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치른 반도전쟁 (1808~1814) - 完

본인의 '반도전쟁' 연재 기획은 공정한 글이 아니다. 제목 앞에 붙은 "영국이 치른" 이라는 표현 그대로, 영국의 입장에서만 이 전쟁을 서술하는 것이였으며, 실제 이 전쟁 당사자들이었고 그 그 전장의 주민들이었을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의 이야기는 최소한도의 묘사에 그쳤다. 게다가 영국이라기 보다도 영국'군'에 집중했던 만큼, 군사사 이외의 면에서의 반도 전쟁에 대한 이해 전달이 미흡한 점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며 이 기획을 끝맺고자 한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08년 2월에 동맹국이던 스페인에 병력을 진주시켜, 페르디난도 7세를 폐위시키고 형 죠셉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위에 앉힘으로 스페인을 프랑스의 괴뢰국으로 만들려 했다. 반도전쟁은 이 계획에 스페인 인민들이 그해 5월, 무력으로 저항하면서 시작되었다. 막강한 점령군, 프랑스 육군들을 맞서다가 학살당하는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의 시민들의 모습은 고야의 명화가 증언하는 것처럼 대단히 극적인 충격을 이베리아 반도 전역과 유럽에 던져주었고, 이를 기점으로 스페인 전역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총과 대포를 들고나와 스페인 정규군과 힘을 합쳐 프랑스인들과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은 저항을 대단히 야만적으로 진압하였고 스페인 민간인들을 억압적으로 대하고 약탈을 일삼아 반감을 부추겼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곳곳에서 민병대가 조직되었고 이들은 프랑스 제국군의 무력 앞에 주요 도시들이 하나하나 함락되고 정규군 부대들이 하나하나 패주하는 가운데도 보급선과 통신망을 공략하며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이 소규모 민병대들은 대규모 회전이 아닌 여러개의 작은 싸움들을 이끄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게리예로스guerrilleros'들이 벌이는 '작은illa 전쟁guerr' 이란 의미에서 단어 '게리야', 즉 게릴라가 탄생하였다.

이들이 벌이는 신개념의 전쟁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정찰 나간 소대가 매복 습격에 의해 전멸 당하고, 중요한 명령서를 전달하는 전령이 붙잡혀 정보가 줄줄 세어나가며, 보급마차들이 습격당해 불타오르는 등의 사건들이 한 해 수십, 수백건씩 되풀이되는 동안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의 프랑스군 작전 수행 능력은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이런 게릴라 전에서 흔히 보이는, 점령군의 가혹한 보복 공격 -종종 민가에 가해진-과 이에 대한 게릴라들의 복수 등의 잔인성 또한 이 전쟁에서 선보여졌다. 목에 줄이 걸린 채 거리에서 끌려다니는 프랑스군 낙오병이나 게릴라를 숨겨준 죄로 총살당하는 농부 일가, 프랑스군의 협력한 것이 고발되어 동포들에게 집단구타당하는 매국노 '아프란세사도스', 보급선이 끊겨 민가에 약탈하러 온 군인들에게 매달리며 제발 겨울 식량만큼은 남겨달라고 애걸하는 빈농 등의 모습은 반도전쟁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 대단히 흔히 볼 수 있는 우울한 장면들이었다. 나폴레옹 전쟁기에서 가장 민간인들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이 바로 이 반도전쟁이었을 것이다.

한편, 반도전쟁은 스페인인들의 뇌리에 민주주의와 애국주의의 개념을 깊게 심어준 시기이기도 했다. 국왕이 유폐되어있는 동안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웠고, 이는 국왕을 위해 싸운다기 보다는 국가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민족적으로 고양된 애국심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 전쟁 시기 동안, 또는 전쟁이 끝난 후 무수히 많이 그려진 낭만주의 화풍의 그림들은 이러한 애국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 해내었다. 또한, 카디스의 망명정부에서 구성된 코르테스 헤네랄레스Cortes Generales, 즉 의회와 그와 함께 반포된 1812년 헌법은 왕정이 아닌 공화정의 방식으로 스페인을 통치하려 하였으며 이는 스페인이 왕정에서 의회민주정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물론, 전쟁이 끝난 직후 재림한 페르디난드 왕정 체제는 1812년 헌정을 정면으로 부정했고, 1812년 헌정체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들은 전후 수십년간 계속되었음에도 번번히 주변국들의 무력개입으로 좌절되어 실질적인 공화정이 수립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이는 여러차례의 내전과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여 스페인은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Defensa del Parque de Artillería de Monteleón]


