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억지력 문답

요즘 '우리도 핵을 가지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에 따라 문득 생각나서 시트콤 한편 재감상.


Yes Prime Minister, 시즌 1, 에피소드 1: "The Grand Design".



-총리각하. 핵억지력을 믿으십니까?
-물론이요.
-왜지요?
-억지하니까.
-누구를? 누구를 억지한다고요?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걸.
-왜?
-우리를 공격한다면 내가 버튼을 누를거란걸 그들도 알테니까.
-누를겁니까?
-뭐, 최후의 수단으로, 그럴것이오. 물론.
-그 '최후'는 언제?
-그들이 서유럽을 침공하면 말이오.
-아, 그렇다면 최초의 대응이 곧 최후의 수단이란 말입니까?
- ㅇㅁㅇ
-아니 뭐 걱정 마세요. 러시아인들이 왜 유럽을 집어삼키려 하겠습니까?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하나도 제어 못하는데. 만약 그들이 뭔가를 시도한다면 그건 살라미 작전이겠지요.
-살라미 작전?
-한 장 한 장, 한 번에 하나씩. 자, 그러면 러시아인들이 서베를린을 침공하면 그 때 누를겁니까?
-뭐,, 경우에 따라.
-어떤 경우? 자, 시나리오 1. 서베를린에 폭동이 일어나고, 건물들은 화염에 휩싸입니다. 동베를린 국경 수비대가 국경을 넘어 치안 회복을 돕게 됩니다. 버튼을 누를 겁니까?
-ㄴㄴ
-수비대와 함께 동독 경찰이 같이 옵니다. 버튼?
-ㄴㄴ
-그러면, 동독 군인들도 치안유지를 위해 같이 옵니다. 그리고 동독군이 곧 러시아군으로 교체되고. 버튼?
-ㄴㄴ
-이제, 치안이 회복됬는데 러시아군이 계속 주둔해요. 민간 행정을 돕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그 민간 정부가 통행을 차단하고 템펠호프 공항을 닫아요. 자, 이제 버튼?
-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당신에게 있는 건 열 두시간이 다입니다!

~~~

-시나리오 2번. 자, 러시아군이 의도적인 '실수로' 서독 국경을 넘습니다. 지금이 최후?
-ㄴㄴ
-좋습니다. 그러면 시나리오 3번. 러시아군이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를 침공해 점령해요. 그들이 영국 해협에 도달해서 침공할 준비를 합니다. 이제 최후의 수단을 씁니까?
-ㄴㄴ
-왜 안되나요?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만 핵전쟁을 할거요. 먼저 쏘는건 자살행위니까!
-그렇다면 '최후의 수단'은 언제 쓰는 겁니까? 적이 피카딜리에 도달하면? 리폼 클럽에 오면!?

-허.. 핵 억지력이란게 확실히 말도 안되는 소리군.
-그렇고 말고요!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후속 대화:



그리고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 나온 대화:



Sir Humphrey: 버나드, 우리 국방정책의 목적이 뭐지?
Bernard: 영국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Sir Humphrey: 아닐세, 버나드. 영국이 지켜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들기 위해서야.
Bernard: 러시아인들은요?
Sir Humphrey: 러시아인들 말고! 영국인들!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고 있고!

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80년대 BBC 시트콤 Yes Minister 시리즈.

정치에 대한 "Appalling Cynicism" 이던가 "Splendid Realism"이던가. 내 생각엔 후자 같은데.


ps. 그리고 위 문답의 결론은
"그러니까 핵이나 순항 미사일 필요없고 재래식 무기 (군함이나 스마트폭탄, 벙커버스터) 에 돈을 쏟자"는 것임.

핑백

  • 잠보니스틱스 : 오늘의 차분한 잡동사니 2010-12-26 00:2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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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네리아리 2010/12/22 10:09 #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참 영쿸도 이 점에 대해서는 어허허허
  • 아브공군 2010/12/22 10:10 #

    블랙 코미디의 본좌, 영국답군요.....
  • Allenait 2010/12/22 10:10 #

    "Splendid cynical realism" 이랄까요
