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에이지 - 벨렌과 해로우몬트 사이에서.

공화정 말기의 로마 얘기를 잠깐 해볼까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대표되는 포풀라레스 일파. 이상주의자들이였음이 분명해 보이는 그라쿠스 형제들을 제외하자면, 그들 대부분은 로마 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빈곤계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권력을 탐하려 한 정치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하층민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심화되어가는 계급투쟁이 표출되는 양상이 정치에 이용된 것이었을 뿐일까요?

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겠다고, 민주주의적 원칙 (고대 사회의) 을 지키겠다고 나선 오프티마테스도 그저 기득권에 연연하여 귀족들만의 부패한 과두정을 유지하려한 이기적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키케로나 카토처럼 사뭇 비장미 넘치는 순수함으로 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술라와 마리우스가 멋대로 행패를 벌이며 망쳐놓은 공화정의 체제 안에서 어느 쪽의 선택이 더 옳았느냐, 또는 어느 쪽이 더 로마의 시민들에게 이득이었는가를 말하는 건 어렵습니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부자 기사계급들의 지원으로 성립된 금권정을 기반으로, 원수정에 이어 제정이 확립됨으로서 로마 제국이 성립되었습니다. 그 제국으로 인한 PAX ROMANA 속에서 다들 흥청망청 살았으니 결국 카이사르의 선택이 옳았다,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 평화가 평화로웠을까요? 군인-황제 시대를 거치며 내전은 계속 존재했고, 자칭 황제들이 일으킨 내전에 희생된 사람들도 많은데요? 제국도 결국은 기사계급이 몰락한 파트리아키를 대체한 시대였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으니 실질적인 하층민들의 삶엔 변한 것도 없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오프티마테스 파가 공화정 말기에 정권을 장악했다면 로마는 공화정 원칙 아래, 또는 키케로의 의사대로 기사계급과의 관계개선이 도모되어 더 균형잡힌 공화국으로서 유지되어 나갔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냐하면 그것도 불확실한 일이지요.



이러한 역사적 고민을 컴퓨터 게임을 하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드래곤 에이지: 어웨이크닝을 구입한 기념으로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드워프 왕국 오자마르에서 왕위 승계 문제를 두고 서로 싸우는 두 드워프 중 한 사람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에 처한 주인공의 선택이 어느쪽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생각난 게 바로 위 사례입니다.

스토리 상 스포일러가 되겠습니다만-

오자마르 왕국에서는 왕을 투표로 선출합니다. 선왕은 후계자를 지명, 추천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왕위는 귀족 의회에서의 투표를 통해 결정됩니다. 드래곤 에이지의 현 상황에서 왕좌를 놓고 다투는 두 후보 중 하나는 왕자입니다.

병사한 선대 국왕 엔드린 아에두칸의 막내 아들 벨렌 아에두칸 왕자. 벨렌 왕자는 악명이 자자한 탕아입니다. 부왕을 독극물로 암살한 혐의도 받는데다 자신의 형제들을 모함하고 함정에 빠트려 공멸하게 만들어 혼자 살아남았다는 소문도 돕니다. 부왕은 그를 임종 직전에 의절하며 내치기까지 했지요. 벨렌은 권력욕에 미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막장 인간입니다. 그런데다 그는 이제야 갓 청년티를 벗은 젊은이로 경험도 없습니다.또한 투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능하며 상인 계층의 신임을 받아 상업진흥을 약속하지요.

다른 한 명의 후보는 존경받는 원로 귀족이자 군사적 업적도 높은 명장이며 또한 선왕의 신임도 받던 충신인 파이랄 해로우몬트 공입니다. 해로우몬트 공은 선왕의 임종을 지켰으며 유언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미 입증된 행정수완가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해로우몬트를 몰락시키기 위해 벨렌은 악랄한 짓을 많이 저지릅니다. 투기장에서 해로우몬트 일파의 투사들을 협박해 기권하게 만들고, 해로우몬트를 지원하기로 약조한 귀족들에게 접근해 조작된 문서들을 들이밀어 해로우몬트를 모함합니다.

오자마르는 현실 세계의 인도보다 더 지독한 카스트 시스템 아래 모든 국민이 속박받는 왕국입니다. 평생 자신이 태어난 카스트에서 살아가며 권리도 제한되지요. 카스트가 없이 태어나 슬럼가에서 사는 카스틀레스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오자마르에는 계급간의 불신이 팽배하며 이 갈등은 뜨겁게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치 세태를 해결하고 개혁을 일구어 오자마르에 번영을 가져올 사람은 누굴까요. 양자 모두 서로를 몰락시키기 위해 음모를 획책하고 상대방의 지지자들에게 암살자들을 보내며 거리에서는 그 추종자들끼리 유혈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에필로그에 나타나는 후일담은 충격적입니다. 해로우몬트 집권시 오자마르는 끝없는 정치적 혼돈으로 빠져들고 해로우몬트는 미적지근한 통치를 펼치다 분열만 확장시켰고, 그러다가 허무하게 암살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의 왕권이 강화되고 암살 당하지 않는 경우에조차 나라는 끝없는 내전과 반란으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귀족과 하층민들 사이의 적대감은 최대로 증폭되고. 또한 고립주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지상의 인간세계와도 적대관계가 형성되고 무역이 끊기며 전쟁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벨렌이 집권하면 오자마르는 계급갈등을 해결하고 상업이 발전하여 부유해지며 군사적으로도 강력해져 중앙집권의 좋은 효과는 모두 발휘됩니다. 귀족들의 불만이 쌓여 몇차레 암살 시도가 있으나 벨렌은 이를 물리치고 아예 귀족 의회를 해산시켜버립니다. 그렇게 오자마르는 벨렌의 철권통치 하에 놓이게 되지만 그 대신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번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카스틀레스들의 권리도 신장되고 벨렌은 그들에게 자유를 약조하며 군사적, 영토적 팽창 또한 이룩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요. 저는 결국 벨렌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퀘스트를 진행하곤 합니다만...
그럼에도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지요.