스페인에서의 체제 변화 기조는 스페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스페인 본토가 전쟁터로 변하고 중앙정부가 무력화되어 있는 동안,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들은 자력으로 운영되고 자력으로 전쟁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를 통해 스페인 식민지인들은 자치독립의 개념을 터득하고, 소망하기 시작하였고, 본국의 영향력은 약화일로로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많은 식민지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스페인 제국의 해체를 가져왔다.

싸움을 경험한 것은 스페인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인들은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영국군의 지휘계통 아래 소속되어 있었지만 충분히 맡은 임무를 다하며 용맹히 싸웠다. 연합군 전체 전력의 20% 이상은 포르투갈군으로 구성되어 있어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1809년 토레스 베드라스 방어전 때는 약 2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방어선 안쪽으로 강제이주해야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방어선의 유지보수에 투입되기도 했다.


침략자 입장인 프랑스로서는, 이베리아 반도 전역은 끊임없이 희생과 출혈을 강요한,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스페인에서 확보한 점령지들을 계속 유지시키는데만 해도 엄청난 비용과 인적자원이 소요되었고, 이들은 계속되는 게릴라들의 준동과 살아남은 스페인 정규군들의 위협 속에서 조금씩 지속적으로 소진되었다. 이후에는 프랑스 본토 방어를 위해 상당한 수의 병력이 계속해서 남쪽으로 투입되어야 했고, 이는 러시아 후퇴 이후 시기 나폴레옹에게 있어 치명적인 병력 부족을 초래했다. 반도전쟁 기간 내내 프랑스 측이 이베리아 반도에 투입한 병력은 총합 60만 명 이상이었다. 그 60만명중 총 사상자 수가 무려 30만에 근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으로 보아도 반도전쟁은 단순히 나폴레옹 전쟁 내의 국지전이 아닌, 나폴레옹 본인이 친정에 나서던 동부전선에 비등하게 대비되는 서부전선이었다고 하는데 무리는 없다.

[Redition de Madrid, 1808]


반도전쟁이 프랑스에, 더 나아가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크게 끼친 원인은 나폴레옹 본인이 반도 전역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그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1808년 가을에 한차례 나선 친정으로 몇번의 승리를 거두고 나자 나폴레옹은 해당 전역이 이미 종결되었다고 판단했고, 그 이후 스페인 게릴라들의 준동을 무시했으며 그곳에서 왜 휘하 원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주둔부대가 계속 소진되어 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나폴레옹에게 위험한 독이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은 무엇보다도 영국인들의 존재, 능력, 의지를 지나치게 무시함으로써 가장 큰 우를 범했다. 그는 바욘느 방위선이 뚫리고 영국군이 북상하는 순간까지도 영국군의 존재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결국 나폴레옹 본인이 필요한 때, 필요한 지역에 시선을 주어 이베리아를 제대로 제압하지도, 견제하지도 않은 탓에 그 휘하 병력은 하나 둘 영국군과 게릴라들에게 격파당해갔고 프랑스에있어 불필요했을 피해를 입히고 절실한 병력과 지취관들의 발을 묶어, 파리 방어전을 펼치는 순간까지도 무거운 짐이 되었다.


스페인인들에게 있어 이 전쟁은 게라 데 라 인데펜덴시아 에스파뇰라, 즉 에스파냐 해방 전쟁으로 불리우지만, 영국인들에게 있어 이 전쟁은 The Peninsular War, 반도전쟁이다. 지구상에 반도는 수없이 많고 또 그 반도들에서 벌어진 전쟁이 얼마나 많겠냐만서도 영국민들의 인식 속에 국가적 위업의 하나로 남은 반도에서의 전쟁은 바로 이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다. 스페인인들의 해방도, 포르투갈 인들의 안전도, 프랑스 서부전선의 압박도 모두 이곳에 투입된 영국군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며, 결국 실질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여 이를 승리로 이끈 것은 영국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서 웰즐리의 공이였다.

