갔고, 1910년 7월 26일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 안가 소년의 무죄는 입증되었다. 카슨의 교차검증과 심문을 통해, 죠지 아처쉬에게 혐의가 가게 증언한 교내 우체국 직원은 '사실 생도들은 다 똑같이 생겨 보인다'고 했고, 죠지 아처쉬의 얼굴을 특정해내지도 못했으며, 자신이 사실 그날 너무 바빴기 때문에 착각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해군성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였고 영국을 떠들썩하게 한 Archer-Shee 사건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새 잊혀졌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불명예스럽게 살아갈 뻔한 소년 죠지 아처쉬는 오명을 씻었으나 그의 삶은 오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공부하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영국으로 귀국해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남 스태포드셔 연대에 소위로 임관했고, 안타깝게도 1914년 10월 이프레스 전투에서 19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럼에도 사건은 여기서 그냥 잊혀지지만은 않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 극작가 테렌스 래티건Terrence Rattigan이 아처쉬건을 각색하여 "The Winslow Boy"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내놓은 것이다. 사건의 세부사항과 법적 내용은 모두 실제 역사와 같지만 그 당사자들의 이름을 Winslow로 바꾼 후,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 가족들의 유대를 주제로 한 그 연극은, 당시 전후 경기 침체와 제국 해체로 인해 암울해져 있던 영국민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해군성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불의에 맞선 일개 국민이 결국 승리하여, 그래도 대영제국에 정의는 살아있다, 는 식의 희망적 인식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극 윈슬로우 보이로 인해 테렌스 래티건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이를 시작으로 그는 영국의 현대 극작가들 중 대표적 존재가 되었다. 윈슬로우 보이는 1950년대에 한차례 영화화 되었고, 다시 1999년에 영화화가 되었다. 1999년판은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세상을 뜨기 2년 전의 대 배우이자 당대 최고의 셰익스피어 연극 배우들 중 하나였던 나이젤 호손 경Sir Nigel Hawthorne(BBC 정치 풍자극 Yes Minister 시리즈로 더 유명한)이 아버지 윈슬로우 역으로 펼친 열연 덕분이었다. 지금 봐도 대단히 좋은 영화다.






참고 문헌:

Bennett, Rodney M. 1973. "The Archer-Shees against the Admiralty: the story behind The Winslow boy." London: Hale.
Rossi, John P. 2001. "The Archer-Shee case: the root of Terence Rattigan's 'The Winslow boy'". Contemporary Review. 278 (1623): 220-4.

영화:
Mamet, David, Nigel Hawthorne, Jeremy Northam, Gemma Jones, Rebecca Pidgeon, Sarah Green, and Terence Rattigan. 2000. The Winslow boy. Culver City, Calif: Columbia TriStar Home Video.

덧글

  • 크핫군 2010/12/06 13:15 #

    FIAT JUSTITIA - Let right be done

    너무나도 좋은말입니다.
  • 행인1 2010/12/06 13:39 #

    개략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었는데 소송의 근거가 된 법이 오랜 세월 먼저를 뒤집어 쓰고 있었을 '권리청원법'이었군요.
  • 드로이드 2010/12/06 14:55 #

    별별 이유로 쫓겨난 생도들 이야기만 들으면 식은땀이 다 나는 게....참.ㄱ-
  • Allenait 2010/12/06 15:27 #

    FIAT JUSTITIA - Let right be done

    너무나도 좋은말입니다. (2)
  • 소시민 2010/12/06 21:07 #

    잘 나가는 변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정의구현 사명에 불타던 카슨 경은 아주 적은 선임비용만을 받고 소년의 변호에 임했고

    - 카슨 경의 선의가 빛나는 순간이로군요. 하지만 모든 변호사가 카슨 경 같은 이가 될 수

    없으니 확실히 형편이 어려운 이들 또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변호 시스템이 필요하겠죠...
  • Jes 2010/12/07 01:01 #

    멋진 이야기로군요. 짧지만 정말 감명 깊습니다.
  • Cheese_fry 2010/12/07 05:25 #

    잘 읽었어요.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데요. ^^
  • 로르카 2010/12/07 08:39 #

    하지만 원래 필리프 멜랑흐톤이 쓴 관용어 대로 Fiat iustitia 뒤에 et pereat mundus가 붙어버리면 또 그 의미가 섬뜩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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