덧글

  • 아르니엘 2010/12/30 07:51 #

    저도 여기서 참 망설였죠... 해로먼트도 알고보니 극렬 신분지상주의자에다가 뒷구멍 많이 까는 드워프고... 결국 어쩔수 없이 왕자 손을 들어주긴 했는데. 이런 갈등은 이후 인간들의 나라에서도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되죠. ....공주 손 들어주기 싫어요!
  • 라인젤 2010/12/30 08:51 #

    헐....... 저는 해로우먼트 손들어줬는데 후회되네요... 윗분말처럼 저도 공주편들어주기 진짜 싫던데 어쩔수없이 ;ㅅ;
  • 엘민 2010/12/30 09:25 #

    전 헤로먼트가 암살자를 보내길래, 좋다, 피에는 피다! 이래서 벨렌을 도와주고 입맛이 썼었어요. 그런데 헤로먼트를 지지하면 결과가 썩 좋지 않게 됐었군요.
  • Fedaykin 2010/12/30 09:29 #

    뭐...하지만 저 해로먼트시망 결과는 제작자가 의도한 부분일테니까요.
    게임 내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었고... 착한게 다좋은건 아니다 라는 교훈을 주려는 바이오웨어의 마음은 알겠지만.....이래서 드래곤 에이지가 성인용이었나봅니다,
  • 엽기당주 2010/12/30 10:02 #

    정치는 선의와 양심만으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싶었나보죠..
  • dol 2010/12/30 10:12 # 삭제

    정치라는 것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법입니다. 국민들의 무관심속에서.

    결국 국민들이 정치에 신경쓰고 현혹시키는 연예기사보다 정치, 사회 기사를

    보며 서로 토론하는 사회분위기가 되어야 하지만... 다스리기 쉬운 국민을 만들

    기 위한 교육으로는 불가능입니다.

    아마 제작자는 근대의 절대왕정이 나오게 된 역사를 가지고 그런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해로먼트는 전형적인 개인적 선량함에 기댄 귀족이고 벨먼은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서 평민층을 끌어안는 국왕을 나타냅니다.
  • 궁상각치우 2010/12/30 10:28 #

    저도 할때마다 결국 벨렌 편을 들게 되더군요.
  • 정호찬 2010/12/30 12:27 #

    우리 역사에도 태종 이방원 같은 예가 있지요. 형제들과 동지들까지 숙청해가며 왕이 괬디만 내치는 튼실히 했던.
  • 네비아찌 2010/12/30 13:50 #

    아무래도 참정권이라는 개념도 없고, 생산력도 부족하고 교통과 통신이 불편한 전근대 사회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쪽이 몇명에게 분산되어 있는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게 사실이겠지요.
  • Allenait 2010/12/30 14:51 #

    벨렌이라고 해서 순간 실마릴리온을 생각해 버렸습니다(?)


    쉬운 선택이 아니로군요. 그런 면에서 꽤 괜찮은 선택지를 주는 게임이로군요
  • ⓧA셀 2010/12/30 15:16 #

    전 벨렌이라고 해서 엑소다르에 있는 영감님을 떠올렸네요 ㅇ>-<

    플라톤이 철인독재를 주장한 이유도 이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ㅁ'; 대학 새내기때는 이런 꼰대를 봤나...-_- 라고 눈을 흘겼던 플라톤인데... 부시 주니어(...)를 보고 나니 플라톤의 생각도 일리가 있구나 싶더군요 ^^;;;
  • shaker 2010/12/30 20:25 # 삭제

    AD68~266사이에는 제국 대부분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난 적 없습니다.
  • Program 2010/12/31 00:48 # 삭제

    드워프 왕족으로 플레이 해보면 벨렌이 얼마나 악독한 놈인지 알게 됩니다...

    결국 그에 의해 내쫓기는 불쌍한 주인공이 되지요.

    그래서 헤로우몬트를 선택하자니, 그쪽 결말도 알고 있어서 말입니다.

    결국 7번정도의 플레이 동안 헤로우몬트를 선택한 건 한 2번 뿐인듯 싶네요.

    물론 그 중 한번은 드워프 왕족으로 플레이 했을 때입죠. 도저히 벨렌을 선택 못하겠어서 ㅡㅡ;

    여담이지만 솔직히 프롤로그, 그러니까 캐릭터 시작 스토리는 드워프 쪽이 가장 재미있더군요.

  • 하텔슈리 2011/01/02 08:13 # 삭제

    그런데 해로우먼트를 지지해도 다른 결과도 나왔습니다. 엔딩 세번 봤는데 두번 해로우먼트 지지했어요. 두번째는 다른 상황이 났습니다. 조건은 모르겠고... 하층민등이 폭동을 일으켜서 위협을 느낀 귀족들이 해로우먼트를 지지하고 함께 상황에 대처했다는... 결국 신분정치의 유지였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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