[토머스 로렌스 경이 그린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국은 해군국이다.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나폴레옹 전쟁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바다를 담당해왔으며 이에따라 대對프랑스 연합국들 중에서는 가장 직접적인 실전 참여가 적은 나라였다. 대신 영국은 그 경제적 부를 이용하여 연합국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했고, 막강한 프랑스를 상대하는 유럽 본토의 국가들에게 있어서는 이 영국이라는 필수적인 자금줄이 그야말로 생명선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피를 흘린' 것이 적었다는 점에서 영국의 전쟁 참여도는 각국 사이에서 낮게 평가받기 일쑤였다. 그런 영국이 가용 육군 전력을 모두 끌어모아 연간 십수만의 인원을 투입하여, 무려 약 5년의 시간동안 전선을 계속해서 유지한 곳이 바로 이 이베리아 반도다. 프랑스가 이곳에 6년간 투입한 60만에 비하면 영국의 투입 총인원은 간신히 20만을 채우는 수준이었지만, 이것은 영국 입장에서는 대단히 모험적이고 총력을 다한 투자였다. 그 모험적 투자에서 영국군은 영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장들 중 하나인 웰링턴 공 아서 웰즐리의 지휘 아래 정예 프랑스 육군과도 대등히 맞서 싸우는 '강력한 육군'의 이미지를 확립하였고, 프랑스의 많은 명장들과 병력을 수차례의 대규모 회전들을 통해 패퇴시키면서 점차 전황을 바꾸어 나갔다. 그리하여 영국이 이곳에서 거둔 실적은 영국이 백일천하시 연합군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전후 비엔나 체제에서 큰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The Royal Engineers of the Peninsular Campaign]
[The Green Jackets of the Peninsular Campaign]



식사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전선 곳곳을 누비며 지휘를 하고 전장의 모든 면모들을 파악해가며 반도전쟁을 승리로 이끈 웰링턴의 업적은 이미 널리 존경과 칭송의 대상이다.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이미 지난 십수편에 걸쳐 자세히 묘사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웰링턴의 업적 또한 일반 영국 군인들의 능력과 희생을 바탕으로 일궈질 수 있었던 점 또한 잊혀져서는 안된다. 물론 그 영국군들 중에서도 추태를 보인 자들은 있었으나 (ex: 스페인 동부 영국군의 삽질) 기억되어야 할만큼 활약하고 공헌한 자들이 있다. 그 영국군들 중에서도 특히 토레스 베드라스, 시우다드 로드리고 전투, 바다호스 전투, 부르고스 전투, 그리고 산 세바스티안 전투 등 대규모 공성전들에서 대단히 어려운 요새 방어를 뚫어내거나 굳건한 방어선을 설계, 건설해낸 영국군 공병대의 활약.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전투들에서 전열 최선두에서 서 스크린 작전을 펼치며 적을 저격시키고 빠른 기동성으로 신출귀몰하며 활약한 경보병들, 특히 '그린 자켓' 라이플 연대들의 활약이 특기할만할 것이다.


한편 반도전쟁이 영국 내에서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비록 이후 발발한 워털루 전투의 대승리에 빛이 바래긴 했지만 반도전쟁은 해전에서의 그것과 못지않게 영국의 위업으로 손색없는 전과였고 이는 국민감정 또한 고취시켰다. 반도전쟁은 또한 정치적으로, 육지에서 프랑스군에 대적하고 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음을 확신한 끝에 반도에서의 작전 수행과 병력투입을 4년간 소리 높여 반대한 휘그당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 되었다. 휘그당은 영국은 육지에서 손 떼고 오로지 바다에만 집중해야 하며, 절대로 프랑스군을 대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대가로, 웰링턴의 군대가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로 쳐들어가던 순간까지 반도전쟁의 성과를 의심하고 또한 스페인 인들의 희생을 무시하면서 조롱과 공격을 일삼던 휘그당은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어떠한 공도 가져갈 수 없었다. 반면 토리당은 소 피트의 급작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정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휘그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것은 이미 기존의 'Whig Party' 가 아닌, 전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형성된 1830년대 찰스 그레이 백작이 집권할 때나 되어서였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반도전쟁은 나폴레옹 전쟁 전반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전역이었으며 많은 인명피해를 낸 전쟁이기도 했다. 단순히 영국 주도 연합군과 프랑스군이 벌인 주요 회전들에서의 병력손실만 집계해도 대단히 큰 수치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ex: "반도 전쟁(1808년~1814년) 병력 손실 집계" ) 또한, 단언하기는 성급하지만 이 전역에서 영국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나폴레옹은 아마 전력을 다해 동부전선에서 연합군을 무너뜨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성과가 있었기에 영국은 국제사회의 동등한 일원이 아닌, 지도적 위치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반도전쟁의 드라마틱한 역사는 이후 실제 참전자인 윌리엄 네이피어Sir William Napier 경의 손에 의해 집필되어 널리 알려졌고, 20세기 초엽의 찰스 오만Sir Charles Oman 경의 역작, 총 7권짜리 반도전쟁의 역사에 의해 정립되었다. 찰스 오만 경 이후 많은 영국 사가들이 반도전쟁을 연구하였으나 그들 중 대부분은 오만 경의 사관을 확대 재생산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 대다수가 지나치게 군사적인 면에만 치중하여 반도전쟁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면모와 그 여파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는데 실패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본인의 이 반도전쟁사 정리도 지나치게 군사적, 전술적인 면에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고있다. 결국 나중에라도 찰스 오만 경의 역작을 구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Sir Charles Oman, 1860~1946]