  • 리리안 2010/12/22 10:12 #

    결국 핵은 상대방이 먼저 쓰지 않는 한 쓰지 않는다? 그러면 북한이 핵공격만 안하면 핵 못 쏜다는 논리같은데...그럴 일은 적겠지만 북한군이 부산을 코앞에 두고 있다면 위의 예 같은 고민이 나올까요?
  • 월광토끼 2010/12/22 10:21 #

    그 지경이 되었다는건 이미 핵을 쏘건 말건 의미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얘기지요
  • 알츠마리 2010/12/22 10:29 #

    핵무기에 실용적 가치가 있는가를 꼬집은 날카로운 풍자같군요.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저쪽은 그런 거 생각 안하니 이거 원 참...-_-;
  • 미연시의REAL 2010/12/22 10:36 #

    핵무기의 실용적 가치보다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결과적으로 소모론적 개념의 재래식전쟁의 집중투자가 양적에서 많다는걸 보이고 국방비에 대한 전투력 자체를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고밀도 핵무기보다는 재래식 전력이 유리하다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월광토끼 2010/12/23 17:28 #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2010/12/22 10: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월광토끼 2010/12/23 17:29 #

    아, 그러고보니.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긴 하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씁니다.
  • 하얀그림자 2010/12/22 11:22 #

    영국의 핵 억지력은 "모스크바는 우리가 날린다"였죠..어차피 미국과 소련이라는 큰 놈들 사이에서 뭔가 가치있는 전력으로서 인정을 받는 방법으로 채택하였는데 의외로 효과가 괜찮았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가끔 미국도 이런 영국때문에 골치아파했던적이 있지만요..
  • 행인1 2010/12/22 11:28 #

    사실 [핵 억지력]이 가능하려면 애초에 미국/소련 정도의 덩치가 되든지 아니면 프랑스처럼 "우릴 쏘는 순간 3차 세계대전이다!"는 되어야...
  • 미스트 2010/12/22 14:27 #

    이성적으로 보자면 핵을 쏘건 말건 의미가 없겠지만,
    감정적으로 보자면 핵을 쏘는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만 x될 순 없다, 같이 죽자.

    그리고 상대편에서 보자면,
    유럽 땅을 다 집어삼키고 소비에트 주요 도시에 핵 두두두 떨어지면 그것도 난감할 듯....
    공멸이 두려우면 너무 극단적인 전쟁은 할 수 없게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알츠마리 2010/12/22 14:53 #

    그런데 첫 동영상에서 한참 심각한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중 전화오는 장면 너무 웃기네요.ㅋㅋ 특히 총리 표정이.(...)
  • 구데리안 2010/12/22 15:48 #

    옛날의 찌라시지만.. 이른바 "도끼 전술"이라는거에 어떠게 생각할지 궁금..
    서부극의 사나이들 처럼 노는걸 이해 하라는게 더 이상하지않나(먼산)
  • 구데리안 2010/12/22 15:52 #

    추가로 핵무기 자체 보유라는게 너무들 쉽게 생각들 하는 경향이 큰데. 현재 한국이 핵무기..라는 체계를 도입해야한다면 그건 경제나 군사적 문제를 벗어나서, 판돈 4800만을 걸고 시작하는 도박장에 정식으로 들어서는거니까요. 그것도 절대로 무를수도 없이 콜 이라는 단어만 말할수있는..

    더불어 우리는 프랑스식 핵전략을 가야한다고 주장(대신 4800만 대한민국 시민들의 확고한 사망은 보장됨..)
  • yjhahm 2010/12/22 16:34 #

    ㅎㅎㅎㅎㅎㅎㅎㅎㅎ
  • AO 2010/12/22 18:26 #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고 있고!" 으앜ㅋㅋㅋㅋㅋㅋㅋ
  • 네비아찌 2010/12/24 14:46 #

    그런데 막상 실제 영국의 위정자들은 http://sonnet.egloos.com/4191772 이렇게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게 아이러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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