본 기획의 연재는 2009년 2월 시작되어 현재 2010년 12월에 끝났으니, 근 2년을 질질 끌며 쓴 셈이다. 겨우 5년의 역사를 짧게 묘사하는데 지나친 시간을 들인 것에 죄스런 기분이다. 동시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동안 찔끔찔끔 쓴 덕분에 각 편마다 작성 시간차가 크게 나 글 전체의 연결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아까운 점이다. 아래 단어 수 총계에서 보이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각 편의 분량도 대단히 들쭉날쭉하며 각 편의 완성도 또한 다르다. 더 균일하게 집중해서 썼으면 하는 후회도 있다.


이 기획을 쓰며 참고한 모든 참고문헌들:

Aitchison, John, and W. F. K. Thompson. 1981. An ensign in the Peninsular War: the letters of John Aitchison. London: Joseph.

Davies, Godfrey. 1919. "The Whigs and the Peninsular War, 1808-1814". Transactions of the Royal Historical Society. 2: 113-131.

Esdaile, Charles J. 2002. The Peninsular War: a new history. London: Allen Lane.

Fremont-Barnes, Gregory. 2002. The Napoleonic wars: the Peninsular War 1807-1814. Oxford: Osprey.

Glover, Michael. 1974. The Peninsular War, 1807-1814; a concise military history. Newton Abbot [Eng.]: David & Charles.
1977. Wellington's army in the Peninsula, 1808-1814. Newton Abbot [Eng.]: David & Charles.

Hibbert, Christopher. 1997. Wellington: a personal history. Reading, Mass: Addison-Wesley.

Weller, Jac. 1999. Wellington in the Peninsula. Greenhill military paperbacks. London: Greenhill Books.

Windrow, Martin, and G. A. Embleton. 1975. Military dress of the Peninsular War, 1808-1814. New York: Hippocrene Books.



이중 글로버의 Concise Military History 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반도전쟁 연재기획의 수치적 총량은 다음과 같다.


반도전쟁 01 - 339단어 / 1232자
반도전쟁 02 - 629단어 / 2073자
반도전쟁 03 - 805단어 / 2696자
"어느 장교가 집에 보낸 편지" - 545단어 / 1690자
반도전쟁 04 - 711단어 / 2306자
반도전쟁 05 - 1060단어 / 3459자
반도전쟁 06 - 614단어 / 2104자
반도전쟁 07 - 675단어 / 2163자
반도전쟁 08 - 1283단어 / 4256자
"프랑스측 입장에서의 1811년 반도전쟁" - 902단어 / 2979자
"반도전쟁 당시 술트 원수의 행패" - 517단어 / 1689자
반도전쟁 09 - 1721단어 / 5522자
반도전쟁 10 - 909단어 / 2876자
반도전쟁 11 - 866단어 / 2747자
반도전쟁 12 - 1190단어 / 4052자
반도전쟁 13 - 1175단어 / 3954자
반도전쟁 14 - 1311단어 / 4349자
반도전쟁 15 - 1246단어 / 4076자
반도전쟁 16 - 1250단어 / 4068자
"반도전쟁 영국군 지휘관들 약력과 초상" - 952단어 / 3468자
반도전쟁 17 - 1399단어 / 4457자
반도전쟁 18 - 1760단어 / 5724자
"반도전쟁 참전병력의 전투손실 총계" - 520단어 / 1645자
반도전쟁 19 - 1297단어 / 4215자
반도전쟁 20 - 950단어 / 3137자
반도전쟁 완결편 - 1472단어 / 5285자



총 2만 6천단어 정도. '30편 완결' 정도로 내용을 늘였더라면 책 한권 분량이 나왔겠다 싶다.


어쨌던, 긴 연재를 이렇게 끝마친다.


끝.


http://kalnaf.egloos.com/tag/PeninsularWar



ps. 추후 나피어 경이 집필한 척 반도전쟁사와 그 사관에 대해서도 짧게 글을 써볼 예정이다.

덧글

  • 아브공군 2010/12/17 16:38 #

    드디어 끝났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 정호찬 2010/12/17 16:43 #

    좋은 연재물 잘봤습니다. 연말에 좋은 결실 거두시길. ^^
  • 라인젤 2010/12/17 16:46 #

    고생 많으셨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
  • 들꽃향기 2010/12/17 16:50 #

    드디어 장기간의 연재가 끝났군요. 툴루즈 전투 이후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몸으로 접하니 아쉬운 생각도 드는군요. ㅡㅜ

    사실 우리나라는 물론 영미권 자체에서도 군사적 분야를 중심으로 한 반도전쟁의 분석이 대부분이지,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 등의 분야에 미친 영향을 조망한 분야가 별로 없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염두를 잊지 않으시려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말씀대로, 영국이 반도전쟁을 계기로 하여 강대국의 성격이 일변했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만일 영국이 해군력을 바탕으로 대륙의 분쟁에 자금지원이나 해주는 전략을 유지했었더라면, 나폴레옹의 몰락이 그렇게 빠르게 이뤄지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더욱이 이후의 유럽정세에서 영국의 발언권이란 지금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그것과 크게 달랐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ㄷㄷ

    사설이 길어졌네요. 여러모로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획으로 건필해주시기를 감히 기원하겠습니다! ^^
  • 행인1 2010/12/17 17:44 #

    그동안 손꼽아 기다려오던 이 연재가 드디어 끝났군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크핫군 2010/12/17 17:54 #

    그리고 카를로스 전쟁으로 스페인은 다시 시궁창으로...
  • hyjoon 2010/12/17 18:22 #

    연재 기획물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 부탁드립니다. ^^
  • Allenait 2010/12/17 18:30 #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dunkbear 2010/12/17 19:13 #

    진짜 분량 조금 늘리셔서 책 한권 내주셔도 될 것 같네요.

    정말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
  • Jes 2010/12/17 20:33 #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 울트라김군 2010/12/17 20:37 #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포스팅 끝까지 잘 읽고 갑니다.
  • 골드핑거 2010/12/17 20:54 #

    오오 정말 좋은 포스팅이었습니다 그리고 월광토끼님이 자랑스럽습니다ㅎ
  • 천하귀남 2010/12/17 21:00 #

    정말 훌륭한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
  • 리리안 2010/12/17 21:31 #

    연재 되는 동안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하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킹고 2010/12/17 22:11 #

    정말 이런 포스팅을 올려주신 월광토끼님이 고맙습니다.
  • 소시민 2010/12/17 23:07 #

    수고하셨습니다.

    결국 스페인에도 본의아니게 나폴레옹 전쟁이 자유주의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것이로군요.
  • 迪倫 2010/12/18 00:00 #

    흥미있는 글들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 주코프 2010/12/18 16:04 #

    열과 성을 다한 심혈을 기울인 정성과 노력이 문장 곳곳에 나타나는 이번 연재, 정말 잘 읽었고 귀중한 역사체험을 해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앞으로 충분한 휴식도 가지시고, 행복한 연말연시 되시길 기원합니다..

    신년에도 좋은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건필하시길..
  • 른밸 2010/12/19 01:02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대작이 하나 끝나네요- 고생하셨습니다~
  • 해색주 2010/12/20 02:17 #

    감사 드립니다. 좋은 글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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